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밀러 가문의 저택에 들어선 아리나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숨이 막혔다.지난 번 파티 때의 연회장과는 또 다른 중압감..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예술품들과 집안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기운은 이곳이 단순한 재벌의 집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루카스의 아버지인 아서 밀러와 어머니 마가렛은아리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어서 와요, 아리나. 루카스에게 말은 많이 들었어요. 우리 아들이 드디어 사람 보는 눈을 가지게 된 것 같더군요."아서 밀러의 인자한 미소에 아리나는 긴장을 조금 덜어냈다.식사 시간 내내 밀러 부부는 아리나의 병원 생활과 그녀가 행해 온 선행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그들은 아리나의 손을 잡으며 감탄했다."당신 같이 맑은 영혼을 뉴욕 한복판에서 만나다니, 이건 우리 가문에도 크나 큰 축복이랍니다."루카스는 뿌듯한 표정으로 아리나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었다."거봐요. 우리 부모님 무서운 분들 아니라니까요. 아리나는 이제 거의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어요."루카스의 선언에 부모님은 묘한 눈빛을 주고 받았지만,아리나를 향한 호의만큼은 진심이었다.그 시각, 오피스텔 25층에 홀로 남은 카시엘은난생 처음으로 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아리나가 없는 공간이 이토록 차갑고 무거운지 몰랐다.그는 결국 코트를 집어 들었다.천사의 직관은 아리나의 주변에 악의 무리가 꼬이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그것은 반은 사실이었고, 반은 그라 아리나를 보고 싶어 만들어낸 핑게였다.카시엘은 인간의 법도인 을 머릿곳에서 삭제한 채밀러 저택을 향해 어설프게 뚝딱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뉴욕 상류층의 상징인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도 가장 거대한 저택.밀러 가문의 본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성벽 같았다.루카스의 부모님은 대대로 이어온 가문의 내력답게 영적이 감각이 예민했고,세상에 숨어든 들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다.그들은 루카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수간호사 아리나의 존재를직접 확인하고 싶어했다."아리나. 우리 부모님이 너를 정말 보고 싶어 하셔. 그냥 편하게 저녁 한 끼 먹는 거야. 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걱정 마. 오빠 믿지?"루카스는 아리나에게 금박이 박힌 초대장을 건넸다.아리나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디 초대장부커 벌써 위화감이 생겼다."루카스 오빠. 아니 형사님.. 전 그냥 평범한 간호사일 뿐인데.. 이런 귀한 자리에 어떻게 가요? 게다가 카시엘 혼자 두고 갈 수도 없고.."그때 화식에서 캠버스에 젯소를 바르던 카시엘이 어설픈 뚝딱거림으로 거실로 나왔다.그의 눈동자는 초대장의 금빛 문양을 뚫어지게 응시했다.카시엘은 루카스의 부모님이 아리나를 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는 영적인 파동을 읽어냈다.그것은 아리나에게 더 강력한 세속적, 영적 모든 방패를 만들어주는 좋은 일이었지만,카시엘의 가슴 속 어딘가에서는 원인 모를 경고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가십시오, 아리나. 밀러 가문의 기운은 당신의 신앙과도 잘 어우러져 세상에 빛이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곳의 식기는 은으로 되어 있어 악의 기운을 정화하는 데에도 효과적입니다."카시엘은 무표정하게 아리나를 등 떠밀었지만,그의 붓을 쥔 손가락 끝은 하얗게 질려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아리나는 카시엘의 의외로 덤덤한 반응에 묘한 서운함을 느꼈다.'이 사람은 정말 내가 누구를 만나러 가든 상관이 없는 것일까?'아리나는 결국 루카스의 제안을 수락했다.저녁시간이 다가오자 루카스는 아리나를 위해 정갈한 원피스를 준비해 가져왔다.연분홍 민소매 원피스에 깔끔한 하얀 재킷. 아리나의 하얀 피부와도 잘 어울려한 송이 연꽃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웠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소년은 심각한 부정맥으로 위독한 샅애였다.테리는 CPR을 시도하는 아리나를 밀치고 자신이 직접 CPR을 실시하며수술실로 향했다. 계속해서 소년의 가슴을 압박했지만 모니터는 변화가 없었다."제발, 제발... 살아나!!"테리의 절규와 함께 그녀의 손바닥에서 다시 한번 은은한 은백색의 비치다초록빛 광채가 흘러나왔다.놀랍게도 기계음이 잠시 멈추고 소년의 심장이 다시 뚜기 시작했다.주위의 의료진은 기적이라며 환호했지만,테리는 자신의 손을 숨기며 급히 복도로 나갔다.그녀의 숨이 거칠어졌다.이때 그녀의 앞을 루카스가 가로막았다."교수님! 괜찬아요? 안색이 왜 이래?"루카스가 걱정스러운 듯 테리의 어깨를 움켜 잡았다.루카스의 강력한 수호령의 기운이 테리에게 닿는 순간,테리의 몸 안에 소용돌이치던 성스러운 힘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형사님... 당신 가끔은 정말 쓸모가 있네..."테리의 약한 모습에 루카스는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더 꽉 안아 주었다.멀리서 이 광경을 목격한 아리나와 카시엘.아리나는 "어머나! 두 분 너무 잘 어울려요!" 라며 박수를 쳤지만,카시엘은 루카스의 품에 안긴 테리를 보며 묘한 안도감과 동시에.'저 자리에 만약 아리나가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떠올리고는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네 사람의 감정은 뉴욕의 밤공기보다 더 차갑고, 동시에 어 뜨겁게 얽히고 있었다.이미 그들의 25층 요새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폭풍 전야였다.
아리나는 자기 전 침대에 앉아 일기장을 펼쳤다.평소라면 로 시작했을테지만..오늘은 펜 끝이 한참 동안 망설이듯 몸추어 있었다.[ 카시엘이 요즘 이상하다. 내가 루카스 형사님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룰 때마다 그느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 우두커니 멈 춰 서서 우리를.. 아니, 나를 바라본다. 그 무표정한 얼굴 속에 아주 잠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스쳐 지나는 것을 보았다. 나의 착각일까? ]아리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화실에서 붓을 씻던 카시엘의 손에 물감이 묻어 있길래,아리나가 수건을 들고 다가가 손을 닦아 주었을 때...카시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의 푸른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 진하게 빛났다."아리나. 당신의 손길은.... 나의 온도를 높입니다."그때 카시엘이 내뱉은 엉뚱한 말...아리나는 그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아 얼굴이 화끈거렸다.그것은 루카스 형사가 머리를 헝클어 뜨릴 때 느끼는 편안함과는 전혀 다른,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낯선 압박감이었다. 아리나는 성경책을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주님,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그분은 주님이 보내신 천사일 뿐인데... 그분이 저를 돕듯 저도 그저 그분을 돕는 것 뿐인데...'오랜시간 혼자 고아로 살아오며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해 보지 못한 아리나는낯선 감정에 어둠 속에서 생각에 자며 밤을 보내고 있었다.
사건 수사로 지친 루카스는 바람을 쐬려고 오피스텔 옥상 테라스로 올라갔다.그곳에는 이미 카시엘이 뉴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카시엘의 주위에는 희미한 은백색광이 돌고 있었지만,루카스의 눈에는 그 빛이 얘전보다 왠지 탁해 보이는 것 같았다."어이, 천사님. 당신 요즘 그림 안그리나? 왜 맨날 거실에서 아리나랑 나만 노려보고 있는거야?"루카스의 직설적인 질문에 카시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노려보는 것이 아닙니다. 관찰하는 겁니다. 당신들의 유대 관계가 아리나의 안전 수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하여간 말은 잘해요. 그런데 말이야. 당신 나 볼 때 눈빛이 좀... 꼭 나를 범죄자 보듯이 본다니까?"루카스는 카시엘의 옆으로 다가가 담배를 입에 물려다가아리나의 잔소리가 생각이 나서 다시 집어 넣었다.카시엘은 루카스의 그 사소한 행동조차 분석했다.'그는 아리나를 위해 자신의 기호를 포기하고 있다.. 이것은 고도의 헌신인가, 아니면 단순한 복종인가... 어렵다..'"루카스 밀러. 아리나가..""카시엘. 그렇게 성까지 뭍여서 부르는 것은, 인간시회에서는 싸우자는 것이거나, 아님 큰 잘못을 했을때나 하는 호칭이야. 그러지 마.""아.. 루카스. 아리나가 당신을 라고 부르는 이유를 아십니까?""어? 아.. 그야 뭐. 우리가 좀 친하잖아... 아리나가 나를 편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지. 가족만큼. 왜, 부럽나?"부럽다는 단어의 정의를검색하던 카시엘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진동을 느꼈다.그것은 천사의 코어(CORE)가 흔들리는 소리였다.카시엘은 대답도 하지 않고 옥상을 내려가 버렸다.루카스는 홀로 남겨진 자리에서 뒷머리만 긁적였다."저 뚝딱이 천사 놈... 진짜 사람 다 되었네. 질투도 할 줄 알고.."
성 빈센트 병원의 구내식당.테리는 눈앞의 샐러드를 해부하듯 포크로 찍어 누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저 멀리서 아리나와 함께 웃으며 들어오는 루카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루카스는 아리나의 가방으 ㄹ대신 들어주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아니 저 형사님은 여기가 자기네 집 안방인가?"테리의 혼잣말에 옆에 앉아 있던 동료 의사가 물었다."테리 교수, 왜그래? 루카스 형사님이랑 아리나 수간호사 진짜 잘 어울리지 않아? (작게)테리 교수, 계속 그렇게 틱틱 거리면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아랫사람드리 수근거려, 쉿! 아무튼! 저 두 사람은 정말 잘 어울리지 않아? 병원 공식 커플이라던데?"이라는 단어에 테리의 포크가 샐러드 볼 바닥을 긁었다."노처녀 히스테리는...무슨.."테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루카스 일행에게 다가갔다."아, 테리 교수님! 오늘 점심 메뉴는 뭐예요? 아리나랑 저랑 오늘 저녁에 스테이크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됐어요. 난 한가하게 고기나 썰 시간 없어요. 커른 사이에 낀 눈치없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기도 싫고!! 그리고.. 형사님. 아리나 가방은 왜 들고 다니는 거에요? 아리나는 손이 없어요?"테리의날 선 반응에 루카스는 영문도 모른 채 껄껄 웃었다."아리나가 어제 밤샘 근무해서 피곤하거든요.. 오빠가 이 정도는 해줘야죠. 안 그래, 아리나?"루카스가 아리나의 등을 툭 치자 아리나도 깔깔대며 맞장구를 쳤다.테리는 그들의 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녀에게 이성 간의 친밀함은 곧 을 의미했으니까.테리는 자신의 주머니 속, 루카스에게 주려고 챙겨온 영양제를 꽉 쥐었다.'저 멍청한 형사는 수호령만 가졌지, 눈치는 지공게 두고 왔나 봐.. 바보 멍청이...'
성 빈센트 병원의 밤은 뉴욕의 화려한 야경과는 대조적으로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아리나는 응급실 구석에서 차트를 정리하다가,자꾸만 휴게실 소파에 정좌한 채 허공을 응시하는 카시엘을 힐끔거렸다."카시엘, 아까부터 뭘 그렇게 봐요? 무섭게."카시엘의 푸른 눈동자가 천장의 환풍구를 향해 있었다.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그곳에는 검은 타르 같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며 기괴한 형상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아리나의 퇴근길을 노리던 하급 악마들의 잔재였다."공기의 질이 좋지 않습니다. 아리나, 오늘 밤은 제 옆에서 떨어지지
다음 날부터 카시엘의 이 시작되었다.아리나는 그를 집에 두려 했지만,카시엘은 며말도 안되는 협박으로 억지를 부렸다.결국 그는 아리나를 따라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은 카시엘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수많은 환자의 고통과 원망,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하급 악마들의 속삭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아리나는 그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그녀는 난폭한 환자의 손을 잡아 진정시키고, 보호자 없는 노인의 식사를 도왔다."저 간호사는 바보야. 저러다 자기가
루카스는 치료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아리나와 마주쳤다.아리나는 루카스의 상처를 보며 진심으로 걱정했다."형사님, 고생 많으셨어요. 정의를 위해 싸우시는 모습도, 다른 분을 먼저 배려하시는 모습도, 정말 멋있고 존경스럽습니다. 리스펙해요"루카스는 수많은 칭찬을 들어봤지만, 아리나의 한마디는 결이 달랐다.그녀의 눈에는 가식이 없었다. 루카스의 거친 심장이 조금 느리게 뛰었다."아... 뭐,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간호사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시엘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날 오후, 응급실은피범벅이 된 환자와 그를 데려온 경찰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그 중심에 루카스가 있었다.그는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어깨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동료들의 안위부터 챙기고 있었다."난 괜찮으니까 저쪽부터 봐줘요! 저 친구가 피를 더 많이 흘렸어!"루카스의 외침에 카시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루카스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황금빛 기운.그것은 대대로 선을 행한 집안에서만 나타나는 강력한 가호였다.'저 남자다.'카시엘은 직감했다.저 남자 곁에 아리나를 둔다면,자신이 뚝딱거리며 바닥을 닦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