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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의 형에게 정체를 들켰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4 10:00:46

엘리베이터가 유리가 사는 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지만 유리는 내리지 못했다. 먼저 나간 태준이 열린 문을 한 손으로 잡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안에 남으면 오히려 대답을 피하는 모양이 될 것 같았다.

유리는 카메라 가방을 품에 끌어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그럼 질문을 바꾸죠.”

태준이 유리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길게 뻗은 복도 끝에는 나란히 붙은 두 집의 문이 보였다. 멀쩡한 옆집 남자와 함께 귀가하는 평범한 상황이어야 했지만, 유리는 취조실로 끌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저녁 여덟 시 십칠 분, 한강컨벤션센터 안에서 정시온을 촬영했습니까?”

유리의 손가락이 가방끈을 세게 쥐었다.

“그 시간에 제가 어디 있었는지까지 말씀드릴 이유는 없어요.”

“사진 원본을 가지고 있겠군요.”

“대체 누구신데 자꾸 원본을 찾으세요?”

태준이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의 집 사이, 불과 몇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가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유리에게 내밀었다. 희고 단정한 명함 중앙에 검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로운 법률사무소 파트너 변호사 정태준.

휴대전화로 받은 문자 속 이름과 정확히 같았다.

유리는 명함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던 가능성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문자 보내신 분이었어요?”

“세 번 전화했습니다.”

“모르는 번호라 안 받았어요.”

“문자는 확인하셨습니까?”

“본인 확인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제 정보를 먼저 줄 수는 없잖아요.”

태준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겁을 먹거나 변명을 늘어놓을 거라고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유리는 수많은 작가와 계약서를 검토하는 편집자였고, 사진을 공개할 때마다 초상권과 저작권 문제를 확인해왔다. 변호사라는 직함만으로 주눅이 들 생각은 없었다.

“스타웨이 엔터테인먼트에 확인하셔도 됩니다.”

“확인한 다음에는요?”

“사진 원본을 제출해주셔야겠습니다.”

“온라인에 공개하지는 않을 거예요. 원본에는 일반인 얼굴과 미성년 연습생도 찍혀 있어요.”

“공개하라는 게 아닙니다. 법률대리인에게 제출해달라는 겁니다.”

“그쪽이 정말 소속사 법률대리인이라는 게 확인되면 필요한 부분만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원본 파일 자체를 넘기지는 않겠습니다.”

태준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본인이 유포한 게 아니라면 숨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유리의 얼굴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예의 바른 미소가 사라졌다.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겁니다.”

“워터마크만 보고요?”

“사진은 온리원의 이름으로 퍼졌습니다.”

“제 워터마크를 누군가 도용한 거예요. 저는 그 사진을 게시한 적도 없고, 그런 식으로 잘라서 올릴 이유도 없어요.”

“그걸 증명하려면 원본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정식 절차로 요청하세요. 변호사라는 사람이 한밤중에 옆집 복도에서 상대를 몰아세우는 게 정식 절차는 아닐 텐데요.”

유리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하루 종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목이 욱신거렸지만 가방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 안에는 시온의 사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의 얼굴과 시간이 함께 담겨 있었다. 유리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넘길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부딪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태준이었다.

“옆집이라는 사실은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믿으라고 하는 말이에요?”

“제가 이 건물에 먼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 따라 이사 왔다는 뜻인가요?”

“아직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표정은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유리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을 범인으로 정해놓고 질문하는 것 같았다. 스타웨이의 법률대리인이라면 시온을 보호하려는 태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증거 없이 자신의 일상과 집까지 의심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 소속사에 직접 연락할게요. 필요한 자료도 그쪽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유리는 대화를 끝내려고 현관문에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때 태준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민유리 씨.”

“또 뭐예요?”

“계속 중요한 질문을 피하고 있습니다.”

유리는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무슨 질문이요?”

“당신이 온리원인지.”

도어록이 잠금 해제음을 냈다. 유리는 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인정하면 자신의 5년이 한순간에 타인의 손에 넘어갈 것 같았다. 부정하기에는 파란 별 장식과 카메라, 오늘 촬영된 사진까지 너무 많은 증거가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쉽게 인정할 수는 없었다.

“아니라고 하면요?”

“믿기 어렵겠죠.”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유리가 문을 열려던 순간 태준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시온이가 이 장식을 기억합니다.”

손잡이를 잡은 유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태준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이었지만 조금 전처럼 범인을 추궁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무슨 뜻이에요?”

“데뷔 전 첫 행사부터 같은 파란 별이 달린 카메라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관객이 스무 명도 되지 않았던 무대에서 자신을 끝까지 찍어준 사람이었다고.”

그날을 유리도 기억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작은 야외무대. 대부분의 관객은 비를 피해 처마 아래로 들어갔지만 시온은 예정된 곡을 끝까지 불렀다. 고장 난 음향 장비 때문에 반주가 몇 번이나 끊겼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유리는 젖은 카메라를 옷으로 감싼 채 마지막 인사까지 찍었다.

그 사진이 온리원의 첫 게시물이었다.

시온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얘기를 변호사님한테 했다고요?”

“했습니다.”

“아무리 담당 변호사라도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합니까?”

태준의 입가에 씁쓸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잠시 유리를 바라보다가 명함을 내밀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담당 변호사라서 들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럼요?”

“가족이니까요.”

복도의 센서등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다시 켜졌다. 희미한 빛이 태준의 얼굴을 훑었다. 그 순간 유리는 그에게서 익숙한 흔적을 발견했다. 눈매와 콧날은 달랐지만 입술을 굳게 다물 때 생기는 선,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버릇이 시온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설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은 이미 답을 알아챈 듯 거세게 뛰었다.

태준이 마침내 말했다.

“정시온의 형입니다.”

유리는 숨 쉬는 법을 잊었다.

가장 오래 좋아해온 최애의 친형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몇 달 동안 택배를 바꿔 받고,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나누고, 늦은 밤이면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들었던 옆집 남자였다.

더 큰 문제는 그 남자가 연예계 전문 변호사이며, 현재 자신을 사진 유포자로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태준의 시선이 파란 별을 지나 유리의 눈에 닿았다.

“민유리 씨.”

한 치의 도망갈 틈도 주지 않는 목소리였다.

“당신이 온리원 맞죠?”

유리는 품에 안은 카메라를 내려다봤다. 렌즈 안에는 조금 전까지 환하게 웃던 시온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을 가득 채운 사람은 시온이 아니었다.

그의 형, 정태준이었다.

최애에게는 5년 동안 들키지 않았던 비밀을.

최애의 형에게는 단 하루 만에 들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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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문을 여는 날

    전시 개막을 나흘 앞둔 오후, 유리는 마지막으로 도착한 인쇄물을 바닥에 펼쳐 놓고 있었다. 무광 용지에 출력된 사진들은 모니터로 볼 때보다 조금 따뜻한 색을 띠었다. 창가에서 웃는 태준의 얼굴도 그랬다. 사진 옆에 쪼그려 앉은 한나가 턱을 괴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이 사람 누구야.” 유리가 포장지를 접으며 대답했다. “정태준.” “내가 아는 그 정태준 변호사?” “다른 정태준이랑 같이 살면 곤란하지 않을까.”한나는 대꾸하지 않고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 현석 씨한테는 저렇게 안 웃던데.” 유리는 들고 있던 테이프를 내려놓았다. 한나는 이미 내뱉은 호칭을 회수하려는 듯 입술을 다물었다가,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깨를 으쓱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으로 했잖아.” 유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현석 변호사님이 드디어 현석 씨가 됐구나 싶어서.” 한나가 포장지 하나를 그녀 쪽으로 밀었다. “남편 사진이나 잘 포장해.”웃음이 가라앉을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시에 참여하기로 한 촬영자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유리는 알림창에 나타난 첫 문장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죄송하지만 제 사진을 빼고 싶습니다.’뒤에는 여러 번 고친 흔적이 보이는 긴 설명이 이어졌다. 사진 속에 있는 본인과 동행인 모두 전시에 동의했지만, 최근 직장 동료가 전시 소식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뒤부터 누가 자신을 알아볼지 계속 신경이 쓰였고, 공개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줄에는 출력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말과, 지금 철회하면 유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냐는 질문이 적혀 있었다.유리는 바닥에 놓인 사진들을 돌아봤다. 철회를 요청한 작품은 입구에서 두 번째 벽에 걸릴 예정이었다. 이미 안내 책자에도 들어갔고, 벽면 배치도 그 작품을 기준으로 맞춰 두었다. 솔직히 아쉬웠다. 준비한 것이 줄어들고 손볼 일이 늘어난다는 사실도 반갑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감정은 상대에게 해결하라고 넘길 일이 아니었다. 유리는 먼저

  •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렌즈 앞에 서는 사람

    유리는 그를 창가에 앉혔다. 해가 기울면서 들어오는 빛이 얼굴 한쪽을 부드럽게 감쌌다. 태준은 카메라를 보다가 유리를 보고, 다시 렌즈를 보았다. 그녀는 노출을 맞추며 말을 걸었다. “정면으로 꼭 안 봐도 돼.” “어디를 보면 좋을까?” “보고 싶은 데.” 태준의 시선은 즉시 유리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카메라 뒤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너무 성실하게 대답해서 문제였다.처음 몇 장은 어색했다. 태준은 움직이지 않으려고 턱에 힘을 주었고, 유리는 그럴수록 웃음이 났다. “변호사 프로필 아니야.” “알아.” “모르는 것 같은데.” “움직이면 흐려질까 봐.” 유리가 카메라를 잠시 내렸다. “오빠는 나한테 가만히 있으라고 한 적 없잖아.” 그 말에 태준의 표정이 느슨해졌다. 그녀는 다시 렌즈를 들었다. 셔터가 짧게 울렸고, 화면 안에서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유리는 질문을 바꿨다. 오늘 점심은 뭘 먹었는지, 시온은 새 입장문이 마음에 든다고 했는지, 서한나가 만든 도시락을 현석이 정말 전부 먹었는지. 마지막 질문에서 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 먹었어. 나한테 김치 달라고 왔더라.” 유리는 그 순간 셔터를 눌렀다. 웃음이 끝나기 직전의 얼굴, 눈가가 접히고 입가에 장난기가 남은 얼굴이었다. 카메라를 확인한 유리의 가슴이 조용히 벅차올랐다.이 사람을 오래전에도 찍었다. 그러나 그때는 기다리는 이유를 묻지 않았고, 지금은 점심 메뉴와 친구의 도시락까지 알고 있었다. 코트 안에 붕어빵을 품었던 손이 이제는 그녀의 머리를 말려 주고, 식탁 위에 커피를 놓고, 피곤한 날이면 먼저 잠들어도 된다고 이불을 당겨 주었다.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거리 안에서 카메라를 드는 일이었다.“그 표정은 찍지 마.”태준이 갑자기 말하자 유리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곧바로 카메라를 내렸다. “어떤 표정?”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네가 지금 짓고 있는 표정.” 유리가 눈을 깜빡이자 태준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사

  • 최애의 형이 제 정체를 알아버렸다   렌즈 앞에 서는 사람

    유리의 목소리가 낮아지자 담당자도 등을 곧게 폈다. 그녀는 빈 액자가 표시된 도면을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첫 작품에 제가 뭐라고 적었는지 봐 주세요. 사진에 남은 사람이 공개하지 않기로 선택해서 비워 둔 자리예요. 그런데 전시를 알리는 데 제 가족 관계를 먼저 쓰면, 관람객한테는 다른 말을 하면서 제 생활은 예외로 취급하게 돼요.”담당자는 도면과 홍보안을 번갈아 보았다. 곧바로 수긍하지는 않았다. 그는 공간 대관료와 인쇄 비용, 외부 지원사의 관심도를 설명했다. 주목받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현실적인 사정이기도 했다. 유리는 그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비용이 들지 않는 것처럼 이상적인 이야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결혼을 홍보 수단으로 쓰는 데 동의한 적도 없었다.“그럼 규모를 줄이는 안부터 같이 봐 주세요.” 유리는 도면의 두 번째 방을 가리켰다. “추가 공간을 빼고, 대형 출력 세 점도 작은 크기로 바꾸면 얼마나 줄어들까요? 개막 행사도 토크 형식으로 크게 하지 않고 예약 관람으로 진행할 수 있어요. 홍보가 필요한 건 알아요. 대신 홍보할 내용을 제가 정하고 싶어요.”담당자가 계산기를 켰다. 잠시 숫자를 두드리던 그가 말했다. “후원 없이 전부 진행하는 건 어렵습니다.” “후원을 받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 사생활을 전제로 하지 않는 조건을 먼저 제안해 보고 싶다는 거예요.” 유리는 가방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전시 설명을 어려워할 관람객을 위해 준비한 질문들이었다. 내가 올린 사진에 함께 찍힌 사람은 어디까지 동의했는지, 오래된 사진을 다시 공개할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좋아하는 사람을 잘 찍고 싶다는 마음과 그 사람의 경계를 어떻게 함께 지킬지.담당자는 종이를 받아 읽다가 세 번째 질문에서 멈췄다. “이건 팬들이 와서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팬이 아니어도요. 가족사진을 올리는 사람, 아이 사진을 찍는 사람, 친구와 여행 다녀온 사람도요.” 유리는 빈 테이블이 그려진 자리를 손끝으로 짚었다. “사진을 가져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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