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돌아온 다섯째 날.송유지는 아침 식탁에 앉아 달력을 펼쳐놓고 있었다.채도하가 커피를 들고 와 맞은편에 앉았다.“뭐 봐.”“우리 일정.”“왜 갑자기.”유지는 달력을 돌려 보여줬다.“여보 새 프로젝트 들어갔고.”“응.”“저는 금요일에 현지 원격회의 한 번 더 있고.”“응.”“그다음부터는 진짜 거의 끝.”도하가 달력을 내려다봤다.“그래서?”“이제 우리 일정 다시 맞춰야죠.”도하가 웃었다.“회사 회의 같네.”“중요하니까.”유지는 먼저 자기 일정을 적었다.금요일.현지 원격 자문 40분.다음 주.본사 보고 1회.그리고 아직 결정하지 않은.8주 원격 자문 제안.도하가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이건 아직?”“응.”“언제 결정할 거야.”“이번 주말 지나고.”“왜.”“좀 쉬어보고.”유지는 솔직하게 말했다.“지금 기분만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근데?”“몸이 진짜 괜찮은지는 모르잖아요.”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맞네.”이번에는 도하가 자기 일정을 적었다.신규 프로젝트 정식 합류.기존 팀 인수인계 종료.그리고.첫 출장 예상 주간.유지가 바로 펜을 멈췄다.“잠깐.”“왜.”“이게 첫 출장?”“아직 날짜 확정은 아니고.”“다음 달 둘째 주?”“응.”유지는 달력을 빠르게 계산했다.“제가 8주 자문 시작하면.”“응.”“첫 주랑 겹칠 수도 있네.”도하가 물었다.“그게 문제야?”유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예전 같으면.둘 중 하나의 일정을 먼저 줄일 방법부터 찾았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력을 한참 봤다.“아니.”“응?”“그냥 겹치는 거네.”도하가 웃었다.“맞아.”“여보 출장 가고.”“응.”“저는 여기서 원격회의 하면 되고.”“응.”유지가 펜을 내려놓았다.“왜 그걸 문제라고 생각했지.”“습관?”“그런가 봐.”도하가 말했다.“꼭 일정 안 겹쳐야 하는 건 아니잖아.”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우리 둘 다 일하니까.”“응.”“어긋
돌아온 넷째 날.송유지는 아침부터 채도하보다 먼저 현관 앞에 서 있었다.도하가 재킷을 입으며 물었다.“왜 거기 있어.”“오늘 첫날이잖아요.”“첫날?”“새 프로젝트 팀.”도하가 웃었다.“어제 사람들 만났잖아.”“어제는 인사.”유지는 넥타이를 한번 정리해줬다.“오늘부터 진짜 시작.”도하가 유지 손을 내려다봤다.“긴장돼?”“제가요?”“응.”“왜 제가 긴장해요.”“내 첫날인데 네가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서.”유지는 잠깐 멈췄다가 웃었다.“조금 궁금해서.”“뭐가.”“여보가 새 팀에서는 어떻게 일하는지.”도하가 눈썹을 올렸다.“직접 볼 것도 아닌데.”“저녁에 들으면 되죠.”도하가 신발을 신었다.유지가 말했다.“오늘 늦어요?”“첫날이라 모르겠어.”“저녁 먹고 와요?”“가능하면 같이 먹지.”“가능하면?”도하가 웃었다.“확정되면 연락할게.”유지는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예전엔 제가 맨날 그런 말 했는데.”“이제 내 차례.”“기분 묘하네.”도하가 문을 열었다.“다녀올게.”유지가 바로 대답했다.“잘 다녀와요.”문이 닫히고.유지는 잠깐 현관에 그대로 서 있었다.이번에는 자기가 남았다.35일 동안 도하가 했던 것처럼.오전에는 집에서 간단한 정리를 했다.아직 캐리어 한쪽에 남아 있던 서류.출장 때 썼던 물건.현지에서 받은 자료들.유지는 회사 자료와 개인 물건을 완전히 나눴다.그러다 휴대전화가 울렸다.현지 운영 담당자였다.—송 리드님, 하나만 확인 부탁드립니다.유지는 메시지를 읽고 잠깐 멈췄다.내용은 다음 주 파트너 미팅 순서였다.예전 같으면 바로 답했을 질문.그런데.유지는 다시 읽었다.그리고 답했다.—이건 디렉터와 먼저 정해주세요. 제 의견이 꼭 필요한 부분이 생기면 그때 주세요.1분 뒤.—네. 알겠습니다.끝.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진짜 됐네.”점심쯤.도하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유지는 한 번 휴대전화를 봤다가.다시 내려놨다.10분 뒤.또 봤다.
돌아온 셋째 날 아침.송유지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오늘은 현지 팀과 첫 원격 자문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채도하는 아직 자고 있었다.유지는 침대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거실로 나왔다.노트북을 켜고.메일을 확인했다.회의 시작은 오전 10시.40분 예정.그뿐이었다.그런데도 유지 손은 자연스럽게 현지 운영 보고서를 열고 있었다.한 장.두 장.세 장.그러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뭐 해.”유지가 흠칫 돌아봤다.도하가 잠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깼어요?”“응.”도하는 화면을 한번 봤다.“회사?”“오늘 원격 회의.”“10시 아니야?”“응.”“지금 7시 반인데.”유지가 입을 다물었다.“미리 좀 보려고.”도하가 옆에 와서 화면을 내렸다.“40분 회의라며.”“그래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자문.”“응.”“운영 책임자 아니고.”유지는 잠깐 멈췄다.“맞네.”도하가 웃었다.“돌아온 지 이틀 만에 다시 하려고 했네.”“뭘.”“다.”유지도 결국 웃었다.“습관 무섭다.”아침을 먹고.유지는 9시 50분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도하는 출근 준비를 하며 물었다.“몇 시 끝나.”“10시 40분.”“진짜?”“40분 계약.”“넘어가면.”유지가 웃었다.“제가 끊을게요.”“할 수 있어?”“오늘 해볼 거예요.”10시.화면이 연결됐다.익숙한 얼굴들이 하나씩 나타났다.운영 담당자가 먼저 웃었다.“송 리드님.”유지 입꼬리가 바로 올라갔다.“잘 지냈어요?”“이틀밖에 안 됐습니다.”“그래도.”마케팅 담당자가 끼어들었다.“한국 좋으십니까?”유지가 뒤쪽 집을 한번 봤다.“응.”“표정이 다릅니다.”“또 표정 얘기.”화면 너머에서 웃음이 터졌다.현지 디렉터가 말했다.“시작하죠.”“네.”회의는 예상보다 간단했다.현지에서 처리한 주요 이슈 3건.전부 이미 결정이 끝난 상태였다.유지는 결과만 들었다.첫 번째.파트너 일정 변경.두 번째.추가 교육 요청.세 번째.예산 범위
송유지가 눈을 떴을 때.방 안이 이미 밝았다.잠결에 휴대전화를 찾다가 시간을 확인했다.10시 37분.유지는 눈을 크게 떴다.“뭐야.”옆자리는 비어 있었다.잠깐 멍하니 있다가 침실 밖으로 나갔다.채도하는 거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유지가 문틀에 기대었다.“여보.”도하가 고개를 들었다.“일어났어?”“왜 안 깨웠어요.”“깨우지 말라며.”“그래도 10시 넘으면 깨워야죠.”“기준이 있었어?”유지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없었네.”도하가 웃었다.유지는 슬리퍼를 끌며 식탁으로 왔다.“뭐 해요?”“메일.”“회사?”“응.”“오늘 쉬는 날 아니에요?”“나는 아니지.”유지가 멈췄다.“아.”도하가 노트북 화면을 내렸다.“왜.”“저 혼자 쉬는 거였구나.”“응.”“뭔가 억울한데.”“너 35일 일하고 왔잖아.”“그건 그렇죠.”유지는 맞은편에 앉았다.도하가 물었다.“배고파?”“응.”“냉장고 봐.”“뭐 있어요?”“어제 장 봤어.”유지가 벌떡 일어났다.“진짜?”냉장고 문을 열자.유지가 자주 먹던 것들이 들어 있었다.과일.요거트.달걀.우유.간단한 반찬.유지는 한동안 안쪽을 보다가 말했다.“여보.”“응.”“이거 다 언제 샀어요?”“어제 너 오기 전에.”“그래서 냉장고 물어봤을 때 대답 늦었구나.”도하가 웃었다.“응.”“제가 좋아하는 것만 있네.”“네가 먹을 거니까.”유지는 냉장고 문을 잡은 채 한참 웃었다.아침 겸 점심을 먹는 동안.도하는 다시 노트북을 켰다.유지가 맞은편에서 토스트를 먹으며 물었다.“새 프로젝트 자료예요?”“응.”“제가 봐도 돼요?”“회사 자료인데?”“내용 말고 여보 얼굴.”도하가 고개를 들었다.“내 얼굴?”“응.”“왜.”“새 팀 간다고 했을 때보다 지금 더 긴장한 것 같아서.”도하는 잠깐 말이 없었다.“조금.”“뭐가 제일 어려워요?”“기존 팀 정리하는 거.”“아.”유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오래 있었으니까?”“응
집으로 가는 차 안.송유지는 처음 몇 분 동안 창밖만 봤다.익숙한 도로.익숙한 간판.익숙한 신호등.35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이상하게 전부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채도하가 옆에서 물었다.“왜 그렇게 봐.”“그냥.”“뭐가 신기해.”“다요.”유지는 웃었다.“여기 진짜 우리 동네 맞네.”“그럼 어디겠어.”“아직 조금 이상해요.”도하가 유지 손을 잡았다.“집 가면 괜찮아질 거야.”현관문이 열렸다.유지는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다 그대로 멈췄다.익숙한 냄새.익숙한 거실.소파.식탁.35일 동안 화면으로만 보던 공간이었다.도하가 뒤에서 물었다.“왜 안 들어가.”유지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말했다.“잠깐만.”“왜.”“보고 있어요.”“매일 영상으로 봤잖아.”“그거랑 다르죠.”도하가 유지 옆에 섰다.유지는 한참 집 안을 둘러보다가 웃었다.“진짜 그대로네.”“말했잖아.”“제 자리도?”“응.”유지는 곧장 식탁으로 갔다.자기가 늘 앉던 의자.그대로였다.손으로 등받이를 한번 만졌다.“여보.”“응.”“저 진짜 집에 왔어요.”도하가 피식 웃었다.“이제 실감 나?”“조금.”도하가 캐리어를 방으로 가져가려 하자.유지가 바로 말했다.“그거 오늘 열지 마요.”“왜.”“약속했잖아요.”“짐은 내일?”“응.”“세탁물도?”“내일.”“가방 안에 먹을 거 없어?”유지가 멈췄다.“아.”도하가 웃었다.“그것만 확인하자.”“역시 현실적이야.”둘은 현관에서 캐리어를 열어.상할 만한 것만 꺼냈다.그러다 도하가 컵 2개를 발견했다.“이것도 가져왔네.”“당연하죠.”“숙소에 둘 줄 알았는데.”“이제 거기 안 사는데 왜 둬요.”유지는 컵을 하나씩 꺼냈다.“이건 우리 거니까 가져와야죠.”도하는 별말 없이 컵을 받아 싱크대 옆에 놓았다.유지는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아.”도하가 옆에 서서 내려다봤다.“피곤해?”“응.”“잘래?”“아니.”“그럼.”유지는 손을 뻗었다.“이리 와요.
서른다섯째 날.송유지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오늘은 마지막 출근 날이었다.침대 옆 캐리어는 이미 닫혀 있었다.책상 위에는.처음 도착한 날 세워뒀던 부부 사진.작은 노트.그리고 채도하의 컵.유지는 컵을 들었다가 잠깐 멈췄다.“이건 챙겨야지.”도하가 다음에 다시 쓰겠다고 했지만.이제 숙소 자체를 떠나는 날이었다.유지는 컵을 조심스럽게 캐리어 안쪽에 넣었다.슬리퍼도 두 켤레 모두 챙겼다.마지막으로 현관 열쇠에 달린HOME키링을 봤다.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이 숙소가 임시 집이라는 뜻으로 달았던 물건.오늘은.진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떼어낼 차례였다.회사에 도착하자.분위기는 평소와 같았다.누군가 울거나.거창한 인사를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오히려 그게 좋았다.운영 담당자가 말했다.“마지막 날이라고 늦으실 줄 알았습니다.”“저 그렇게 불성실하지 않거든요.”마케팅 담당자가 웃었다.“오늘도 정시네요.”“마지막까지 해야죠.”현지 디렉터가 유지에게 물었다.“오늘 무엇부터 보시겠습니까?”유지는 잠깐 생각했다.“아무것도요.”“네?”“오늘 새로 시작할 건 없잖아요.”유지는 자리에 앉았다.“남은 것만 확인할게요.”오전에는 인수인계표 최종본을 확인했다.남은 미결 건 3개.전부 담당자가 지정돼 있었다.유지 이름은 없었다.“좋아요.”그 한마디로 끝냈다.운영 담당자가 물었다.“진짜 수정 없습니까?”“응.”“마지막인데.”유지가 웃었다.“마지막이라서 더 안 할래요.”점심은 팀원들과 같이 먹었다.평소 자주 가던 식당이었다.누군가 새로운 곳을 제안했지만.유지가 고개를 저었다.“오늘은 여기 갈래요.”“왜요?”“제일 많이 먹었던 데잖아요.”마케팅 담당자가 말했다.“처음에는 혼자 오셨죠?”“응.”“지금은 8명이네요.”유지가 주변을 봤다.그러고 보니 그랬다.처음에는 혼자 앉았던 자리 근처에.지금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운영 담당자가 물었다.“한국 가면 제일 먼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