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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어린이를 찾습니다

작가: 지호
last update 게시일: 2026-07-21 15:23:22

놀이공원에서의 첫 만남이 지나고 며칠 뒤였다.

윤지호와 배유진은 조별 과제 때문에 경주로 내려가게 됐다. 원래는 여자 둘이서 조용히 다녀올 예정이었지만, 장거리 이동이 심심했던 유진이 슬쩍 남자친구 최동학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지호에게 미안했는지, 동학의 친구인 강휘웅까지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지호는 괜히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이상했다. 바이킹에서 자신을 보며 웃던 얼굴, 회전목마 앞에서 건넸던 말, 그리고 사진 속에서 혼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저 친구의 친구일 뿐인데. 아직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어색한 사이인데. 그런데도 경주에 간다는 말 한마디에 며칠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토요일 아침, 지호는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눈을 떴다. 옷장을 열었다 닫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연한 색 니트와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망설였다.

'너무 꾸민 것 같나?'

아니다 싶어 귀걸이를 뺐다가, 다시 끼기를 반복했다. 결국 집을 나서면서도 마음은 조금 불안했다. 괜히 기대하는 것 같아서. 괜히 혼자 들떠 있는 것 같아서.

하지만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순간, 그런 생각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대합실 의자 끝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강휘웅이었다.

핏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연청바지에 선명한 보라색 니트. 누구나 한 번쯤 쳐다보게 될 만큼 눈에 띄는 색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휘웅은 그 옷을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었다. 큰 키와 넓은 어깨, 길게 뻗은 다리. 무심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는데도 주변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 보였다.

지호는 들고 있던 가방 끈을 괜히 더 세게 움켜쥐었다.

'와…….'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잘생겼다. 놀이공원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보다 훨씬 더.

그 순간, 휘웅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왔네.”

낮고 느긋한 목소리였다. 고작 두 글자인데, 지호는 괜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옆에서 유진이 큭큭 웃었다.

“둘이 왜 이렇게 어색해?”

“안 어색하거든?”

지호가 황급히 대답했지만, 정작 본인 목소리부터 평소보다 한 톤 높아져 있었다.

잠시 후, 동학과 유진은 버스표를 끊겠다며 매표소 쪽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둘만 남겨졌다. 넓은 대합실 한가운데, 바로 옆자리. 슬쩍 고개만 돌려도 휘웅의 어깨가 보였다.

지호는 괜히 휴대폰 화면만 만지작거렸다.

'저 어깨에 기대서 경주까지 가면 좋겠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그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미쳤나 봐.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나는 사람인데.

“버스에서 먹을 간식 좀 사 올게.”

휘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 네.”

지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는 늘 그렇듯 느긋한 걸음으로 편의점 쪽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그런데 십 분이 지나고, 십오 분이 지나도 휘웅은 돌아오지 않았다. 매표소에서 돌아온 유진과 동학도 고개를 갸웃했다.

“휘웅이 오빠 어디 갔어?”

“편의점 갔는데 아직 안 와.”

출발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편의점 안 어디에도 보라색 니트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잠깐 걱정이 들었지만, 이내 엉뚱한 상상이 떠올랐다.

'설마…… 길 잃은 거 아니야?'

키가 거의 백구십은 되어 보이는 사람이 터미널 안을 헤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호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유진의 물음에 그녀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휘웅이 오빠 찾으러.”

안내방송실 앞에 도착한 순간, 지호는 문고리를 잡은 채 잠시 멈춰 섰다. 멀쩡한 성인 남자를 찾겠다고 방송을 부탁하면 분명 이상하게 볼 게 뻔했다. 잠깐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결심했다.

'그래. 다섯 살로 만들자.'

잠시 후, 차분한 안내 방송이 터미널 안에 울려 퍼졌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현재 터미널 내에서 길을 잃은 어린이를 찾고 있습니다. 이름은 강휘웅. 나이는 다섯 살입니다. 하얗고 잘생긴 얼굴에, 연청바지와 보라색 니트를 입고 있습니다. 손에는 과자 봉지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목격하신 분께서는 안내방송실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이쯤 되면 거의 공개 처형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문을 나선 지호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어떡해…….”

강휘웅이 이 방송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났다.

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지호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췄다.

방송실 문을 바라보며 벽에 기대 선 한 남자. 연청바지, 보라색 니트. 양손에는 음료와 과자 봉지를 들고 있는 강휘웅이었다.

아주 잠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휘웅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놀이공원에서 보았던 무심한 표정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지호는 순간, 처음 보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았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휘웅은 손에 들고 있던 차가운 캔 음료를 그녀의 뺨에 가볍게 갖다 댔다.

“다섯 살 강휘웅 어린이, 여기 있는데.”

순간 지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놀리려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완전히 들켜 버렸다.

“아, 아니…….”

창피함에 도망치려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휘웅이 그녀의 가방끈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바로 눈앞으로 보라색 니트가 들어왔다. 고개만 들면 그의 얼굴이 보일 정도였다.

지호는 숨을 삼켰다.

“어디 가, 보호자님~.”

장난기 섞인 목소리. 그는 허리를 살짝 숙여 지호와 눈높이를 맞췄다. 짙은 눈동자 속에 당황한 자신의 얼굴이 그대로 비쳤다. 낯설었다.

휘웅은 그녀의 귓가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다섯 살 어린이는 혼자 버스 못 타는데.”

“…….”

“경주 내려갈 때까지, 내 손 꼭 잡고 책임져 줘야지?”

그 말과 함께 그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긴 손가락이 지호의 손끝을 살며시 감쌌다. 뜨거운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지호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사람처럼 굳어 버렸다.

그 순간, 대합실 스피커에서 버스 출발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지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만이 또렷하게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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