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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를 속이지 않은 맛

Penulis: 데이지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10 16:07:12

“수라를 올린 자를 내전 앞으로 부르라.”

그 한 마디는 궁궐 깊은 복도를 타고, 수라간의 안쪽까지 이르렀다.

불리는 이름은 단 하나였다.

정채향.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물을 헹구던 손을 조용히 거두었다.

물 위에 떠 있던 미나리 줄기 하나가 흘러나와, 

대야의 끝에서 툭~하고 작은 파문을 남겼다.

세자의 내전으로 들어서는 길은 짧지도 길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유독 멀게만 느껴졌다.

정갈한 옷차림을 가다듬고, 머리칼을 단정히 빗은 채향은 조용히 발끝을 모았다.

곧게 세운 목선과 고개 아래 숨긴 떨림이 겹쳐진 걸음.

그녀는 걷고 있었지만, 그 안엔 서 있는 것 같은 고요가 있었다.

휘장이 젖히고, 푸른빛이 도는 저고리 자락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이현이 책을 덮으며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맞닿았다. 방 안엔 아무런 기척도, 말도 없었지만, 

그 짧은 교차에 물결처럼 미세한 파장이 일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고, 그는 오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이현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부드러웠으며, 그 끝엔 어쩐지 물기가 묻어 있었다.

“수라간 찬모, 정채향이라 하옵니다.”

채향은 또박또박,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말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손끝으로, 다시 발끝으로 천천히 흘러내렸다.

“어디서 배웠느냐. 그 죽. 어느 서책에서 본 맛도, 수라간의 방식도 아니더라.”

“배운 적은 없사옵니다.”

“다만... 소녀는 국물의 온기를 느껴보려 하였고, 향이 아니라 목의 끝에 남는 부드러움을 따랐사옵니다.”

그 말에 이현은 짧은 침묵 끝에 시선을 거두었다.

“…네가 만든 그 맛. 그것은 나를 속이지 않았소.”

채향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입술을 다물었다.

그 말이 칭찬인지, 경고인지, 그도 그녀도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그녀의 국물에 담긴 무언가를 느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경복궁의 중전전 앞에 화려한 마차 하나가 멈췄다.

윤기 흐르는 가체, 눈부신 비단 치마, 도톰한 단청단으로 된 신발.

마차에서 내린 여인의 이름은 민소희.

예비 세자빈으로 내정된 좌의정 민대감의 딸,

그녀는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하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숙여지는 존재였다.

“대비마마께 인사 올리옵니다.”

입술에는 웃음이 흐르고 있었지만, 눈동자엔 비웃음이 맺혀 있었다.

소희는 얼굴만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미모 하나로, 신분도, 권세도,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걸 본능처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력하지 않았다. 배움도, 인내도, 품위도. 그녀에겐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대신, 거울 앞에 선 자신을 하루에 열두 번씩 확인했고,

궁 안의 어떤 여자도 자기보다 예쁠 수 없다는 확신에 찬 채 살아왔다.

그녀는 곧 세자궁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 여인이 단 하나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날 저녁, 그녀의 귀에 조용히 스며든 이름 하나.

“세자저하께서 요사이, 수라간의 찬모 한 명을 자주 부르신답니다.  정채향이라 하던가…”

그 말에 소희는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은 예쁘지만, 날이 서 있었다.

“궁녀 따위가 저하의 식사를 책임진다니, 참으로 볼 만하겠네.”

그 시각, 수라간의 뒤켠. 정채향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무를 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손끝의 리듬이 아주 잠시,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아직 ‘위기’라 부르기엔 작았지만,

그녀의 운명이 더 이상 수라간이라는 솥 안에만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푸른 밤의 저편에서, 이현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 손끝, 그 냄새, 그 온기. 왜 그리 낯설고도… 익숙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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