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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대신 너의 파멸을
죽음 대신 너의 파멸을
Author: 유리구슬

1 화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4 13:45:26

1화 가장 완벽한 날의 지옥(1)

결혼 3주년 기념일.

서지안은 남편 강민우를 위한 깜짝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놓인 고급스러운 가죽 상자 안에는 최고급 명품 시계가 들어 있었다.

그가 평소에 지나가듯 예쁘다고 말했던 한정판 모델.

지안은 그 시계를 구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해외 바이어를 통해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마침내 오늘 아침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민우 씨가 이거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어두운 밤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지안의 입가에 맑고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창밖으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햇살이 비추는 것처럼 따뜻하고 설레었다.

지난 3년간의 결혼 생활은 지안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능력 있고 다정한 남편은 언제나 그녀를 먼저 생각했다.

재계 서열 5위,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서그룹의 적통 후계자라는 무거운 왕관.

그 왕관의 무게에 짓눌려 숨이 막힐 때마다 민우는 그녀의 곁에서 다정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할아버지인 서 회장 역시 처음에는 배경이 평범한 민우를 ‘데릴사위’라며 몹시 경계하고 탐탁지 않아 했다.

지안은 그런 할아버지와 맞서 싸우며 민우를 지켜냈다.

그가 그룹 내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자신의 실적을 기꺼이 양보했고, 임원들 앞에서도 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제 서 회장도 민우의 성실함을 인정하고 그를 서그룹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늘 밤은 가평에 있는 서그룹 소유의 프라이빗 별장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이었다.

원래는 함께 출발하기로 했으나, 민우는 오후에 급한 회사 일이 생겼다며 먼저 별장에 내려가 있겠다고 했다.

‘비도 오는데 운전 조심하라고 문자라도 보낼까? 아니야, 서프라이즈로 가는 거니까 연락하면 안 되지.’

지안은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이는 앞 유리를 바라보며 액셀러레이터를 조금 더 깊게 밟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빗줄기는 굵어졌다.

가평의 산길은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혀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안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남편의 놀란 표정만을 상상했다.

연락도 없이 별장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절벽 위에 위태로우면서도 고풍스럽게 솟아 있는 별장은 1층과 2층 모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지안은 차에서 내려 우산을 받쳐 들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선 순간, 지안은 흠칫 걸음을 멈췄다.

평소와는 다른 기묘한 공기가 감돌았다.

지나치게 고요하면서도, 묘하게 습하고 끈적한 기운이 거실을 채우고 있었다.

“민우 씨? 나 왔어. 자고 있어?”

대답은 없었다.

우산을 내려놓고 거실로 걸음을 옮기던 지안의 시선이 바닥에 흩어진 낯선 물건들에 꽂혔다.

현관에서부터 거실 소파로 이어지는 길목에 벗어던져진 남자의 넥타이.

민우가 오늘 아침 출근할 때 지안이 직접 매주었던 네이비색 실크 넥타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아무렇게나 툭 던져진, 붉은색 레이스가 달린 여성의 슬립 속옷과 값비싼 트렌치코트.

지안의 발걸음이 돌처럼 굳어졌다.

숨이 턱 막혔다.

저 트렌치코트와 속옷은 절대 지안의 것이 아니었다.

더 끔찍한 사실은, 그 옷들이 너무나도 낯익다는 점이었다.

불과 지난달, 이복동생인 서유라가 백화점에서 예쁘다며 조르길래 지안이 직접 카드를 긁어 사주었던 바로 그 브랜드의 한정판 코트였다.

쿵,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귓가에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안은 손에 든 시계 상자를 부서질 듯 꽉 쥔 채, 홀린 듯이 2층 침실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두터운 마호가니 원목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거칠고 탁한 숨소리.

살이 부딪히는 노골적인 파열음.

그리고 소름 끼치도록 익숙한, 콧소리가 잔뜩 섞인 여자의 교태로운 웃음소리였다.

“아학, 아앗…… 민우 오빠…… 너무 세…… 조금만 조심해. 지안이 언니가 눈치채면 어쩌려고 이래?”

“상관없어. 그 년이 여기를 어떻게 알아? 지금쯤 본사 창고에서 내가 엉터리로 던져준 연말 결산 서류나 뒤적거리면서 밤새우고 있겠지. 일밖에 모르는 멍청한 여자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지안이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톤이었다.

언제나 나긋나긋하고 다정했던 강민우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낮고, 비열하며, 탐욕에 가득 찬 짐승의 목소리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언니 은근히 예민하잖아. 서 회장 노인네도 아직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고. 오빠, 우리 조금만 더 조심하자. 응?”

“서 회장? 하, 그 늙은이는 이미 끝났어. 내가 지시해서 매일 먹는 고혈압 약을 다른 약으로 바꿔치기해 뒀거든. 이미 약효가 돌아서 오늘내일하고 있어. 조만간 자연스럽게 심장마비로 깔끔하게 가실 거다. 서그룹은 이제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거야, 유라야. 그리고 넌 내 옆에서 안방마님 노릇이나 하면 돼.”

문밖에서 그 끔찍한 대화를 모두 듣고 있던 지안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폐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박힌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자신이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안은 떨리는 손을 들어 문고리를 잡았다.

이 모든 게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알량한 희망조차 산산조각 낼 시간이었다.

달칵.

문이 열리고,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지안이 평생 쌓아온 세상을 통째로 무너뜨렸다.

넓은 킹사이즈 침대 위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엉켜 있던 두 남녀가 일제히 문 쪽을 바라보았다.

강민우. 그리고 서유라.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남편과, 친동생처럼 아끼고 품어주었던 이복동생이었다.

“……너희들.”

지안의 입술에서 덜덜 떨리는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물이 고이기도 전에, 펄펄 끓는 용암 같은 분노와 충격이 전신을 난도질했다.

“어머, 언니?”

유라는 놀란 척 시트로 제 가슴을 가렸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당혹감이나 죄책감 대신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찾은 듯한 비열한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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