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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친, 원수의 품에 안기기까지 하다니]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3 22:51:05

우르르 쾅쾅!

부스스- 스르륵!

미궁은 지금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색마라고 소문난 황태자는 내게 맞춘 입을 뗄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는 숨을 들이쉬듯 깊숙하게 혀를 얽어매며 진득하게 액체를 내 목구멍 너머로 밀어 넣었다. 

참으로 집요하고도 탐욕스러운 키스였다. 입 안 전체를 빈틈없이 매만지는 것처럼 온몸을 간질거리게 하는 기묘한 행위였다.

태어나 처음 하는 입맞춤이 이렇게 거창할 줄이야. 

깊은 목구멍까지 탐해 들어오는 그의 숨결에 온몸이 감전된 듯 부들부들 떨렸다.

지하 미궁이 무너져 내리는 엄청난 굉음도, 머리 위로 떨어지는 암석의 충격도 모두 아득한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를 헤집는 그의 뜨거운 입술과, 뇌리를 마비시키는 달콤한 향기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와 입을 맞추는 동안, 찢어지고 구멍 났던 내 심장이 서서히 열기를 띠며 소생하기 시작했다. 

잘려 나갔던 혈관들이 다시 이어지고, 차갑게 식었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며 심장이 힘차게 뛰었다. 

쿵. 쿵. 쿵.

원수와 나누는 짓눌릴 듯 길고 뜨거운 키스는 숭고한 의식처럼 무너져가는 잔해가 주변에 쌓여도 멈출 줄을 몰랐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살려내는 것이 가장 미워해야 할 악마의 자비가 내 심장에 생명력을 채워 주다니.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저주받아 심장이 뚫려 죽는 게 아니라, 돌무더기에 깔려 죽게 될 확률이 더 커진 시점이었다.

입술이 떨어지자 아쉬운 듯 그가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떨어졌다. 

은빛 실타래가 길게 이어졌다 사라졌다.

"아, 여인이 익숙한 몸 같기도 하고, 너 같은 좋은 향기는 처음인 것 같은데. 기분 최고다."

이 원수가 지금 뭐라는 건지.

나는 점점 기력이 돌아왔고, 조금 전까지 바람 소리만 나던 내 입에서는 그래도 이제 말을 뱉을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난 살려 달라고 한 적 없어요. ······가세요."

그냥 꺼지라는 말이었다.

나름 이것도 내가 그에게 해주는 자비였다. 

그런데 황태자 이놈은 여전히 심장이 터질 듯한 초록빛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며, 매혹적이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내 귓가에 낮게 울렸다. 

닿아오는 그 숨결이 너무도 뜨거워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예쁜아······ 살고 싶으면 여기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어? 뭐 죽더라도 처참하게 죽는건 피하고 싶은데. 안 그래?"

지옥 속에서 악마가 건네는 가장 지독하고 달콤한 유혹.

나는 숨을 크게 마시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내 몸은 평범한 어제의 나로 시간을 돌려 버린 듯 되살아나 버렸다.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뛰어대고 있었다. 

곧 마력도 다 돌아올 텐데. 

나는 할 로드 님을 위해서라면 이 자의 목을 베어야 마땅한데. 그게 아니라면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 죽는 게 나았을 인생이지만, 지독한 신의 장난에 휘말려 버린 채, 나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포션마저 나눠 먹고 마력 회복해서 어서 나가자."

그는 목에 걸린 초록 병의 액체를 다시 입안에 머금더니 조금 전과 같은 입맞춤을 다시 하려는 듯 나와 거리를 좁혔다.

사실 막상 반항할 여지조차 없었다. 단단한 팔이 내 얇은 허리를 드세게 끌어안아 그에게 밀착시켰다. 

다시 입술이 짓이겨지고 열린 틈 사이로, 온몸의 혈관을 전율시키는 충격적일 정도로 뜨겁고 강렬한 액체가 넘어왔다.

그러고 보니 이건 분명 순수한 생명력의 정수가 담긴, 오직 황족의 마력으로만 빚어낼 수 있는 아찔하고 뜨거운 생명 그 자체가 확실했다.

"음, 읍!"

그가 숨을 들이쉬듯 깊숙하게 혀를 얽어매며 진득하게 액체를 내 목구멍 너머로 밀어 넣었다. 

집요하고도 탐욕스러운 과정은 여전했다. 

입 안 전체를 빈틈없이 매만지고 깊은 목구멍까지 탐해 들어오는 그의 숨결에 온몸이 감전된 듯 부들부들 떨렸다.

엄청난 굉음도, 머리 위로 떨어지는 암석의 충격도 모두 아득한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

지하 미궁을 품고 있던 키요리타 산맥의 숨겨진 도르하르 본성이 비명을 지르며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 더미와 흙더미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 우리를 통째로 매장하기 직전이었다. 

바닥은 사정없이 갈라졌고, 사방에서 날카로운 돌조각들이 비 오듯 튀었다. 심장은 방금 넘겨받은 아처린의 생명력 덕에 겨우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순간이동 마법까지 쓰려면 심장에 마나가 더 차야 할 것 같았다.

이대로 잔해에 깔려 압사당하기 일보 직전의 순간.

"어······?"

황태자 아처린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나를 휙 끌어안아 올렸다.

커다란 팔이 내 허벅지와 등을 탄탄하게 받쳐 들었고, 나는 얼떨결에 그의 목을 꼭 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내 얼굴이 닿았다. 조금 전 입맞춤으로 나눈 그의 체온과 짙은 향기가 코끝을 어지럽혔다.

그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암석 조각을 간발의 차로 피하며 앞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구는 걸까.

조금 전 분명 기억을 잃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멸망한 도르하르의 하층민이자, 자기를 죽여버리고 싶어 하는 날 굳이 목숨 걸고 안은 채 붕괴하는 미궁을 뚫고 달려 나갈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하하! 재미있네!"

머리 위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고 환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붕괴하는 암석의 폭음 사이로 울려 퍼진 그 웃음은 마치 넓은 들판을 내달리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은 늘 말했었다. 레투니카의 황태자 아처린은 그 어떠한 수식어로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아름답고 잘생긴 사내라고. 

먼지와 피비린내, 붉은 마력의 잔재만이 가득한 이 캄캄한 지하 미궁 속에서도 그의 미모는 잔혹할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달리던 그가 고개를 살짝 숙여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입꼬리를 마치 천사처럼 부드럽고 아름답게 올리며 말을 뱉어냈다.

"예쁜아, 잘 모르겠지만······ 날 여기 처박아둔 놈만 찾으면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 뭐, 기억은 없지만, 만나면 심장이 알아서 말을 해주겠지? 하하!"

그를 이 미궁 지하 깊은 곳에 가두고 묶어두었던 주술의 고리, 그것을 완성하고 유지하게 만든 건 거의 내가 한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순간 내 몸이 굳어버렸다. 물론 세실리에의 명령으로 움직이기는 했어도, 양심이 긁히기 시작했다.

아름답게 호선을 그리는 입술, 순수하게 짓는 웃음 뒤편으로 그의 초록빛 눈동자 속에는 지독한 광기가 핏빛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기억을 잃었어도 악마 같은 본성은 어디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언젠가 기억이 돌아오면 날 죽일지도 모르는 미쳐버린 황태자 품에 어쩌자고 안겨 있는지.

어쨌든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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