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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30 00:00:38

아침이 밝았을 때, 서화는 어젯밤 자신이 했던 생각을 모른 척하기로 했다.

이곳에서도 좋은 것이 생기고 있다.

그 말은 이상할 정도로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마리엘이 가져다준 쌀죽도, 에드윈과 밤늦게까지 기록을 뒤진 일도, 레오넬이 이제는 자신을 볼 때 검부터 잡지 않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카시안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귀환 방법을 함께 찾고 있다는 사실도.

좋은 일이었다.

분명 좋은 일인데.

서화는 자꾸만 그것을 경계하게 되었다.

좋아하게 되면 떠나기 어려워질 것 같아서.

익숙해지면 그만큼 이별이 아파질 것 같아서.

그래서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에드윈을 찾아갔다. 생각할 틈을 만들지 않으면 됐다. 언어를 배우고, 기록을 읽고, 돌아가는 길을 찾으면 된다.

“에드윈.”

연구실 문을 열자 안쪽에서 무언가 요란하게 무너졌다.

쾅!

“…….”

서화가 멈췄다.

잠시 뒤 책더미 사이에서 에드윈의 머리가 불쑥 올라왔다.

“괜찮아!”

서화가 천천히 눈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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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남쪽으로 가는 길은 봄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남쪽 해안에 다시 나타난 빛의 문.그리고.백옥 노리개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남쪽으로 오렴.』그 말이 들린 순간부터 서화의 마음은 이미 결정을 끝낸 뒤였다.문제는 단 하나였다.지금 남쪽으로 갈 수 있느냐.카시안은 즉시 사람을 불렀다. 에드윈과 레오넬, 북부의 길과 기후를 가장 잘 아는 기사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넓은 집무실 테이블 위로 지도가 펼쳐졌고, 북부에서 남쪽 해안까지 이어지는 길이 표시됐다. 눈으로 막힌 산맥, 마수 출몰지가 늘어난 숲, 겨울철 통행이 거의 끊기는 협곡까지.서화는 그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예전이었다면 긴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 답답함부터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어를 제법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완전하지 않아도 중요한 말은 따라갈 수 있었다.“정상적인 길은 못 씁니다.”레오넬이 지도 위의 산맥을 짚었다.“최소 두 곳이 완전히 막혔습니다.”에드윈이 다른 길을 가리켰다.“마법사들이 우회로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다만 대규모 이동은 어렵습니다.”카시안이 물었다.“인원은.”“적을수록 빠릅니다.”서화는 ‘빠르다’를 알아들었다. 몸이 조금 앞으로 기울었다.레오넬이 그녀를 잠깐 보더니 덧붙였다.“다섯에서 일곱 정도.”카시안의 손가락이 지도 한쪽을 두드렸다.“말은?”“산맥 전까지는 가능합니다. 이후에는 설원용 마차도 버리고 걸어야 할 수 있습니다.”서화가 이해한 단어를 하나씩 머릿속에서 연결했다.말.산.마차.걷다.결국.쉽지 않다는 뜻이다.그러나.불가능하다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서화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모두가 그녀를 봤다.이제는 그런 시선에도 익숙해졌다.“질문.”에드윈이 조금 웃었다.“해.”서화가 지도의 남쪽을 가리켰다.“문.”그리고.“얼마나.”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는 시늉.“시간?”에드윈이 이해했다.“빛의 문이 얼마나 오래 남아 있을지?”서화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방 안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아무도 답을 알지 못했다.사백 년 전에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이곳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아침이 밝았을 때, 서화는 어젯밤 자신이 했던 생각을 모른 척하기로 했다. 이곳에서도 좋은 것이 생기고 있다. 그 말은 이상할 정도로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마리엘이 가져다준 쌀죽도, 에드윈과 밤늦게까지 기록을 뒤진 일도, 레오넬이 이제는 자신을 볼 때 검부터 잡지 않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카시안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귀환 방법을 함께 찾고 있다는 사실도. 좋은 일이었다. 분명 좋은 일인데. 서화는 자꾸만 그것을 경계하게 되었다. 좋아하게 되면 떠나기 어려워질 것 같아서. 익숙해지면 그만큼 이별이 아파질 것 같아서. 그래서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에드윈을 찾아갔다. 생각할 틈을 만들지 않으면 됐다. 언어를 배우고, 기록을 읽고, 돌아가는 길을 찾으면 된다. “에드윈.” 연구실 문을 열자 안쪽에서 무언가 요란하게 무너졌다. 쾅! “…….” 서화가 멈췄다. 잠시 뒤 책더미 사이에서 에드윈의 머리가 불쑥 올라왔다. “괜찮아!” 서화가 천천히 눈썹을 올렸다. “안 물었습니다.” 조선말이었다. 에드윈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왜 그런 표정이야?” 서화는 연구실 바닥을 둘러봤다. 책, 종이, 작은 수정구, 마법 도구와 잉크병이 뒤섞여 있었다. 며칠 전보다 더 엉망이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위험.” 에드윈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 그제야 자신도 책 한 권을 밟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서화의 표정이 더 싸늘해졌다. 에드윈이 재빨리 발을 뗐다. “책은 안 망가졌어.” 서화는 못 알아들었다. 대신 책을 집어 먼지를 털고 책상 위에 올려놨다. “책.” 그리고 에드윈을 가리켰다. “소중.” “…….” “소중.” 그녀가 다시 강조했다. 며칠 전 배운 단어였다. 에드윈은 어쩐지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알았어.” 그가 손을 들었다. “정리하겠습니다.” 서화는 ‘정리’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에드윈이 책을 치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남쪽의 문을 찾아서

    남쪽 해안에서 사흘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진 문.그 기록 하나 때문에 서화는 밤이 늦도록 지도를 떠나지 못했다. 북부에서 남쪽 끝까지 이어진 길 위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따라가며 몇 번이고 거리를 가늠했다. 이 세계의 지리를 완전히 익힌 것은 아니었지만, 북부와 남쪽 사이에 얼마나 많은 도시와 산맥, 강이 놓여 있는지는 이제 알 수 있었다. 하루 이틀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그런데도 마음은 이상할 만큼 조급하지 않았다.이전까지의 길은 늘 막혀 있었다. 검은 문을 열라는 목소리, 알 수 없는 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존재.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줄 때마다 그 끝에는 반드시 찜찜한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윤연화가 남긴 길이었다.자신과 같은 조선 사람.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으려 했고, 결국 검은 문을 닫은 여자. 그런 사람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었다.문은 하나가 아니란다.서화는 그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아니, 믿기만 해서는 안 됐다.확인해야 했다.“남쪽.”서화가 지도 끝을 가리켰다.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드윈이 피곤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밤새 기록을 뒤진 탓에 머리가 평소보다 더 엉망이었다.“남쪽.”서화가 다시 말했다.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나.”손가락을 남쪽으로 움직였다.“가다.”에드윈의 얼굴이 즉시 굳었다.“안 돼.”서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그 단어는 너무 잘 안다.“왜?”“멀어.”에드윈이 지도를 길게 쓸었다.“아주 멀어.”서화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알다.”“그리고 위험해.”그가 산맥과 숲을 가리켰다. 이어 마수를 뜻하는 그림까지 급히 그렸다. 그제야 서화는 그의 걱정을 이해했다.“마수.”“그래.”“기사.”서화가 손으로 검을 쥔 시늉을 했다.“같이.”에드윈이 눈을 크게 떴다.“지금 호위까지 데려가겠다고?”문장이 길어지자 서화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에드윈의 표정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자신의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문 너머의 것은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서화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어둠은 사라졌다.가족의 모습도.도겸의 손도.전부.백옥 노리개는 다시 평범한 빛을 되찾았다.그런데.심장은 아직 빠르게 뛰고 있었다.“…….”서화가 천천히 손을 펼쳤다.손바닥이 축축했다.조금 전까지.그 너머에 오라버니의 손이 있었다.닿지는 않았지만.분명히 봤다.아버지.어머니.오라버니.모두 살아 있었다.자신을 찾고 있었다.그리고.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그 사실만으로도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기뻐서.당장 울고 싶었다.그런데.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문만 열면 모든 것이 끝날 텐데.』그 존재는.자신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것이 아니었다.계속해서 문을 열라고 했다.대가가 무엇인지 묻자 대답하지 않았다.조선이 위험한지.이 세계가 위험한지.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자신이 물었다.당신, 문 너머에서 나오고 싶은 겁니까?대답은 없었다.하지만.그 침묵이 이상하리만큼 분명했다.서화가 백옥 노리개를 움켜쥐었다.“저를 이용하려는 거군요.”처음 설원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드디어.』『찾았다.』『문을 여는 아이야.』그때는 뜻을 몰랐다.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문을 여는 아이.자신을 그렇게 불렀다.처음부터.기다리고 있었다.서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늦은 밤.대공성의 복도는 조용했다.경비 기사들이 서화를 발견하고 놀랐다.“서화 아가씨?”마리엘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뒤.성 안의 몇몇 사람들도 어색하게 그 호칭을 따라 하고 있었다.서화는 기사에게 물었다.“카시안.”그리고 손가락으로 주변을 가리켰다.“어디?”기사가 잠깐 망설였다.이 시간이라면 대공은 집무실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그가 방향을 알려줬다.서화는 곧장 걸었다.집무실 앞.레오넬이 있었다.“서화?”그는 서화의 얼굴을 보는 순간 웃음기를 거뒀다.“무슨 일이지?”서화는 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대신.“카시안.”문을 가리켰다.“지금.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첫 번째 여인의 이름

    윤연화.서화는 날이 밝을 때까지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백옥 위에 나타났던 글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다시 아무리 들여다봐도.평범한 흰 옥일 뿐이었다.그런데도 서화는 눈을 떼지 못했다.“윤연화…….”어젯밤.분명히 보았다.윤.연.화.그리고.너의 피가 처음 문을 닫았다.“피.”서화가 천천히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핏줄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사백 년 전 조선에서 이 세계로 건너왔던 여인.자신과 같은 백옥 노리개를 가지고 있던 여자.그리고.자신의 피와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의 말.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겹쳤다.“우리 집안 사람이라는 뜻인가.”하지만 이상했다.서화는 자신의 집안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윤씨 집안은 오래된 양반가였다.족보도 있었다.선대에 관한 기록도 적지 않았다.어릴 때 아버지에게 가계에 관해 배운 적도 있었다.그런데.이세계에 다녀온 여인이라니.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잊을 리 없다.더구나 백옥 노리개는.“어머니께서 주셨는데.”서화의 손이 멈췄다.이상하다.백옥 노리개는 아버지의 윤씨 가문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다.어머니 한연화가.외가에서 물려받은 것이다.그런데 이름은.윤연화.“…….”서화의 눈빛이 달라졌다.같은 ‘연화’.그것까지 우연일까?“아니야.”무언가 있다.자신이 모르는 이야기가.서화는 침상에서 내려왔다.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확인해야 해.”누구에게?이 세계에서 사백 년 전의 기록을 읽을 수 있는 사람.한 명이 바로 떠올랐다.“에드윈.”쾅!연구실 문이 열렸다.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던 에드윈이 펄쩍 뛰었다.“뭐야!”서화가 들어왔다.“에드윈.”“서화?”그는 눈을 비볐다.창밖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도 않았다.“지금 몇 시인지 알아?”서화는 절반도 못 알아들었다.그러나.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종이를 꺼냈다.그리고 붓을 들었다.에드윈이 멍하니 바라봤다.서화가 한자를 적었다.尹蓮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는 길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희망이 생긴 날 밤. 서화는 오히려 잠들지 못했다. 사백 년 전. 조선에서 이곳으로 온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그 사실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돌아갔다…….” 서화는 침상 위에 앉아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뇌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막연했다.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정작 방법은 하나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길이 있었다. 누군가 이미 그 길을 지나갔다. 그렇다면. 자신도 찾을 수 있다. 서화는 품에서 백옥 노리개를 꺼냈다. 달빛 아래. 옥은 다시 평범한 흰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당신이 그분을 돌려보낸 것입니까?” 물론 대답은 없었다. “그렇다면 저도…….” 말을 멈췄다. 어젯밤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서화야.』 도겸의 목소리. 꿈이었을까. 아니. 서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선명했다. 오라버니 특유의 말투까지.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목소리를 잘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오라버니도 찾고 계시는군요.” 입가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그러다 금세 사라졌다. ‘손.’ 꿈에서 본 도겸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서화가 눈을 감았다. 절벽.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던 오라버니. 마지막 순간. 자신을 놓친 사람. “……또 자기 탓을 하고 계시겠지.” 그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서화가 나무에서 떨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도. 자신이 조금만 빨리 왔으면 막았을 거라고 했다. 서화가 감기에 걸렸을 때조차 전날 함께 밖에 나간 자기 탓이라 우겼다. 그런 오라버니가. 자신의 손을 놓쳤다. “바보.” 서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라버니 탓이 아닌데.” 노리개를 꼭 쥐었다. “그러니까 제가 직접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살아 있다고. 괜찮다고. 오라버니가 놓은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전부 따질 겁니다.” 눈물이 맺혔지만. 서화는 웃었다.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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