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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작가: 이야기보따리
소예지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사이, 고하슬이 먼저 고이한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빠, 가지 마요. 나 아빠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에요.”

고이한은 낮게 웃으며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그래, 아빠가 옆에 있어 줄게.”

그제야 고하슬은 소예지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 오늘 너무 예뻐요!”

이제야 엄마가 화장을 했다는 걸 알아차린 듯,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오늘의 소예지는 평소보다 한층 더 화사하고 또렷해 보였고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 속에 은은한 섹시함까지 더해져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눈에 띄게 빛나고 있었다.

소예지는 그런 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부드럽게 말했다.

“엄마는 시온 이모 좀 도와줘야 해. 너는 조금 있다가 아빠랑 같이 내려오렴.”

“알겠어요, 엄마!”

아빠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하슬은 잔뜩 신난 얼굴이었다. 이렇게 아빠와 가까이 있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였다.

소예지는 딸의 환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뒤 조용히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다시 메이크업 룸으로 내려가자 박시온은 막 웨딩드레스로 갈아입고 있던 중이었고 소예지를 보자마자 곧장 말을 건넸다.

“왜 또 내려왔어?”

“그 사람, 하슬이랑 같이 있어.”

소예지는 짧게 대답했다.

박시온은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듯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너희 둘은... 이제 정말 가장 기본적인 대화조차도 못 하는 사이가 된 거야?”

그 말에 소예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이었다. 고이한이 있는 공간에서는 심지어 숨조차 편하게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함이 밀려왔다.

“됐고, 그냥 오늘은 나랑 같이 있어 줘. 근데 조금 있다가 너희 셋 다 같은 테이블로 앉힐 생각이야. 누군가는 하슬이도 챙겨야 하니까.”

박시온은 웃으며 덧붙였다.

소예지는 더 말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오늘은 친구의 결혼식이었고 오늘만큼은 주인공의 말이 곧 법이었다.

한 시간 후, 소예지는 고하슬의 손을 잡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결혼식에는 이백 명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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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가영은 잠시 얼굴이 굳어졌다가 이내 딸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예지랑 윤하준, 정말 사귀는 거니?”고수경은 입가에 불만이 가득 서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보기엔 진작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진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그녀는 딸이 윤하준과 혼인하길 바라고 있었다. 두 집안은 뿌리부터 얽힌 명문가였고 서로의 사정과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윤씨 가문 쪽에서는 소예지에게 더 마음이 기울어 있는 듯했고 진가영은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 이후로, 주경화와의 왕래도 자연스레 끊어져버렸다.그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현숙이 놀란 듯 고개를 돌려 물었다.“윤하준? 혹시 그 윤씨 집안의 그 아이 말이냐?”“맞아요. 주 여사님네 아들이에요.”진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최현숙의 눈빛이 순간 살아났다.“아니, 예전엔 그 애를 수경이랑 결혼시키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수경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벗어나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최현숙은 황당하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렸다.“아니, 저 애는 또 뭐 때문에 저렇게 화를 낸 거야?”진가영은 조심스럽게 시어머니를 달랬다.“어머님, 이런 건 젊은 애들 문제잖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최현숙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시상식에서 소예지가 상을 받던 장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손자인 고이한 역시 현장에 있었고 분명히 소예지의 빛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것이다.과연 그 아이가 다시 소예지를 붙잡고 싶어지지는 않았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한편, 소예지의 수상 장면이 담긴 생방송 영상은 MD 전 사무실의 대형 스크린에도 그대로 송출되고 있었다. 안채린은 티 라운지 소파에 앉아 있었고 맞은편 화면에서는 방금 막 소예지의 수상 장면이 끝난 참이었다.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등장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와, 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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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후, 고이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하슬이랑 레스토랑에 밥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소예지는 단칼에 답장을 보냈다.[아니.]그 뒤로 고이한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그는 고하슬의 손을 잡고 호텔로 돌아왔다.“엄마! 아빠랑 같이 동물원 다녀왔어요!”고하슬은 볼이 발그레해진 채로 기분 좋은 기색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환하게 외쳤다. 고이한은 그저 짧은 휴식 시간을 쪼개 딸과 함께했을 뿐이었다. 아버지로서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었고 그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하지 않았다.소예지의 방으로 발걸음을 들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오래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저녁이 되자, 소예지는 딸과 함께 호텔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양희순 역시 기쁜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소예지와 함께 움직일 때면 늘 다른 대우를 받는 느낌이 들어 그녀 또한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다음 날 아침, 양희순은 호텔에서 고하슬을 돌보고 있었고 고이한은 김경환을 호텔에 남겨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게 했다.한편, 시상식장 안.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진 시상식 무대는 장엄하면서도 정제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소예지는 깔끔하고 우아한 회색 투피스를 입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의학 연구 분야 수상자 섹션에 자리를 잡았고 바로 앞줄에는 고이한이 허리를 곧게 세운 채 앉아 있었다.기자들의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그 방향을 비추고 있었다. 많지 않은 여성 수상자들 사이에서 소예지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고 다이아몬드의 날카로움과 진주의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카메라 렌즈는 유독 그녀와 고이한 두 사람에게 오래 머물렀다.“다음은 국가 과학기술 진보상 수상자, 소예지 박사님을 모시겠습니다!”우레 같은 박수 소리 속에서 소예지는 품위 있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대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예상치 못한 인물을 보고 순간 발걸음을 멈칫했다.상장을 수여하기 위해 무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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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그 부케, 사실 너한테 꼭 주고 싶었어. 그런데 자리에 없더라? 어디 간 거야?”“잠깐 전화받으러 나갔었어.”“하필 그 타이밍에... 나 진짜 일부러 고이한 보는 앞에서 네가 받게 하려 했는데!”소예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건 다른 진짜 결혼하고 싶은 애들한테 넘겨.”그날 밤, 소예지는 딸과 함께 호텔에 머물렀고, 주말 오후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무렵, 양정화에게서 전화가 걸려 와 몇 번이나 신신당부가 이어졌다.“이번 시상식, 정말 국가 차원의 공식 행사야. 그러니까 꼭 미리 경주 쪽으로 이동해야 해. 절대 늦으면 안 돼.”소예지는 이미 주현우에게 휴가를 신청해 둔 상태였다. 하루 일찍 딸을 데리고 경주로 내려가 호텔에 머물 계획이었고 시상식 당일이나 임현욱을 병문안하는 동안에는 양희순이 호텔에서 딸을 돌볼 예정이었다.다음 날 아침, 임재석이 보낸 차량이 세 사람을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경주에 도착한 뒤에도 픽업 차량이 미리 준비돼 있어 이동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공항 안에서 소예지가 고하슬의 손을 꼭 잡고 탑승 게이트를 향해 걷던 중, 고하슬이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아빠다! 아빠!”아이는 순식간에 소예지의 손을 뿌리치고 저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 시선 끝에는 고이한과 김경환이 서 있었다.소예지는 순간 걸음을 멈췄고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대체... 어디든 이 인간이 왜 있는 거야?’양희순 역시 놀람과 반가움이 뒤섞인 표정이었다.“아빠, 우리랑 같은 비행기 타요?”고하슬이 신나게 물었다.“그래. 아빠도 경주에 출장 가는 길이야. 같이 가자.”고이한은 그렇게 말하며 딸을 번쩍 안아 들고 소예지 쪽으로 걸어왔다.“소예지 씨.”김경환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소예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마침 탑승 대기 줄도 한결 줄어들어 그녀는 고하슬의 티켓을 건네고 양희순과 함께 게이트를 통과했다. 잠시 뒤 일등석 구역에 들어서자 이미 고이한과 김경환도 같은 칸에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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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욱은 미세하게 가빠진 그녀의 호흡에 곧바로 반응했다.소예지는 웃으며 숨을 고르듯 말했다.“오늘 친구 결혼식이었거든요. 방금 예식장 안이 너무 시끄러워서 밖으로 나와서 받았어요.”“그동안 잘 지냈어요?”“네. 나야 잘 지내죠. 현욱 씨는요?”“나도 잘... 아!”그의 말끝에 억눌러왔던 듯한 고통 섞인 숨소리가 스치듯 흘러나왔다. 소예지는 순간적으로 긴장하며 물었다.“왜 그래요? 어디 다친 거예요?”그는 위험한 지역으로 임무를 떠났던 터였다. 소예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괜찮아요. 그냥 살짝 다친 것뿐이에요. 지금은 치료받고 있고요.”낮게 웃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소예지의 미간은 점점 더 깊게 좁혀졌다.“어디를 다친 건데요?”“흠... 가슴 쪽에 총을 한 발 맞았어요. 그래도 정말 별일 아니에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소예지는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그게 어떻게 별일 아니에요! 총알은 제대로 제거했어요? 정확히 어디를 맞은 거예요?”“정말 괜찮다니까요. 며칠만 침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예요.”하지만 그의 말끝에는 또 한 번 아픔을 억누르려는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소예지는 그가 정말 괜찮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솔직하게 말해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단단한 힘이 실려 있었다. 차분했지만 위엄마저 느껴질 만큼 또렷했다.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웃으며 대답했다.“어쩐지... 지금 예지 씨 목소리, 꼭 의사 같네요. 알았어요, 말할게요. 심장에서 이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맞았어요.”소예지는 휴대폰을 쥔 손을 그대로 굳혔다. 손끝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죽음과 불과 손바닥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 정말 아슬아슬하게 스쳐 간 것이었다.“지금 어느 병원이에요?”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낮고 조용해졌지만 그 속에는 날 선 긴장이 선명하게 깔려 있었다.“방금 군 병원 본원으로 옮겨졌어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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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지 마! 나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박시온은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며 억울하다는 듯 항의했다. 소예지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손으로 가린 채 잠시 숨을 죽였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달래듯 말했다.“알았어, 안 웃을게.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대응하면 돼.”“너희 집 이모님도 같이 오면 좋겠다. 결혼식 당일에 하슬이 좀 돌봐주시게.”박시온의 제안에 소예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럼 아주머니도 같이 모시고 갈게.”다음 날 정오, 고이한은 고객을 만나기 위해 벨모아 호텔을 찾았다. 호텔 로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의 시선은 입구 쪽에서 커다란 웨딩 안내 입간판을 들고 들어오는 직원들에게로 자연스럽게 향했다.입간판에는 신부의 웨딩 사진이 큼지막하게 인쇄돼 있었고 고이한은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눈을 가늘게 뜨며 이름을 다시 한번 살폈다.역시나 소예지와 가장 가까운 친구, 박시온이었다.그는 몸을 돌려 호텔 매니저에게 물었다.“이 커플, 결혼식은 언제입니까?”“모레입니다.”정중한 대답에 고이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엘리베이터 홀로 걸음을 옮겼다.결혼식 전날, 소예지는 딸 고하슬과 함께 드레스 맞추러 갔다.“엄마, 나 예뻐요?”고하슬은 분홍색 원피스 치맛자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빙글빙글 돌았다. 소예지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눈을 빛내며 웃었다.“정말 예뻐. 우리 딸, 공주님 같아.”소예지 역시 내일 있을 결혼식에 맞춰 자신의 드레스를 미리 준비해 두었지만 박시온이 부탁했던 들러리 역할은 정중히 거절했다. 이혼한 자신의 입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친구의 결혼식인 만큼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참석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숨기지 않았다.결혼식 날이 밝아오고 벨모아 호텔 3층에 자리한 대형 웨딩홀은 온통 꽃으로 장식돼,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연한 보랏빛을 중심으로 한 고급스러운 색감이 공간 전체를 감싸며 홀 안의 분위기를 한층 더 우아하게 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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