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검은 바위의 표면에는 천 년 전 제관들이 새긴 글자들이 남아 있었다. 그중 가장 깊은 곳에 박힌 첫 번째 인장이 다른 모든 봉인을 붙들고 있었고, 무령은 그 인장에 힘을 가하면 물길을 가로막는 구속이 잠시라도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대가를 짐작할 수 없었다.
삼백 년째 되던 겨울에도 그는 그곳을 건드리지 않았다. 몸을 찢어 죽으려 했을 때조차 마지막 인장만큼은 피했는데, 그것이 무너지면 자신을 묶은 봉인이 어떤 방식으로 뒤틀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령은 잠시 얼음 위를 바라보았다.
서하가 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균열 위로 반쯤 기울어 있었고, 남쪽으로 달아난 추격자들은 이미 눈발 속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존재는 자신뿐이었다.
무령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거대한 몸을 비틀어 역린을 봉인석의 가장 깊은 홈에 밀어 넣자, 바위 속에 박혀 있던 인장이 그의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목을 감은 쇠사슬이 한꺼번에 당겨졌고, 척추를 따라 박혀 있던 구속의 글자들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몸을 빼지 않은 채 봉인석을 짓눌렀다.
검은 바위에서 묵직한 진동이 일어났다.
무령은 턱을 굳힌 채 더욱 힘을 주었다. 찢어진 역린 아래로 흘러나온 피가 바위의 홈을 따라 번졌고, 천 년 동안 미동조차 없었던 첫 번째 인장이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호수의 물길이 뒤틀렸다.
봉인석에서 시작된 진동이 물속으로 퍼지면서 북쪽 지류의 흐름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무령은 얼음 위에 있는 두 사람을 떠올리고 즉시 힘을 거두려 했으나, 이미 봉인에 걸린 역린이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인장이 그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무령은 금빛 눈동자를 치켜떴다.
“놓아라.”
천 년 동안 침묵하던 이무기의 목소리가 호수 밑바닥을 울렸다.
봉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역린을 더욱 깊이 끌어당겼다.
무령은 그제야 자신이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봉인의 핵심을 건드린 순간부터 이 싸움은 시작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몸을 부수더라도 인장을 흔들어야 했다.
그는 남아 있는 힘을 모아 봉인석을 짓눌렀다.
검붉은 피가 터져 나오며 물속으로 번졌다. 호수의 깊은 곳에서 시작된 붉은 물결이 북쪽 지류를 따라 올라가자, 얼음 아래에는 마치 거대한 상처가 벌어진 듯 핏빛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남쪽 기슭으로 달아나던 추격자 하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저게…… 뭐야?”
남자는 얼음 아래에서 붉은 물이 번지는 광경을 보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곧이어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거대한 금빛 눈동자가 떠오르자, 남은 두 사람도 비명을 지르며 숲으로 달아났다.
무령은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거울 속에서 서하는 아이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가 균열 위로 미끄러져 오자 몸을 틀어 아이를 품에 안았고, 남은 팔로 얼음을 짚으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 순간 봉인석에 박힌 첫 번째 인장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무령은 그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붉은 글자의 한가운데에 가느다란 금이 생겨 있었다.
천 년 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봉인이 처음으로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균열이 벌어지는 순간, 봉인석에서 일어난 충격이 북쪽 지류를 따라 얼음 아래까지 전달되었다.
무령은 물거울 속에서 서하의 몸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얼음 위로 쓰러졌고,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을 떠받치던 얼음판이 아래에서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무령은 즉시 물길을 붙잡으려 했으나, 역린을 물고 있는 인장이 그의 움직임을 가로막았다.
얼음 위에서 서하가 아이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묻었다.
그녀는 아이를 감싼 채 몸을 웅크렸고, 벌어진 균열 사이로 검붉은 물이 솟구치자 마지막 남은 팔로 아이의 등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무령은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천 년 동안 자신을 가둔 첫 번째 봉인문이 갈라지는 순간, 그가 구하려던 두 사람의 발아래에서 얼음판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서하를 붙잡은 채 함께 떨어진다면, 조금 전처럼 봉인의 반격 때문에 그녀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그때 서하가 얼음 아래를 바라보았다.“안 돼요.”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이번에는…… 정말 안 돼요.”무령은 물길에 실었던 힘을 거두었다.앞장선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누구에게 하는 소리냐?”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사내는 그녀의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밧줄을 거칠게 당겼고, 다친 다리가 버티지 못한 서하는 눈 위로 무릎을 꿇었다.“일어나.”그녀가 일어나지 못하자 사내는 그대로 밧줄을 끌었다.서하의 몸이 눈 위를 미끄러졌고, 젖은 치맛자락이 얼음에 걸리면서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상처 난 손목에 힘이 집중되자 피에 젖은 천 아래로 붉은 얼룩이 번졌지만, 사내는 오히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아까는 그렇게 기세등등하더니, 이제야 제 처지를 아는 모양이지?”앞장선 남자가 느긋하게 다가왔다.“너 같은 계집은 귀한 집에서 곱게 자랐을 테니 이런 대접이 처음이겠지. 하지만 여기서는 네 아버지도, 세자 저하도 널 구하러 오지 않는다.”그는 서하의 눈앞에 쪼그려 앉았다.“그러니 지금부터는 누구에게 잘 보여야 살아남는지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서하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당신들에게 빌어야 한다는 뜻인가요?”남자가 웃었다.“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서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무령은 그녀가 완전히 굴복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서하의 시선은 사내의 얼굴이 아니라 돌기둥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조금 전 물속에서 빠져나오며 떨어뜨린 작은 칼이 눈에 반쯤 묻혀 있었고, 깨진 돌기둥의 모서리 아래로는 얼음 균열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사내가 서하의 머리카락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그녀는 몸을 옆으로 굴려 그 손을 피하면서 돌기둥 아래로 쓰러졌다.“이년이!”사내가 밧줄을 잡아당겼다.서하는 끌려가면서도 묶인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손목 사이가 좁아 칼을 제
그는 거대한 앞발을 바닥에 박아 넣은 채 물살을 억눌렀고, 서하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제단 아래의 물길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서하는 허리춤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손가락이 얼어 칼자루를 제대로 쥐지 못했지만, 그녀는 왼손으로 칼을 붙잡고 부목을 묶은 천을 자르기 시작했다. 물속에 잠긴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몸이 아래로 끌려갔고, 돌기둥을 감싼 팔에서는 버티는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무령은 물거울을 통해 그녀의 손끝을 지켜보았다.서하가 칼날을 매듭 아래로 밀어 넣었으나 젖은 천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몇 차례 숨을 몰아쉰 뒤 칼자루를 다시 움켜쥐었고, 다친 다리를 조금 들어 올리면서 매듭을 잡아당겼다.칼날이 미끄러지며 정강이를 스쳤다.서하는 짧은 비명을 삼켰지만 칼을 놓지 않았다.다시 천을 잡아당긴 끝에 매듭 하나가 끊어졌고, 부목을 붙잡고 있던 나무판이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돌기둥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다리를 조금씩 끌어올렸다.얼음 모서리에 무릎이 부딪히자 몸이 크게 흔들렸다.무령의 앞발이 반사적으로 움직였지만, 그는 곧바로 발톱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서하는 끝내 얼음 위로 올라왔다.그녀는 그대로 쓰러져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젖은 옷에서는 물이 흘렀고, 오른쪽 다리는 부목이 풀린 채 불안정하게 꺾여 있었다.무령은 물거울을 가까이 당겼다.서하의 어깨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그제야 그는 턱을 낮췄다.그러나 안도할 틈도 없이 북쪽 기슭에서 세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무령은 고개를 돌렸다.사내들은 얼음판의 두께를 확인하며 제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앞장선 남자는 허리에 칼을 찼고, 뒤따르는 두 사람은 밧줄과 긴 나무막대를 나누어 들고 있었다.“저기 있다.”가장 젊은 사내가 서하를 발견하고 웃었다.“대장, 저 계집 맞습니다. 어제 물에 빠져 죽었다더니 용케 살아 있군요.”앞장선 남자는 서하의 얼굴을 확인한 뒤 걸음을 늦췄다. 그의 시선이 피에 젖은 손바닥에서 다친 다리로 내려갔다가
거대한 울음이 물속을 뒤흔들었다.호수 바닥에 쌓여 있던 모래가 치솟고, 오래된 돌기둥들이 서로 부딪치며 갈라졌다. 봉인문에서 뻗어 나온 붉은 빛이 그의 몸통을 따라 번졌고, 아직 용이 되지 못한 두 뿔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무령은 자신의 이름이 봉인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그러나 이름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반격이 일어나는 까닭까지 알 수는 없었다. 제관들은 천 년 전 그 이름을 돌 아래 묻었고, 그 뒤로 누구도 그것을 부르지 않았으니까.그때 얼음 위에서 서하의 비명이 들렸다.무령이 물거울을 돌렸다.제단 아래의 균열이 얼음판까지 이어지면서 돌기둥이 기울고 있었다. 서하는 급히 물러나려 했지만 오른쪽 다리의 부목이 돌 틈에 걸렸고, 몸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 상처 난 손바닥으로 깨진 돌을 짚었다.피에 젖은 천이 돌 모서리에 걸려 찢어졌다.“아악!”서하가 손을 떼려는 순간 발밑의 얼음이 무너졌다.다친 오른쪽 다리가 부목째로 검은 물속에 빠져들었고, 그녀는 돌기둥을 끌어안은 채 가까스로 상체만 얼음 위에 남겼다.무령은 즉시 물길에 힘을 실었다.그러자 역린에 박힌 봉인문이 다시 달아올랐다. 쇠사슬이 그의 거대한 몸을 뒤로 끌어당겼지만, 무령은 앞발로 바닥을 움켜쥐고 버티면서 물살을 제단 아래로 밀어 올렸다.그가 힘을 쓸수록 봉인은 더욱 잔혹하게 조여 들었다.목 아래의 비늘이 뜯겨 나가고 가슴의 상처가 벌어지면서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굵은 쇠고리가 살 속으로 파고들자 무령은 고개를 젖혀 울부짖었고, 그 소리가 호수 바닥을 울리며 얼음판에까지 전해졌다.그러나 밀어 올린 물살은 서하에게 닿기도 전에 봉인문에 부딪쳐 뒤집혔다.제단 아래의 얼음이 크게 흔들렸다.서하가 매달린 돌기둥마저 기울기 시작했다.무령은 힘을 거두려 했지만 이미 움직인 물살은 곧바로 멈추지 않았다. 검은 물이 균열 사이로 솟구치면서 얼음 아래의 시야가 트였고, 무너진 얼음판 너머로 그의 거대한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서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무
흑룡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검은 이무기 한 마리가 제 몸을 물어뜯고 있었다.사람의 허리보다 굵은 쇠사슬이 목과 몸통을 휘감고 있었으며, 그 끝은 호수 바닥에 박힌 아홉 개의 봉인석으로 이어져 있었다. 천 년 동안 물살에도 닳지 않았던 검은 비늘은 쇠사슬에 짓눌려 곳곳이 벗겨졌고, 목 아래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역린 주변에서는 벌어진 살점이 물결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현무령은 기다란 주둥이를 돌려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어제 얼음에 빠진 여자를 구하려고 봉인석에 밀어 넣었던 역린이었다. 그때 뜯겨 나간 비늘의 가장자리에는 붉은 봉인문이 깊숙이 박혀 있었으며,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글자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 상처를 벌렸다.무령은 앞발을 들어 역린에 걸린 쇠사슬을 밀어 보았다. 굽은 발톱이 쇠고리를 긁으며 불길한 소리를 냈지만 사슬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목덜미를 감싼 고리가 조여 들면서 거대한 머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크르르륵…….목구멍에서 새어 나온 울음과 함께 송곳니 사이로 핏물이 흘러내렸다.그는 더 이상 억지로 사슬을 밀어내지 않았다. 어제 여자를 구한 대가로 이미 역린 하나가 봉인석에 박혀 있었고,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힘을 쓴다면 다음에는 목이 꺾일 수도 있었다.그럼에도 무령은 여자가 마지막으로 걸어 나갔던 북쪽 물길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천 년 동안 이 호수에서 죽어 간 인간은 헤아릴 수 없었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진 자도 있었고, 봉인석에 제물을 바치다가 물살에 휩쓸린 자도 있었다. 무령은 그들의 비명과 원망을 들었지만, 대부분은 물거울을 거두는 것으로 끝냈다.어제의 여자는 달랐다.그녀는 자신을 구한 존재가 물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다시는 다치지 말라고 부탁했다.그 말을 떠올리던 순간, 북쪽 기슭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전해졌다.무령은 고개를 들었다.물거울에 나타난 여자는 눈발을 헤치며 호수로 내려오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에 묶은 부목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렸고, 상처 난
“저희를 살려 주신 분.”무령의 역린이 미세하게 떨렸다.서하는 손바닥을 조금 더 앞으로 밀었다.“아까는…… 제가 잘못 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물속에서 누가 저를 밀어 올렸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요.”그녀는 숨을 고르느라 잠시 말을 멈췄다.멀리서 아이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서하는 그쪽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얼음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오래 있을 수는 없어요.”그녀의 입술이 떨렸다.“그래도 그냥 가면 안 될 것 같았어요.”무령은 물거울을 닫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갇혀 있었는지, 조금 전 어떤 형벌을 감수했는지도 알지 못했다.그런데도 서하는 도망치지 않고 남아 있었다.그녀는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얼음 위에 그대로 올려놓은 채 고개를 숙였다.“고맙습니다.”무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천 년 동안 인간의 기도와 원망을 들어 왔지만, 그에게 감사하는 인간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 얼음 위에 앉아 있는 여자는 자신을 보지도 못하면서, 아이를 안전한 곳에 보낸 뒤 다시 돌아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서하가 손을 거두려 했다.그 순간 얼음 아래의 물결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무령은 반사적으로 힘을 거두었다.조금만 움직여도 봉인석이 다시 반응할 것이었다.서하는 그 흔들림을 확인한 듯 손을 멈췄다.“무리하지 마세요.”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저는 이제 괜찮아요.”무령은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보았다.맨발이 된 발목은 피와 진흙으로 얼룩져 있었고, 젖은 옷은 얼어붙기 시작했다. 손바닥의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어깨가 심하게 떨렸다.괜찮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그는 그 사실을 지적할 수도, 그녀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서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다친 다리가 버티지 못해 한 번 주저앉았지만, 돌기둥을 붙잡고 다시 일어섰다. 그녀는 얼음 아래를 향해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인 뒤 아이가 기다리는 남쪽 기슭으
남자는 곧장 뒤쫓으려 했으나 서하가 그의 허리춤을 붙잡았다. 상처 난 손바닥이 옷자락에 쓸리며 다시 피가 흘렀지만, 그녀는 남자가 몸을 돌릴 때마다 돌기둥 쪽으로 힘껏 잡아당겼다.남자가 팔꿈치로 그녀의 어깨를 내리쳤다.서하가 돌기둥에 부딪혔다.그 충격으로 기둥 밑에 쌓여 있던 얼음 조각들이 무너져 내렸고, 기둥을 받치고 있던 오래된 돌 하나가 흔들렸다.무령은 물거울 속에서 제단 아래의 균열이 넓어지는 것을 확인했다.조금 전 첫 번째 봉인문을 건드렸을 때 발생한 충격이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다. 얼음 아래의 물길은 이미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제단을 받치던 돌들이 틀어지면서 그 위에 얼어붙어 있던 얼음판에도 금이 번지고 있었다.남자는 서하를 밀쳐 낸 뒤 아이를 쫓으려 했다.그러나 그가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발밑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음판이 갈라졌다.남자는 급히 발을 거두었지만, 뒤꿈치가 닿았던 자리의 얼음이 부서지면서 검은 물이 솟구쳤다. 그는 칼을 쥔 손으로 돌기둥을 붙잡았고, 몸을 옆으로 비틀어 가까스로 무너지는 얼음에서 벗어났다.서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그녀는 남자의 앞을 막는 대신 기둥 반대편으로 몸을 옮겼다. 추격자가 아이를 쫓으려면 갈라진 얼음판을 건너거나 제단을 크게 돌아가야 하는 위치였다.남자는 아이가 달아나는 방향을 확인했다.아이는 이미 두꺼운 얼음이 끝나는 남쪽 기슭 가까이 도착해 있었다.남자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그 순간 제단 아래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조금 전보다 더 긴 균열이 그의 발앞을 가로질렀다.남자는 이를 악물었다.“이 계집이…….”그는 칼끝을 서하에게 겨누었지만, 발밑의 얼음이 다시 내려앉자 서둘러 몸을 돌렸다. 남쪽으로 가려면 무너진 제단을 건너야 했고, 그 길을 고집하면 자신도 물속에 빠질 수 있었다.그는 서하를 노려보다가 칼을 거두었다.“다음에는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할 거다.”남자는 제단 반대편의 두꺼운 얼음을 따라 물러났다.서하는 그가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돌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