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백작님과 연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집으로 찾아오시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
“앞으로 서신이 오면 뜯지 않고 돌려보내겠습니다.” 백작은 알겠다고 중얼거리며 마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아주 얌전한 속도로 떠났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손목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픈지 물었어.” 나는 대답 대신 손목을 내려다봤다. 잡혔던 자리가 붉어져 있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지만, 펜을 오래 잡으면 조금 불편할 것 같았다. 공작이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뜻인지 보여달라는 뜻인지 몰라 잠깐 머뭇거리자 그가 덧붙였다. “봐도 되겠나?” “네.” 그가 내 손바닥 아래를 받쳤다. 장갑을 낀 손이었는데도 압력이 조심스러웠다. 바로 전까지 아플 만큼 잡혀 있었던 탓인지, 아무 힘도 주지 않고 받쳐주는 감각이 유난히 선명했다. 그는 손목을 돌리지 않고 붉어진 부분만 살폈다. “주치의에게 보이는 게 좋겠군.” “집에 가서 찜질하겠습니다.” “우리 주치의는 오늘 저택에 있어. 가깝기도 하고.” “치료만 받으면 됩니까?” “내가 치료 뒤에 광산 보고서를 먹일 사람처럼 보이나?” “읽히실 사람처럼 보입니다.” “마침 자네에게 확인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기는 해.” “제 휴일은 공작님의 것이 아닙니다.” “알아.” “아침에도 일했습니다.” “그것도 알아.” “지금은 초콜릿을 먹고 집에 가는 일정입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야. 부탁해도 되겠나?” “어떤 일입니까?” “광산의 추가 보고서에 수량이 맞지 않는 곳이 있어. 자네가 정리한 원본과 비교하고 싶어.” “제가 오전에 말씀드린 운송 손실과는 다른 겁니까?” “달라. 채굴량은 그대로인데 반출된 수량이 늘었어.” “삼십 분만 확인하겠습니다. 정식 검토는 내일 하고요.” “좋아.” “휴일 근무 수당은 따로 기록하겠습니다.” “기록하게.” “치료 시간은 삼십 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가 결국 짧게 웃었다. 나는 우리 마부에게 행선지를 바꿔달라고 부탁하려다가 멈췄다. 공작이 자신의 마차를 가리켰다. 이동하면서 보고 내용을 설명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부에게 공작저 앞에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오늘 집에는 반드시 내 마차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공작이 문을 잡아주는 동안 나는 먼저 올라탔다. 좁은 발판에서 상자를 옮겨 쥐다 균형이 조금 흔들렸다. 그의 손이 팔꿈치 바로 아래를 받쳤다가 내가 올라선 것을 확인하고 떨어졌다. 짧은 접촉이었다. 그런데 향유 대신 옅은 나무 향이 느껴져, 나는 자리에 앉고 나서도 잠깐 문 쪽을 바라봤다. 공작은 맞은편에 앉았다. 문이 닫히자 거리의 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나는 그가 서류를 펼치기도 전에 왼손을 들었다. “달리는 마차에서는 글씨를 보지 마세요. 지난번에도 두통이 심해지셨잖아요.” “자네가 읽을 수 있게 가져온 거야.” “저도 안 읽습니다. 숫자로 말씀해주세요.” 그는 종이를 접은 채 무릎 위에 놓았다. 의외로 순순했다. 나는 몸을 등받이에 기댔다. 말로 들은 차이는 열두 상자였다. 창고의 보관량과 수도의 수령량을 맞춰봐야 했다. 내가 가능한 원인 세 가지를 이야기하는 동안 공작은 가끔 짧게 질문했다. 늘 하던 일이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러다 대화가 잠깐 끊겼다. 마차가 흔들리자 오른손으로 상자를 붙잡았다가 손목이 욱신했다. 내가 표정을 찡그리자 공작이 곧바로 시선을 내렸다. “상자는 옆에 놓아도 돼.” “안에 있는 것들이 서로 부딪힙니다.” “내게 주게.” 나는 상자를 건넸다. 공작이 무릎 위에 반듯하게 올려놓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났다. 제국의 군사 회의에도 참석하는 사람이 지금은 내 초콜릿을 지키고 있었다. “왜 웃지?” “공작님께 어울리는 업무인지 생각했습니다.” “다친 손을 쓰지 말라는 뜻이야.” 나는 웃음을 가라앉히고 손목을 소매 안으로 조금 넣었다. 창밖을 바라보려는데 그가 다시 물었다. “결혼식은 잘 다녀왔나?” “네. 친구가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렇군.” “노아도요. 반지 끼우는 손을 얼마나 떨던지.” “자네도 결혼하고 싶어졌나?” “결혼식이 아름답다고 당장 결혼하고 싶은 건 아니죠.” “그건 맞는 말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생각해보겠습니다.” “생겼나?” “아니요.” 대답하자 그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나는 잠깐 그의 옆얼굴을 보다가 문득 점쟁이의 말을 떠올렸다. 일을 잘해서 못 놓는 사람이 있다고 했었지. 앞에 있는 공작을 생각하자 어이가 없어졌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보고서를 마저 쓰고 만나라고 할 인간이었다.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휴가 일정을 미리 조율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역시.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못 놓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근로계약 때문에. 저택에 도착하자 집사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 손목을 보고 곧바로 작은 응접실로 안내했다. 주치의가 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진찰 결과는 가벼운 타박상이었다. 찜질을 하고 오늘은 손목에 힘을 주는 일을 피하라는 설명을 들었다. “오른손으로 문서를 오래 쓰는 것도 삼가세요.” “들으셨죠, 공작님?” 문가에 서 있던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얇게 감긴 붕대를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큰 부상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주치의가 나간 뒤에는 집사가 차와 작은 접시를 가져왔다. 초콜릿 상자가 어느새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내일이 되어도 불편하면 미하일에게 받아쓰게 해.” “그 사람이 제 말을 다 받아쓸까요?” “업무 내용만.” 공작이 맞은편에 앉아 수치를 읽으면 나는 오전에 확인한 내용과 비교했다. 펜은 그가 들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조금 내려와 있었다. 긴 손가락이 펜대를 안정적으로 잡았고, 소매 사이로 손목이 보였다. 언제나 서류에 적힌 문장만 읽느라 자세히 본 적 없던 모습이었다. 공작이 고개를 들자 나는 얼른 그의 손에 있는 종이를 봤다. “더 할 말이 있나?” “창고 봉인 번호도 확인해야겠습니다.” 종이에 필요한 항목이 다 적혔을 때, 공작이 먼저 책상 위의 시계를 봤다. “이십칠 분이군.” “정확히 기록하겠습니다.” “삼십 분으로 기록해.” 나는 초콜릿 상자를 챙겨 일어났다. 그때 공작이 나를 불렀다. “타르로가 보낸 편지에 선물도 있었나?”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가 덧붙였다. “백작의 옷깃에 달린 브로치가 눈에 걸려서.” “브로치가 하나 있었습니다. 편지와 함께 돌려보냈어요.” “어떤 모양이었지?”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포장을 여는 동안 리아가 예쁘다고 했었다. 검은 보석이 가운데 있고, 은으로 된 꽃잎이 바깥을 둘러싼 모양. 오늘 백작의 옷깃에도 비슷한 물건이 있었다. “은색 꽃 모양에 검은 보석이 박혀 있었습니다. 왜요?” 공작이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방금까지 보고서를 펼쳐놓았던 탁자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집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종이에 그린 문양이었다. 꽃잎 여섯 장이 검은 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것과 비슷했나?” “네. 거의 같아요.” 내 대답에 공작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는 초콜릿 상자를 고쳐 안고 그를 바라봤다. “광산에서 나온 겁니까?” “수량이 맞지 않는 운송 상자의 봉인에 찍혀 있었어.” 그는 문양을 다시 내려다봤다. 나는 그 옆에 있는 검은 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오늘 백작의 브로치를 보았을 때 느꼈던 불편함이 되살아났다. “샤를레아. 돌려보낸 선물의 영수증이나 편지 사본이 남아 있나?” “편지는 없지만 반송 기록은 있습니다. 선물을 받은 날짜도 적어뒀고요.” “내일 가져와줄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은 더 붙잡지 않았다. 집사가 열어둔 문밖으로 나오자 복도에서 평소와 같은 시계 소리가 들렸다. 우리 마차도 약속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휴일의 남은 시간은 지켰고, 초콜릿도 무사했다. 나는 붕대가 감긴 손목을 내려다봤다. 남자 복이 없는 것으로 끝났으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다가왔던 인간들이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이제는 조금 더 자세히 확인해야 했다.“백작님과 연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집으로 찾아오시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 “앞으로 서신이 오면 뜯지 않고 돌려보내겠습니다.” 백작은 알겠다고 중얼거리며 마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아주 얌전한 속도로 떠났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손목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픈지 물었어.” 나는 대답 대신 손목을 내려다봤다. 잡혔던 자리가 붉어져 있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지만, 펜을 오래 잡으면 조금 불편할 것 같았다. 공작이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뜻인지 보여달라는 뜻인지 몰라 잠깐 머뭇거리자 그가 덧붙였다. “봐도 되겠나?” “네.” 그가 내 손바닥 아래를 받쳤다. 장갑을 낀 손이었는데도 압력이 조심스러웠다. 바로 전까지 아플 만큼 잡혀 있었던 탓인지, 아무 힘도 주지 않고 받쳐주는 감각이 유난히 선명했다. 그는 손목을 돌리지 않고 붉어진 부분만 살폈다. “주치의에게 보이는 게 좋겠군.” “집에 가서 찜질하겠습니다.” “우리 주치의는 오늘 저택에 있어. 가깝기도 하고.” “치료만 받으면 됩니까?” “내가 치료 뒤에 광산 보고서를 먹일 사람처럼 보이나?” “읽히실 사람처럼 보입니다.” “마침 자네에게 확인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기는 해.” “제 휴일은 공작님의 것이 아닙니다.” “알아.” “아침에도 일했습니다.” “그것도 알아.” “지금은 초콜릿을 먹고 집에 가는 일정입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야. 부탁해도 되겠나?” “어떤 일입니까?” “광산의 추가 보고서에 수량이 맞지 않는 곳이 있어. 자네가 정리한 원본과 비교하고 싶어.” “제가 오전에 말씀드린 운송 손실과는 다른 겁니까?” “달라. 채굴량은 그대로인데 반출된 수량이 늘었어.” “삼십 분만 확인하겠습니다. 정식 검토는 내일 하고요.” “좋아.” “휴일 근무 수당은 따로 기록하겠습니다.” “기록하게.” “치료 시간은 삼십 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초콜릿은 예언보다 믿을 만했다. 적어도 돈을 내면 그 자리에서 행복해질 수 있었다. 나는 작은 상자를 품에 안고 과자점을 나왔다. 조금 전까지 점쟁이가 앉아 있던 골목은 텅 비어 있었다. 나무 상자도, 낡은 돗자리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언제 다 치우고 간 거지. 오 실버를 받고 나서의 움직임만큼은 제법 신속한 모양이었다. 마차가 서 있던 곳에는 짐수레 두 대가 들어와 있었다. 우리 마부는 과자점의 하인이 나를 향해 손을 들기도 전에 길 건너에서 신호를 보냈다. 뒤쪽 분수대 옆에 세워두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보행로를 따라 걸었다. 상자 속에서 달콤한 냄새가 올라왔다. 집에 도착하면 데인과 나눠 먹고, 남은 것은 책을 읽으면서 먹을 생각이었다. 그때 말의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터졌다. “비켜요!” 검은 마차 한 대가 모퉁이를 크게 돌아 들어왔다. 바퀴가 보행로의 낮은 경계석을 타고 넘어왔다가 튕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굽 낮은 구두가 돌바닥을 미끄러졌고, 분수대의 가장자리를 짚고서야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손에 들고 있던 상자가 기울었다. 마차는 고삐를 당기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서 멈췄다. “거기 서 있으면 어떡합니까!” 마부가 먼저 고함을 질렀다. 나는 아직 분수대를 짚고 있던 손을 떼고 그를 바라봤다. 그는 마부석에서 내려오자마자 말의 상태부터 살폈다. 그러고는 내가 다쳤는지 묻는 대신, 마차가 긁힌 자리를 손으로 문질렀다. “지금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세요?” “갑자기 튀어나오면 나더러 어쩌라고…….” “저는 보행로에 있었고, 마차가 올라왔는데요.” 내가 경계석을 가리키자 그의 시선이 잠깐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인정하는 대신 내 차림을 훑었다. 손목을 덮는 블라우스와 조끼, 먼지 묻은 바지. 드레스와 보석으로 신분을 알리는 영애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의 턱이 조금 올라갔다. “마차 안에 어떤 분이 계시는지는 압니까?” “운전 속도를 결정할 때는 그분의 성함보다 도로 표지판을
“아니. 속이는 사람이 잘못이지.” 로나의 대답이 빨랐다. 그녀는 내 팔을 살짝 쓸어주었다. “내가 연애하라는 건 네가 혼자라서 불행하다는 뜻이 아니야. 네가 좋아하는 걸 자꾸 포기하는 것 같아서 그래. 너 예전에는 사랑 이야기 좋아했잖아.” 나는 친구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좋아했다. 소설 속에서 서로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길에서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도. 단지 내 이야기가 될 때마다 조금 우스워져서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다. “지금도 좋아해.” “알아.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미리 겁먹지는 말라는 거야.” 로나가 다시 잔을 들었다. 나는 타르트를 한입 먹었다. 딸기는 달았고 크림은 부드러웠다.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잠시 뒤 신랑에게 붙잡혀 있던 아르타샤가 우리 쪽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로나는 그 손짓에 응답하면서 내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에 만날 때는 연애 이야기 하나쯤 들려줘.” “남의 이야기여도 돼?” “샤를.” “노력해볼게.” 나는 웃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적어도 오늘은 그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었다. 마차에 오르자 마부가 집으로 갈 것인지 물었다. 나는 열린 창문 너머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아직 높았고 바람에는 봄이 끝나가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곧장 집으로 가기에는 조금 아까웠다. 오전에는 보고서를 읽고, 오후에는 잔소리를 들었으니 이제는 내 마음대로 쓸 시간이 필요했다. “번화가로 가주세요. 과자점 앞에서 내려주시면 돼요.”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마차를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과자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골목 입구에 펼쳐진 낡은 돗자리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는 그 위에 앉은 노인이 나를 보고 혀를 찼다. 작은 나무 상자와 빛바랜 부채뿐인 자리였다. 점을 본다는 간판은 없었지만 분위기가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쯧. 아까운 얼굴이네.” 나는 그대로 걸었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평가하는 분과 친분을 맺고 싶지는 않았다. 노인은 내가 지나가는 동안 고개를
모두가 축복하는 기쁜 날이었다. 적어도 신부가 내 연애사를 꺼내기 전까지는. 아르타샤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어깨를 드러낸 새하얀 새틴 드레스가 허리 아래로 매끄럽게 흘러내렸고,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은 치맛자락 위에 얇은 금빛을 얹었다. 화려한 보석도, 겹겹이 부풀린 레이스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잠깐 말을 잊었다. 부케를 고쳐 쥐며 웃는 친구가 너무 아름다워서였다. “축하해, 아샤. 정말 예쁘다.” 나는 친구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꽃과 향유 냄새가 가까워졌다. 아르타샤는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더니, 서로 떨어지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고마워. 그래서 너는 언제 결혼할 건데?” 감동이 사라지는 데에는 한 문장으로 충분했다. 나는 흐트러진 부케의 리본을 펴주던 손을 멈추고 친구를 바라봤다. 오늘만큼은 넘어갈 줄 알았는데. 신부의 자비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 “오늘은 네 결혼식이잖아.”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야. 다음에는 네 결혼식에서 이 말을 하고 싶어서.” “내 주변에 남자가 없어.” “말은 바로 해야지. 남자는 많은데 네가 좋아하는 남자가 없는 거잖아.” “청혼서는 매달 오지, 연회 초대장도 쌓여 있지. 그런데 너는 일하느라 바쁘다고 전부 거절하잖아.” “청혼서에 내 이름을 틀리게 적은 사람도 있었어.” “그 사람은 제외하고.” “두 번째 장부터 지참금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사람도 제외하고.” “우리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은 분도…….” “샤를.”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손은 얌전히 과자 쪽으로 뻗었다가 들켰다. 아르타샤가 내 손등을 가볍게 때렸다. 오늘의 신부는 친구가 굶는 일보다 혼자 늙는 일을 더 걱정하는 듯했다. “결혼까지는 안 바랄게. 연애라도 해. 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 “그런 사람이 생기면 나도 할 거야.” “그럼 서류 밖에서도 좀 찾아봐.” 마침 문이 열리고 로나가 들어왔다. 다른 하객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