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775화

Author: 금붕어
“괜찮아.”

육민성이 송미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걱정 마. 무리 안 할게.”

벽을 짚은 채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옮기는 그에게서 송미연은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손은 혹시라도 그가 휘청일까 허리 가까이에 둔 채 따라붙었고, 다른 손으로는 팔꿈치를 단단히 받쳐주었다. 자기가 걷는 것보다 더 긴장한 얼굴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침대에서 창가까지는 고작 몇 미터 남짓이었으나 지금의 육민성에게는 꽤 먼 거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다시 몸을 돌려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던 순간,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몸이 그대로 옆으로 기울었다.

“조심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송미연은 거의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그의 몸을 끌어안듯 받아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육민성의 몸이 그대로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

단단한 가슴이 송미연의 어깨에 닿았고 육민성 역시 본능적으로 팔을 둘러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바짝 가까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78화

    재차 통화 버튼을 눌렀다.결과는 똑같았다.암호화된 전용선, 예비 번호, 위성 채널까지...최수빈과 닿을 수 있는 모든 연락 수단을 단숨에 모조리 시도해 보았지만 전부 연결 불가였다.“기술팀!”주민혁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게 날이 서 있었다.“당장 그쪽 기지 신호 확인해! 즉시!”기술팀 요원들이 허둥지둥 기기를 조작하기 시작했고 모니터 위로는 데이터 스트림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해당 지역에 강력한 전자기 간섭이 발생했습니다. 포격으로 인한 연쇄 장애이거나 인위적인 재밍일 가능성이...”“위치!”그의 다급한 일갈이 보고를 끊어냈다. 평소의 그에게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초조한 어조였다.“최수빈의 실시간 위치를 당장 찾아!”“위치 신호가 끊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좌표 외에는...”쾅, 주민혁이 거칠게 책상을 내리쳤다. 물컵이 쓰러져 테이블 위로 물이 쏟아지고 서류가 젖어 들어갔지만 그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지휘부 전체에 순식간에 쥐 죽은 듯한 정적이 감돌았고 대원들은 경악한 얼굴로 그를 굳어버린 채 바라봤다.수년을 그의 곁에서 보좌하며 습격을 당하거나 포위되거나 모든 판세가 뒤집히는 절망적인 순간들을 보아왔지만, 그는 언제나 서늘한 얼음덩어리처럼 미동조차 없는 인간이었다.이런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핏발이 선 눈동자, 팽팽하게 굳은 턱선, 가빠진 호흡 그리고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압도적인 살기까지...폭주였다.완벽하게 이성을 잃은 맹수의 폭주...“차 대기시켜.”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가장 빠른 출국 루트 확보해. 지금 당장 출발한다.”부관이 사색이 되어 막아섰다.“절대 안 됩니다! 지금 움직이시는 건 스스로 사지에 뛰어드는 겁니다! 엘리아스가 노리는 게 바로 대표님을 국경에서 끌어내는...”“상관없어.”재킷을 낚아채는 주민혁의 안광은 살벌하게 번뜩였다.“수빈이가 거기 있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77화

    메시지 내용은 짧고 어조는 담담했으며 이곳의 험악한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지도, 그쪽의 실제 상황에 대해 캐묻지도 않았다.두 사람은 천 리의 전선을 사이에 두고 ‘네가 무사하니 나도 안심이야'라는 가상의 허구를 이심전심으로 지켜나가고 있을 뿐이었다.그 시각 국경의 지휘소에서 주민혁은 제 몸을 아예 초소에 못 박아버린 듯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엘리아스와 심종연의 출국 단서가 점차 윤곽을 드러냈고 추적된 모든 궤적은 최수빈이 머무는 국가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주민혁은 겉으로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방어선 구축과 병력 배치, 원격 감시까지 모든 단계를 냉혹하리만치 침착하게 지휘해 나갔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는 부관만은 알고 있었다. 그의 상태가 이미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달해 있다는 것을.담뱃갑은 쉴 새 없이 비워졌고 의자가 꺼질 듯한 기세로 한자리에 박힌 그는 모니터 위로 깜빡이는 위성 영상을 눈이 짓무르도록 미동도 없이 응시하고 있었으며 휴대폰은 절대 손에서 놓는 법이 없이 볼륨을 최대로 키운 채 가장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두고 진동이 울리기 무섭게 낚아채듯 집어 들었다.오직 최수빈이 보내는 단 하나의 메시지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부관이 조심스럽게 휴식을 권해도, 돌아오는 건 짧은 한마디뿐이었다.“됐어.”그 이상의 불필요한 말은 없었다.평생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총격전과 사선을 넘나들며 살아온 주민혁이, 하필이면 머나먼 교전 지역에 있는 한 여자에게 온 마음을 옭아 매여 버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이날 오후, 기지의 공기는 평소보다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현지 무장 세력 간의 충돌이 돌연 격화되면서 포탄이 떨어지는 위치가 육안으로 보일 만큼 도심 중심부를 향해 좁혀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보안팀장 역시 몇 번이나 들어와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라며 경고를 거듭했다.그럼에도 최수빈은 임수철과 함께 내부 스파이 색출을 위한 최신 단서들을 대조하고 있었고 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76화

    켜켜이 쌓인 업무 속에서도, 아득히 먼 집을 향해 이어진 보이지 않는 끈 하나는 최수빈만이 아는 사실이었다.그녀는 매일 제시간에 주민혁에게 무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늘 평소처럼 간결하고 차분하게 답장을 보내왔다.하지만 어쩐지 그 속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글귀에 담긴 지나친 고요함은 왠지 억지로 유지하는 평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러나 차마 깊이 묻지 못했다. 행여나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가 공들여 지켜낸 안온함이 깨져버릴까 봐, 스스로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그의 계획을 흐트러뜨릴까 봐,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을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다 무사해.][율이는 잘 있어.][걱정 마.]그래서 틈이 날 때면 무의식적으로 휴대폰 화면에 손끝을 올린 채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보며 남몰래 가슴앓이를 할 뿐이었다.딸아이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집에 있을 그 작고 말랑한 아이가.제 목을 끌어안고 어리광을 부리던 모습도, 혀 짧은소리로 엄마를 부르던 목소리도 그리웠다.그리고 국경지대에 있는 주민혁이 정말 그의 말대로 무사한 것인지도 간절히 알고 싶었다.그러나 그녀는 단 한순간도 흔들리는 기색을 보일 수 없었다.이곳에는 팀이 있고 부상자가 있으며 지켜야 할 핵심 연구 성과와 언제 숨통을 조여올지 모르는 위험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끝까지 버텨야만 했고 온갖 미련과 불안, 그리움은 그저 이성적이고 빈틈없는 겉모습 아래로 처절하게 짓눌러야 했다....한편, 깊은 밤. 지휘부의 불빛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있었다.창가에 선 주민혁의 등은 꼿꼿하면서도 한없이 고독해 보였다. 그의 손끝에는 불붙이지 않은 담배만이 무의식적으로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책상 위를 뒤덮은 지도와 CCTV 캡처 화면, 정보원들이 보내온 기밀 보고서들은 모두 숨이 턱 막히는 단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엘리아스와 심종연이 이미 국경을 넘어 최수빈이 있는 국가로 직행했으며 그들의 타깃이 항공 소재라는 사실을.이렇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75화

    “괜찮아.”육민성이 송미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걱정 마. 무리 안 할게.”벽을 짚은 채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옮기는 그에게서 송미연은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손은 혹시라도 그가 휘청일까 허리 가까이에 둔 채 따라붙었고, 다른 손으로는 팔꿈치를 단단히 받쳐주었다. 자기가 걷는 것보다 더 긴장한 얼굴이었다.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침대에서 창가까지는 고작 몇 미터 남짓이었으나 지금의 육민성에게는 꽤 먼 거리처럼 느껴졌다.그렇게 다시 몸을 돌려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던 순간,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몸이 그대로 옆으로 기울었다.“조심해요!”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송미연은 거의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그의 몸을 끌어안듯 받아냈다.그리고 다음 순간, 육민성의 몸이 그대로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단단한 가슴이 송미연의 어깨에 닿았고 육민성 역시 본능적으로 팔을 둘러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바짝 가까워졌다. 서로의 숨결과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육민성에게서는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났고 송미연에게서는 갓 씻은 듯 산뜻한 비누 향이 났다.조용한 병실 안에서 두 사람의 심장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쿵쿵, 쿵쿵...누구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송미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귀 끝에서 시작된 붉은 기운이 목덜미까지 번지며 그녀는 그대로 굳어 버린 채 숨소리마저 조심스레 죽였다.맞닿은 가슴의 움직임도, 허리를 감싼 팔의 힘도 또렷하게 느껴졌다.육민성 역시 잠시 굳어 있었다. 어지럼증이 가시고 정신을 차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붉게 달아오른 송미연의 옆얼굴이었다. 긴 속눈썹이 긴장한 듯 가볍게 떨렸다. 품 안에 안긴 몸은 부드럽고 따뜻했고 그녀에게서 풍기는 익숙한 향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편하게 했다.그래서 잠시 자신이 그녀를 안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 팔을 풀지 못했다.“저기...”먼저 정신을 차린 송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74화

    자신만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은 이미 상대에게 닿아 있었고 그 마음에는 분명한 대답이 돌아오고 있었다.“정말이야?”송미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직도 선뜻 믿기지 않는 듯했다.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나 선배랑 몇 년을 같이 일했어. 어떤 성격인지 누구보다 잘 알아. 달콤한 말도 잘 못 하고 일부러 누굴 기분 좋게 해주는 타입도 아니야. 대신 행동으로 다 보여주는 사람이지. 그러니까 네가 먼저 뭘 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몸 좀 더 회복되면 분명 자기가 먼저 제대로 얘기할 거야. 두 사람, 이제 연기 아니야. 둘 다 진심이라고.”송미연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고개를 숙였다. 마음 한구석까지 따뜻한 물로 천천히 채워지는 것처럼 포근해졌다.며칠 내내 그녀를 괴롭히던 걱정과 불안도 그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혼자만 몰래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육민성 역시 진작부터 자신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최수빈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에 수줍은 기색까지 번지는 송미연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했다.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낯선 전쟁터에서, 서로를 향한 이런 순수한 마음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고마워, 수빈아.”송미연이 고개를 들었다.“뭘.”그러자 최수빈이 가볍게 웃었다.“두 사람이 잘되면 나도 좋지. 앞으로 같이 겪어야 할 일도 많잖아. 서로 곁에 있으면 그래도 조금은 더 든든할 거고.”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는 두 사람 모두의 눈빛에는 전보다 한결 편안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어느새 눈을 뜬 육민성이 말없이 송미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육민성은 벌써 닷새 가까이 꼼짝없이 누워 지내고 있었다.몸의 상처는 하루가 다르게 아물고 있었지만, 평소 쉴 틈 없이 일하던 사람이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으려니 온몸이 굳고 쑤셔 견디기 힘들었다.아침 회진 때 의료진도 무리하지 않는 선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773화

    “너도 오늘 하루 종일 고생했잖아. 잠깐 앉아서 좀 쉴래?”“같이 쉬자.”두 사람은 사무 공간 한쪽, 비교적 조용한 휴게 구역으로 자리를 옮겨 의자 두 개를 끌어다 앉았다.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어 이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모처럼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송미연이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수빈아, 나 할 말이 있는데... 좀 들어줄래?”최수빈이 차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응, 말해.”그러자 마음을 다잡는 듯 송미연이 손끝을 살짝 움켜쥐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 떨어진 휴게 공간에 있는 육민성을 바라봤다.그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쉬고 있었다. 부상으로 여전히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단정한 옆얼굴에는 특유의 침착하고 든든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송미연은 다시 시선을 거둔 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나... 아무래도 민성 오빠를 진짜 좋아하게 된 것 같아.”막상 말하고 나니 쑥스러웠는지, 송미연의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처음에는 그냥 임무 때문이었잖아. 위장 결혼하고 밖에서는 부부인 척하고 둘만 있을 때는 선을 지키고. 나도 계속 스스로한테 말했어. 진짜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고. 이건 어디까지나 일이니까, 그냥 임무에 맞춰주는 것뿐이라고.”송미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그런데 이번에 그 사람이 사고를 당하고 잔해 밑에 깔렸을 때... 나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제발 아무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며칠 동안 곁을 지키면서 의식도 없이 누워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알았어. 난 진작부터 연기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하고. 걱정되고, 마음 아프고... 그 사람이 눈을 떴을 때는 정말 무엇보다도 기뻤어. 지금도 매일 챙겨 주고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그런데 무서워. 혹시 그 사람은 나를 그냥 동료로만 생각하는 걸까 봐. 그리고 아직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