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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무해한 황녀의 숨겨진 전략

Author: 훌리아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05 09:01:26

7화

누군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카드는 손에서 놓인 순간 허공에 가볍게 떠올라 흐르고 있었다.

샤를로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황자 전하를, 마음에 두고 있어요.”

지빌라는 놀란 듯 눈을 들었다. 그녀가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손끝에 감긴 기류가 카드를 한 장, 또 한 장, 그리고 세 번째까지 이끌어냈다.

첫 번째 카드를 펼치며 조용히 읊조렸다.

“밤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수레바퀴…… 인연이 닿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라.”

“얼마나 오래요?”

지빌라는 잠시 말없이 샤를로트를 바라보았다. 회귀 전이라면—2년 뒤 전쟁이 터지고, 그녀는 황태녀 자리에서 밀려 서부 변경백에게 시집가야 했다.

이황자는 황후와 함께 궁을 떠나 한적한 영지에 묻혔다. 그 모든 미래를 알고 있는 그녀는 조심스레 답했다.

“……아직은, 몰라.”

두 번째 카드, 그리고 세 번째 카드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빌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예상치 못한 상징들이 겹쳐져 있었다.

“희망은 있어. 연인의 인연이긴 해. 하지만…… 델보 후작이 널 그만큼 오래 기다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샤를로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지금도 혼담이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다른 남자와 혼인해야 한다니… 너무 억울해요.”

말을 끝낸 샤를로트는 커튼 너머, 황녀의 정원이 있을 쪽을 바라보았다. 시든 꽃잎 너머에서 아직 피지 못한 봉오리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터였다. 꼭 저 같다고, 그녀는 여겼다.

지빌라는 아르카나의 말을 가감 없이 전했다. 그 이상은 건드리지 않았다. 운명을 보여주는 일과, 운명에 따를 것인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선택은 언제나, 그들의 몫이었다.

회귀한 뒤, 지빌라도 스스로를 위해 아르카나를 펼쳐보았다. 그러나 카드들은 끝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운명을 한 번 다 겪은 자에겐 더 이상 보여줄 미래가 없다는 듯이.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어떤 선택이 남아 있는지. 그저 고요한 수면 위를 걷듯, 묵묵히 제 길을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샤를로트는 문득, 황녀의 삶을 떠올렸다. 제 고민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녀는 수도의 고위 귀족과 정략결혼을 할 테고, 원하는 삶의 궤도를 큰 탈 없이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황녀 전하께서는… 대공 각하와의 정략결혼이 두렵지 않으세요? 여인에게는 일생 한 번뿐인 결혼인데요. 게다가 황궁을 떠나, 먼 북부로 가셔야 하고…….”

샤를로트의 망설이는 듯한 질문에 지빌라는 미소를 지었다. 애틋하게 느껴지는 염려가, 오히려 귀엽기까지 했다.

“두렵지 않아.”

그녀는 그 말만큼은 단호히 말할 수 있었다. 만약 지난 생을 전생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녀는 이미 두 번의 결혼을 치른 몸이었다. 첫 번째 남편은 전장으로 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 했다.

그 후, 패망한 제국의 황녀는 전리품처럼 붙들려 스트라톤으로 끌려갔다. ‘신부’라는 이름 아래, 이름조차 버린 채 타국의 여인이 되어야 했다.

그날 이후, 지빌라는 결심했다. 다시는 누구의 것도 되지 않겠다고. 이제는 오직 제국만을 지키겠다고.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 결심 위에 서 있었다.

제국이 다시는 무너지지 않기를.

그것이 그녀가 가진 마지막 욕망이자, 이 생을 바쳐 치르고자 하는 속죄였다.

***

한편, 프레데리크는 황녀를 만난 후 수하에게 지시했다.

“앞으로 대공비가 될 황녀다. 잘 지켜봐.”

“보이지 않게 기사를 붙여 두겠습니다.”

프레데리크는 귀족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황궁 가까운 곳의 타운하우스에 머물고 있었다. 상견례와 약혼식을 거쳐 결혼식까지 치르기 위해, 빠르면 석 달, 길면 반년 가까이 이곳에서 머물러야 했다.

일주일이 지나 보좌관 랑베르가 다가와 황녀의 동선을 보고해 왔다.

“대공 각하와 만난 이후 델보 후작성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레오노라 클레브 영애를 만나셨습니다.”

“레오노라를?”

“예.”

프레데리크는 황녀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혹시라도 그에 대한 의혹을 풀고자 레오노라를 찾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레오노라를 왜 만났지?”

랑베르는 고개를 숙였다.

“그건… 두 분이 밀실에서만 말씀을 나누셔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프레데리크는 잠시 말이 없었다.

‘황녀는 왜 하필 레오노라였을까? 혹시—나를 의심하는 건가?’

그는 황녀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 몇 가지를 떠올렸다. 성인이 된 그녀는 개인금고에 1년 치 예산을 지급받았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대부분을 쓸모없고 화려한 것들에 탕진했다.

물론 황녀의 개인 소비를 탓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다만 그 과도함이 제국민들의 눈총을 사, 한동안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할 정도였다.

‘이 정도야, 귀여운 축이지.’

황녀는 자숙 중에도 음악회를 열었다. 연어의 죽음을 주제로 한 곡을 연주시킨 뒤, 끝나자 흐느꼈다.

“그이가 나를 부숴줬다면… 나는 완성됐을 거야!”

그 말을 들은 이는 다들 한결같이 말했다. 황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고.

수도에 온 이후, 그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황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귀족의회든 연회든, 모두가 그녀 이야기를 수군거리며 안줏거리 삼았다. 어떤 이들은 그 소문을 대화의 서두로 꺼내기도 했다.

“황녀가 말하기를 그이가 나를 부숴줬다면, 나는 완성됐을 거라고 했답니다.”

“누군진 몰라도, 밤잠 좀 설쳤겠군.”

황녀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이들은 저마다 그녀의 환심을 얻기 위해 분주해졌다. 사치스럽고 쉽게 사랑에 빠진다는 평이 따라다녔지만, 그녀를 얕볼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느 황족과는 견줄 수 없는 치명적인 매혹.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결국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프레데리크는 이마를 문질렀다. 황녀와 처음 마주했던 날의 차가운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그 눈빛에 어쩐지 익숙함을 느꼈다.

보좌관 랑베르는 창백한 얼굴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프레데리크는 문득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내려다보았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무슨 소문?”

“황녀께서 전하와 레오노라 영애의 관계를 의심하고 계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시녀로 삼아 곁에 두려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떠돕니다.”

그는 말끝을 흐렸다가, 이내 단단히 각오한 듯 덧붙였다.

“황녀께서 전하를… 침실로 불렀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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