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석진의 손이 아주 잠깐 굳었다.
“예전에 알던 사이입니다.”
“예전에?”
“네.”
“얼마나 예전인데.”
석진이 입을 열려는 순간 여울이 먼저 말했다.
“오래전입니다.”
시선들이 몰렸다.여울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도 오늘 오랜만에 봤습니다.”
석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강태환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톡.포크가 접시 위에 놓였다.
“그래.”
그가 등을 의자에 기댔다.
“지난 판 끝났으면 새 판에서는 새로 놀아야지.”
석진은 말이 없었다.여울의 손바닥에는 손톱 자국이 깊게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스윽.
앞에 있던 와인잔이 옆으로 밀려났다. 대신 물잔이 가까워졌다.
강건이었다.
그는 여울을 보지도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얼굴로 다시 식탁을 보고 있었다.
여울이 물잔을 잡았다. 차가운 유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그제야 알았다 .손이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 잔을 쥔 손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손바닥을 찌르던 손톱이 떨어졌다.
식사가 끝나자 강태환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고마 잘 묵었다.”
냅킨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다들 일 봐라.”
모두가 일어났다.
여울도 따라 일어섰다. 강태환이 다이닝룸을 빠져나가다 걸음을 멈췄다.
하필 여울 앞이었다.
“하여울 씨.”
“네, 회장님.”
“아까.”
강태환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잘 버텨보겠다 캤제.”
“네.”
여울은 이번에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강태환의 입꼬리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이번에는 웃는 얼굴이 더 서늘했다.
“함 두고 보자.”
묵직한 문이 닫혔다.
강태환이 사라졌는데도 다이닝룸의 공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방금까지 그가 앉아 있던 상석만 텅 비어 있었고, 접시 위에는 반쯤 남은 고기와 붉은 와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람은 나갔는데 흔적은 남았다. 여울은 그게 이 집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오빠.”
강솔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강건이 물잔을 들었다.
“왜.”
“왜가 아니잖아. 결혼을 했으면 최소한 가족한테는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강솔은 아직 어이가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러다 여울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 데리고 와서 갑자기 아내라고 하면 내가 뭘 어떻게 받아들여?”
노골적인 적의라기보다 낯섦과 당혹감에 가까웠다. 당연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존재조차 모르던 사이였다. 강건이 물잔을 내려놓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아니야.”
“뭐?”
“내 아내는 하여울씨”
강솔의 시선이 여울에게 향했다.
“하여울 씨?”
강솔의 눈썹이 올라갔다. 강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새언니라고 불러.”
여울마저 그를 돌아봤다. 강솔이 기가 막힌 듯 웃었다.
“오늘 혼인신고했다고 갑자기 새언니가 돼?”
“법적으로는 아까부터.”
“오빠 진짜 미쳤구나.”
“오늘 많이 듣네.”
여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참 강건다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석진이 계속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강솔도 결국 그 시선을 알아챘다.
“근데 여보.”
석진이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렸다.
“응?”
“아까 오래전에 알던 사이라고 했지?”
“응.”
“어떻게?”
석진은 잠깐 여울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어릴 때부터.”
여울이 바로 끼어들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에요.”
강솔의 시선이 넘어왔다. 여울은 부드럽게 웃었다.
“지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도로요.”
그 정도면 충분히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다. 석진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여울이 물을 마시거나 포크를 들 때, 심지어 강건의 말을 듣고 있을 때조차 석진의 시선은 끈질기게 따라왔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사람을 쫓는 눈이었다.
예전에는 몰랐다. 저 시선이 얼마나 숨 막히는 것이었는지.
세 번째쯤 됐을 때 강솔이 먼저 참지 못했다.
“뭘 그렇게 봐?”
석진이 그제야 시선을 거뒀다.
“신기해서 그렇지. 이렇게 다시 만난 게.”
아주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여울은 속으로 헛웃었다. 여전히 잘도 거짓말했다. 마치 자기가 버리고 간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난 것처럼.
그때 작은 접시 하나가 여울 앞으로 밀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강건이었다.
“먹어요.”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
여울이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그런 자리 아니잖아요.”
강건의 시선이 여울 앞에 놓인 접시로 내려갔다. 식사가 시작된 뒤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오늘 제대로 먹은 거 없잖습니까.”
여울이 그를 바라봤다. 언제 봤다는 거지.
그러나 강건은 이미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포크를 들고 있었다.
“먹어요.”
달래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은 짧은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거절하기 어려웠다.
여울은 접시를 당겼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잔이 조금 크게 내려앉았다.
탁.
“니가 좀 바빠져야겠다.”강태환이 책상 위의 서류를 석진 쪽으로 밀었다.석진은 곧바로 손을 뻗지 않았다.“회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검찰 놈들이 움직인다카데.”그제야 석진의 눈빛이 달라졌다.“어느 쪽입니까.”“반부패.”석진이 서류를 집어 들었다.정식 보고서도, 공문도 아니었다. 몇 개의 법인명과 계좌번호, 담당 검사 이름이 간략하게 정리된 메모에 가까웠다.태강홀딩스.태강증권.태강문화재단.석진의 시선이 차례로 이름들을 훑었다.“내사 단계입니까?”“그건 아이다.”강태환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국세청 개놈들도 냄새 맡은 것 같드라.”석진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어디까지 알고 있답니까.”강태환이 피식 웃었다.“그걸 알았으면 내가 니를 왜 불렀겠노.”“…….”“검찰 쪽에서 귀띔만 해준 기다. 요 며칠 움직임이 심상찮다고.”석진은 다시 서류를 내려다봤다.강태환에게 이런 이야기를 흘려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검찰도, 정계도, 정부 부처도. 태강을 반세기 가까이 끌고 온 남자가 가진 건 돈과 회사만이 아니었다.사람이었다.“압수수색까지 예상하십니까.”“뭐라도 뜯어먹을라꼬 그 시커먼 놈들이 안 들이닥치겄나?”강태환의 대답은 태연했다.“들이닥치고 나서 준비할라꼬?”석진이 입을 다물었다.강태환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어 번 두드렸다.“장부든 계약서든 돈이든, 어디서 뭘 들고 가도 앞뒤는 맞아야 된다.”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더 물을 필요가 없었다.석진이 서류를 내려놓았다.“걱정 마십시오, 회장님. 별도 프로젝트팀 꾸리겠습니다.”“단디해.”“재무전략본부를 중심으로 법무, 회계, 전략 쪽 인력을 차출하겠습니다. 최근 5년 주요 계약과 자금 집행부터 전부 다시 보겠습니다.”“티 안 나구로.”“전략 리스크관리 프로젝트로 올리겠습니다.”강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거 좋네.”석진은 잠시 망설이다 들고 온 다른 파일을 꺼냈다.“그리고 하나 더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강태환의
강건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곧바로 하상만의 팔을 놓았고, 하상만은 손목을 움켜쥔 채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아이고, 사람 손목을 아주 부러뜨릴 작정이었네.”강건은 잠깐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했다.“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조금 전과는 목소리부터 달라져 있었다.하상만은 손목을 문지르며 투덜거리다가 그제야 강건의 얼굴을 제대로 올려다봤다. 키부터 압도적이었다. 몸에 맞춘 검은 정장과 반듯한 셔츠, 잘 닦인 구두까지, 텔레비전에서나 볼 법한 사람이 음식물 냄새가 나는 골목 한복판에 서 있었다.하상만의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잠깐만.”여울을 한번 보고 다시 강건을 봤다.“혹시…….”강건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강건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하상만의 눈이 커졌다. 입이 조금 벌어지더니 다시 한번 강건을 위아래로 훑었다.“아…… 진짜 사위네.”여울이 미간을 짚었다.“아빠.”하상만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난생처음 눈앞에서 재벌을 본 사람처럼 강건의 얼굴부터 옷, 시계까지 연신 훑더니 감탄을 흘렸다.“이야…… 재벌은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만.”강건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다시 고개를 숙였다.“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어제 일이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여울이 그를 돌아봤다.조금 전까지 하상만의 팔을 꺾고 있던 남자가 정말 사위가 된 사람처럼 깍듯했다.“아니, 뭐……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하상만도 급히 낡은 점퍼 앞섶을 쓸어내렸다. 조금 전까지 강건에게 욕을 퍼붓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고, 태도마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여울은 그게 더 불안했다.“아빠, 이제 가.”“잠깐 있어 봐.”“뭘 또.”하상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강건을 몇 번 힐끗거리던 시선에 아쉬움이 묻어났다.“사위가 재벌인데 좀 섭하네.”여울의 눈썹이 꿈틀했다.“아빠.”“장인 처음 봤으면 용돈이라도 좀 쥐여줄 줄 알았더니.”여울의 얼굴이 굳었다.
주변의 고개가 하나둘 더 돌아왔다.여울의 얼굴이 굳었다.“아빠.”“야, 사위는 어디 있어? 강 전무가 진짜 내 사위 맞….”여울이 하상만의 팔을 낚아챘다.“나와.”“야, 야. 왜 이래.”“나오라고.”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로비를 빠져나가 건물 옆길을 돌고, 다시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태강 본사의 반듯한 외벽이 사라지자 풍경이 단숨에 바뀌었다.식당 뒤편으로 검은 음식물쓰레기통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젖은 종이박스와 빈 술 상자가 벽을 따라 높게 쌓여 있었다. 환풍구에서는 뜨거운 연기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으며, 오래된 기름 냄새와 오물 냄새가 축축한 골목 안에 뒤섞여 있었다.여울은 사람 없는 곳까지 거의 숨도 쉬지 않고 걸었다.그제야 하상만의 팔을 놓았다.“여긴 왜 왔어.”“뭐?”“회사에 왜 왔냐고.”하상만이 오히려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너 결혼한 걸 아빠한테 왜 말 안 했어?”“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내가 어디서 나오는 길인 줄 알아?”여울의 표정이 멈췄다.“……어디서.”하상만이 괜히 어깨를 한번 폈다.“니네 회장 만나고 오는 길이야.”여울의 입술이 벌어졌다.“뭐?”“어제 연락 왔더라. 아침 일찍 보자고.”“하…….”여울이 이마를 짚었다가 곧바로 손을 내렸다.“아빠 미쳤어?”“뭐가.”“거길 어디라고 가! 나한테 먼저 말을 했어야지.”“말할 새가 없었다니까? 어제 연락 왔는데 뭘 어떻게 해.”여울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아무튼.”억지로 목소리를 낮췄다.“무슨 얘기했는데?”하상만은 기다렸다는 듯 소매를 걷었다.“이거 주더라.”여울의 시선이 손목에 꽂혔다.처음 보는 시계였다.“……그게 뭐야.”“뭐긴, 시계지.”“누가 줬냐고.”“니 시아버지.”여울의 얼굴이 굳었다.“그걸 왜 받아?”“준다는데 왜 안 받아.”하상만은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이거 천만 원도 넘는다더라.”“…….”“야, 내가 로또도 이런 로또를 맞네.”여울의 눈빛이 확 변했
*새로 받은 자료는 모두 해외사업 관련 자문 계약이었다. 여울은 어제보다 빠르게 구조를 훑었다. 이번에는 숫자보다 이름을 따라갔다.계약사, 현지 법무법인, 실사기관, 중개사.그러다 한 곳에서 손이 멈췄다. 두 파일에 같은 현지 대리인 이름이 반복돼 있었다. 전날 확인한 48억 자문사와도 겹치는 이름이었다.여울은 곧바로 사내 시스템을 뒤졌다. 검색 결과는 나왔다.다만 이상했다.몇 년 전 태강글로벌이 진행했던 해외투자 프로젝트.계약 내역과 최종 지급 기록은 남아 있는데, 정작 초기에 작성됐어야 할 실사보고서와 현지 자문사 검증 자료가 없었다.여울은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전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전무님.”여울이 출력물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이 회사 기억하세요?”강건이 이름을 확인했다.“기억합니다.”“태강글로벌 시절 거래했던 곳 맞죠?”“네.”“이상합니다. 계약이랑 지급 자료는 남아 있는데 실사자료가 없어요.”강건의 시선이 문서 위에서 멈췄다.“초기 자료까지 전부 확인한 겁니까?”“네. 서버에는 없습니다.”여울이 같은 이름이 표시된 세 곳을 손끝으로 짚었다.“그런데 어제 본 회사와 현지 대리인이 같습니다.”강건의 눈빛이 달라졌다.“당시 자료 따로 남아 있는 건 없습니까?”강건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있을 겁니다.”여울의 눈빛이 밝아졌다.“어디에요?”“당시 내가 따로 보관해둔 실사자료 사본이 있습니다.”“회사에 있습니까?”“아니요.”강건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집에 있을 겁니다.”여울의 시선이 멈췄다. 강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문서를 들었다.“찾아보죠.”*늦은 오후.변석진은 휴대폰으로 전달된 사진 몇 장을 넘기고 있었다.강건이 회사 건물을 나오는 모습.골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곱창집 앞.무심하게 화면을 넘기던 손가락이 어느 순간 멈췄다.강건 옆에 여자가 있었다.석진이 사진을 확대했다.하여울.얼굴에서 서서히 표정이 사라졌다. 다음 사진에는 강건
*계산대 앞에 서자 여울이 먼저 지갑을 꺼냈다.“제가 낼게요. 제가 데려왔으니까.”강건이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오늘 점심도 못 먹게 한 사람이 접니다.”“그건 제가 안 먹은 건데요.”“결과는 같죠.”결제는 이미 끝나 있었다. 여울은 영수증을 받아드는 강건을 보다 그냥 지갑을 넣었다.밖으로 나오자 골목 공기가 서늘했다.낡은 곱창집 앞에 세워진 검은 세단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여울은 문득 조금 전까지 같은 불판 앞에 마주 앉아 있던 남자를 봤다. 회사 안에서는 잠깐 잊고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강건이 차 문을 열었다.“타요.”“저 지하철 타면 되는데요.”“술 마셨잖습니까.”“두 잔이에요.”“두 잔도 술입니다.”여울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차에 올라탔다.“주소 말해요.”“정말 데려다주시게요?”“오늘부터 같은 쪽을 보기로 했으니까.”여울이 작게 웃으며 안전벨트를 당겼다.그 순간이었다.골목 건너편에 세워진 차 안에서 카메라 렌즈 하나가 움직였다.찰칵.강건을 향해 있던 렌즈 안으로 여울이 함께 들어왔다.찰칵.곱창집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강건이 차 문을 잡아주는 모습.여울이 그를 올려다보며 웃는 얼굴.차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렌즈는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잠시 뒤, 몇 장의 사진이 어딘가로 전송됐다.차가 여울의 집 앞 골목에 멈췄다. 여울은 안전벨트를 풀며 창밖을 확인했다.“여기서 내려주시면 돼요.”강건이 건물 쪽을 한번 봤다.“들어가요.”“오늘 잘 먹었습니다.”“저도 덕분에.”여울이 차 문을 열다 말고 돌아봤다.“생각보다 잘 드시던데요.”강건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다음엔 더 맛있는 데로 모실게요.”다음.강건은 그 단어를 굳이 짚지 않았다.“흠. 기대하죠. 들어가요.”“조심히 가세요, 전무님.”여울이 문을 닫았다. 강건은 그녀가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에야 차를 출발시켰다. 늦은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했
“네, 사장님.”두 사람은 안쪽 자리에 앉았다.강건은 별다른 기색 없이 재킷을 벗어 등받이에 걸고 셔츠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여울이 그 모습을 슬쩍 봤다.“전무님, 이런 데 정말 괜찮으세요? 옷에 냄새 다 밸 텐데요.”강건이 물컵을 들었다.“냄새보다 하 대리 배에서 나는 소리가 더 시급해 보이던데.”“전무님.”여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거는 좀 잊어주시면 안 될까요?”“검토해 보죠.”때마침 사장이 메뉴판을 내려놓았다.“하 대리는 늘 먹던 거?”“네. 모둠 2인분이랑 소주 하나 주세요.”강건은 메뉴판을 내려다봤다.곱창, 대창, 막창, 염통, 특양.설명 하나 없는 메뉴판을 한참 보는 모습에 여울이 눈치를 챘다.“혹시 못 드시는 부위 있으세요?”“없습니다.”“곱창집은…… 처음이세요?”강건이 메뉴판을 내려놓았다.“비슷한 곳은 와봤습니다.”애매한 대답이었다. 여울은 더 묻지 않았다.잠시 뒤 둥근 불판 위로 곱창이 올라왔다.치이익.여울이 익숙하게 집게를 들었다.곱창을 하나씩 뒤집고, 염통은 너무 익기 전에 가장자리로 빼냈다.강건은 그 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이제 드셔도 돼요.”여울이 노릇하게 익은 곱창 하나를 강건 앞접시에 올려놓았다.강건의 시선이 접시로 내려갔다.별로 내키는 얼굴은 아니었다.“그냥 드시면 느끼해요.”여울이 소스를 가리켰다.“이거 조금 찍고 부추랑 같이 드세요. 양파는 마지막에.”“먹는 법도 있습니까?”“그럼요! 이 소스 진짜 맛있어요. 얼른 드셔보세요.”강건은 잠깐 여울을 보다가 마지못해 젓가락을 들었다.소스를 찍고, 부추를 올렸다.한입.처음에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여울은 은근히 그의 반응을 살폈다.기름진 맛이 먼저 퍼졌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부담스럽지 않았다. 겉은 바삭했고 안쪽은 고소했다. 뒤이어 먹은 양파절임이 느끼함도 금방 잡아냈다.강건이 천천히 씹어 삼켰다.“어때요?”“……생각보다 괜찮군요.”여울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그렇죠?”이번에는 대창 하나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