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화

Author: 민들레
병실 안.

하민재는 여전히 열을 올리며 이나은이 해외에 있던 동안 변도영이 신지아를 어떻게 대했는지 얘기하고 있었다.

“어느 해는 말이죠. 손목을 그어 자살하겠다면서 도영이 형한테 사진까지 보냈다니까요? 그런데 형이 어떻게 한 줄 아세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밖으로 내던졌어요. 그리고 아주 차갑게 말했죠. 죽을 거면 나가서 죽으라고 했어요. 집 더럽히지 말고.”

이 일은 하민재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당시 기온은 영하 10도, 신지아는 눈바람 속에서 덜덜 떨며 팔목의 피조차 얼어붙을 때까지 버려졌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며 하민재는 한편으론 우습고 또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듯 웃어댔다.

“도영이 형이 신지아 씨를 대하는 태도는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반대로 누나가 해외에서 감기만 걸려도 형은..”

“그만.”

하민재의 말을 변도영이 차갑게 끊어버렸다.

“쳇, 괜히 민망해선.”

“나은 누나, 봐요. 형이 저렇게 협박하잖아요. 이거 그냥 넘어가실 거예요?”

하민재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이나은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변도영의 마음은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얽혔다.

마침 그때, 하민재가 예약해 둔 VIP 병실이 준비되었다.

변도영은 말없이 전표를 집어 들고 직접 수속을 밟으러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하민재는 이나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보셨어요? 누나가 일만 걸리면 형은 누구보다 신경 쓰잖아요.”

그 말은 작게 흘러나와 변도영은 듣지 못했다.

그는 전표를 들고 내려가 수납을 마쳤다.

일부러 환경이 조용한 병실을 골라주었지만 일을 끝내자 문득 신지아가 떠올랐다.

잠시 망설이던 변도영은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제야 신지아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신지아 씨 보호자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하성 병원 의료진입니다.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렸으나 연결이 되지 않아 메시지로 남깁니다. 신지아 씨가 교통사고로 위중한 상태라 긴급 수술 동의가 필요합니다. 확인 즉시 병원으로 와주십시오.]

하성 병원은 바로 지금 자신이 있는 병원이었다.

변도영은 묵묵히 화면을 바라보다 문득 방금 하민재가 했던 말이 스쳐갔다.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자살 소동 이후, 신지아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걸.

예전엔 귀찮을 만큼 전화를 해댔지만 언젠가부터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찾지 않았고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다.

알 수 없는 충동에 변도영은 전화를 걸었다.

...

신지아는 병실 침대에 앉아 막 변호사에게 이혼 상담을 마친 참이었지만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잠시 얼어붙었다.

오늘 하루 종일 변도영에게서 연락이 없을 거라 이미 각오했는데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다니.

이나은이 돌아오기만 하면 온 마음을 쏟던 사람이 이제 와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신지아는 전화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일에 변도영도 잠깐 당황했고 솔직히 짜증이 조금 났다.

‘역시 또 신지아 특유의 수작이었군. 또 속았네.’

하지만 이제 와서 끊기도 늦어버렸기에 그는 차갑게 물었다.

“어디야?”

“병원이요.”

신지아는 담담히 대답했다.

변도영은 코웃음을 쳤다.

목소리는 또렷하고 단정했기에 죽을 지경의 교통사고 피해자라기엔 너무나 멀쩡했다.

“교통사고 났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어때?”

무심한 말투였지만 신지아의 심장은 순간 멎은 듯했다.

‘내 상태를 물어보는 건가?’

단 한 번도 신지아의 몸을 걱정해 준 적 없는 사람이었으니 이런 질문을 듣는 게 너무도 낯설었다.

눈시울이 괜히 뜨거워지고 가슴엔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리고 손은 저절로 아랫배로 향했다.

‘혹시 그래도 나를 조금은 신경 쓰는 걸까?’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그런데...”

망설이며 아이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나, 변도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별일 없으면 빨리 집에 들어가.”

“나은이도 교통사고가 났어. 원래 몸도 약한데 이번엔 잘 보살펴야 한다더군. 집에 가면 보양식이나 끓여. 영양 밸런스 맞춰야 회복이 빠를 거야.”

그 순간, 신지아는 방금 전 헛된 꿈을 꾼 자신이 우스워졌다.

‘내게 건넨 유일한 부탁이 다른 여자를 위해 음식을 만들라는 거라니...’

예전에 변도영이 술로 몸을 망가뜨리던 시절 그녀는 견디다 못해 요리를 배웠다.

기름 냄새조차 싫어하던 사람이 한 달 내내 매일 다른 보양식을 끓였다.

감동하는 건 바라진 않았지만 그것마저 당연시하며 이제는 이나은을 위해 만들라는 말에 신지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결혼 생활이란 게 결국 이토록 우스운 연극이었구나.’

변도영은 24시간 내내 이나은을 지켜봤고 그녀가 감기만 걸려도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하지만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이까지 잃은 일은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 시키세요.”

신지아는 담담히 말했다.

“나은이 입맛이 까다로워. 남이 해 준 건 잘 못 먹어.”

신지아는 멈칫했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변도영 씨, 전 당신 아내지 비서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뜻이야?”

변도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말 그대로예요. 그 보양식, 전 안 해요.”

신지아가 그의 요구를 거절한 건 처음이었기에 변도영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신지아, 또 괜히 질투하는 거야?”

“이나은은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지켜야 할 사람이야.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나은이를 챙기지 못해.”

그는 냉랭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잊지 마. 원래 그 자리는 네가 빼앗은 자리야. 지금 네가 앉아 있는 자리는 원래 나은이 자리였어.”

그 말이 떨어지자 신지아의 가슴 위로 산처럼 무거운 압박이 내려앉았다.

그건 늘 변도영이 늘 하던 말이었다.

들을 때마다 반박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말.

그 시작은 그의 아버지가 신장 이식을 필요로 하던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혈액형이 희귀했기에 결국 신지아의 어머니만 적합했다.

신지아의 어머니는 그 수술을 빌미로 이건 조건을 내세웠다.

“제 딸을 변도영의 아내로 맞아야 합니다.”

하지만 수술은 실패했고 신지아의 어머니는 생명이 위태로워졌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언론 앞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제 딸 신지아를 변도영과 결혼시켜 주세요.”

이미 이나은과 사랑하고 있던 변도영은 가문의 압박 속에 결국 연인이었던 그녀와 갈라섰다. 그렇게 이나은은 상처 입고 해외로 떠났다.

이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신지아의 어머니가 이미 암 선고를 받았고 유서를 남겨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애초에 그녀는 자신의 딸을 변씨 가문에 들이기 위해 모든 걸 계획한 게 아니냐고.

그 비난 속에서 신지아는 수차례 도망치고 싶었고 거부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포기했다.

만약 거부한다면 어머니의 희생이 아무 의미 없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스스로를 달래며 버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나 이제는 더 버틸 이유가 없었다.

‘엄마가 지금의 날 본다면 분명히 안쓰러워했을 거야.’

“그렇다면, 이제 자리를 돌려주면 되겠네요.”

신지아는 떨리는 손으로 막 서명한 이혼 합의서를 움켜쥐고 담담히 말했다.

“변도영 씨, 저희 이혼해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5. 11. 21. AM. 12:57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39화

    신지아는 윤형우가 손을 써 둔 것이라 짐작했다.그녀는 서인호에게 윤형우에게 도움을 청했던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덧붙였다.“함정은 아닐 거예요.”그제야 안심한 서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계약을 진행할게요.”연미주와 임윤지가 흔쾌히 동의해 준 덕분에 신지아는 찰이를 다시 별장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윤형우의 비행기 편이 낮 시간대라 신지아는 휴가를 내고 공항까지 배웅하려 했지만 윤형우가 극구 사양하는 통에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어차피 보름 남짓한 짧은 출장일 뿐이었고 그동안에도 영상통화를 하면 되니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생각지 못한 행운이 겹쳐 같은 날 LL기업 측에서 현재 사정을 고려해 납품 기한을 보름가량 늦춰주겠다는 연락이 왔다.대행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생산 일정이 빠듯했는데 LL기업이 기한을 유예해 주면서 큰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UME 직원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렸고 신지아는 이와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고우빈과 상의 끝에 공장 구역의 보안 검사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자, 신지아는 윤형우에게 줄 선물을 구상했다.웹 서핑으로 다채로운 3D 입체 그래픽을 구경하던 그녀는 마침내 직접 팔을 걷어붙여 자신과 윤형우의 외모적 특징을 조화롭게 빚어냈다.작업을 끝마친 후 결과물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정교하게 완성된 모델링 얼굴은 영락없이 자신과 윤형우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 같았기 때문이다.‘만일 미래에 우리 아이가 태어난다면, 분명 이런 모습일까.'황홀한 상상이 뇌리를 스친 순간, 신지아는 스스로 놀라며 즉시 잡념을 잘라냈다.섣부른 기대는 되려 상처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기에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차라리 안전했다.지금 누리는 이 행복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쳤으니까.신지아는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다 결국 이끌리듯 윤형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어쩐 일인지 상대는 수신음만 길게 울릴 뿐 받지 않았다.시간을 따져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38화

    신지아의 이야기를 들은 김주리 역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날 내가 직접 문과 창문을 다 닫고 대문까지 확실히 잠그고 나온 건 맹세할 수 있어요.”신지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상대가 열쇠를 구해서 문을 열고 들어왔으면서, 정작 장비를 훔쳐 간 게 아니라 창고에 그대로 뒀다는 건 확실히 앞뒤가 맞지 않네요.”김주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너무 무거워서 가져가지 못했거나, 아니면 공장 단지 사람 중에 UME에 원한을 품고 화풀이를 한 걸지도 모르죠.”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방금 언급한 두 가지 가능성 모두, 결국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생각하면 그 자식 짓일 수도 있어요!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작정한 거죠!”김주리는 분을 참지 못하고 차 뒤편을 쏘아보았다.소우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판을 이렇게 크게 짰다는 생각에 김주리는 더 울화가 치밀었다. 방금 뺨을 더 세게 때리지 못한 게 한으로 남을 지경이었다.신지아는 침묵을 지켰다. 일리 있는 말 같으면서도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듯 영 미심쩍었다.“이제 저 어떡해요?”김주리는 결국 눈물을 글썽였다.UME에서 손해 배상을 청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던 것이다. 피해 액수가 워낙 커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넣어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 뻔했다.신지아는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에서 그 불안감을 읽어냈다.실제로 이번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중대한 사안이었다. 약속된 기한 내에 납품하지 못한다면 김주리 개인의 배상 능력을 넘어 UME 자체에 치명적인 위기가 닥칠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이미 심적으로 지쳐있을 김주리에게 신지아는 더 이상 압박을 가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입을 닫은 채 김주리를 자취방 앞까지 바래다주었다.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낸 김주리는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나직하게 인사했다.“도와줘서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37화

    말을 마친 김주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발걸음을 옮겼다.소우민이 끈질기게 다시 그녀를 뒤쫓으려던 찰나,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끼이익 비명 같은 마찰음을 내며 두 사람 옆에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가고 신지아가 창밖으로 김주리를 바라보며 말했다.“타요.”김주리는 아주 잠깐 멈칫했을 뿐, 이내 망설임 없이 캐리어를 뒷좌석에 밀어 넣고 조수석에 올라탔다.신지아는 가속 페달을 밟아 넋이 나간 소우민을 저 멀리 뒤로 따돌렸다. 차에 탄 김주리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앉아 붉어진 눈으로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울고 싶으면 울어요. 계속 꾹꾹 누르고 있으면 속에서 병나니까.”신지아는 전방을 주시하며 조용히 차 안의 음악을 켜고 콘솔 박스 위에 티슈를 얹어주었다.신지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주리는 얼굴을 감싸 쥔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음 같은 울음을 참아내려 애쓰는 듯하더니, 이내 참아왔던 둑이 터진 것처럼 오열을 터뜨렸다. 그간 마음속에 쌓여온 모든 원망과 슬픔을 남김없이 쏟아내는 듯한 통곡이었다.“그 사람이랑 정말 오랫동안 만났어요. 참 다정한 사람이었거든요. 예전에 좁고 어두운 지하방에서 같이 살 때, 제가 생리통으로 너무 아파하면 밤새 손으로 배를 문질러서 따뜻하게 해주던 사람이었어요. 부성 그룹 들어가서 첫 월급 탔을 때는, 제가 지나가다 예쁘다고 했던 수백만 원짜리 목걸이를 덜컥 사 오기도 했고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전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김주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 가슴속 이야기를 쉬지 않고 쏟아냈다.신지아는 앞만 응시한 채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녀에게 마음을 추스를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함이었다.얼마나 달렸을까, 울음소리가 차츰 잦아들더니 김주리의 감정도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그녀가 신지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저번에 제가 팀장님한테 그렇게 무례하게 굴었는데, 왜 절 도와주시는 거예요?”“전 그저 배신당해서 오갈 데 없는 여자를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36화

    신지아가 카드를 건네자 변도영은 그것을 받아드는 대신, 그대로 그녀의 가방 안에 밀어 넣었다.“이건 도로 가져가. 내 자의로 준 거니까 그동안 내가 주는 보상이라고 생각해. 정말 갖기 싫으면 버려도 좋아. 한번 준 걸 다시 받는 건 내 취향이 아니거든.”말을 마친 변도영이 눈을 감았다.신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고민하다가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병실을 나섰다.그런데 병원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휴대폰으로 알림이 울렸다. 방금 전의 돈이 다시금 고스란히 그녀의 계좌로 입금된 것이다.이어서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안심해. 끝내기로 했으면 끝내는 거야. 이 돈으로 널 붙잡거나 협박할 생각은 없으니까.]발신자 번호가 없는 익명의 메시지였다. 아마 변도영이 새 번호를 이용해 보낸 모양이었다.그녀가 받지 않을까 염려했는지, 뒤이어 메시지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예전에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해 줘.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아서.]거기까지 말하니 신지아도 굳이 돈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한편, 온라인상에서는 부성 그룹과 UME의 표절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양측 팬들의 공방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상을 발칵 뒤집을 만한 폭로가 터져 나왔다.김주리가 소우민과 이나은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그 안에는 매우 노골적이고 부적절한 대화들이 가득했고, 순식간에 여론의 흐름은 급변하기 시작했다.뒤이어 김주리가 사진 한 장을 더 게재했다. 카페에 마주 앉아 애틋한 눈빛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소우민은 이나은의 손을 탐욕스럽게 움켜쥐고 있었고 이나은 역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그의 손을 뿌리칠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이 사진들은 순식간에 표절 관련 이슈를 덮어버렸고 그 화제성은 표절 시비보다 훨씬 더 폭발적이었다.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소식은 변씨 저택까지 전해졌다.이때 변씨 가문은 이미 이나은이 변도영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다는 사실을 파악한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35화

    ‘선배와 윤해원의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왜 굳이 내 생각을 묻는 거지?’신지아는 잠시 고민하다 담담하게 답했다.“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은 오직 선배와 UME가 그 내기에서 이기길 바랄 뿐이에요. UME는 선배의 피와 땀이 어린 곳인데, 남의 손에 넘어가게 둘 수는 없잖아요.”고우빈은 그녀의 표정을 세심히 살폈다. 억지로 웃음을 짓는 기색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아마 윤형우가 그녀에게 다른 데 신경을 쓰도록 조언했거나, 혹은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적어도 그가 걱정했던 최악의 상황보다는 나았으니까.고우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그렇게 될 거야.”고우빈과 헤어진 뒤, 신지아는 변하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다행히 변도영의 상처는 동맥을 빗겨 나가 단순 외상에 그쳤다. 고열에 시달리긴 했으나 발견이 빨랐던 덕분에 금세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병실에 나타난 신지아를 보고 변도영은 처음엔 또 꿈을 꾸는 줄만 알았다.혹여 환상일까 싶어 상처 부위를 은근슬쩍 눌러보았으나 밀려오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꿈이 아님을 실감했다.“왔어?”의식이 흐릿해지기 전의 상황을 떠올린 변도영은 이나은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실을 다급히 해명하려 했다.“신지아, 그게 아니라... 난 정말 아무 일도...”하지만 신지아는 그의 말을 바로 잘라냈다.“알고 있어요.”그 말에 변도영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신지아가 옆 의자에 앉자, 변도영의 팽팽하게 긴장했던 신경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방금 꿈을 꿨는데, 예전 별장에서 지낼 때 기억이 나더라고. 기억나? 내가 아팠을 때 네가 오랫동안 내 곁을 지켜줬던 거. 할머니 말씀이 맞았어. 사람은 잃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아나 봐. 그동안 내 명의로 된 재산을 전부 정리해 봤어. 네가 예전에 말했던 재결합

  • 첫사랑만 구한 남자   제534화

    칼끝이 들이닥쳤지만 신지아는 미처 피할 틈이 없었다.바로 그때 누군가의 손이 거칠게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옆으로 끌어당겼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들이닥쳐 이나은의 손에서 칼을 빼앗고 바닥에 짓눌렀다.“괜찮아?”아직 가시지 않은 긴장감이 묻어나는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지아가 고개를 들어 보니 고우빈이었다.“고마워요, 난 괜찮아요.”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고우빈이 그녀를 잡았던 손을 놓으며 말했다.“서인호가 그러더구나. 네가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자마자 급히 나갔다고. 그래서 여기로 왔을 거라 짐작했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돼서 와봤는데,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어젯밤 고이진과 만난 이후, 고우빈은 이 사실을 신지아에게 털어놓아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었다.그녀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는 것도 원치 않았다.오랜 고민 끝에 그가 가볍게 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지아야, 실은... 너한테 해줄 말이 있어.”고우빈이 뜸을 들이자 신지아는 어젯밤 그와 윤해원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변하늘을 힐끗 바라본 뒤 말했다.“잠깐만 기다려 주세요.”말을 마친 신지아는 겨우 정신을 차린 변하늘에게 다가가 그녀를 문밖으로 데리고 나갔다.“하늘 씨가 한 가지만 약속해 주면, 변도영 만나러 갈게요.”“무슨 일인데요?”그녀가 가 주겠다는 말에 변하늘의 얼굴에 단박에 화색이 돌았다.신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부모님 설득해서 고우빈과의 약혼 취소해줘요.”변하늘은 멍해졌다.“네? 왜요?”“선배는 하늘 씨 안 좋아해요. 그리고 하늘 씨 역시 선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요.”신지아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 두 사람 결혼하면 결국 비극으로 끝날 거예요.”변하늘 역시 과거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터였다.고우빈도...신지아는 그날 UME 사무실에서 고우빈이 자신은 누구와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