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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Author: 이화대왕
육혜수는 마차 벽에 몸을 기댄 채, 소맷단의 자수를 손끝으로 천천히 매만졌고,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배현진이 외실을 두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난 몇 년간 왕부에는 측비도, 첩도 없었기에 육혜수는 배현진이 자신에게만 지극정성인 줄로만 알았다.

게다가 배현진은 거의 매일 밤 그녀의 방에 머물며 금슬 좋게 지냈으니, 의심할 여지조차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그는 그녀의 몸에 손도 대지 않을 뿐더러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혹여 그녀의 분내라도 몸에 배면 즉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었으며, 밤이면 행방이 묘연해지는 일이 잦아졌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육혜수가 사람을 시켜 배현진 곁의 시종을 매수했고, 그제야 그가 2년 전 양주에서 한 상인의 딸을 만나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 여인이 경성까지 배현진을 찾아왔고, 그는 아내인 육혜수가 알까 두려워 일부러 별채까지 마련해 여인을 숨겨두었던 것이다.

어쩐지 2년 전부터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배현진은 매번 비단 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렸고, 절정에 달해 흥분할 때면 그녀를 ‘청아야’라고 부르더라니,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육혜수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애칭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대역으로 삼았던 것이었다.

육혜수는 손수건을 꽉 쥐었고, 눈에서는 질투심이 터져 나올 듯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녀가 말을 이었다. "왕비 마마, 제가 보기에 왕야께서는 그 상인 놈의 딸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주신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대놓고 불러 데려와 첩으로 삼지 않고 저토록 꽁꽁 숨기셨겠습니까? 아마도 그 여자가 아이를 낳기를 기다렸다가 폐하께 청해 측비로 삼으려 하시는 모양입니다!"

그 말은 육혜수의 심장에 바늘처럼 박혔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붉은 자국이 남았다.

누군가 연왕의 총애를 가로채는 꼴은 절대로 볼 수 없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천한 상인의 딸이라니!

서청아는 추월을 데리고 뒷문을 통해 배씨 저택으로 돌아왔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설하가 급히 마중을 나왔다. "아가씨, 이제야 오시는군요. 방금 앞마당에서 누가 소란을 피우는 것 같았는데, 어렴풋이 왕비 마마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아무래도 왕부 쪽에서 보낸 사람들 같습니다."

추월이 말을 받았다. "맞아, 우리도 방금 봤어. 연왕비 마마께서 하인들을 거느리고 억지로 쳐들어오려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돌아가더라고."

설하의 걱정은 더 깊어졌다. "아가씨, 혼례가 다음 달 보름인데 만약 연왕비 마마께서 포기하지 않고 다음번에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쳐들어오면 어떡합니까? 만약 아가씨의 얼굴을 보기라도 한다면... 나중에 궁에 가서 아가씨를 고발하면 어찌합니까?"

서청아는 오히려 차분해진 기색으로 달랬다. "걱정 말거라, 육혜수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탁자 쪽으로 걸어가 앉더니,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육혜수가 만약 나와 배현진의 일을 폭로한다면, 나도 타격이 크겠지만 배현진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태자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라 평판을 가장 소중히 여기거든. 이 일이 일단 소문나면 대간들의 탄핵이 빗발칠 텐데, 그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옆에 서 있던 추월이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만약 연왕비 마마께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앞뒤 가리지 않고 저지르면 어찌합니까?"

"그러지 못할 것이다." 서청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맑은 눈빛으로 답했다. "육혜수는 승상의 적녀다. 어려서부터 대가족의 깊은 안채에서 자라며 이해득실을 따지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지. 그녀는 배현진의 앞날과 자신의 지위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배현진이 무너지면 그녀의 연왕비 자리도 오래가지 못할 테니, 나를 아무리 증오해도 감히 도박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서청아는 잠시 멈칫하다가 덧붙였다. "그렇기에 나도 감히 황방(皇榜)을 들고 태자에게 시집가겠다고 한 것이다. 황제께서는 지금 태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액막이 혼례에만 온 신경을 쏟고 계시니, 사람을 양주까지 보내 내 과거를 샅샅이 조사하지만 않는다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조사한다 해도 그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하물며 나는 본래 피해자이고, 배현진과는 부부의 실체도 없었으니, 대대적으로 알려지지만 않는다면 황제께서도 깊이 추궁하지 않으실 것이다."

태자가 병으로 죽지 않는 한 말이다.

서청아가 하는 모든 일은 도박이었다.

그녀는 방사의 말이 사실이기를, 액막이 혼례 후에 태자의 몸이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백년해로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태자가 2년만 더 살 수 있기를 빌었다.

그래야만 그 뒤의 길을 도모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설하와 추월은 서청아의 논리 정연한 분석을 듣고서야 비로소 가슴 졸이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고, 얼굴의 수심도 옅어졌다.

서청아가 다시 당부했다. "쓸데없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혼례 전까지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거라. 필요한 물건은 저택의 하인들에게 시키고, 연왕부 사람들과 마주칠 기회를 만들지 말자꾸나. 조용히 혼례 날까지만 기다리면 된다."

설하와 추월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이후 배씨 저택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혼례 날이 밝았다.

배씨 저택의 뒷문을 지키는 하인은 이미 서청아가 거액의 은자로 매수해 둔 상태였다.

서청아는 혼례 전날 밤, 설하와 추월을 데리고 모든 짐을 챙겨 뒷문으로 몰래 저택을 빠져나와 미리 빌려둔 작은 마당으로 옮겨와 대기했다.

작은 마당은 온통 경사스러운 분위기였다. 처마마다 붉은 등불이 걸려 있었고, 마당의 복숭아나무에는 붉은 비단이 감겨 있었다.

화사하게 차려입은 노파들이 분주히 과일을 차려놓았고, 공기 중에는 달콤한 향기가 감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궁에서 보낸 사람들이 도착했다. 진한 남색 궁중 예복을 입은 어멈 두 명이 앞장섰고, 그 뒤를 따르는 네 명의 궁녀들은 화장대와 봉관, 화려한 혼례복, 그리고 각종 장신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태자비 마마, 길시가 다가옵니다. 저희가 단장해 드리겠습니다." 앞장선 장 어멈이 온화한 미소를 띠며 정중하게 말했다.

서청아는 고개를 끄덕여 응했고, 몸종들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대 앞에 앉았다.

구리거울 속에는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하얀 피부와 섬세한 이목구비, 그리고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에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두 생을 살았지만, 이토록 큰 행사는 겪어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황실이 주관하는 혼례라니.

곧 태자와 혼인하여 배현진의 형수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빗을 든 장 어멈은 손을 잠시 멈칫하더니 서청아가 긴장한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서청아의 긴 머리를 빗으며 부드럽게 다독였다. "태자비 마마, 너무 겁내지 마십시오. 태자 전하의 옥체가 미령하시어 오늘 혼례는 번거로운 절차가 거의 없습니다. 단장을 마치시면 마마께서는 그저 가마에 올라 곧장 동궁으로 가시면 됩니다. 거기서 폐하와 황후 마마만 뵈면 더 할 일은 없으니 아주 수월하실 겁니다."

그 말을 듣자 서청아의 팽팽했던 신경이 조금 풀렸고, 장 어멈을 돌아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고맙구나, 장 어멈."

"태자비 마마, 별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장 어멈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놀려 금세 서청아의 머리를 화려한 쪽머리로 올리고, 그 위에 조심스럽게 봉관을 씌웠다.

봉관에 달린 진주와 보석들이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흔들리며 눈부신 빛을 내뿜었고, 덕분에 서청아의 용모는 한층 더 청초하고 고고해 보였다.

단장을 마친 서청아는 설하를 쳐다보았고, 설하가 정교하게 세공된 대추빛 나무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금과자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금과자를 몇 움큼 쥐어 장 어멈과 궁녀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건넸다. "어멈과 언니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태자비 마마께서 주시는 성의이니 차라도 한잔 드십시오."

장 어멈 일행은 서청아가 이토록 너그럽고 정중할 줄 몰랐기에 얼른 웃으며 받아 챙겼다. "태자비 마마, 정말 감사합니다. 마마의 혼례를 축하드리며, 태자 전하와 금슬이 화락하고 귀한 아드님을 속히 얻으시길 기원합니다."

서청아는 예의 바르게 미소 지을 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이제 길시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같은 시각, 배씨 저택은 난리가 났다.

저택의 관리를 맡은 집사 유승이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서청아의 방이 텅 비어 있었고, 침구는 정갈하게 개어 있었지만 방 안의 모든 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깜짝 놀란 그는 즉시 사람을 풀어 저택 안팎을 샅샅이 뒤지게 했으나, 한 시진이 넘도록 머리카락 한 올도 찾지 못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젯밤까지만 해도 방에 불이 켜진 걸 봤는데, 어찌 아침에 감쪽같이 사라졌단 말이냐!" 유승은 당황하여 이마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어서 인원을 더 늘려서 샅샅이 뒤져보거라! 반드시 부인님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어서 전서구를 띄워 왕야께 이곳 상황을 보고하거라!"

하인들은 지체 없이 밖으로 달려가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유승이 알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배현진이 이미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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