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판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 30화 이 검을 쥐고 살아남아요

Share

30화 이 검을 쥐고 살아남아요

Author: 훌리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6 09:17:40

30화

지빌라는 무심하게 말했다.

“아니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이 검은 당신 손에 있어야만 비로소 그 쓰임을 다할 거예요. 그러니… 당신의 검이에요.”

지빌라는 신전 지하에서 이 검을 처음 쥐었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이건 베라트의 검이라고. 사라진 가문의 가보가 어쩌다 신전에 잠들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검의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 그 안에 봉인돼 있던 시간의 파편이 지빌라의 목걸이에 깃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빌라는 알 수 있었다.

이 검이야말로,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시간을 되돌릴 기회를 쥐어 줬다는 것을.

그녀의 목 중앙에 걸린 ‘신의 눈물’ 에테르 진주가 박힌 목걸이가 다시 영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영혼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그녀의 회귀 후, 텅 비어 있던 목걸이.

이제는 그 안에, 이 검의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단 한 번 시간을 거슬러 회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114화 아름답기로 소문난 대공비

    114화본성을 벗어나자 정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겨울의 북부에서 정원은 이름뿐이었다.나목의 가지들은 눈 아래 잠겨 있었고, 산책로 역시 눈에 덮여 경계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잘 가꿔졌다는 흔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볼거리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그 너머로 외부에서 온 이들이 머무는 별관이 떨어져 있었고, 조금 더 가면 예배당의 첨탑이 낮게 모습을 드러냈다.지빌라는 무심코 생각했다. 이 성에는 계절을 견디는 공간은 많아도, 계절을 잊게 하는 공간은 없다고.예배당을 지나자 공기가 달라졌다. 식재료를 나르는 하녀들의 발걸음은 분주했고, 주방에서는 낮은 목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졌다.하인과 시종들의 기숙사가 줄지어 있었고, 마구간에서는 말들이 고개를 흔들며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이 성이 살아 움직이는 방식은 언제나 실용적이었다.길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뉘었다.한쪽에는 기사들의 훈련장이 있어 무기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뒤편에서는 철을 다루는 작업장이 묵직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다른 쪽에는 마차들이 정렬된 공간이 이어졌고, 그 끝에서 길은 숲으로 스며들 듯 이어졌다.성은 그 지점에서야 비로소 끝나고, 바깥의 세계가 시작되고 있었다.지빌라는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이 겨울에도 숨을 쉬는 정원이, 언젠가 이 성에 필요하다고. 바람과 눈을 막아 주고, 계절과 상관없이 초록을 품을 수 있는 온실 정원이.마구간에는 늘 짚 냄새와 말의 체온이 섞여 있었다. 지빌라가 들어서자, 가장 안쪽에서 말의 고삐를 정리하던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113화 아무 조건 없이

    113화토르벤은 대답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손님이 많으면, 그만큼 준비도 필요하죠.”토르벤은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이 성에서 대공비의 말을 굳이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알겠습니다, 전하.”지빌라는 장부의 숫자들을 다시 떠올렸다.대공이 1년 넘게 자리를 비웠던 성, 돌아온 기사들의 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반드시 닥쳐올지 모를 전쟁.지금의 비축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적어도 몇 배는 필요했다. 그 ‘몇 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만 알고 있었다.토르벤이 장부를 정리해 품에 안고 물러나려 할 때였다.“시종장.”지빌라가 그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편지 한 통을 집어 들었다. 두껍지 않은 봉투였지만, 밀랍으로 단단히 봉인된 인장이 눈에 띄었다. 대공비의 문장이 선명했다.“이 편지를 수도로 보내 주세요. 델보 후작가의 영애 앞으로요.”토르벤은 잠시 봉투를 바라보다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전하.”지빌라는 더 말하지 않았다. 설명도, 당부도 없었다. 그 침묵 자체가, 이 편지가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토르벤이 서재를 나서자 곧 에르나와 레오노라가 들어왔다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112화 사치스러운 대공비

    112화지빌라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마치 이곳이 비로소 그녀에게 허락된 작은 영역인 양 숨을 고르듯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펜을 들어, 익숙한 이름을 적었다.친애하는 나의 친우, 샤를로트에게.서부를 지나 북부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고, 또 그만큼 많은 것을 보게 해주었어.낯선 땅을 건너는 동안, 내가 알던 세계가 얼마나 좁았는지도 새삼 느꼈지. 무사히 그리고 뜻깊게 도착했다는 소식을 먼저 전하고 싶었어.북부는 수도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품고 있는 곳이더라. 전통은 깊고, 축제는 신비로웠으며, 이들만의 방식으로 이어져 온 것들이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들어 있었어. 화려하지 않아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함이 분명히 느껴졌지.다만, 이 땅이 가진 보석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아직 가능성이 더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광석과 원석 자체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데, 그 매력을 온전히 끌어내기에는 손길이 조금 거친 편이더라. 다듬는 법을 알게 된다면, 분명 전혀 다른 빛을 낼 수 있을 텐데 말이야.그래서 말이야, 이곳에 머무는 동안 어차피 필요한 것들을 새로 마련하려 해. 북부의 기후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드레스와, 이 땅의 보석을 살릴 장신구들 말이야. 아무래도 수도의 안목과 기술이 조금은 필요할 것 같아.혹시 가능하다면, 수도에서 이름난 장인 몇을 이곳으로 초청해 줄 수 있을까? 잠시 머물며 작업해도 좋고, 여건이 맞는다면 공방을 차려 오래 머물러도 좋겠지. 사치품을 만든다는 명목이라면 누구에게도 무리가 되지 않을 테니까.이 땅에는 가르칠 사람이 있고, 배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111화 정략이 아닌 밤을 앞두고

    111화사흘.정무 일정, 순찰, 회의—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일들이 정리되고 있었지만, 그 사이사이에 원치 않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다.그녀의 얼굴.북부로 오던 길에서도 물러서지 않던 시선.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한, 그 조용한 결단.‘연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프레데리크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래도….’처음이었다.정략이 아닌 밤을 앞두고, 이렇게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것은.프레데리크는 무심코 잔을 내려놓았다. 손에 남은 온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릴리아트는 평소보다 한층 조심스러운 얼굴로 대공비의 침실에 들어섰다.“전하.”지빌라는 창가에 서 있다가 돌아섰다.“무슨 일이지?”“관례에 따라… 대공 각하와의 합방일이 정해졌습니다.”지빌라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언제?”“사흘 뒤입니다.”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110화 북부의 보석

    110화응접실에 곱게 단장한 채 앉은 지빌라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릴리아트가 조심스럽게 산책을 권하자, 지빌라는 잠시 침묵하다 일부러 가볍게 웃었다.“눈은 예쁘지만, 추운 건 질색이거든.”완벽한 황녀의 대답이었고, 동시에 완벽하게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이기도 했다.그날 밤.북부 정비에 하루 대부분을 쏟아붓고 돌아온 프레데리크는 저녁 무렵에야 시종장을 불러들였다.“대공비는?”토르벤은 한 박자 늦춰 고개를 숙였다.“도착하신 뒤로… 침실과 응접실 정도에 머무르고 계십니다.”프레데리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빌라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아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겉으로는 무심하고 화려하기만 한, 북부와 거리를 두는 얼굴. 그것이 연기라는 걸, 프레데리크는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연기를 깨뜨리지 않기로 했다.“무리하게 끌어내지 마라.”낮고 단정한 목소리였다.“황녀로 지내온 시간이 길다. 북부에 바로 적응하긴 어려울 거다. 성심성의껏 보필해라.”토르벤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프레데리크는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릴리아트에게도 전해라. 대공비의

  •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109화 너무 고귀하신 분이니까

    109화북부의 대공비가 된 황녀,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판이 달라질 존재였다. 그들 모두에게 지빌라는 변수였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누누이 되뇌어도 모자라지 않았다.북부 대공 프레데리크를 살리는 것.제국을 폐망하게 두지 않는 것.그리고 황제의 자리에 이황자를 세우는 것.성실하고 유능한 황녀는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북부에 힘이 되고 싶었다.‘어떻게 해야 할까?’북부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대공의 후계자뿐이었다. 한 나라로 서기에도 부족함 없는 군비와 경제력, 축적된 노동력과 통제 가능한 통치 체계, 풍부한 광물과 금까지, 북부는 독립국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그래서 지빌라는 결심했다.수도식 사치와 수도식 감정으로 행동하는 황녀가 되기로. 북부가 경계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히 북부의 힘이 되도록.황실이 기억하는 지빌라는 사치스럽고 변덕스러웠으며, 정치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는 황녀였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사랑에 빠지고, 북부의 추위보다 황금빛 장식에 더 익숙한 여자.그 이미지가 유지되는 한 황후도, 일황자도 북부를 당장 위협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 가면을, 지빌라는 벗을 수 없었다.그래서 대공성에 도착한 다음 날, 지빌라는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체계를 살피지도 않았고, 사람을 부르지도 않았다. 대신 방 안에 값비싼 상자들만 풀게 했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