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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Author: 이야기보따리

제1화

Author: 이야기보따리
A시,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밤.

소예지는 남편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40도까지 치솟은 고열에 정신이 혼미해진 딸이 품 안에서 고이한을 불렀다.

“아빠, 아빠 보고 싶어요...”

소예지는 급히 딸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도우미 양희순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병원 가요, 우리.”

“대표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양희순이 물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오늘 밤은 그의 첫사랑의 생일이라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소예지의 마음은 바깥의 폭우보다 더 차갑게 식어버렸다. 품 안의 딸은 볼이 붉게 달아오른 채 괴로워서 끙끙거렸지만 아빠라는 사람은 다른 여자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길, 폭우가 끊이질 않았다. 고열에 시달리는 딸이 걱정되어 소예지는 액셀을 거의 끝까지 밟았다. 그때 차 한 대가 갑자기 앞질러 가려 하자 소예지는 급하게 비상등을 켜서 경고했지만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돌진했다.

소예지가 급히 핸들을 꺾은 순간 옆의 안전지대를 들이받고 말았다.

뒷좌석에 앉은 양희순이 깜짝 놀라 아이를 끌어안고 비명을 질렀다.

소예지는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차가 작은 돌기둥에 부딪혀 큰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소예지는 무너져 내린 듯 눈물을 쏟았다.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억울함과 슬픔이 한꺼번에 그녀를 덮쳐왔다.

핸들에 엎드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 양희순은 마음이 아팠다.

“사모님, 어서 병원에 가야 해요. 하슬이 열이 더 나는 것 같아요.”

소예지는 그제야 딸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 차를 후진했다가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딸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 피검사 하려고 피를 뽑을 때 딸이 발버둥 치며 거부하자 소예지는 딸의 손을 꽉 잡았다. 목청이 찢어질 것처럼 우는 딸의 울음소리에 그녀도 칼로 도려내듯 가슴이 아팠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한 종류가 아니었다. 최소 7가지의 급성 바이러스 감염이었고 흉부 CT 촬영 결과 양쪽 폐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이 상태가 매우 심각합니다. 아무래도 폐 세척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가 심각하게 말했다.

옆에 있던 양희순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요? 이렇게 어린아이가 폐 세척을 해도 되나요?”

소예지는 의사가 들고 있던 폐 CT 사진을 넘겨받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의사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보호자분, CT 사진 볼 줄 아세요?”

마음의 결정을 내린 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열이 내리면 수술 준비해주세요. 폐 세척 할게요.”

양희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모님, 대표님과 상의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소예지는 품 안의 딸을 내려다보며 붉게 달아오른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이 순간 그녀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사흘 후.

소예지는 막 폐 세척 수술을 받아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로 잠든 딸의 곁을 지켰다. 그때 휴대폰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무슨 일이야?]

짧은 한마디에 오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소예지는 답장하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양희순이 온수실에서 물을 받고 있던 그때 휴대폰이 울려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집에 무슨 일이 있어요?”

양희순은 순간 멈칫했다.

“아... 아무 일도 없어요, 대표님, 지금 국내에 계세요?”

“네.”

“알겠어요. 일 보세요. 집에는 아무 일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전화를 끊은 후 양희순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모님은 왜 요 며칠 있었던 일을 대표님께 말씀드리지 못하게 하시는 거지? 분명 국내에 계신데.”

소예지는 딸의 손을 잡고 핏발이 선 두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딸이 악몽을 꾸는지 작은 손을 휘저었다.

“아빠, 유빈 이모,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소예지는 손을 뻗어 딸의 손을 꽉 잡았다.

“엄마 여기 있어.”

고하슬이 깜짝 놀라며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소예지가 있는 걸 보고는 화를 내며 돌아누웠다.

“엄마 싫어요. 난 유빈 이모가 좋아요.”

소예지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다시 재우려고 고하슬의 등을 토닥였다.

입원한 지 7일째 되는 날, 소예지는 아이를 안고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그녀도 쓰러졌다.

양희순에게 잠시 딸을 맡기고 위층으로 올라가 한 시간만 잤다.

잠에서 깨자마자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양희순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사모님, 일어나셨어요? 아까 대표님이 오셨는데 밖에서 저녁 식사하시겠다면서 하슬이를 데리고 나가셨어요.”

소예지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돌아갔다.

아래층에 있던 양희순이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있는데 사모님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사시는 걸까?’

소예지는 휴대폰을 들어 남편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전화가 연결되었고 한 여자가 웃으며 물었다.

“이한 오빠가 하슬이를 데리고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무슨 일 있어요?”

순간 숨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하여 입술을 깨물고 전화를 끊었다.

소예지는 눈을 꼭 감았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업까지 포기하고 결혼했지만 결국 그녀를 배신하고 말았다.

결혼식 날 아버지가 몰래 그녀에게 물었다.

“나중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그녀는 행복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소예지는 망설임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결혼 생활에 뛰어들었다.

2년 전, 소예지는 딸이 남편의 방에 숨어 남편의 첫사랑 심유빈과 몰래 통화하는 걸 발견했다. 두 사람은 모녀처럼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리고 그날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길에 소예지는 모든 걸 깨달았다. 반대도 무릅쓰고 이 결혼을 한 게 너무나 후회되었다.

이젠 끝낼 때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면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결국에는 상처투성이였다.

남은 인생 동안에는 자신을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소예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3층 서재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열었다. 확인해보니 세계 최고 의과대학교의 실험부에서 보낸 것이었다.

소예지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아빠, 아빠 말씀이 맞았어요. 제게 다시 시작할 길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뇌리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했던 당부가 떠올랐다.

“예지 넌 아빠의 자랑이 되어야지, 쓸모없는 사람이 되면 안 돼. 그러니 결혼하더라도 학업은 절대 포기하지 마.”

그렇게 6년 동안 소예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가 당부했던 학업을 끝까지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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