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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첫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作者: 지호

1.첫 만남

作者: 지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1 15:17:35

벚꽃이 속절없이 흩날리던 4월이었다.

학생식당 구석 자리, 배유진이 국그릇을 밀어놓고 몸을 바짝 들이밀었다. 눈빛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지호야, 나 남자친구 생겼어.”

윤지호는 국에 말아 넣은 밥을 천천히 떠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유진은 같은 과 신입생이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말을 놓고 지낼 만큼, 사람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낯가림이 심한 지호와는 정반대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죽이 잘 맞았다.

“축하해.”

지호가 짧게 답했다. 하지만 유진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근데 있잖아, 그 오빠 친구가 아직 여자친구가 없대.”

유진의 눈이 반짝였다.

“동학 오빠 말로는 진짜 잘생겼다던데? 학교에서 인기 엄청 많다고.”

평범한 외모에, 평범하게 살아온 스무 해였다. 지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국물을 삼켰다. 그런데도 ‘잘생겼다’는 세 글자가 머릿속에서 반짝이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유진이 이야기한 남자의 이름은 강휘웅. 그때의 지호에게는 그저 처음 듣는 타인의 이름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놀이공원 가기로 했어. 너도 같이 가.”

너무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지호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스무 살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 해본 자신이 그런 자리에 낄 자격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됐어.”

“왜?”

“괜히 나만 어색하잖아.”

유진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윤지호. 너 대학 와서 계속 이러고 살 거야? 예쁜 옷도 좀 입고, 연애도 좀 하고 그래야지.”

지호는 대답 대신 물컵을 들었다. 연애라는 단어는 늘 자신과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예쁜 친구들 곁에는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다가왔고, 지호는 늘 그 옆에서 축하만 해주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마음 한구석이 조금 흔들린 것도 사실이었다. 잘생겼다는 말 때문이었다.

강휘웅. 유진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 부른 그 이름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토요일 오후를 앞두고, 지호는 옷장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입었다 벗기를 세 번쯤 반복한 끝에 결국 무난한 흰 셔츠와 청바지를 골랐다. 거울 속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특별할 것 없는 얼굴. 눈에 띄는 몸매도 아니었다.

'괜히 기대하지 말자. 잘생긴 남자는 원래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지호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의 놀이공원 정문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교복 입은 학생들, 가족 단위 방문객들, 사진을 찍으며 웃는 커플들 사이로 유진과 동학이 먼저 손을 흔들었다.

“어, 휘웅이 왔다!”

동학이 정문 쪽을 가리켰다. 지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트라이프 셔츠에 블랙 팬츠 차림의 남자가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게 포카칩 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지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키가 컸다. 멀리서 봐도 단번에 눈에 들어올 만큼 훤칠한 체격이었다. 어깨는 넓었고, 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은 단단해 보였다. 짙은 눈썹 아래 길게 내려앉은 눈매는 차분했고, 콧대는 반듯했다. 웃고 있지 않은데도 어딘가 느긋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화려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얼굴이라기보다는, 오래 바라볼수록 더 잘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얼굴이었다.

'유진이가 왜 며칠 내내 이 얘기만 했는지 알겠다.'

“휘웅아, 얘가 윤지호.”

동학의 소개에 휘웅이 지호를 한 번 바라보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낮고 나른한 목소리였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선 뒤, 유진과 동학은 신난 아이들처럼 앞장서 걸었다. 자연스럽게 뒤에는 지호와 휘웅만 남았다.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둘 사이엔 포카칩 씹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오도독. 오도독.

지호는 괜히 발끝만 내려다봤다. 그러다 겨우 용기를 냈다.

“포카칩 좋아하세요?”

휘웅이 고개를 돌렸다. 잠시 지호를 바라보던 그가 말없이 과자 봉지를 내밀었다.

“응, 많이.”

지호는 얼떨결에 과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휘웅은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리며 짧게 덧붙였다.

“다행이다.”

“네?”

“같이 먹을 사람 생겨서.”

툭 던진 한마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다는 걸까. 아니면 그냥 별뜻 없는 말일까. 그 짧은 문장 하나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유진이 멀리서 소리쳤다.

“저거 타자!”

고개를 들자 거대한 바이킹이 눈앞에 들어왔다. 지호는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 저런 거 진짜 못 타.”

유진이 귓가에 바짝 붙어 속삭였다.

“과학적으로 말이야, 사람이 심장이 뛰면 설렘으로 착각한대. 그러니까 같이 타.”

“나는 안 탄다고.”

하지만 유진과 동학은 이미 양쪽에서 지호를 끌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휘웅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전바가 내려왔다. 바이킹이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꺄악!”

지호는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겨우 놀이기구에서 내려왔을 때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휘웅이, 처음으로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선명해서 지호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진 말대로라면 지금 뛰는 심장은 놀이기구 때문이어야 했다. 그런데 자꾸만 눈앞의 남자 때문인 것 같았다.

해가 기울 무렵, 네 사람은 회전목마 앞에 멈춰 섰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휘웅이 회전목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릴 때 좋아했었어.”

“회전목마를요?”

“응. 안 무섭잖아.”

지호는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질녘, 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노을빛이 휘웅의 옆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지호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잘생겼다는 생각보다 이상하게 편안하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윤지호.”

휘웅이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

“이름 예쁘네.”

순간, 지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남자 이름 같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봤다. 하지만 예쁘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지호는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꼭 쥐었다.

“고마워요.”

휘웅은 가볍게 웃었다.

“그래~”

그날 밤, 지호는 침대에 엎드려 일기장을 펼쳤다. 적고 싶은 건 많았다. 포카칩. 바이킹. 회전목마. 그리고 노을 아래에서 들었던 그 한마디까지.

하지만 결국 펜 끝에서 나온 건 '강휘웅' 세 글자뿐이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유진이었다.

[어땠어?]

지호는 한참을 망설이다 답장을 보냈다.

[큰일 났어.]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ㅋㅋㅋㅋ 내가 뭐랬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봤다. 놀이공원에서 돌아온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심장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

스무 살, 윤지호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문득 가방 속에 넣어둔 즉석사진이 떠올랐다. 놀이공원에서 네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별생각 없이 사진을 꺼내 든 순간, 지호의 숨이 멎었다.

사진 속 휘웅은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돌린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지호만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다시 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침대 위에 던져 둔 휴대폰이 다시 한 번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잘 들어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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