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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Author: 숲속의사슴
시유가 딸을 낳았다는 사실은 부씨 일가에게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없는 일처럼 지나쳐도 상관없는 일, 굳이 마음 쓸 필요조차 없는 일처럼 취급됐다.

부씨 일가 누구도 시유의 생사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마저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겼다.

시유는 눈을 감았다. 딸이 태어난 지 꼭 한 달 되던 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가슴을 움켜쥔 채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떠오르자 속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유란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낸 적 없던 유란은 손을 뻗어 시유를 안으려 했다.

시유는 감정이 격해져 유란의 호의를 거칠게 밀어냈다.

“됐어요. 이제 와서 미안한 척하지 마세요!”

“지금 와서 저를 안아 주면 뭐가 달라져요? 그때는 어디 있었는데요!”

“제 딸은 어디서 갑자기 생겨난 아이가 아니에요. 제가 열 달을 품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겨우 낳은 아이예요! 그런데 그동안 부씨 집안 사람 누구 하나 저한테 안부라도 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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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homejoa
잘한다. 파이팅. 응원할께. 반드시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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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92화

    캠핑장은 H시 외곽의 한적한 곳, 하천 제방 아래 낮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었다.넓고 평평한 잔디밭을 중심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밤이 되자 잔디밭 한가운데 모닥불이 타오르고, 나무마다 걸린 알록달록한 조명이 반짝이며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진구는 미리 캠핑장 한가운데 있는 대형 텐트 자리를 예약해 두었다. 캠핑장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였다.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야외 테이블과 의자가 이미 준비돼 있었고, 식탁에는 각종 꼬치구이와 과일 모둠, 음료와 맥주, 간단한 안주까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자리에 앉자 진구는 직원 한 명을 불러 직접 바비큐를 구워 달라고 부탁했다.마리는 캠핑장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마침 스피커에서는 평소 좋아하던 신나는 댄스 음악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마리는 신이 나서 벌떡 일어나더니 텐트 앞으로 나갔다.“자, 여러분! 오늘 이렇게 통 크게 쏘신 진구 선배님께 감사하는 의미로 제가 먼저 춤 한 곡 보여 드리겠습니다. 분위기 좀 띄워 볼 테니까 이따가는 다들 한 명씩 장기 자랑하셔야 해요!”진구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좋아! 우리 꼬맹이, 배짱 좋은데!”하지만 시유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아니, 윤마리! 너 지금 나보고도 장기 자랑하라는 거야?’‘마지막으로 사람들 앞에서 공연한 게 언제였더라?’대학생 때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던 게 마지막이었다. 그마저도 벌써 몇 년 전 일이었다.워낙 밝고 거리낌 없는 성격인 마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걸치고 있던 캐주얼 셔츠를 벗어 시유에게 휙 던지더니 곧장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금세 리듬을 타며 골반을 가볍게 흔들자 시선이 절로 쏠렸다.사방이 탁 트인 야외인 데다 마리의 춤까지 제법 눈길을 끌어,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호응하기 시작했다.순식간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그때 근처 텐트에 앉아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어 시유 일행을 바라봤다.한동안 묘한 눈빛으로 그쪽을 지켜보던 여자는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91화

    밖에는 영우와 진구가 서 있었다.한 사람은 연한 하늘색 셔츠를, 다른 한 사람은 군더더기 없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훤칠하고 말끔한 모습이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았다.“시유 씨, 일주일 내내 야근했잖아요.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하루 쉬어요. 공동 대표로서 내리는 명령이에요.”영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제야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시유도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아직 설계안이 완성되지 않았어요.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서요.”영우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요. 일할 때는 쉴 줄도 알아야죠. 너무 힘들면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거든요. 제가 경험해 봐서 알아요.”시유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진구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런데 선배님은 오늘 어쩐 일이세요?”진구가 서류 한 부를 내밀었다.“네가 맡긴 세오름타워 설계안 저작권 소송, 판결 나왔어. 우리가 제출한 증거가 받아들여져서 법원에서도 설계안 저작권이 네게 있다고 인정했어. 이제 어느 부동산 개발사랑 손잡을지는 네가 알아서 결정하면 돼.”시유는 뜻밖이라는 듯 서류를 받아 들었다.“부강그룹이... 이번에는 이렇게 쉽게 물러났어요? 그동안 그 프로젝트에 투자한 돈도 상당할 텐데요.”진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좀 이상했어. 이번에는 상대 변호사도 적극적으로 다툴 생각이 없는 것처럼 형식적으로만 대응하더라고. 제출한 증거도 턱없이 부족했고.”진구가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처음부터 부강그룹 쪽에서 포기하고 네게 넘겨주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어.”시유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예전의 여준이라면 작은 이익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게다가 세오름타워는 부강그룹에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던 핵심 프로젝트였다.그런 사업을 이렇게 순순히 포기하다니, 정말 뜻밖이었다.시유는 서류를 훑어본 뒤 조심스럽게 챙겼다.그동안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걱정이 마침내 사라진 기분이었다.“어쨌든 정말 감사해요, 선배님.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90화

    시유는 기운 하나 없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여준에게 소고기 국수 한 그릇을 끓여 줬다.하지만 여준은 그 국수를 두고 하나부터 열까지 트집을 잡았다.결국 보다 못한 유순자가 조심스럽게 시유가 열이 나서 아프다고 알려 주고서야, 여준은 시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데다 몹시 지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물론 나중에는 여준도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했다.한정판 불가리 목걸이까지 선물하며 시유의 마음을 달래려 했다.하지만 그날 일은 여전히 시유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그리고 바로 그 일을 계기로 여준이 자신을 한 번도 제대로 보살펴 준 적이 없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그때부터 시유는 여준을 향한 마음을 조금씩 거두기 시작했다.예전의 여준은 시유가 아무리 잘해 줘도 그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그러니 이제는 시유도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고 있는 여준을 아무렇지 않게 외면할 수 있었다.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시유는 다시 커튼을 닫고 침대로 돌아와 옆에 누운 빛나의 얼굴을 바라봤다.여준과 조금 닮은 얼굴이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처음에는 아이가 생기면 부부 관계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오히려 빛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이제 남은 건 25일뿐이었다.25일만 지나면 여준과 완전히 끝낼 수 있었다.지옥 같았던 부씨 집안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여준은 목련원 앞에서 사흘 연속 무릎을 꿇었다.매일 밤 찾아와 아침이 되면 돌아갔다.바람이 불든 비가 내리든 늘 같은 자세로 꼿꼿이 꿇고 있었다.시유와 임애교의 반응도 똑같았다.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여준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문과 창문을 꼭 닫아 놓고 그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결국 사흘째 되던 날 여준은 고열에 폐렴까지 겹쳐 병원에 입원했다.그제야 그 유난스러운 사죄도 끝이 났다.여준이 사흘이나 무릎을 꿇고도 시유의 마음을 조금도 돌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인걸은 깊게 한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89화

    빛나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간간이 기침을 했다.시유와 임애교는 바로 빛나를 병원에 데려가 필요한 검사를 전부 받았다.단순한 감기일 뿐이고, 몸 어디에도 멍이나 상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두 사람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장순영이 저녁을 준비해 두었지만 시유도 임애교도 입맛이 없었다.대충 몇 숟갈 뜨고는 다시 빛나 곁을 떠나지 않았다.빛나는 지난 이틀 동안 많이 놀랐는지 잠도 푹 자지 못했다.자다가도 갑자기 놀란 듯 몸을 크게 움찔하고는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시유는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날 밤은 자신과 장순영이 직접 빛나를 돌보기로 하고, 며칠째 제대로 자지 못한 임애교는 억지로 방에 들여보내 쉬게 했다.시유가 있는 곳은 한밤중이었지만 A국은 아침이었다.그때 오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부강그룹에서 지금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주가를 방어하고 있어. 조금씩 반등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고. 시유야, 오빠가 어떻게 해 줄까?]시유는 눈을 내리깔고 침대에서 막 잠든 빛나를 바라봤다.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낮아졌다.“오빠, 지금까지 손실이 얼마나 돼?”[대략 수천억 원 정도 될 거야. 이번 일 지나고 나면 원래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도 꽤 오래 걸리겠지.]“그럼 이번에는 이 정도로 끝내자. 아직 부여준이랑 법적으로 완전히 이혼한 상태도 아니잖아. 괜히 나까지 엮이면 곤란하니까.”[그래. 오빠는 네 말대로 할게.]남자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우리 조카는 어때? 좀 괜찮아졌어?]시유가 작게 웃었다.“응. 이제 괜찮아. 조금 놀라서 잠을 편하게 못 자는 것뿐이야.”[주변 경호는 변항한테 이미 더 강화하라고 했어. 이번 같은 일은 절대 다시 생기면 안 되니까. 그래도 시유야, 너랑 엄마 둘 다 더 조심해야 해.][부여준하고도 빨리 완전히 정리해. 괜히 시간 끌었다가 또 무슨 일 생길지 모르잖아.]“알아. 숙려기간 끝나자마자 바로 이혼할 거야.”시유의 목소리가 단호해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88화

    영우는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여준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세 번째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마셨다.오래전 시유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예전의 여준은 시유 앞에서 늘 자신만만했다.자신이 나이도 몇 살 더 많고 사업 경험도 훨씬 많으니, 당연히 시유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는 법도, 일하는 법도 자신이 가르쳐 줘야 한다고 여겼다.처음 만났을 때의 시유는 말랐고 머리도 짧았다.여준의 눈에는 아직 철없는 애송이처럼 보였다.그래서 한참 윗사람이라도 되는 양 시유를 혼내고 타이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정하게 챙기고 예뻐했다.시유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좋아했다.혼이 나 눈시울이 붉어진 시유를 품에 안아 달래면 금세 마음이 풀리는 모습도 좋아했다.시유의 눈에 자신을 향한 동경이 비칠 때면 기분이 좋았다.그럴 때마다 품에 안고 사업에서 거둔 성과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보고 배우라고 했다.한때 여준은 시유가 가장 믿고 따르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여준은 알게 모르게 시유의 자존심을 눌렀고, 끊임없이 자기 방식에 맞춰 시유를 바꾸려 했다.자신에게 순종하면서도 자기 일은 알아서 해내는 사람으로.시유가 설계 분야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도 모두 지켜봤다.보조 디자이너에서 혼자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는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나중에는 설계팀 전체를 이끌게 되는 모습까지.시유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시유가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옆에서 이끌어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게다가 자신이 없었다면 시유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세오름타워 설계안이 채택되고 상까지 받은 날도 또렷하게 기억났다.그날 여준은 기쁜 마음에 시유를 품에 끌어안고 자랑스럽게 말했다.“봐. 내가 5년 동안 옆에서 가르쳐 준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 기분 좋지?”그때 처음으로 시유가 반박했다.“내가 여기까지 온 건 내가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이야. 꿈은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87화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둘 다 표정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고, 여준에게 같이 앉자고 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여준 역시 말없이 맞은편 자리에 앉아 도수가 높은 위스키 한 병을 주문했다.요즘은 웬만한 와인으로는 속에서 치미는 답답함을 달랠 수가 없었다.독한 술이라도 마셔야 그나마 꽉 막힌 속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여준과 영우는 서로 등을 돌린 채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여준은 눈을 내리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스키 두 잔을 연달아 비웠다.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를 향하고 있었다.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새나와 이혼한 뒤로 영우는 매일 밤 이곳에 와서 조용히 술을 조금씩 마시는 게 습관이 됐다.살짝 취기가 오르면 집으로 돌아가 씻고 잠들곤 했다.등 뒤에서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여준이 입을 열었다.“내 기억이 맞으면 너 A국에서 빌이랑 꽤 친했었지?”영우가 잠시 멈췄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내가 그걸 너한테 말해 줄 이유가 있나?”여준의 속에서 다시 화가 치밀었다.“새나한테 들었어. 해외에 있을 때 빌이랑 가끔 만나서 식사도 하고 골프도 친다며.”“강영우, 나한테까지 숨겨야 할 일이야?”영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지금은 너랑 할 말이 없으니까.”여준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다.자리에서 일어난 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한 개비를 뽑아 영우에게 내밀었다.던힐이었다.예전부터 두 사람이 가장 즐겨 피우던 담배였다.영우는 잠깐 망설이다 담배를 받았다.두 사람은 말없이 와인바 안쪽 흡연실로 자리를 옮겼다.여준이 라이터를 켜 불을 내밀어 줬다.영우의 담배에 불을 붙여 준 뒤 자신도 한 개비를 물었다.옅은 담배 냄새가 퍼졌다.희뿌연 연기가 두 사람 사이로 천천히 흩어졌다.그 순간 두 사람 모두 자연스럽게 예전 일을 떠올렸다.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시절이었다.여준의 입술이 몇 번 달싹였다.“나랑 너, 그리고 시유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참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5화

    “환자분은 출산 후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입니다. 이전에 대량 출혈로 응급 처치까지 받으셨고요.”“이런 상태에서는 저혈당으로 쓰러지기 쉽습니다. 영양 보충 꼭 잘 하셔야 하고,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일도 피하셔야 합니다.”검사가 끝난 뒤에도 시유는 병실 침대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의사는 병실 안에서 마리에게 시유의 상태를 차분히 설명했다.장순영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사모님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하셨어요. 첫 보름은 젖몸살이 너무 심해서 음식도 마음대로 못 드셨고, 그 다음엔 아기가 소화를 잘 못 시켜서 밤마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4화

    유민자가 허둥지둥 방에서 뛰쳐나오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지진이에요? 지금 지진 난 거예요?”장순영은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안고 있다가, 요란한 소리에 놀라 맨발로 가방부터 움켜쥐고 현관 쪽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심지어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었다.유민자와 장순영이 거실로 뛰어들었을 때,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늘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시유가 미친 사람처럼, 한때 그토록 아끼던 장식품들을 하나씩 바닥에 내던지고 있었다.유민자는 다급히 시유에게 달려가 말렸다.“사모님, 그만하세요! 제발 그만하세요! 무슨 일이든 차분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화

    시유는 액셀을 깊게 밟아, 두 사람의 신혼집이 있는 단독주택 단지 ‘그림빌’로 차를 몰았다.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이 집에서 오래 일한 가사도우미 유민자와 시유가 따로 고용한 시터 장순영이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시유의 새하얗게 질린 낯을 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모님, 어디 편찮으세요?”시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괜찮아요. 배가 좀 고파서요. 따뜻하게 닭칼국수 한 그릇만 해 주세요.”장순영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든 시유의 복잡하게 뒤엉킨 마음은, 보드랍고 발그레한 아기 얼굴을 보자 겨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화

    연회장 안.시유의 시선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여준에게 박혀 있었다. 여준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술잔을 들고, 새나를 데리고 테이블마다 돌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제 친구 영우가 해외 현장에 장기 파견을 나가 있어서, 돌아오려면 1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영우 대신 인사도 드리고, 술도 대신 받겠습니다.”“새나는 아직 몸조리 중이라 술도, 찬 음료도 조심해야 합니다. 새나 몫으로 주시는 잔은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시유는 입안으로 넘어간 오렌지 주스가 유난히 차갑고 쓰게 느껴졌다. 가슴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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