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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던 날, 나는 모든 걸 버렸다

이혼하던 날, 나는 모든 걸 버렸다

By:  안낙이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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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던 날, 나는 결혼할 때 입었던 옷 한 벌만 입은 채 집을 나왔다. 집도, 차도, 돈도, 아이들도 전부 서준호에게 남겼다. 서준호는 뜻밖이라는 듯 나를 바라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생각은 잘해 본 거야? 세 딸은 네 손으로 키운 아이들인데, 그마저도 포기하겠다고?” “정말 아무것도 안 가져갈 거라면 양육비도 네게 청구하지 않을게. 그럼 공평하잖아.” 나는 재빨리 합의서에 서명을 마치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응, 아주 공평해.” 서준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네가 후회한다면 우리 그냥...” 나는 손을 휘저으며 서준호의 말을 끊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났다. 서준호는 예전부터 내가 돈과 권세를 탐내 자신과 결혼했고, 아이들로 자신을 붙잡아 두려 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서준호가 내 시신을 수습하는 그 순간, 모든 걸 깨닫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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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내가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가자, 서준호는 웬일인지 나를 따라 나왔다.

“왜 그렇게 급하게 나가? 밖이 추운데 두꺼운 외투 하나 안 챙기고 나왔어?”

서준호가 들고 있던 밍크 코트를 내게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 돈으로 산 거니까 안 받을게.”

서준호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짜증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화를 냈을 텐데, 이번에는 드물게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아까 내가 한 말, 아직 안 끝났어. 후회한다면 돌아와.”

그러더니 차갑고 납작한 금속 물체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네 소원 코인이야.”

서준호는 마치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흘러간다는 듯 내 손바닥을 일부러 꾹 눌렀다.

나는 몇 년 만에 다시 손에 들어온 소원 코인을 꽉 쥐었다.

마음속이 복잡했다.

결혼 초, 서준호는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특별 제작한 소원 코인 100개를 만들었다.

그때는 한창 사랑이 깊을 때였다.

나는 매달 소원 코인을 하나씩 받았고, 그 코인 하나로 서준호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내가 아무리 살갑게 굴며 서준호의 비위를 맞춰도, 더 이상 코인을 주지 않았다.

최근 2년 동안에도 나는 예전처럼 서준호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지만, 소원 코인은 단 한 개도 받지 못했다.

나는 오랫동안 서준호에게 매달렸다.

소원 코인으로 서준호와 단 한 번이라도 잠자리를 함께할 기회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준호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우리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갔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서준호는 끝내 소원 코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이혼을 앞두고서야 이렇게 쉽게 하나를 받게 되다니.

정말 기가 막혔다.

내가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사도우미들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나를 태그했다.

[사모님, 큰아가씨가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무슨 약을 먹여야 할까요?]

[사모님, 둘째 아가씨가 피아노에 물을 쏟았는데 A/S 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사모님, 셋째 아가씨는 내일 조기교육 수업에 가야 하나요?]

[사모님, 서 대표님이 술 드시러 나가셨는데 해장국은 어떻게 끓이죠?]

...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하나하나 답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

[나, 서 대표랑 곧 이혼해요. 앞으로 이런 일들은 여러분이 잘 챙겨 주세요.]

나는 집안에서 딱히 사모님 행세를 하는 편도 아니었고, 가사도우미들과도 평소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다들 한마디씩 나를 말렸다.

[대표님과 잠깐 다투신 것뿐이잖아요. 그냥 넘어가시면 안 돼요? 예쁜 딸이 셋이나 있는데 꼭 이혼까지 하셔야 해요?]

[예전처럼 대표님께 애교도 좀 부리고 먼저 한발 물러서시면, 대표님도 더는 뭐라고 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동안 늘 그렇게 지내오셨잖아요.]

모두가 이번에도 예전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서준호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고 타협하고, 우리는 다시 화해할 거라고.

하지만 이번엔 정말 달랐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서준호를 사랑할 이유가 없다는 걸.

[이번엔 정말이에요. 앞으로 우리 세 아이 잘 부탁드려요.]

단체 채팅방은 한동안 조용하더니, 잠시 후 누군가 말했다.

[저희는 두 분이 처음부터 함께해 오신 모습을 지켜봤어요. 그렇게 서로 사랑하시던 두 분이 어쩌다 이혼까지 하게 되신 거예요?]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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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내가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가자, 서준호는 웬일인지 나를 따라 나왔다.“왜 그렇게 급하게 나가? 밖이 추운데 두꺼운 외투 하나 안 챙기고 나왔어?”서준호가 들고 있던 밍크 코트를 내게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당신 돈으로 산 거니까 안 받을게.”서준호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그 눈빛에는 짜증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벌써 화를 냈을 텐데, 이번에는 드물게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아까 내가 한 말, 아직 안 끝났어. 후회한다면 돌아와.”그러더니 차갑고 납작한 금속 물체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네 소원 코인이야.”서준호는 마치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흘러간다는 듯 내 손바닥을 일부러 꾹 눌렀다.나는 몇 년 만에 다시 손에 들어온 소원 코인을 꽉 쥐었다.마음속이 복잡했다.결혼 초, 서준호는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특별 제작한 소원 코인 100개를 만들었다.그때는 한창 사랑이 깊을 때였다.나는 매달 소원 코인을 하나씩 받았고, 그 코인 하나로 서준호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달라고 할 수 있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내가 아무리 살갑게 굴며 서준호의 비위를 맞춰도, 더 이상 코인을 주지 않았다.최근 2년 동안에도 나는 예전처럼 서준호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지만, 소원 코인은 단 한 개도 받지 못했다.나는 오랫동안 서준호에게 매달렸다.소원 코인으로 서준호와 단 한 번이라도 잠자리를 함께할 기회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서준호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우리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갔다.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서준호는 끝내 소원 코인을 주지 않았다.그런데 이제 이혼을 앞두고서야 이렇게 쉽게 하나를 받게 되다니.정말 기가 막혔다.내가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사도우미들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여러 사람이 동시에 나를 태그했다.[사모님, 큰아가씨가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무슨 약을 먹여야 할까요?][사모님, 둘째 아가씨가 피아노에 물을 쏟았는데 A/S 번호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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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당시 서준호는 아직 창업 초기였는데, 원한을 품은 자들의 악의적인 보복을 당했다.그때는 내가 막 졸업하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였다.나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경찰에 신고한 뒤, 그 사람들을 향해 가방을 던지고 서준호의 손을 잡아끌고 달렸다.상대는 수적으로 우세했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나는 서준호를 대신해 세 차례나 칼에 찔렸다.이후 나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서준호는 나보다 더 크게 다쳤으면서도, 다친 몸으로 한 달 동안 나를 간호했다.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금세 사랑에 빠졌고, 서준호가 창업에 성공한 뒤 우리는 결혼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 딸이 태어나자 서준호는 나보다 더 기뻐하며, 앞으로 나와 아이에게 최고의 삶을 선물해 주겠다고 말했다.서준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나는 뒤에서 묵묵히 뒷받침했다.사람들은 내가 사회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결혼했다며 비웃었다.그러다 이혼이라도 하면 비참한 꼴을 면치 못할 거라고 했다.그 말을 듣고 화가 난 서준호는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고, 집안의 재산도 전부 내 명의로 돌려놓겠다고까지 했다.시간만 나면 서준호는 일찍 집에 돌아와 나와 첫째 딸의 곁을 지켰다.둘째와 셋째 딸이 태어난 뒤에도 우리 관계는 여전히 예전과 같았다.하지만 2년 전부터 서준호는 점점 늦게 귀가하기 시작했고, 외지로 출장을 자주 다닌다고 했다.우리 사이는 급격히 식어 갔고, 나는 예민하게도 서준호의 마음이 변했다는 걸 알아챘다.몇 번 몰래 따라가 본 결과, 서준호가 야근을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이면 전부 귀국한 첫사랑과 함께 있다는 걸 알게 됐다.외지로 출장을 간다는 것도 사실은 첫사랑을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자세히 알아보니, 첫사랑은 서준호의 사업 파트너 여동생이었다.외국인 남편과 이혼한 뒤 귀국해서 국내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사실 손아연이 막 귀국했을 때 나는 그녀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그날 나는 서준호에게 점심을 가져다주기 위해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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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날 이후 나는 앓아누웠고, 밤에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크게 놀란 서준호는 최고의 의료진을 불러 나를 치료하게 했다.“당신만 나으면 앞으로 뭐든 당신 뜻대로 할게. 우리 다시 잘살아 보자.”그 후로 서준호는 확실히 행동을 조심했고, 손아연도 회사를 떠났다.우리 삶은 예전의 다정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세 딸도 아빠가 자주 함께 있어 주는 걸 무척 좋아했다.그러다 며칠 전, 동생을 돌보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서준호가 세 딸과 손아연을 데리고 새로 문을 연 핫플레이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서준호와 손아연이 서로 입으로 음식을 먹여 주는 모습이 보였다.맞은편에 앉은 세 딸이 웃으며 말했다.“아빠랑 엄마, 너무 부끄러워!”나는 그 자리에서 벼락을 맞은 듯했다.내가 손수 키운 세 딸이 다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다.밖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어떻게 집까지 걸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세 딸이 돌아와 비에 흠뻑 젖은 나를 보더니 경멸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왜 어떤 엄마는 그렇게 품위 있는데, 어떤 엄마는 밖에 데리고 나가기도 창피할까?”예전에도 세 아이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지만, 나는 학교의 다른 학부모들을 두고 하는 말이려니 했다.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들은 나와 손아연을 비교하고 있었고, 손아연을 더 좋아했던 것이었다.그 순간, 서준호의 외도를 알았을 때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내 손으로 키워 온 아이들이었다!나는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희 친엄마야. 너희가 다른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면, 이제부터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마.”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나는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렸다.큰딸은 혐오스럽다는 듯 나를 노려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또 그런 식으로 일부러 튕기는 거야? 그러니까 아빠가 엄마를 싫어하는 거지!”둘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안 부르면 그만이지. 나도 어차피 부르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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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안 돼! 제발 그러지 마!”“내 동생은 이제 막 수술을 끝냈어. 지금 치료를 중단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서준호는 동생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면서도, 나를 벌하겠다며 결국 치료비 지급을 중단해 버렸다.서준호는 내 애원을 무시한 채 전화를 끊고는 곧바로 회사로 향했다.나는 몸이 성치 않은데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서준호를 찾아갔다. 동생을 치료하게 해 달라고 빌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서준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회사를 떠났던 손아연이 다시 돌아와 부사장 자리에까지 올라와 있는 것을 알게 됐다.회사의 부사장 자리는 줄곧 비어 있었다.당시 서준호는 내가 집에서 자신을 뒷받침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약속했었다.“여보, 회사 부사장 자리는 영원히 당신을 위해 비워 둘게. 아이들이 다 크면 당신도 회사에 나와서 부사장으로 일해.”하지만 내게 약속했던 그 자리마저 다른 여자에게 넘어가고 말았다.서준호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그때 손아연이 책상을 돌아 서준호의 무릎 위에 앉더니 비꼬듯 말했다.“동생 치료해 달라고 빌러 왔어? 너 그날 나랑 준호가 좋은 시간 보내는 걸 방해했잖아. 그래서 기분이 아주 안 좋았어.”“나한테 빌기보다 준호한테 빌어. 준호가 너를 용서하면 내가 동생을 치료하게 해줄게!”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퍼졌다.서준호는 마치 사냥감을 노리듯 내 반응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단 1초만 망설이다가 손아연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내 모습을 본 손아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보는 앞에서 서준호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서준호의 눈빛은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요망한 것.”그 순간, 내 마음은 완전히 죽어 버렸다.손아연은 실컷 웃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네가 나를 웃겨 줬으니 이렇게 하자. 천 번만 머리를 조아리면 용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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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서준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믿을 수 없다는 듯 서준호는 경찰에게 되물었다.“뭐라고요? 청아가 죽었다고요?”“그럴 리가 없는데... 청아가 어떻게 죽을 수가 있어요?”그 말을 남긴 채, 서준호는 잔뜩 굳은 얼굴로 병원으로 향했다.그 옆에 있던 손아연이 일부러 부추기듯 말했다.“아마 또 우리를 질투해서 그런 걸 거야. 일부러 한발 물러나는 척하면서 네 마음을 흔들려는 거지.”손아연은 말을 끝내자마자. 서준호의 뒤에 바짝 붙어서 풍만한 몸을 남자의 등에 밀착시켰다.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준호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그 역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병원에 도착한 뒤에야 서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보았다.나는 이미 의식을 되찾은 상태였지만, 온몸에 크고 작은 화상을 입어 몹시 아팠다.나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사실 나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이 세상에 내게 남은 가족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그렇다면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서준호는 내 몸에 생긴 화상 물집들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다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초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괜찮아?”마침 그때 간호사가 보호자에게 서류에 사인해 달라고 해서 서준호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병실에서 나가기 전에, 서준호는 손아연에게 나를 잠시 부탁한다고 말했다.손아연은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다녀와.”하지만 병실에 우리 둘만 남게 되자, 손아연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손아연은 내게 다가와 차갑게 비웃었다.“내가 널 너무 얕봤네.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연기를 하다니.”“하지만 똑똑히 들어. 네가 이 병원에서 살아서 나가는 꼴은 절대 못 봐. 서준호는 평생 내 남자니까!”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뜨거운 물을 들고 내 화상 부위에 그대로 쏟아부었다.“내가 소독 좀 해 줄게!”피부를 파고드는 극심한 통증에 나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손아연을 노려보았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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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손아연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하지만 어떻게 변명을 해도 서준호는 믿지 않을 터였다.서준호는 손아연의 재빨리 움직이는 눈동자를 보다가, 결국 문밖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당장 꺼져!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마!”손아연은 서준호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걸 알고는 쫓겨나듯 병실을 떠났다.손아연이 사라진 뒤, 서준호는 내 곁으로 다가와 안타까운 듯 내 손을 잡았다.“정말 미안해. 내가 다 저 여자한테 속은 거야!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나는 서준호를 보지도 않은 채 눈을 감고 못 들은 척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와 간호사가 급히 도착했다.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내 거즈를 잘라 냈고, 그 안의 화상이 더 심해진 것을 확인했다.오염된 부위를 정리하고 물집을 터뜨린 뒤 다시 소독하고 붕대를 감았다.서준호는 옆에서 안타까워하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그때 갑자기 심전도 모니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겁에 질린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서준호는, 다급하게 병실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그 순간 나는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무심코 서준호를 따라 밖으로 뛰어나갔다.서준호의 몸에 손이 닿으려는 찰나, 내 손이 그의 몸을 통과해 버렸다.나는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침대 위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붕대로 온몸을 감싼 여자가 누워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나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내가 질렀던 그 불 때문에 화상으로 죽은 것이다.나는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사실 나는 진작부터 죽고 싶었다.죽음만이 진정한 해방이라고 생각했으니까.나는 조용히 서준호의 곁에 서서, 그가 미친 듯이 내 몸을 끌어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서준호의 눈물이 내 몸 위로 떨어졌다.“왜 이렇게 잔인하게 나를 두고 가는 거야?”“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나를 떠나는 거야! 나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돼?”그렇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나는 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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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서준호는 자기 딸들이 이렇게까지 냉정하고 무정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화가 난 서준호가 큰딸을 때리며 소리쳤다.“한 번만 더 그런 헛소리를 해 봐! 네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하지만 딸들은 여전히 웃고 떠들 뿐,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큰딸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그래서 어쩌라고? 어차피 그 엄마도 별로였잖아. 우리한테는 더 좋은 엄마가 있다고!”서준호는 아이들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이들의 엄마는 바로 손아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자신도 청아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헌신했는지 알고 있었다.그런데 아이들은 왜 이러는 걸까?어쩌다 자기 딸들이 이렇게 냉혹해진 걸까?딸들을 보며 분노로 온몸을 떨던 서준호는, 자신을 자책하며 자기 뺨을 때렸다.막내는 그런 모습에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병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나는 시끄러워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나는 서준호를 보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애초에 서준호가 손아연과 함께한 게 시작이었고, 아이들은 그저 보고 배운 것뿐이었다.서준호는 벌떡 일어나서 집사에게 세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라고 지시했다.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네가 얼마나 괴로웠으면 스스로 불을 질렀겠어. 기다려. 내가 지금 바로 네 원수를 갚아 줄게!”그러고는 사람을 시켜 내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기게 했다.나는 서준호의 뒤를 바짝 따라다녔다.서준호가 차를 타고 손아연의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때 손아연은 집에서 계속 술을 마시며 틈틈이 서준호를 욕하고 있었다.서준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아연은 황급히 일어나 아첨하듯 맞았다.“갑자기 웬 일이야?”서준호의 눈에 순간적으로 혐오가 스쳤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며 손아연을 바라보았다.“오늘 내가 너한테 화낸 거 미안해. 나도 너무 놀라서 그랬으니까 마음에 담아 두지 마.”말을 마친 서준호는 손아연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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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사실 서준호는 병원에 있을 때 이미 의사에게 내 정확한 사인을 물어봤다.의사는 분명하게 말했다.상처에 닿은 오염된 액체 때문에 감염됐고, 결국 그 감염 때문에 내가 죽게 됐다고.즉, 나를 죽인 진짜 범인은 손아연이라는 뜻이었다.하지만 손아연은 조금의 죄책감도 없었다.그래서 서준호는 구운 컵케이크에 수면제를 섞은 뒤 웃으면서 손아연에게 먹였다.케이크를 먹은 손아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침대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다.아이들 역시 하나둘 쓰러져 잠이 들었다.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의문을 품었다.‘대체 뭘 하려는 거지? 왜 딸들까지 봐주지 않는 거야?”나는 서준호의 옆에 서서 답답한 마음에 말했다.“이제 그만해.”사실 나는 서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먼저 손아연과 관계를 맺고 나를 배신한 것은 서준호였다.그런데 이제 와서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도 했던 것처럼 굴고 있었다.서준호는 내 말을 듣지 못한 채 휴대폰에서 우리의 사진을 꺼내 보았다.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서준호는 화면 속 내 얼굴을 계속 쓰다듬었다.“청아야,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나는 잠깐 손아연한테 홀려서 너한테 상처를 준 거야.”“네가 죽고 나서야 내 마음에 있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라는 걸 깨달았어!”서준호의 눈물이 휴대폰 위로 떨어졌고, 그는 한없이 나약해 보였다.나는 서준호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사실 나는 서준호를 정말 사랑했고, 그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꿈꿔 왔다.그래서 세 딸을 낳는 것도 싫지 않았다.하지만 서준호는 나중에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됐다.심지어 손아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내 동생까지 해쳤다.그래도 지금껏 받아온 교육 덕분에 나는 두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결국 나는 스스로 불을 지르고 죽음으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나는 겁쟁이였고, 나약한 인간이었다.서준호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중얼거리며 나에게 말을 쏟아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았다.나는 서준호가 나의 원수를 갚으려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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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나는 서준호의 곁에서 그의 얼굴에 드리운 죽음을 각오한 듯한 기색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아이들은 아직 어렸다.그저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다.그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돌이켜 보면 나 역시 좋은 엄마였다고 할 수는 없었다.내가 회상에 잠겨 있을 때, 큰딸이 눈을 떴다.아빠의 행동을 본 큰딸은 겁에 질려서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하지만 테이프가 입을 단단히 막고 있었다.그때쯤 서준호는 이미 가지고 있던 기름을 전부 뿌린 뒤였다.서준호는 큰딸 곁에 앉아 테이프를 떼어 주며 물었다.“하고 싶은 말 있어?”큰딸은 낯선 사람처럼 변해 버린 아빠를 보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아연 엄마! 나 좀 구해 줘! 빨리 나 좀 살려줘!”서준호는 자기 딸이 지금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서준호는 다가가 큰딸을 발로 걷어찼다.“누구를 엄마라고 불러! 청아가 네 진짜 엄마야! 그렇게 손아연이 좋다면 그 여자랑 같이 있어!”말을 마친 서준호는 분노에 찬 걸음으로 욕실로 들어갔다.그리고 손아연을 끌고 나왔다.손아연은 세 딸이 모두 꽁꽁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분노에 찬 눈으로 서준호에게 소리쳤다.“미친놈, 너 정말 미쳤구나! 우리를 다 죽이려는 거야? 감옥에 가는 게 안 무서워?”서준호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더니, 쪼그리고 앉아서 손아연의 턱을 움켜잡았다.“나 혼자 살아남을 생각은 없어. 너희 모두 데리고 청아에게 가서 죄를 빌 거야!”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서준호의 행동을 본 손아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안 돼! 서준호, 제발... 제발 그만해!”하지만 이제 서준호는 손아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저 손에 든 라이터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청아야, 내가 지금 너한테 갈게. 이제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어?”그러고는 라이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불길이 순식간에 치솟자, 나는 그 불길에서 한 줄기 열기를 느꼈다.나는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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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준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넌 정말 잔인한 인간이야.”서준호는 잠시 멈칫했다.다시 만난 나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서준호는 당황한 듯 내게 달려와서 끌어안았다.“나는 그냥 네 원수를 갚아 주고 싶었을 뿐이야! 저 사람들을 모두 네 곁으로 보내서 너에게 죄를 빌게 한 것뿐이야!”그러고는 뒤를 돌아 세 딸을 바라보았다.세 딸의 눈빛에는 아직 혼란스러움이 남아 있었지만, 아빠가 부르자 무의식적으로 다가왔다.불에 타는 고통을 겪고 난 뒤, 아이들은 서준호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게 됐다.세 아이는 나란히 서서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말했다.“엄마...”옆에 있던 손아연은 온몸을 떨며 험악한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았다.“이 천한 것들! 내가 절대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러고는 몸을 돌려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서준호가 나를 돌아보자, 내 몸도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서준호는 당황하며 나를 끌어안았다.“이제 다시는 너랑 떨어지지 않을 거야!”짜증이 난 나는 서준호를 밀쳐 내고, 집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소방대원들을 가리켰다.“저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어. 그런데 넌 잘못하면 이 건물 전체의 사람들을 다 죽일 뻔했어.”다행히 낮이어서 짙은 연기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게다가 낮에는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고 집에 없었다.하지만 만약 밤이었다면?사람들이 잠든 사이였다면?생각만 해도 아찔했다.나는 이미 죽은 몸인데, 왜 무고한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려 했던 걸까?서준호는 언제나 이렇게 이기적이고 결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서준호를 사랑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서준호는 내가 자기를 추궁할 줄 몰랐던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내가 어떻게 해야 했는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네가 죽은 뒤였어!”“나는 그냥 네 원수를 갚아 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뭐가 잘못됐어?”그 모습을 보니, 내 말이 서준호의 귀에 전혀 들어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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