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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에서 시첩으로? 그녀는 태자비가 되었다
정실에서 시첩으로? 그녀는 태자비가 되었다
Author: 이화대왕

제1장

Author: 이화대왕
"네가… 진정으로 태자의 액막이 신부로 시집가겠다는 것이냐?"

건덕제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서청아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시선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폐하, 소녀 기꺼이 그리하겠사옵니다."

"태자는 병약하여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 남은 평생을 과부로 살아야 할지라도 원한다는 말이냐?"

"원하옵니다. 부디 폐하께서 혼인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건덕제는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이유가 무엇이냐?"

서청아는 미리 준비해둔 말을 꺼내며 약간 수줍은 듯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소녀는 예전에 태자 전하를 뵌 적이 있사옵니다. 그때부터 전하를 향한 연모의 정이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사옵니다."

태자의 용모가 워낙 빼어나 대위국(大魏)에는 그와 비할 자가 없으니, 여인이 그를 연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네 마음이 가상하다만, 허나 네 신분이…"

건덕제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스쳤다.

태자는 건덕제가 가장 아끼고 총애하는 아들이었기에, 태자비 또한 마땅히 명문가 중에서 가장 뛰어난 규수를 골라야 했다.

하지만 태자가 몹쓸 병에 걸려 궁궐의 어의들도 속수무책인 상황이었다. 아들이 이대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그는 민간에서 명성이 자자한 방사를 불러들였다.

방사는 태자의 안녕을 보전하려면 반드시 액막이 혼례를 치러 기운을 북돋워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황방을 붙인 후 궁으로 찾아온 여인들 중 서청아의 사주가 유일하게 일치했다. 성은 서씨고, 양주 출신으로 집안은 대대로 상업에 종사하는 상단 가문이었다.

허나 그녀의 신분이 확실한지, 가문이 깨끗한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양주에서 경성(京城)까지는 말을 타고 전력 질주해도 왕복 한 달 반이 걸리는 거리였고, 태자에게는… 그만한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건덕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알겠다. 태자를 향한 네 정성이 이토록 깊으니, 짐이 그 지극한 마음을 가상히 여겨 허락하마."

"혼례 날짜는 다음 달 보름으로 정할 것이니 내무부에서 전권을 맡아 진행할 것이다. 너는 그저 마음 편히 혼례를 기다리거라."

서청아는 내심 기뻐하며 엎드려 절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한편.

황궁에서 나온 서청아는 배씨 저택으로 돌아갔다.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배현진이 그곳에 앉아 서늘하고 음침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서청아에게 제 품으로 와 앉으라는 몸짓을 했다.

서청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으나, 이내 순종적으로 배현진의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

"부인,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 배현진은 그녀의 턱을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온종일 모습이 보이지 않아 사람을 보내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더구나. 난 또, 그새 양주로 도망이라도 친 줄 알았다."

그는 말을 하는 내내 마치 서청아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듯이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서청아는 눈을 깜빡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방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서방님을 찾으러 양주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머문 지 고작 며칠이나 됐다고 갑자기 돌아가겠습니까? 그저 집 안에만 있기에는 답답해서 잠시 바깥구경 좀 하고 왔을 뿐입니다."

배현진은 한참 동안이나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날카롭고 깊은 시선은 그녀의 속마음을 낱낱이 파헤치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이 맑고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서서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외출했을 때 혹시 이상한 사람을 만나거나, 이상한 말을 듣지는 않았느냐?"

서청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서방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배현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어조로 당부했다. "요즘 경성 안이 흉흉하다. 너는 성격이 워낙 순진해서 속아 넘어가기 쉬우니 웬만하면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정 나가고 싶다면 나에게 꼭 말을 하거라. 사람을 붙여 널 지키게 해야 내 마음이 놓일 것 같구나."

서청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서방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 잠시 나가봐야 한다.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나를 기다리지 말거라."

말을 마친 배현진은 서청아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대청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서청아의 얼굴에서 온순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렸다.

'중요한 일이라고? 보나 마나 왕부로 급히 돌아가 정실부인을 달래주려는 것이겠지.'

서청아는 배현진이 입을 맞춘 이마를 손으로 세게 문질러 닦았고, 눈에는 혐오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

전생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다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녀는 본래 양주 최고 부호의 외동딸로, 부모의 애지중지하는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원래는 마땅히 평생을 부귀와 낙 속에서 보냈어야 할 운명이었으나, 2년 전 추석 등불 축제에서 배현진을 만난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 몸종과 함께 구경을 나갔던 그녀는 마적 떼에게 납치될 뻔했으나, 그때 배현진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며 배현진은 경성 사람으로 부모 없이 홀로 양주에 장사하러 왔다가 돈을 잃고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청아의 부모님은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에게 재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머물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그녀는 배현진과 정이 들었고, 부모님의 주선 아래 혼인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혼인 서약서만 작성했을 뿐, 정식 혼례는 치르지 못한 상태였다.

혼례를 앞둔 전날 밤, 배현진은 갑자기 경성의 사업에 큰 문제가 생겨 당장 돌아가 해결해야 한다며 서둘러 떠났고, 그대로 2년 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쳤던 서청아는 멀고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고 배현진을 찾으러 경성까지 갔다.

배씨 저택에 머문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무렵, 난데없이 한 여인이 수많은 하인을 데리고 들이닥쳐 서청아를 몰아세웠다.

그제야 서청아는 배현진이 상인이 아니라 당대 황제의 여섯 번째 아들인 육황자, 연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름만 진짜였을 뿐, 나머지는 전부 다 거짓이었다.

그는 독신이 아니었고, 이미 승상의 적녀를 정실로 맞이한 몸이었으면서, 양주 지주와 결탁해 가짜 혼인서를 만들고 거짓 신분으로 서청아와 혼인한 것이었다.

진실을 알게 된 그녀는 분노와 슬픔에 젖어 배현진을 추궁했으나, 그는 전혀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청아야, 속이려던 것이 아니다. 그저 너를 너무 사랑했을 뿐이다." 그는 달콤한 말로 구슬리려 했다. "내가 너를 정실로 맞이하기 싫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상인의 딸이라는 신분으로는 왕비는커녕 측비 자리도 부족하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순순히 내 말을 따르거라. 우선 왕부에 첩으로 들어오거라. 아이를 낳고 나면, 내 반드시 기회를 봐서 부황께 청해 너를 측비로 봉해 주마."

서청아는 기가 막혀 실소했고, 깊은 실망감에 빠졌다.

망설임 없이 경성을 떠나려 했지만, 배현진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억지로 왕부로 끌고 가 가두고는 강제로 첩으로 삼았다.

그날부터 그녀는 밤마다 배현진의 변태적인 요구를 견뎌야 했고, 낮에는 그의 왕비인 육혜수의 악의적인 모욕을 감내해야 했다.

심지어 배현진은 서청아의 필체를 흉내 내어 양주에 계신 그녀의 부모님에게 끊임없이 거액의 금전을 요구했고, 그 돈을 이용해 순탄하게 태자의 자리를 빼앗아 차지했다.

감금된 지 만 3년이 흐른 뒤에야 그녀의 부모님은 상황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몰래 경성으로 와서 딸의 소식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배현진의 진짜 정체와, 딸이 첩으로 전락해 왕부에 갇혀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분노한 부모님은 왕부를 찾아가 딸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고, 결국 관아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추문이 황제의 귀에 들어갈까 봐 두려웠던 배현진은 이판사판으로 그녀의 부모를 암살하고, 서청아의 남편이라는 명의를 이용해 양주에 있는 서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모조리 팔아넘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왕부에 갇혀 있던 서청아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심지어 배현진의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육혜수가 찾아와 배현진이 서청아의 부모를 죽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서청아는 찢어지는 고통과 극에 달한 증오심을 품고, 배현진과 잠자리를 가질 때 숨겨둔 칼로 그를 찔렀으나 급소를 비껴가는 바람에 그는 목숨을 부지했다.

배현진은 서청아를 죽이지 않고 계속 가두어 두었고, 그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조차 없었다.

아이를 낳던 날,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그녀는 남은 힘을 다해 배현진의 흉측한 핏줄을 목 졸라 죽이고, 가위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하늘이 가련히 여겼는지, 그녀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었다.

서청아는 눈을 감으며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증오를 억눌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평온을 되찾은 상태였다.

이번 생에는 반드시 배현진의 역겨운 손아귀에서 벗어나, 먼 양주에 계신 부모님을 지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가씨,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대청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종 설하가 서청아의 곁으로 급히 달려왔고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노비가 저택의 감시꾼들을 따돌리고 먼저 돌아와 아가씨를 기다렸는데, 도통 오시질 않아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릅니다."

서청아가 달래듯 말했다. "난 괜찮다."

"아가씨." 설하가 주위를 살피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일은 잘 되셨습니까?"

서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오늘 외출한 목적은 바로 황방을 떼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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