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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수리춘
날이 정오에 가까워질 무렵, 유민영은 약속한 시각보다 일찍 유국공부의 곁문에 도착했다.

곁문 앞에는 오전에 선발을 통과한 다른 두 유모가 이미 와 있었다.

전 어멈은 그녀가 아이를 안고 제시간에 돌아오자 더 묻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따라오너라.”

이제야 비로소 유민영은 저택 안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정자와 누각, 날아갈 듯한 처마와 화려한 대들보, 그리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복잡한 회랑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는 길에 얼마나 많은 월문을 지나쳤는지, 기이한 꽃과 풀을 심어 놓은 정원을 또 몇 군데나 지나쳤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저택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어 발바닥이 저릴 지경이었다. 마침내 유우헌이라는 별채 앞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췄다.

유우헌은 대부인이 거처하는 정란원과 바로 붙어 있어 유모들이 언제든지 부름을 받기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마당은 그리 넓지 않았으나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유민영과 다른 유모들은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전 어멈의 지시를 기다렸다.

전 어멈이 말했다.

“너희 셋은 앞으로 이 유우헌에서 소임을 다하며 소공자님을 전담하여 모시게 될 것이다.”

“월급은 은자 석 냥으로, 매달 지급된다. 만약 일을 잘하면 주인 어른들께서 자연히 상을 내리실 게다.”

“허나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면 삯을 깎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저택에서 내쫓길 줄 알아라. 모두 알아들었느냐?”

은자 석 냥이라니!

유민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정도 돈이면 바깥 세상에서 평범한 다섯 식구가 서너 달은 넉넉히 먹고 지낼 수 있는 거금이었으니, 과연 유국공부의 씀씀이는 대단했다.

“너희 셋은 돌아가며 소공자님을 돌보고, 한 사람당 네 시진씩, 낮과 밤을 번갈아 맡을 것이다. 교대할 때마다 소공자님이 드신 것과 주무신 상태를 명확히 고해야 할 것이니,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겠다.”

“예,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세 사람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전 어멈은 할 말을 마치고 곁채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방이 너희가 지낼 곳이다. 어서 들어가 자리를 정하고 서둘러 짐을 풀거라.”

곁채 안은 창문이 맑고 깨끗했으며, 정돈이 잘 되어 있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

단촐한 나무 침상 세 개 위에는 통일된 푸른색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두 유모가 재빨리 안쪽 창가 자리를 골랐다.

유민영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말없이 문 옆에 놓인 빛이 덜 드는 침상 앞으로 걸어갔다.

이 자리는 출입이 편하고, 밤중에 아이가 울며 보채더라도 안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덜 될 터라 그녀 마음에 꼭 들었다.

자리를 정한 세 사람은 서로 이름을 주고받았다.

유민영은 황토색 옷을 입은 이의 이름이 추월이고, 푸른 옷을 입은 이의 이름이 청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사람이 겨우 몇 마디 나누고 있을 때, 주방에서 점심을 가져다 주었다.

뽀얗게 우려낸 붕어탕 한 사발과 기름지게 볶은 돼지족발 한 접시, 그리고 깔끔하게 볶은 몇 가지 제철 채소와 하얀 쌀밥이 올라 있었다.

모두 유모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음식으로, 젖이 잘 돌게 하는 식재료였다.

청화와 추월은 음식을 보자마자 눈빛이 반짝였다.

둘은 평민 출신이라 산후조리 때가 아니면 평소에 이토록 정갈하고 귀한 보양식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

유민영 역시 한동안 한동안 거친 나물과 두부만 삼켰던 터라, 순간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였다.

세 사람은 바깥쪽 작은 탁자에 둘러앉아 사담을 나눌 겨를도 없이 코를 박고 정신없이 음식을 음미했다.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정란원에서 어린 시녀 하나가 전갈을 들고 찾아왔다.

“청화 유모, 유모께서 먼저 들어가실 차례입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청화는 얼른 입을 닦고 그 뒤를 따라나섰다.

방 안에는 이제 유민영과 추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추월은 스무 살이 조금 넘은 나이로, 둥글둥글한 얼굴형에 말 한마디를 뱉기 전에도 부드러운 미소를 띠는 상냥한 인상이었다.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 편하게 유씨 동생이라 부를게. 그런데 아이를 안고 왔구나. 어찌 집에 맡겨 두고 오지 않았어? 아이 하나 젖 먹이는 것도 몸이 축나는 일인데, 둘이나 먹이려면 네 몸이 남아나질 않을 텐데.”

유민영은 방금 딸아이에게 젖을 물렸던 터라 그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렸다.

이제 막 저택에 들어온 터라 사사로운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 않았으나, 추월의 태도가 워낙 친근한 데다 앞으로 한방을 쓸 처지라 어차피 숨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부군이 최근 세상을 떠나 시댁에서 쫓겨나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살길을 찾아 나섰다며 제 신세를 간략히 털어놓았다.

추월은 그 사연을 들으며 연신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사정이 그렇게 딱한 줄은 몰랐네. 참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래도 너무 마음 쓰지 마. 이제 든든한 소임도 생겼으니, 앞으로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참, 앞으로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게 되었으니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자."

“고마워요, 추월 언니. 앞으로 신세를 지게 될 것 같아요.”

“별말을 다 하네, 우리 모두 어린 상전을 모시는 처지인데 마땅히 서로 도와야지.”

추월은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그녀가 몸을 돌리는 순간, 얼굴에 번져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단한 배경이라도 타고 들어온 줄 알았더니, 고작 시댁에서 쫓겨난 과부에 불과했다니.

그저 운이 좋아 젖이 소공자의 입맛에 맞았을 뿐이 아닌가.

자신처럼 평범하고 온전한 가문에서 자라난 유모와는 근본부터가 다른 천한 신분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저택 곳곳에 등불이 밝혀졌다.

저녁 식사를 마친 유민영은 청화와 교대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 밤은 그녀가 아이 곁을 지킬 차례였다.

소공자 배엽헌은 태어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가장 애를 먹일 때였고, 반 시진이나 한 시진마다 젖을 먹여야 해서 밤에는 더욱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다.

교대를 하러 나온 청화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가 가득했다.

그러나 유민영은 이 정도 밤샘이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일할 때 며칠씩 밤낮이 바뀌는 야근도 거뜬히 버텨냈던 터라, 핏덩이를 돌보는 일쯤은 오히려 능숙하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이의 천 기저귀(고대의 기저귀는 천으로 만들어진, 씻고 말리면 반복 사용이 가능한 것)를 꼼꼼히 살피고 이마에 손을 얹어 열을 짚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이윽고 깊은 밤이 되자, 소공자는 예상대로 배가 고픈지 울음을 터뜨렸다.

곁에 대기 중이던 유민영은 따뜻한 물로 몸을 깨끗이 닦아낸 뒤 숙련된 자세로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정적만이 감도는 방 안에는 오직 아이가 만족스럽게 목구멍으로 젖을 넘기는 미세한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유민영이 온 정신을 집중해 젖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밤을 지새우던 어린 시녀가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첫째 나으리? 이, 이 시각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엽이를 보러 왔다.”

낮게 가라앉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옛 사찰의 새벽 종소리처럼 무거우면서도 밤공기의 서늘함이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이내 내실의 휘장이 굵은 손에 의해 젖혀졌다.

큰 키에 짙은 청록색 비단 장포를 입고 허리에는 옥으로 된 띠를 두른 당당한 풍채의 사내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전신에서 조정의 풍파를 오래 겪은 자 특유의 내련된 위엄과 엄숙함이 흘러넘쳤다.

유민영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돌리며 팔과 아이로 제 몸을 가리려 했지만, 이미 기척도 없이 들이닥친 시선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배정현 역시 유모가 엽이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과 맞닥뜨릴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는지, 석 자쯤 떨어진 자리에서 걸음을 딱 멈추어 섰다.

젊은 여인이 몸을 비스듬히 돌린 채 앉아 있었는데, 연약한 몸매와 고개를 숙인 목덜미의 곡선이 무척이나 고왔다. 이내 그 아래로 드러난 한 줌의 살결이 눈에 들어왔다.

늘 옷깃 속에 꽁꽁 숨겨져 있었을 그 피부는 눈이 부시도록 하얗고 투명했으며, 생기 없는 백색이 아니라 은은한 혈색이 도는 고운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엽이는 그 따스하고 풍요로운 품에 안겨 부지런히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평소 얼음처럼 침착하던 배정현이었으나, 순간 뜻밖의 광경을 목도하자 심장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리상 마땅히 고개를 돌려 외면해야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발걸음이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유민영의 속은 현대인이나 다름없어, 젖을 물리는 일 같은 데에는 비교적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생판 모르는 낯선 사내에게 그 모습을 정면으로 들켰으니 두 뺨이 화끈거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사람은 대체 무얼 하는 자이기에 남녀의 유별함을 모른단 말인가?

기나긴 긴장 끝에 마침내 소공자가 배를 채우고 만족스럽게 입을 떼자, 유민영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옷깃을 여며 추스렀다.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아이를 세워 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려 트림을 시키다가, 얼른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소인이 방금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터라, 미처 나으리를 알아뵙고 예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부디 소인의 무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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