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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국장님! 처음뵙겠습니다.

Author: 라온하제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6 13:55:16

국장실 앞에 서니 바리는 저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명부 관리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어제 받은 긴급 공문 이후로 바리는 하루 종일 마음이 어수선했다. 감사라는 게 대체 뭘 조사한다는 건지, 자기가 뭘 잘못한 건 아닌지, 별생각이 다 들었다. 덕순한테 물어봐도 "저도 국장님 뵌 적이 몇 번 없어요"라며 얼버무리기만 했다.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직원들이 두 사람을 흘끔거렸다. 국장실로 불려간다는 게 이 조직 안에서는 꽤 큰일인 모양이었다. 옆에 선 무장승도 평소보다 어깨가 굳어 있었다. 저 사람도 긴장할 때가 있구나, 싶어서 바리는 오히려 조금 마음이 놓였다.

"팀장님도 국장님 만나면 긴장하세요?"

"...당연하오."

"의외네요. 팀장님은 뭐든 다 무덤덤하실 줄 알았는데."

"...국장님은 다르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가 느껴졌다. 바리는 더 캐묻지 않고 조용히 뒤를 따랐다.

"들어오시오."

문 너머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무장승이 먼저 문을 열고, 바리가 그 뒤를 따랐다.

국장실은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근엄하고 무서운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책상 위엔 라면 그릇이 놓여 있고, 벽 한쪽엔 낚시 트로피가 잔뜩 진열돼 있었다. 다른 한쪽 벽에는 색이 바랜 상장들이 액자도 없이 압정으로 대충 꽂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전국 낚시 대회 우수상' 같은, 국장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들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앉은 남자는— 배가 살짝 나온 데다, 넥타이는 삐뚤어져 있고, 안경은 코끝에 겨우 걸쳐져 있었다.

"어, 왔나. 앉아, 앉아."

바리는 순간 자기가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사람이 그 무섭다는 염라 대감, 국장이라고? 덕순이 국장 얘기를 할 때마다 목소리를 낮추고 겁먹은 표정을 지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저, 국장님... 맞으시죠?"

"그럼 내가 국장이지 누구겠나. 왜, 실망했나?"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다들 그런 표정 지어. 뭔가 거창한 걸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표정. 근데 나도 어쩔 수 없어. 500년 넘게 이 일 하다 보면 사람이 좀 물러지는 법이거든."

국장은 낄낄 웃으며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탕 봉지였다. 그는 그중 하나를 까서 입에 넣더니, 바리 쪽으로도 봉지를 쓱 내밀었다.

"먹을 텐가?"

"어... 감사합니다."

바리는 얼떨결에 사탕 하나를 받아 들었다. 옆에서 무장승이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국장님, 긴급 공문 관련해서 왔습니다. 특별 감사 사유를 먼저 여쭙고 싶습니다만."

국장은 사탕을 오물거리며 서류철을 뒤적였다. 아까와는 다르게, 눈빛이 슬쩍 진지해졌다.

"음, 그래. 자네 부인 손등에 뜬 그 문양 말이야."

"...그것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그거 아무나 뜨는 거 아니야. 관문 통과할 때마다 저 정도 문양이 뜨는 임시직, 내 500년 재직 기간 통틀어서 딱 세 번째 봤어."

바리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세, 세 번째요? 그럼 앞의 두 번은 어떻게 됐는데요?"

국장은 사탕을 문 채 잠깐 뜸을 들였다. 표정이 미묘하게 흐려졌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국장님, 저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앞의 두 분은 어떻게 되셨는데요? 저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바리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앞의 두 사례가 좋게 끝나지 않았을 거란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국장은 그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살짝 피했다.

"...지금 겁줄 생각 없어. 다만 확실한 것부터 알고 가는 게 순서니까, 순서대로 하지."

"뭐가 중요한데요?"

"자네가 무슨 존재인지, 우리도 아직 확실히 모른다는 거야."

바리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뭘 모른다는 건지, 정확히 이해가 안 갔다.

"저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다 죽은 사람인데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국장은 애매하게 웃으며 서류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바리와 무장승, 두 사람 다 그 서류로 시선이 쏠렸다.

특별 감사 대상자: 바리

감사 사유: 비정형 문양 발현 3건, 명부 기록 불일치 다수 발견

"명부 기록 불일치요? 그게 뭔데요?"

"자네 생년월일, 사망 경위, 심지어 이름까지도. 명부에 기록된 정보랑 실제 확인된 정보가 미묘하게 안 맞아. 처음엔 그냥 행정 오류인가 했는데, 세 번째 문양이 뜨고 나니까 이건 좀 다른 얘기 같더라고."

"어떻게 안 맞는데요? 저 제 생년월일 정도는 정확히 아는데요."

"자네가 아는 생년월일 말고, 우리 쪽 원본 기록 말이야. 처음 등록됐을 때 날짜랑, 지금 자네가 살다 온 세월의 날짜가 미묘하게 어긋나. 마치... 한 번 살았던 삶이 아닌 것처럼."

바리는 그 말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머릿속이 뒤엉키기만 했다. 한 번 살았던 삶이 아니라니, 그럼 몇 번을 살았다는 소리인가.

무장승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국장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슬쩍 그를 쳐다봤다.

"자네도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눈치인데?"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확실치 않아도 말해봐. 나도 지금 답답해 죽겠으니까."

무장승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품속에서 어제 창고에서 발견한 그 낡은 서류철을 꺼냈다. 국장의 눈이 순간 커졌다.

"이건... 어디서 났나?"

"지하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미처리 인연 기록물 사이에."

국장은 서류를 받아 들고 한참을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결국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진짜 오랜만에 보는군."

"국장님, 이게 뭔지 아세요?"

바리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국장은 서류를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평소의 낄낄대던 웃음기를 완전히 지운 얼굴로 바리를 바라봤다.

"바리 씨, 하나만 묻지. 혹시 이승에서, 뭔가 이상한 꿈을 꾼 적 없나? 낯선 곳, 낯선 사람이 나오는 꿈. 근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그런 꿈."

바리는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어릴 때부터 종종 꾸던 꿈이 떠올랐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회색빛 하늘,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리움. 잠에서 깨면 항상 눈물이 나 있었는데, 왜 우는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엄마한테 몇 번 얘기했다가 "그냥 애가 예민해서 그래"라는 말만 듣고, 그 뒤로는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다. 너무 이상해서, 그냥 잊으려고만 했던 꿈이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바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국장의 표정이 순간 복잡해졌다. 뭔가 확신을 얻은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뭔가를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그는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내려놓았다.

"...역시. 자네,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옆에서 듣고 있던 무장승의 손이, 서류철을 쥔 채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바리는 그 손을 보며, 이 방 안에서 자기 혼자만 진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국장님, 그럼 저 지금 정확히 무슨 상황인 거예요? 저 그냥 평범하게 죽어서 여기 온 거 아니었어요?"

"...그건 나도 아직 확답 못 해. 다만 하나는 분명해."

"뭔데요."

국장은 사탕 봉지를 서랍에 도로 집어넣으며, 오늘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 특별 감사,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야. 앞으로 며칠간 자네 관문 통과 기록이랑 명부 원본을 정밀 대조할 거고, 그 결과에 따라서 자네 신분 자체가 재분류될 수도 있어."

"신분이 재분류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저 관문 못 통과하는 거예요?"

"그건 아직 몰라. 나쁜 쪽일 수도, 좋은 쪽일 수도 있어. 지금 확실한 건 딱 하나, 자네가 이 관리국 역사상 세 번째로 특이한 케이스라는 것뿐이야."

바리는 목이 바싹 마르는 걸 느꼈다. 옆에 앉은 무장승을 슬쩍 봤지만, 그는 여전히 서류철을 꽉 쥔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뭔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문 쪽으로 배웅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감사관들이 며칠 안에 자네들 팀에 방문할 거야. 협조 잘해주고."

"...알겠습니다."

무장승이 짧게 답하고 먼저 문을 나섰다. 바리도 뒤따라 나가려는데, 국장이 낮은 목소리로 붙잡았다.

"바리 씨."

"네?"

"...너무 걱정하지 마. 세 번째라고 해서 꼭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

바리는 그 말이 위로인지, 아니면 그냥 흘려 넘기라는 뜻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만 국장의 눈빛에 담긴 묘한 애틋함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마치 오래전에 알던 누군가를 보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복도로 나온 바리는 앞서가는 무장승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여전히 서류철을 꼭 쥔 채, 아무 말도 없이 걷고 있었다. 오늘 하루 만에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온 기분이었다. 문양, 감사, 명부 기록 불일치, 그리고 알 수 없는 꿈까지.

'나, 대체 뭐지.'

바리는 자기 손등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평범한 손등인데, 그 안에 자기도 모르는 비밀이 잔뜩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손끝으로 아무리 문질러도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데, 마음만은 자꾸 무언가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팀장님."

앞서 걷던 무장승이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진 않았지만, 듣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진짜 무서워요. 저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도 제대로 말을 안 해주니까."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무장승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오. 나도, 확실해지면 전부 말하겠소."

그 목소리에 담긴 건 회피가 아니라, 뭔가를 지키려는 사람의 조심스러움이었다. 바리는 더 캐묻지 않고, 그저 그 뒷모습을 따라 걸었다. 복도 끝, 창밖으로 보이는 회색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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