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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성을 상실한 짐승 같은 황태자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5 10:33:52

나는 아처린의 품에 안긴 채 무너져 내리는 미궁을 가로질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통로였다. 세실리에의 심부름으로 이 미궁의 입구와 지하 감옥 언저리는 손금 보듯 알고 있었지만,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길은 난생처음이었다.

저주로 심장이 뚫렸다가 그의 생명력으로 겨우 소생한 탓일까. 사지 끝까지 온기가 다 돌지 않아 체력은 아직 아득히 바닥을 치고 있었다.

붕괴하는 벽이 새로운 길을 틀어쥐고 있는 건지, 아니면 미궁 자체가 살아 숨 쉬며 우리를 어딘가 깊은 심연으로 몰아가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물론 나를 안아 든 아처린은 잔인하도록 흥분해 있었다. 쏟아지는 돌더미를 본능적인 감각으로 유연하게 피하면서도, 그의 입가에는 소름 끼치도록 유려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를 꼭 끌어안은 그의 팔에 어찌나 힘이 들어가 있는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힘들잖아요. 내려놓아 주세요."

"싫어. 그럼 나 버리고 갈 거잖아?"

대체 어떻게 안 걸까. 그는 마치 주인을 잃은 강아지처럼,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피에 굶주린 맹수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오롯이 내게 의지하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떨려 오는 손끝이 입술로 향하는 것을 제어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그의 혀가 얽히고, 타는 듯한 생명의 정수가 넘어왔던 그 자리. 손끝에 닿는 촉감이 아직도 델 듯이 뜨거웠다.

······미쳤지.

철천지원수와 입을 맞췄다. 그것도 짓이겨지듯 깊게 두 번이나. 

심지어 그의 품에 안겨 붕괴하는 잔해 사이를 달리고 있다니.

현실감이 아득해질 만큼 낯설고 지독한 부끄러움이 몰려와, 나는 애꿎은 입술만 자꾸만 문질렀다.

"어? 예쁜아."

달리던 아처린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짙은 초록빛 눈동자가 무너지는 벽 사이로 흘러나오는 붉은 마나를 받아 기묘하고도 관능적으로 일렁였다.

"자꾸 입술 만지네? 아쉬워? 더 해줄까?"

"······아뇨!"

이 끔찍한 재앙 속에서도 농담을 던질 만큼 여유로운 그는 정말 이해 불가였다.

그런데 헛숨을 내쉬며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픽 웃음기를 거두더니 정색을 하고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시선이 얽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동결되는 듯, 피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압도적인 중압감이 밀려왔다.

"너, 잘 들어."

어린아이 같은 투정인데도, 낮은 저음으로 가라앉은 목소리는 실로 진지했다.

"기억은 없어도 내가 입은 옷을 봐, 꽤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순간, 그의 전신에서 오한이 들 만큼 섬뜩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흰 바탕에 금사로 정교하게 장식된 제복의 소매를 슬쩍 훑어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먼지와 피비린내로 더러워진 미궁 속에서도 그 금빛 자수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건 저 남자가 타고난 계급이자, 본능에 새겨진 피의 권력이었다.

"내가 기억을 찾고 나면, 너는 살려줄게."

등골에 소름이 돋아났다. 

기억을 잃었어도 그는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런 옷을 입은 자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떨고 있자,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네가 나 몰래 도망쳤다가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너와 네 가족, 네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걸 내가 검으로 베어 버릴 거야."

이 미친 황태자가 진짜!

태평한 표정이었지만, 내 허리와 허벅지를 틀어쥐고 있는 그의 아귀힘에는 거역할 수 없는 악력이 실려 있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러고도 남을 악마라는 것을.

과거 하녀 시절, 황태자가 캔돔 가문에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별것도 아닌 일로 기사의 배를 칼로 그어버렸던 사건.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벌레 한 마리를 짓밟은 것처럼 굴었다며 시녀들이 공포에 떨며 소곤거리던 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다양한 일화들이 기억을 잃고 나를 안고 있는 지금의 모습 위로 오버랩되어 내 심장을 짓눌렀다. 저 미소는 다정함이 아니라, 언제든 목을 그을 수 있는 맹수의 여유였다.

"하하, 난 원래 이런 악당 같은 놈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그는 여전히 눈부시게 웃고 있었다. 그래서 더 미치도록 무서웠다.

내 몸을 고정해 쥔 그의 손아귀 힘은 단단한 밧줄 같았다. 그 상태로 그는 다시 폭풍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미궁이 무너지는 폭음도, 발밑을 뒤흔드는 진동도 그 순간만큼은 아득히 멀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아처린은 숨 막히도록 치명적인 말을 내뱉었다.

"······내 옆에 있어. 내가 널 버릴 때까지."

협박인지 애원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목소리였다. 

아니, 어쩌면 나를 온전히 소유하겠다는 황족의 오만한 선언이었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리고 등 뒤로 느껴지는 그 단단한 악력이 나를 미궁보다 더 깊은 저주로 끌고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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