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Author: 이야기보따리

제1화

Author: 이야기보따리
A시,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밤.

소예지는 남편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40도까지 치솟은 고열에 정신이 혼미해진 딸이 품 안에서 고이한을 불렀다.

“아빠, 아빠 보고 싶어요...”

소예지는 급히 딸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도우미 양희순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병원 가요, 우리.”

“대표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양희순이 물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오늘 밤은 그의 첫사랑의 생일이라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소예지의 마음은 바깥의 폭우보다 더 차갑게 식어버렸다. 품 안의 딸은 볼이 붉게 달아오른 채 괴로워서 끙끙거렸지만 아빠라는 사람은 다른 여자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길, 폭우가 끊이질 않았다. 고열에 시달리는 딸이 걱정되어 소예지는 액셀을 거의 끝까지 밟았다. 그때 차 한 대가 갑자기 앞질러 가려 하자 소예지는 급하게 비상등을 켜서 경고했지만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돌진했다.

소예지가 급히 핸들을 꺾은 순간 옆의 안전지대를 들이받고 말았다.

뒷좌석에 앉은 양희순이 깜짝 놀라 아이를 끌어안고 비명을 질렀다.

소예지는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차가 작은 돌기둥에 부딪혀 큰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소예지는 무너져 내린 듯 눈물을 쏟았다.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억울함과 슬픔이 한꺼번에 그녀를 덮쳐왔다.

핸들에 엎드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 양희순은 마음이 아팠다.

“사모님, 어서 병원에 가야 해요. 하슬이 열이 더 나는 것 같아요.”

소예지는 그제야 딸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 차를 후진했다가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딸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 피검사 하려고 피를 뽑을 때 딸이 발버둥 치며 거부하자 소예지는 딸의 손을 꽉 잡았다. 목청이 찢어질 것처럼 우는 딸의 울음소리에 그녀도 칼로 도려내듯 가슴이 아팠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한 종류가 아니었다. 최소 7가지의 급성 바이러스 감염이었고 흉부 CT 촬영 결과 양쪽 폐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이 상태가 매우 심각합니다. 아무래도 폐 세척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가 심각하게 말했다.

옆에 있던 양희순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요? 이렇게 어린아이가 폐 세척을 해도 되나요?”

소예지는 의사가 들고 있던 폐 CT 사진을 넘겨받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의사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보호자분, CT 사진 볼 줄 아세요?”

마음의 결정을 내린 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열이 내리면 수술 준비해주세요. 폐 세척 할게요.”

양희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모님, 대표님과 상의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소예지는 품 안의 딸을 내려다보며 붉게 달아오른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이 순간 그녀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사흘 후.

소예지는 막 폐 세척 수술을 받아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로 잠든 딸의 곁을 지켰다. 그때 휴대폰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무슨 일이야?]

짧은 한마디에 오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소예지는 답장하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양희순이 온수실에서 물을 받고 있던 그때 휴대폰이 울려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집에 무슨 일이 있어요?”

양희순은 순간 멈칫했다.

“아... 아무 일도 없어요, 대표님, 지금 국내에 계세요?”

“네.”

“알겠어요. 일 보세요. 집에는 아무 일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전화를 끊은 후 양희순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모님은 왜 요 며칠 있었던 일을 대표님께 말씀드리지 못하게 하시는 거지? 분명 국내에 계신데.”

소예지는 딸의 손을 잡고 핏발이 선 두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딸이 악몽을 꾸는지 작은 손을 휘저었다.

“아빠, 유빈 이모,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소예지는 손을 뻗어 딸의 손을 꽉 잡았다.

“엄마 여기 있어.”

고하슬이 깜짝 놀라며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소예지가 있는 걸 보고는 화를 내며 돌아누웠다.

“엄마 싫어요. 난 유빈 이모가 좋아요.”

소예지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다시 재우려고 고하슬의 등을 토닥였다.

입원한 지 7일째 되는 날, 소예지는 아이를 안고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그녀도 쓰러졌다.

양희순에게 잠시 딸을 맡기고 위층으로 올라가 한 시간만 잤다.

잠에서 깨자마자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양희순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사모님, 일어나셨어요? 아까 대표님이 오셨는데 밖에서 저녁 식사하시겠다면서 하슬이를 데리고 나가셨어요.”

소예지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돌아갔다.

아래층에 있던 양희순이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있는데 사모님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사시는 걸까?’

소예지는 휴대폰을 들어 남편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전화가 연결되었고 한 여자가 웃으며 물었다.

“이한 오빠가 하슬이를 데리고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무슨 일 있어요?”

순간 숨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하여 입술을 깨물고 전화를 끊었다.

소예지는 눈을 꼭 감았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업까지 포기하고 결혼했지만 결국 그녀를 배신하고 말았다.

결혼식 날 아버지가 몰래 그녀에게 물었다.

“나중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그녀는 행복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소예지는 망설임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결혼 생활에 뛰어들었다.

2년 전, 소예지는 딸이 남편의 방에 숨어 남편의 첫사랑 심유빈과 몰래 통화하는 걸 발견했다. 두 사람은 모녀처럼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리고 그날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길에 소예지는 모든 걸 깨달았다. 반대도 무릅쓰고 이 결혼을 한 게 너무나 후회되었다.

이젠 끝낼 때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면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결국에는 상처투성이였다.

남은 인생 동안에는 자신을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소예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3층 서재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열었다. 확인해보니 세계 최고 의과대학교의 실험부에서 보낸 것이었다.

소예지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아빠, 아빠 말씀이 맞았어요. 제게 다시 시작할 길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뇌리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했던 당부가 떠올랐다.

“예지 넌 아빠의 자랑이 되어야지, 쓸모없는 사람이 되면 안 돼. 그러니 결혼하더라도 학업은 절대 포기하지 마.”

그렇게 6년 동안 소예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가 당부했던 학업을 끝까지 마쳤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30화

    “오늘 예지 씨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검은색 SUV가 몇 번이나 위협 운전을 했다더군요. 들어 보니 상황이 굉장히 위험한 것 같아서요...”“강 박사님께서 제 아내를 꽤 신경 쓰시나 보군요.”고이한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러자 강준석은 단호하게 반박했다.“전 단순히 예지 씨의 동료로서 걱정하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세요.”“강 박사님께서 선을 잘 알고 계신다면 됐습니다.”강준석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고 대표님, 이건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예지 씨를 겨냥한 겁니다. 그러니 제대로 보호해 주세요.”고이한은 가만히 듣고 있었고 강준석은 이어서 상황을 설명했다.최근에 소예지가 화학공장의 불법 폐수 배출을 폭로했고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 그 공장이 영업정지와 정비 명령을 받은 일, 그리고 그로 인해 원한을 샀을 가능성까지.“사실 2주 전에도 그쪽에서 예지 씨한테 직접 협박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노골적으로 위협까지 했어요. 그들의 표적은 분명히 예지 씨입니다. 고 대표님이라면 가족을 지킬 방법이 있으시잖습니까?”“다 말씀하셨나요?”고이한이 무미건조하게 물었다.“네.”“듣고 보니 제 아내의 사정을 저보다 박사님이 더 잘 아시는 것 같군요.”강준석은 난감해졌다.“지금 중요한 건 아내분의 안전...”“제 아내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박사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그 말과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그러자 강준석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이한은 정말 소예지에게 이렇게 냉담한 걸까? 아내가 위험에 처했는데도 저렇게 모른 척할 수 있다니.저녁 여덟 시 반.소예지는 거실에서 고하슬과 함께 젤리와 놀아주고 있었다. 그때 고이한이 집에 들어왔다.“아빠!”고하슬이 반갑게 달려가 안겼고 젤리도 꼬리를 흔들며 그의 발치에 매달렸다. 고이한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젤리를 한번 쓰윽 만지더니 말했다.“하슬아, 젤리 데리고 2층 놀이방에 가서 놀아. 아빠가 엄마랑 잠깐 얘기 좀 해야겠어.”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9화

    심유빈은 미소만 지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빠도 알아?”고수경이 물었다.“알지.”“하, 제 분수도 모르고 자기가 무슨 천재라도 되는 줄 아나 보네. 괜히 우리 오빠한테 말썽 부리고 난리야.”고수경은 소예지를 욕했다....다음 날 아침.소예지는 집에서 평가 시험을 치르고 오전 열 시 전에 시험지를 윤혁에게 보냈다. 윤혁은 곧장 그것을 의대 교수들에게 넘겨 그녀가 졸업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지 심사받게 했다.소예지는 곧장 박시온의 변호사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심 변호사님, 귀국하셨나요?][죄송합니다. 제가 돌아가려면 이틀은 더 걸릴 것 같네요.][알겠습니다.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뵙고 싶습니다.][네, 소예지 씨.]소예지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그때 강준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매곡마을 사건 승소했어. 화학공장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마을 주민들도 보상금을 받아냈어. 네가 이번 사건의 일등 공신이야.]소예지는 기분이 좋아서 입꼬리가 올라갔다.[고생 많았어, 선배.][이따 다시 얘기하자.][응, 운전 조심해.]그 후 윤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후 두 시까지 의대에 직접 와서 시험 전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연락이었다.소예지는 바로 차를 몰아 의대로 향했고 삼십 분쯤 지나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대고 교무처로 가서 서류를 작성했다. 그곳에 윤혁도 있어 둘은 잠시 잡담을 나눴다.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세 시가 되었고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소예지는 차선을 지키며 평소처럼 규칙적으로 주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검은색 SUV 한 대가 그녀의 차 앞으로 확 끼어들었다. 소예지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핸들을 틀어 피했지만 SUV는 포기하지 않고 세 번이나 연달아 위협 운전을 했다. 다행히 뒤에서 경찰차가 나타나자 SUV는 속도를 내며 달아났다.가슴이 철렁한 소예지는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었다.집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윤하준에게 메시지를 보내 고하슬을 대신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윤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8화

    소예지가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너무 무리하지 마. 몸이 더 중요하니까.”고이한은 그녀가 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기 졸업 시험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하지만 소예지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쌓여 있는 책 더미에 파묻힌 소예지의 가녀린 어깨는 마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 듯 위태롭게 보였다. 그러나 고이한은 정작 그녀가 더 야윈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채 문틀에 기대서서 무심하게 말했다.“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네가 원하는 거, 내가 다 들어줄 수 있는데.”“이한 씨가 줄 수 있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절대 줄 수 없어.”소예지는 고개조차 들지 않고 단호하게 받아쳤다.고이한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계를 흘끗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자정은 넘기지 마.”저게 걱정하는 걸까? 아니, 그저 고이한 특유의 지배적인 태도일 뿐이었다.소예지는 그를 무시한 채 책장을 넘겼다.한편, 집으로 돌아온 심유빈은 가정부에게 약을 발라달라고 했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고수경이 보낸 메시지였다.[유빈 언니, 자? 나 언니한테 할 말이 있어.][아직 안 잤어. 무슨 일이야?]곧 영상 통화 요청이 들어왔고 심유빈은 가정부를 내보낸 뒤 통화를 수락했다.“어, 수경아.”“언니, 나 하준 오빠 차에 있던 그 머리끈이 누구 건지 알아냈어.”“그게 누구 건데?”심유빈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새언니 거야.”고수경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 말에 심유빈은 놀랐다.“그게 어떻게 예지 씨 거야?”“맞다니까! 저번에 새언니를 축하해 주던 날에 봤는데 새언니가 그거랑 똑같은 머리끈을 하고 있었어.”고수경은 확신에 차 있었다.심유빈은 지난번에 윤하준이 소예지를 몰래 도와줬던 일이 떠올라 애써 고수경을 달래 주었다.“수경아, 그게 진짜 예지 씨 거라고 해도 별거 아닐 거야. 혹시 하슬이가 실수로 차에 두고 간 걸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7화

    심유빈은 턱을 괴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았어.”그러더니 무심하게 말했다.“아까 내 동생한테서 들었는데 예지 씨가 이번에 조기졸업 시험을 본다면서? 학부를 빨리 끝내고 싶다던데, 오빠도 알았어?”고이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그래?”“그리고 양 박사님이 이번에 팀을 새로 꾸리면서 예지 씨의 이름을 명단에서 뺐대. 오빠, 혹시 예지 씨를 다시 넣어줄 생각 없어? 그래도 오빠 아내잖아.”고이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내가 양 박사님께 넣지 말라고 부탁했어.”심유빈은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그럼 예지 씨가 화내지 않아?”“이번 연구에 예지 어머니의 샘플을 사용해서 날 많이 원망하고 있어.”심유빈은 미소를 지은 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럴 만도 하지. 아무래도 그건...”“무슨 얘기 하고 있어?”이때 하종호가 다가오며 말을 끊었다.고이한은 그와 간단히 인사했고 하종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심유빈을 바라봤다.“괜찮아요? 아까 뉴스를 봤는데 진짜 아찔하더라고요.”“괜찮아요. 저도 팬이 그렇게까지 과격할 줄은 몰랐어요. 그냥 손목이 좀 부은 정도예요.”심유빈은 말하며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하종호는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했다.“다음부턴 조심해요. 외출할 땐 경호원을 꼭 데리고 다니고요.”잠시 후, 윤하준도 도착했다.“이안이 오늘은 떼 안 썼어?”하종호가 농담하듯 묻자 윤하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새 장난감 하나 사주겠다고 약속했지, 뭐.”심유빈은 곁눈질하며 말했다.“하준 씨도 이제 슬슬 여자 친구 만들어야겠어요. 그래야 이안이를 돌봐줄 사람이 생기죠.”하종호는 윤하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농담을 보탰다.“그런데 너, 너희 외숙모의 자선 사업에 투자한다면서?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히 의학 쪽까지 손을 뻗은 거야?”윤하준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앞으로는 이쪽이 큰 흐름일 거야.”그 말에 잔을 들고 있던 고이한은 멈칫했고 심유빈도 눈빛이 흔들렸다.윤하준이 정말 단순히 사업적 이유로 의학계에 투자한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6화

    고이한은 고하슬에게 다가가지 않고 곧장 돌아서 버렸다. 이제 그의 마음속에서 연인이 딸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닐까 싶었다.몇 분 뒤, 윤하준이 허겁지겁 도착했다.“미안해요. 길이 너무 막혀서 늦었네요.”그가 난처해하며 말하자 소예지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괜찮아요. 아이들은 재밌게 잘 놀았어요.”“이한이는 안 왔어요?”“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소예지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녀를 바라보는 윤하준의 눈빛에 안쓰러움이 번졌다.오후 다섯 시 반, 소예지는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고하슬이 해맑게 물었다.“엄마, 아빠는 어디 갔어요?”소예지는 고하슬의 작은 손을 꼭 잡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하슬아, 엄마가 너한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고하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네, 물어보세요.”소예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만약에 언젠가 엄마랑 아빠가 따로 살게 된다면 너는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 아니면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딸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최대한 부드럽게 물어 본 소예지는 마음속으로 고하슬이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고하슬은 순간 멈칫했지만 거의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저는 엄마랑 같이 살 거예요!”그러곤 눈알을 또르르 굴리며 되레 물었다.“그런데 아빠는 왜 우리랑 같이 안 살아요?”소예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결국 이 문제에서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둘 중 하나뿐이라는 걸 알기에 그녀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아빠랑 엄마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같이 못 살아.”소예지는 애써 웃으며 설명했다.고하슬은 다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엄마의 목을 껴안으며 말했다.“전 엄마가 좋아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요. 앞으로도 절대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요.”소예지는 고하슬을 꼭 끌어안으며 비로소 안도에 찬 미소를 지었다.몇 분 뒤, 박시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심유빈이 남자 팬에게 집착에 가까운 추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25화

    소예지가 막 복도를 돌았을 때 이서연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채린아, 정말 부럽다. 네가 양 박사님의 제자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제 앞길이 창창하겠네.”“교수님이 나한테 거는 기대가 커. 하지만 교수님이 잘 이끌어주시면 내가 훨씬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거야.”안채린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이서연이 맞장구치듯 말했다.“이번에 양 박사님이 직접 나서셨으니, 소예지는 더 이상 끼어들 방법이 없을 거야. 보나 마나 바로 탈락이야.”“능력 없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어. 이 바닥에 약자는 필요 없거든.”안채린의 조롱 섞인 말소리가 복도에 울렸다.그들이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소예지는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는 마음이 쓰렸지만 티내지 않고 곧장 사무실로 들어가 책상을 정리했다.그때 강준석이 찾아왔는데 그는 벌써 해외 인맥을 총동원해 전 세계의 유전자 은행에서 기증자 샘플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매칭되는 게 나오면 소예지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겠다고 했다.“선배, 고마워.”소예지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고맙긴. 네 실력이 어떤지 우리 다 알아. 이번 일로 기죽을 필요 없어.”강준석은 담담하게 그녀를 위로했다.그러자 소예지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나도 끝까지 해볼 거야.”그 사이 윤혁은 그녀의 조기졸업 시험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고 잠시 후 평가용 시험지를 보내왔다.“예지야, 시험을 신청하기 전에 먼저 평가를 봐야 해. 결과가 좋아야 학교에서 정식으로 조기졸업 시험을 신청해 줄 수 있어.”“네, 선배. 최대한 빨리 해서 내일 아침까지 보내 드릴게요.”“급하지 않으니까 꼼꼼히 풀어. 완성도 높게.”그런데 마침 이서연이 윤혁에게 자료를 전해주러 왔다가 프린터에서 뽑히는 신청서를 보고 물었다.“선배, 저건 뭐예요?”“아, 예지가 조기졸업 시험을 신청하려고 해서 평가 서류를 출력해 주려고.”“뭐라고요? 예지는 아직 대학교 2학년인데요?”이서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윤혁은 가볍게 웃으며 설명했다.“일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