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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정유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의현은 눈길을 거두며 의문을 털어냈다.

“유진 씨한테 일이 생길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 말도 마,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아주 사람 하나 찢어 죽일 기세였다니까. 쯧쯧, 불쌍하기도 하지.”

강지찬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유진이 떠난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의현은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명하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일부러 그 한빈이라는 사람을 도발하면 정말 큰 건 하나 잡을 수 있을까?”

한빈의 회사는 K그룹과 비교할 수가 없었지만 요 몇 년 간 공들여 운영한 덕에 어느 정도 이름은 있는 상태였다.

강 씨 가문에게 찍힌 걸로도 모자라 강지찬이 자신의 약혼녀까지 범해버렸으니, 낯이란 낯은 다 깎였을 것이다.

아마 강지찬이 죽도록 싫겠지.

“진 씨가 그래도 수월하게 불어준 덕분이야. 재무 총괄이 장부를 위조했단 것쯤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뒤에서 봐주는 사람 없이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조사해봤는데 작년에 와이프랑 아이를 다 해외에 내보냈대.”

의현은 또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해냈다.

“셋째 삼촌이 얼마 전까지도 한빈이란 사람이랑 가깝게 지내던데. 에이프릴 홀에서 꼬박 이틀을 함께 있다가 나오는 걸 누군가가 봤대. 아무리 봐도 뭔가 있지 않아?”

“그냥 도발만 해서는 안 되지. 더는 발악하지 못하게 만들어주겠어.”

침묵을 지키던 지찬이 두 질문에 한꺼번에 대답했다.

“감히 내 눈앞에서 헛짓거리를 하려는 사람이 누군지, 나도 정말 궁금하네.”

최의현은 갑자기 딴소리를 시작했다.

“제일 불쌍한 건 유진 씨지. 그렇게 아름다운 분이 너랑 한빈 같은 쓰레기를 만나다니 말이야.”

강지찬은 자신과 한빈을 동급으로 비교하는 의현이 못마땅했다.

‘어딜 비교하는 거지? 그래도 쓰레기라는 단어는 꽤 흥미로운데.’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 돌려, 돌아갈 거야.”

집 문 앞에 도착한 유진은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몸이 안 좋으신 엄마가 이런 유진의 모습을 보면 크게 놀라실 것이 뻔했다.

정 씨 집안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정이었는데 아버지 정명학은 대학교수고 어머니 이명자 역시 교사였으나 2년 전 이른 은퇴 후 집에 계신 상황이었다.

부모님들은 지금 돌고 있는 어이없는 소문을 알 리가 없었다.

유진은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택시를 타고 친구 집에 갈 계획이었다.

금방 아파트 단지를 나오자 눈에 띄는 긴 리무진이 보였고 뒤이어 차 문에 기대선 강지찬이 보였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보지 말자 했는데!

유진은 몸을 돌려 들어가려 했다.

몇 걸음 내딛지 못했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지찬이 긴 다리를 휘적휘적하며 바로 따라잡고는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놔요!”

유진에게 손이 닿는 순간 거세게 저항했다.

강지찬은 말 한마디 없이 유진을 리무진에 집어넣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부경원으로 돌아가.”

차 안에는 의현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고 차 문은 굳게 걸어 잠근 상태라 유진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보내 줘요!”

강지찬은 차가운 눈빛으로 난동을 부리는 유진을 보더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이미 하룻밤도 보낸 사이에, 뭐가 무서워요? 당신을 죽이려는 것도 아닌데.”

유진은 말문이 턱 막혔다.

부경원은 강지찬이 강 씨 저택 이외에 따로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유진을 집사인 방 아주머니에게 맡겨버렸다.

“방 하나 내줘서 쉴 수 있게 해주세요. 다섯 시에 메이크업해줄 분이 오실 거에요. 여섯 시에 제가 데리러 올게요.”

유진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 하려는 거에요?”

강지찬이 빤히 쳐다봤다.

“당신 약혼남이 오늘 밤 프라임 홀에서 손님 접대가 있다던데요. 가고 싶지 않은 거에요?”

정유진은 또 한 번 놀랐다.

한빈이 이런 날을 골라 손님을 접대한다는 건 이 기회를 빌려 정식으로 헤어졌음을 선포한 후 버림받은 남자라는 불명예를 벗어버리기 위험이겠지.

‘정말로 이렇게 하루빨리 벗어나려 한다고? 이렇게 냉정하게?’

이런 생각이 미치자 유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갈 거예요!”

지찬은 예상 밖의 대답이었는지 눈가에 언뜻 잘했다는 뜻을 내비치고는 집을 나섰다.

강지찬이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처음인지라 방경숙은 놀라움을 애써 감춘 채 친절하게 이야기했다.

“유진 아가씨, 이쪽으로 오세요.”

정유진은 마음속으로 인제야 묵은 비밀을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부경원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별장이었는데 유진이 전에 다니던 디자인 회사에서도 이곳으로 측량하러 나온 적이 있었다. 결국엔 집주인이 다른 해외파 유명 디자이너가 속해있는 인테리어 회사를 선택했지만 말이다.

이 큰 거래를 놓친 유진의 사장님은 화병이 나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었다.

유진은 집의 인테리어를 자세히 신경 쓸 틈도 없이 방 씨 아주머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아가씨, 이 방에서 지내세요. 여기가 대표님 안방과 가장 가깝거든요.”

유진은 딱 잘라 거절했다.

“다른 방으로 바꿔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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