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아내는 내게 안대를 써야 한다고 요구했다. 자신의 몸은 오직 첫사랑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내 마음은 완전히 식어버려 날카롭게 말했다. “넌 내 마누라야, 아니면 그놈 마누라야?!” 아내는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너와 결혼했다고 해서 너에게 모든 걸 보여줘야 해? 부부 사이에도 강요는 안 돼. 난 내 몸을 오직 도훈 오빠에게만 보여줄 거야. 넌 자격 없어.” 나중에 그녀가 내 아내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그녀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View More그날 이후, 그는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변했다.그는 나를 종처럼 부려먹었고 지민 오빠에게 했던 일들은 내가 헤픈 여자라는 낙인을 찍는 빌미가 되었다.그는 지민 오빠에게 받은 차를 팔아 명품 시계를 사달라고 요구했고 거절하자 나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그때야 깨달았다.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고 변한 건 그가 아니라 내 처지였다는 것을.엄마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임종 직전, 엄마는 오빠가 묵묵히 나를 챙겨주고 얼마나 잘해 줬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지민 오빠는 나에게 그렇게 잘해 줬는데 나는 그의 깊은 사랑을 알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함부로 대하며 상처를 줬다.사실 지민 오빠의 호의를 몰랐던 건 아니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오빠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그때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이도훈에게 완전히 미쳐있었을 뿐이었다.그래서 아빠가 협박하고 회유하고 애원하며 결혼을 강요했을 때, 나는 그저 모든 것을 망치고 싶었고 그 모든 것에 반항하고 싶었다.아빠는 날 위해 그러셨던 건데... 아빠는 지민 오빠만이 날 진심으로 사랑하고 무조건적으로 잘해주며 모든 것을 감싸줄 사람이라는 걸 아셨던 것이다.다 내가 몰라봤다. 내가 눈이 멀었고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나는 아빠의 진심을 몰라주고 아빠를 이렇게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지금 이도훈에게 속고 괴롭힘당하는 것도 모두 내 업보였다.아빠를 보러 갔다. 아빠는 침대에 누워 계셨고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 않으셨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나는 아빠 옆에서 울 수밖에 없었다.지민 오빠, 그래, 오빠야말로 부모님 다음으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 준 사람인데...그런 오빠를 내가 그렇게 쫓아내 버렸다. 그것도 내 사랑을 증명했다고 자만하면서.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몇 번이나 그 익숙한 번호를 찾아놓고도 차마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얼마나 악독한 말로 오빠에게 상처를 줬는지 떠올리기도 싫었다. 매번 실망과 절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지금 우리 사이에 내가 뭘 더 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하연은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내가 눈이 멀었었어. 누가 진심으로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인지 몰랐어. 도훈은 날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었어. 우리 집이 망하고 나서 완전히 달라졌어. 술만 마시면 나를 욕하고 때리기까지 했어. 그때야 깨달았어. 그 사람은 그저 우리 집 재산을 노리고 나랑 결혼하려고 했던 거라는 걸. 그러다가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 본색을 드러낸 거야.”솔직히 성하연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한때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던 여자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녀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할 수 없었다. 우리 사이의 인연은 이미 끝났고 무엇보다 나는 이제 방채아가 있었다. 그러니 나는 그녀의 일에 끼어들 자격이 없었다.그래서 그냥 한마디만 내뱉었다.“이만 돌아가 봐. 나 일하러 가야 해.”성하연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을 막아서며 내 손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지민 오빠, 나 그냥 속은 거야. 용서해 줘. 잠시 정신이 나갔었어. 이제 내가 잘못했단 걸 알았어. 오빠가 나한테 해준 모든 걸 이제야 알았다고. 너무 늦게 알아서 후회돼.”나는 그녀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설령 내가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다 말해줬더라도, 그녀는 그저 내가 참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도훈의 달콤한 말 몇 마디보다 그녀를 기쁘게 할 순 없었을 테니까.이제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이도훈에게까지 버림받으니 그제야 내가 좋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나는 그녀가 이 사실을 이해하길 바랐다.“하연아, 나는 곧 결혼해.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말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그녀는 다시 나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안 돼, 그 여자랑 결혼하지 마. 오빠는 날 좋아했잖아. 우리 다시 합치면 안 돼? 이젠 오빠만 사랑할게. 다시는 다
어머니는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전화를 끊고 바로 만날 장소와 여자분 사진을 보내주셨다.솔직히 나는 스물여덟이었으니 부모님이 이 아가씨를 소개해 주시려고 얼마나 애쓰셨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하신 걸 보면, 분명 뛰어난 아가씨일 테니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방채아는 성하연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온화하고 지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분위기 있고 말솜씨도 세련되고 교양 있는 여성이었다.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치 온천에 몸을 담근 듯,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서서히 풀리고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나는 그녀에게 내 실패한 결혼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훌륭한 여성이라면 내 과거를 신경 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우연히도 우리는 같은 도시에서 대학을 다녔고 토론 대회에서 상대로 만난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내가 그때 토론에서 그녀에게 얼마나 공격적이었는지 잊을 수 없다고 농담했다.그녀를 이곳 숙소에 바래다주고 나서 그녀는 먼저 우리 집에 방문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우리는 시간을 정했다.서로가 마음에 든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녀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보고 차에 타려는데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땠냐고 물으시기에 간단히 말씀드렸더니 너무 기뻐하시며 아버지와 이 기쁜 소식을 나누려고 급히 전화를 끊으셨다.방씨 가문도 꽤 큰 기업이라 우리 두 집안의 결혼은 강강 연합이었다.그 후로 나는 방채아와 아주 잘 지냈고 곧 연인 사이가 되었다.내 작은 작업실도 좋은 성과를 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고 나는 다시 가족 회사의 관리직으로 복귀하면서 작업실은 친구에게 완전히 맡겼다.나는 아주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준비했고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서 프러포즈에 성공했다.정략결혼에는 물론 이익이라는 동기가 있지만 나는 결혼의 책임과 사랑 역시
성하연은 잠시 멍해졌다. 내가 그녀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그녀는 약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혼 서류를 받아 꼼꼼히 살펴보던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드디어 나를 놔 주겠다는 거네? 앞으로 우리 엄마한테 오지도 마. 도훈 오빠가 알면 기분 나빠해.”“알았어.”그 후 우리는 법원에 가서 이혼 신고를 했다. 이혼 증명서를 받는 순간, 나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성하연에 대한 책임감도 사라졌으니 이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그 후 나는 일에만 전념했다. 부모님도 내가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비록 동창과 함께 하는 작은 작업실이었지만 나에게는 아직 인맥이 있었다.큰 프로젝트를 연달아 맡으면서 정신없이 바빴지만 삶은 매우 충실했다. 성하연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나는 동창과 함께 하는 작업실이 멀지 않아 곧 부모님이 만족하실 만큼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때, 한미림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듣자 하니, 한미림은 이혼 증명서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응급처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 후에도 성하연은 이도훈과 헤어지려 하지 않았고 회사는 부도 직전에 이르러 그녀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결국, 성씨 가문은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고 한미림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한미림의 장례식에는 가지 않았다. 환영받지 못할 것 같았고 성하연의 비아냥거림을 듣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다만, 지인을 통해 장례식이 매우 쓸쓸하게 치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나는 비서에게 성권휘의 상황을 주시하고 요양원 비용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나의 개인 자금으로 충당하도록 지시했다. 다만 그 외의 일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그날 저녁, 오랜만에 보는 카톡 프로필 사진이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내가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평생 아끼고 보듬어 줄 수 있고 지난 몇 년처럼 내 모든 걸 쏟아부어 그녀에게 기댈 곳이 되어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마음속으로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노력과 진심,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의 매 순간을 통해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는 첫날밤에 이 모든 것이 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단지 아버지에게 강요당했을 뿐이고 심지어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 모든 것이 결국 나를 완전히 단념하게 만들었다.나는 진심으로 부모님께 사과드렸고 부모님은 사과를 받아주셨지만 여전히 나를 벌하기로 결정했다. 나더러 나의 작은 작업실에서 성공을 거둬내라고 말이다. 이에 대해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급한 부름으로 집안 회사를 돕게 되면서 이 작은 작업실은 동창이 운영하고 있었다. 이것은 부모님이 나에 대한 일종 시험이었다. 나 역시 도전을 좋아하고 내 능력으로 이 작업실을 얼마나 크게 키울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었다.하지만 성하연과 내 일이 이렇게까지 퍼질 줄은 몰랐다. 작업실까지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화제의 중심이 된 건 좀 난처했지만 세간의 뒷말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딱히 해명할 것도 없었고 내게 직접 물어오는 이도 없었기에 나는 그저 아무 일 없는 듯 모르는 척했다.그들이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연회 후에 손님들이 다 가고 나서 성하연은 남은 손님들을 붙잡고 추궁하여 큰 소란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연회는 불미스럽게 끝났고 투자 유치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물 건너갔다.한미림은 그 충격으로 혈압이 올라 입원하셨다고 했다.이튿날 아침,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성하연과의 관계와는 별개로 한미림은 나에게 항상 잘해주셨던 분이니 마땅히 문병을 가야 했다.게다가 아직 성하연과 이혼 절차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기에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명확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한미림은
나는 그녀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죽음 같은 침묵이 몇 초간 이어지다가, 짝하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깨졌다. 한미림은 손을 거두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가 혼인신고를 한 남편은 지민이야! 하연아, 제발 그만 좀 해!”성하연은 뺨을 감싸 쥐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한미림을 노려보았다. 한미림은 그녀에게 설명하려 했지만, 결국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 결국 싸움으로 번졌다.하객들은 각양각색의 눈빛으로 이 극적인 장면을 구경했고 이도훈은 안절부절못하며 나 대신 상황을 수습하려 나섰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먼저 성하연과 한미림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나는 마치 벌거벗은 채 광장에 내던져진 것 같은 수치심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억울함을 억누르면서도 이 끔찍한 사태는 해결해야 했다.나는 최대한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그만 싸우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앞으로 성씨 가문의 일에는 다시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하객들은 모두 내가 초대한 사람들이었기에 결국 나는 사과를 하고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나는 하객들에게 사과하고 성하연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나왔다. 그러자 많은 하객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따라 나왔다.이 연회는 내가 주최한 것이었고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름 있는 기업 사장들이었다. 그들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우리 집안의 체면을 봐서거나 나 개인의 체면을 봐서였다.그런데 내가 떠나니 그들 역시 전혀 모르는 이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함께 나왔다.입구에서 다시 한번 모두에게 사과하자 다들 한결같이 웃으며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다음에 다시 초대해주세요.”그러면서 성씨 가문의 딸이 왜 저렇게 무례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한미림은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성하연에게 저지당했다. 그녀는 일부러 내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엄마, 그냥 가게 둬. 아빠가 쓰러지셨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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