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 시각 JW엔터테인먼트 소속사 대표실. 때아닌 신하늘 사건의 파장으로 인해 긴급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강소희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굳이 신하늘 같은 밑바닥이 조금 꿈틀거렸다고 소속사 전체가 비상이라니.
“대표님, 대체 이게 무슨 난리예요?”
“소희 씨, 지금 보통 큰일이 아니야. 신하늘 때문에. 김희주 똥물이 우리한테 튈 거야.”김희주가 궁지에 몰렸다는 소식에 강소희는 내심 자나 깨나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진 듯 쾌재를 부르던 참이었다. 누구보다 김희주의 몰락을 열렬히 바라온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세종동 서쪽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최기범과 가까이 지내면 오물이라도 묻는다는 듯 벌레 취급하던 여자였다.
최기범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짝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로, 온갖 수모와 멸시를 준 악녀 중의 악녀가 김희주였는데.
[올해 뜨거워질 총선 열기의 신호탄은 세종동! 과연 유권자의 마음은?][정치 9단 막강 권력자 김희주와 신출내기 다크호스 신하늘! 폭풍의 격돌 예고!][TT 여론조사 결과 34% 대 32% 박빙! 중도층 표심이 최대 변수!][당대표를 노리던 김희주에게 치명타 입힌 신하늘! 경쟁당의 파격 영입 시도되나]아침이 되자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은 온통 내 이름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아직 선거 시작도 하지 않았고, 선거인명부를 제출하지도 않았는데.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처럼 끊임없이 쏟아지는 알림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면서도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거세게 요동쳤다.어쨌든 그건 그거고 나의 일은 차질 없이 해야 했다.밤을 꼬박 새워 작성한 보고서를 최기범에게 제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렸다.회사 피트니스센터 샤워실에서 씻고 나오는데, 나를 향하는 사원들의 시선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묵직해진 상태였다.마치 톱스타 에스텔라를 바라볼 때나 감돌던 묘한 호기심과 경외심이 섞인 눈빛과도 닮아 있었다.어제 휴대전화 전원을 꺼둔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쏟아진 문자와 미확인 음성 메시지, SNS 반응은 폭발적인 수준이었다.단 한 번도 비공개로 전환한 적 없던 게시물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열띤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Umm Umm UmmUm Um Um Um Um시시각각 서늘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발신자 제한으로 온 문자들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악담으로 내 마음을 베어냈다.정치판에는 얼씬도 말라는 경고부터,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서 자중하라는 치졸한 협박까지. 글자마다 서슬 퍼런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계속 설치다간 험한 꼴을 볼
그날 밤, 자정을 넘긴 시각.신하늘이 터트린 충격적인 파장 덕분에 도국은 예정에 없던 일정이 백지화되며 간만에 유쾌한 여유를 얻게 되었다.그가 발길을 옮긴 곳은 잠실에 위치한 이아준의 레지던스였다.JW 대표실에서 보쌈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음에도, 도국은 문을 연 24시간 분식집에 들러 맥주와 떡볶이, 순대, 튀김 따위를 포장했다.벅차오르고 기분 좋은 일이 생길 때면 어째서 이런 투박한 음식들이 먼저 떠오르는 걸까.어린 시절, 진심으로 행복했던 순간마다 늘 곁에 놓여 있던 음식들이라 그런지도 몰랐다.“나 어제도 최고의 하루였는데 오늘도 운수 좋은 날로 쳐야겠다. 도국이가 불쑥 찾아오다니, 하하!”도국이 이아준의 레지던스 경계를 넘어서자마자, 이아준은 그를 기꺼이 환대했다.거실 TV를 나지막이 틀어둔 채,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 맥주 캔과 떡볶이, 순대, 모둠 튀김 같은 서민적인 음식들을 펼쳐놓았다.“대표실에서 보쌈을 그렇게 먹고 왔는데, 이상하게 이게 또 당기더라고.”그 말에 이아준이 손가락을 튕기며 화답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나도 저녁에 스테이크를 썰긴 했는데, 떡볶이 들어갈 배는 따로 있지. 아무래도 나, L그룹을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집어삼키게 될 것 같다. 혼술이라도 할까 했어.”“잘됐네. 축하한다.”“지금 심정 같아선 팬티만 입고 잠실역 한복판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다니까, 하하!”도국은 맥주 캔을 내밀며 이아준을 향해 넌지시 입꼬리를 올렸다.이아준은 떡볶이 조각을 집어 먹으며 어린아이처럼 키득거리더니, 도국의 맥주 캔에 제 캔을 가볍게 부딪쳤다.“몸 관리 끝판왕인 주원형 대표가 너랑 보쌈을 먹
차준호가 나를 위해 공식적인 연인이라 선언을 한다고?늘 내 뒤를 묵묵히 받쳐주고, 나를 품어 안을 때나, 심지어 차진철 회장 앞에서도 애매모호한 여지를 남기던 그였다.하지만 미래까지 함께할 수는 없다며 단단한 벽을 치던 남자가 이제 와서 나를 자신의 여자라고 세상에 밝히겠다니.나는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직시하며 크게 숨을 삼켰다. 그리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대표님은 이 회사의 명운을 짊어진 분입니다. 굳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그러자 차준호가 한 발짝 바짝 다가서며 낮게 읊조렸다.“이대로 혼자 달려 나가다 멈춰 섰을 때, 내 여자라는 태그를 달아놓아야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결국 이것 때문이었나.내가 또다시 홀로 남아 처참하게 짓밟힐까 봐. 판을 흔든 뒤 감당해야 할 그다음까지 그가 미리 걱정해 주는 건가.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길은 고마웠고, 모든 것을 걸고 지켜주려는 그의 중후한 헌신에 가슴이 울컥거릴 만큼 감격스러웠지만······.“너무 늦었네요, 대표님.”말을 마친 나는 서늘하게 돌아설 준비를 하였다.어차피 나를 온전히 안아줄 마음이었다면, 지난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확실히 내 옆에 서 주었어야 했다. 이미 다 지나버린 일이었다.내가 걸음을 옮기려 하자, 차준호가 전격적으로 일어서며 내 손목을 강하게 쥐어잡았다.“그래, 지독하게 늦었다는 거 알아.”억센 악력 뒤로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미세하게 떨려왔다.“그러니 내가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일단 식사라도 제대로 마치고 가.
그 시각 JW엔터테인먼트 소속사 대표실. 때아닌 신하늘 사건의 파장으로 인해 긴급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강소희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굳이 신하늘 같은 밑바닥이 조금 꿈틀거렸다고 소속사 전체가 비상이라니.“대표님, 대체 이게 무슨 난리예요?”“소희 씨, 지금 보통 큰일이 아니야. 신하늘 때문에. 김희주 똥물이 우리한테 튈 거야.”김희주가 궁지에 몰렸다는 소식에 강소희는 내심 자나 깨나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진 듯 쾌재를 부르던 참이었다. 누구보다 김희주의 몰락을 열렬히 바라온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세종동 서쪽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최기범과 가까이 지내면 오물이라도 묻는다는 듯 벌레 취급하던 여자였다.최기범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짝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로, 온갖 수모와 멸시를 준 악녀 중의 악녀가 김희주였는데.최기범을 멀리하기만 하면 부와 인기를 모두 안겨주겠다며 주원형 대표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퍼붓고, 정치적 입김을 넣어 강소희의 입지를 다져준 것 역시 김희주였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은 세월이었다.“이를 어쩌죠, 대표님? 큰일이네요, 정말.”옆에 있던 김훈까지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건지.“김희주가 힘을 잃고 무너지면 그게 우리 소속사에 경사가 아닌가요? 그동안 그 여자가 얼마나 내 피를 말리게 했는데요. 쯧!”사실 주원형 대표 역시 김희주에게 또 연락이 왔다며 부들부들 떨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입맛대로 본인이 속한 정당의 행사에 불러내고, 강소희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은근한 협박과 압박을 일삼던 김희주가 아니었던가.“소희 씨,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진짜 문제는····&m
이아준은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현실이 맞는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이왕춘 회장이 자신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사실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언제나 이아준의 경영 능력을 시험하듯 날 선 시선으로 엄격하게 평가해 왔다. 십만 명이 넘는 임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계, 나아가 대한민국 경제 전반을 흔들 수 있는 자리였기에 회장의 선택은 지독하게 신중했다.“올봄이요?”그런 그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판을 움직이고 있었다.“내 지분 전체, 4월 초에 네 앞으로 전부 넘겨주마.”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이아준은 늘 복수라는 칼을 품은 채 L그룹을 제 손으로 집어삼키는 것을 인생의 단 하나뿐인 목표로 삼아왔다.아버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었음에도 이왕춘의 반대로 내쳐졌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뒤늦게 혈육을 찾겠다며 악착같이 자신을 거두어들였던 늙은 너구리 같은 이왕춘.단 한 번도 아버지의 온기를 느껴보지 못한 채, L그룹이라는 거대한 지옥 굴에 들어와 지난 십 년 동안 견뎌내야 했던 핍박과 수모를 아준은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그래서일까. 지금 이 순간 그의 심장은 폭발할 듯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이건 조금 놀랍네요, 할아버지.”여유로움을 가장한 시선으로, 이아준은 그동안 자신을 벌레 취급했던 나지란과 이아정을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아······ 아버님······.”발끈하며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모자랄 나지란과 이아정마저 넋이 나간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이 역시 뜻밖의 광경이었으나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그를 향해 차분하게 고개를 숙였다.“일본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최 실장님?”김희주는 증오스러울지언정 최기범은 내게 평범한 직장 상사였다.죄는 미워하되 핏줄까지 매도할 수는 없는 법.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위치를 철저히 분리하며 인사를 건네자, 최기범은 풋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양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진짜 제대로 우리 엄마한테 한 방 먹였더군요. 좋습니다. 내가 힘을 실어줄 테니까 진짜 선거에 나가보세요. 제대로 도와줄 테니까.”사람이 어찌 이리 순수할 수 있을까.최기범의 말과 표정에서 위선이나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김희주가 악독한 정치인이라 한들, 저자에게는 엄연한 어머니일 텐데.“실장님, 도움은 괜찮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려요.”“안 그래도 면목이 없었는데, 신 과장. 진짜 응원하겠습니다.”제 일도 아닌 것처럼 통쾌해하는 그의 표정이 낯설면서도 씁쓸했다.고마움과 애매함이 섞인 답을 건네려던 그 순간, 최기범의 등 뒤로 차갑고 묵직한 공기가 스며들었다.“네가 설칠 때마다 판이 망쳐진다는 거, 아직도 왜 몰라? 최기범, 넌 신하늘한테서 떨어져서 네 할 일이나 해.”차준호의 목소리가 최기범의 등 뒤에 날카로운 칼날처럼 명확하게 꽂혔다.***차준호가 등장하자 주변의 공기가 서리가 내리듯 묵직하게 내려앉았다.근처에 서성거리던 직원들이 하나둘 눈치를 보며 흩어졌고, 나정아와 한은숙 역시 뒷걸음질 치며 조용히 사라졌다. 그 모습에 내 입에서는 절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그가 올 수도 있겠다고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막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이 나쁜 자식!’지난 3년간 내게 보인 그 모든 다정함은 한낱 유희였을까? 차준호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문드러져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서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존심을 끌어모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대표님은 그동안 절 어찌 보셨는데요?”나는 유리창 너머로 썰물처럼 번지는 화려한 야경을 사납게 응시하며, 심장에 박힐 날 선 말을 뱉어냈다.“네 주변에 남자가 들끓어 보였거든.”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남사친 둘을 두고 한 오해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동안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적을 깨우는 밤 11시 반 무렵.창밖으로는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흩날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남 C 호텔 25층 로열 스위트룸 내부는 숨 막힐 듯 팽팽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차준호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온전히 잠식당한 채, 밤을 녹여내는 은밀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내 몸의 지도를 그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의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예민한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