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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Penulis: 민들레
병실 안.

하민재는 여전히 열을 올리며 이나은이 해외에 있던 동안 변도영이 신지아를 어떻게 대했는지 얘기하고 있었다.

“어느 해는 말이죠. 손목을 그어 자살하겠다면서 도영이 형한테 사진까지 보냈다니까요? 그런데 형이 어떻게 한 줄 아세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밖으로 내던졌어요. 그리고 아주 차갑게 말했죠. 죽을 거면 나가서 죽으라고 했어요. 집 더럽히지 말고.”

이 일은 하민재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당시 기온은 영하 10도, 신지아는 눈바람 속에서 덜덜 떨며 팔목의 피조차 얼어붙을 때까지 버려졌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며 하민재는 한편으론 우습고 또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듯 웃어댔다.

“도영이 형이 신지아 씨를 대하는 태도는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반대로 누나가 해외에서 감기만 걸려도 형은..”

“그만.”

하민재의 말을 변도영이 차갑게 끊어버렸다.

“쳇, 괜히 민망해선.”

“나은 누나, 봐요. 형이 저렇게 협박하잖아요. 이거 그냥 넘어가실 거예요?”

하민재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이나은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변도영의 마음은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얽혔다.

마침 그때, 하민재가 예약해 둔 VIP 병실이 준비되었다.

변도영은 말없이 전표를 집어 들고 직접 수속을 밟으러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하민재는 이나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보셨어요? 누나가 일만 걸리면 형은 누구보다 신경 쓰잖아요.”

그 말은 작게 흘러나와 변도영은 듣지 못했다.

그는 전표를 들고 내려가 수납을 마쳤다.

일부러 환경이 조용한 병실을 골라주었지만 일을 끝내자 문득 신지아가 떠올랐다.

잠시 망설이던 변도영은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제야 신지아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신지아 씨 보호자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하성 병원 의료진입니다.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렸으나 연결이 되지 않아 메시지로 남깁니다. 신지아 씨가 교통사고로 위중한 상태라 긴급 수술 동의가 필요합니다. 확인 즉시 병원으로 와주십시오.]

하성 병원은 바로 지금 자신이 있는 병원이었다.

변도영은 묵묵히 화면을 바라보다 문득 방금 하민재가 했던 말이 스쳐갔다.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자살 소동 이후, 신지아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걸.

예전엔 귀찮을 만큼 전화를 해댔지만 언젠가부터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찾지 않았고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다.

알 수 없는 충동에 변도영은 전화를 걸었다.

...

신지아는 병실 침대에 앉아 막 변호사에게 이혼 상담을 마친 참이었지만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잠시 얼어붙었다.

오늘 하루 종일 변도영에게서 연락이 없을 거라 이미 각오했는데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다니.

이나은이 돌아오기만 하면 온 마음을 쏟던 사람이 이제 와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신지아는 전화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일에 변도영도 잠깐 당황했고 솔직히 짜증이 조금 났다.

‘역시 또 신지아 특유의 수작이었군. 또 속았네.’

하지만 이제 와서 끊기도 늦어버렸기에 그는 차갑게 물었다.

“어디야?”

“병원이요.”

신지아는 담담히 대답했다.

변도영은 코웃음을 쳤다.

목소리는 또렷하고 단정했기에 죽을 지경의 교통사고 피해자라기엔 너무나 멀쩡했다.

“교통사고 났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어때?”

무심한 말투였지만 신지아의 심장은 순간 멎은 듯했다.

‘내 상태를 물어보는 건가?’

단 한 번도 신지아의 몸을 걱정해 준 적 없는 사람이었으니 이런 질문을 듣는 게 너무도 낯설었다.

눈시울이 괜히 뜨거워지고 가슴엔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리고 손은 저절로 아랫배로 향했다.

‘혹시 그래도 나를 조금은 신경 쓰는 걸까?’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그런데...”

망설이며 아이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나, 변도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별일 없으면 빨리 집에 들어가.”

“나은이도 교통사고가 났어. 원래 몸도 약한데 이번엔 잘 보살펴야 한다더군. 집에 가면 보양식이나 끓여. 영양 밸런스 맞춰야 회복이 빠를 거야.”

그 순간, 신지아는 방금 전 헛된 꿈을 꾼 자신이 우스워졌다.

‘내게 건넨 유일한 부탁이 다른 여자를 위해 음식을 만들라는 거라니...’

예전에 변도영이 술로 몸을 망가뜨리던 시절 그녀는 견디다 못해 요리를 배웠다.

기름 냄새조차 싫어하던 사람이 한 달 내내 매일 다른 보양식을 끓였다.

감동하는 건 바라진 않았지만 그것마저 당연시하며 이제는 이나은을 위해 만들라는 말에 신지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결혼 생활이란 게 결국 이토록 우스운 연극이었구나.’

변도영은 24시간 내내 이나은을 지켜봤고 그녀가 감기만 걸려도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하지만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이까지 잃은 일은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 시키세요.”

신지아는 담담히 말했다.

“나은이 입맛이 까다로워. 남이 해 준 건 잘 못 먹어.”

신지아는 멈칫했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변도영 씨, 전 당신 아내지 비서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뜻이야?”

변도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말 그대로예요. 그 보양식, 전 안 해요.”

신지아가 그의 요구를 거절한 건 처음이었기에 변도영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신지아, 또 괜히 질투하는 거야?”

“이나은은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지켜야 할 사람이야.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나은이를 챙기지 못해.”

그는 냉랭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잊지 마. 원래 그 자리는 네가 빼앗은 자리야. 지금 네가 앉아 있는 자리는 원래 나은이 자리였어.”

그 말이 떨어지자 신지아의 가슴 위로 산처럼 무거운 압박이 내려앉았다.

그건 늘 변도영이 늘 하던 말이었다.

들을 때마다 반박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말.

그 시작은 그의 아버지가 신장 이식을 필요로 하던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혈액형이 희귀했기에 결국 신지아의 어머니만 적합했다.

신지아의 어머니는 그 수술을 빌미로 이건 조건을 내세웠다.

“제 딸을 변도영의 아내로 맞아야 합니다.”

하지만 수술은 실패했고 신지아의 어머니는 생명이 위태로워졌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언론 앞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제 딸 신지아를 변도영과 결혼시켜 주세요.”

이미 이나은과 사랑하고 있던 변도영은 가문의 압박 속에 결국 연인이었던 그녀와 갈라섰다. 그렇게 이나은은 상처 입고 해외로 떠났다.

이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신지아의 어머니가 이미 암 선고를 받았고 유서를 남겨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애초에 그녀는 자신의 딸을 변씨 가문에 들이기 위해 모든 걸 계획한 게 아니냐고.

그 비난 속에서 신지아는 수차례 도망치고 싶었고 거부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포기했다.

만약 거부한다면 어머니의 희생이 아무 의미 없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스스로를 달래며 버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나 이제는 더 버틸 이유가 없었다.

‘엄마가 지금의 날 본다면 분명히 안쓰러워했을 거야.’

“그렇다면, 이제 자리를 돌려주면 되겠네요.”

신지아는 떨리는 손으로 막 서명한 이혼 합의서를 움켜쥐고 담담히 말했다.

“변도영 씨, 저희 이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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