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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그대와 나, 의무가 ‘덫’이라면

Penulis: silver구슬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6-10 00:05:31

토요일 저녁이 되었다.

황금 같은 주말에 차진철 회장의 호출이라니, 어깨가 납덩이를 얹은 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사고를 친 아들의 뒤치다꺼리를 잘해 주어 고맙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그렇다고 주말에 본가로 불러 밥까지 먹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CC그룹 선우현 비서실장이 직접 운전하는 검은 세단에 올라 한남동 자택으로 향하는 동안, 그의 금테 안경 너머로 비치는 과한 배려가 되레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토요일까지 고생이 많으시군요, 신 비서님.”

당연히 고생 중이다. 빈손으로 가기가 영 껄끄러워 오전에 백화점을 돌며 20만 원 상당의 고급 과일 바구니를 준비했음에도, 밀려드는 긴장감에 손끝이 자꾸만 떨려왔다.

“데리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을 보필하는 비서실장답게, 선우현에게선 나와는 차원이 다른 투철한 직업 정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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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95. [인생? 그 까짓 게 뭐라고]

    오전에 정신없이 신입 사원 공고 결재를 마친 차준호는 급하게 강진욱의 호출에 대한종합병원으로 향했다.프라이빗 진료실.차준호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주치의 강진욱을 바라보았다.차가운 소독약 냄새 사이로 무거운 진단 결과가 정적을 깼다.강진욱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그리고 그가 차준호에게 보여주는 췌장 사진 역시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췌장 두부(Head)를 중심으로 석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유전성 췌장염입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췌장암으로의 이행 속도는 일반인의 80배를 상회할 겁니다. 건강 관리 정말 잘하셔야 합니다.”청천벽력 같은 말들이 귀에 차갑게 꽂혀 들어왔지만, 정작 차준호의 마음속에는 작은 동요조차 일지 않았다. 마치 남의 진료 기록을 건성으로 들려주는 기분이었다. 삶을 향한 강렬한 애착도, 갑작스러운 비극에 대한 억울함도 들지 않는 자신이 오히려 낯설 정도였다.“치료 방법은요?”강진욱이 안경을 고쳐 쓰며 나직하게 덧붙였다.“차 대표님, 췌도 이식 외에는 근본적인 답이 없습니다. 친인척 중에 장기 기증을 알아보시는 게······.”“아버지도 고혈압으로 오래 약을 드시는 중입니다. 형제도 뭐······. 됐습니다.”차준호는 무심하게 긴 다리를 꼬며 의사를 똑바로 건너다보았다.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무표정이었다.어차피 온전한 온기를 나누어 본 적 없는 집안이었다.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그들에게 손을 내밀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그거 말고 다른 답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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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학년 졸업을 앞둔 12월 31일, 겨울바람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세종동 라온초등학교 운동장은 도심 속 기묘한 경계선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운동장 서쪽으로는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의 허름한 지붕들이 찬 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세련된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거대한 장벽처럼 솟아올라 부촌의 위용을 자랑했다. 가난과 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차가운 공간 속에서, 오직 스산한 운동장만큼은 공평하게 햇살을 나누어 받고 있었다.그 벌판 위를 2~3학년 꼬마들이 어울려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와 얼어붙은 흙바닥을 구르는 축구공 소리가 겨울 공기를 잘게 부쉈다.조회대 뒤, 매서운 칼바람을 피해 서 있던 두 명의 6학년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준호, 너 진짜 뭐냐? 왜 꼬마들한테 운동장을 다 양보하고 난리야?” 침묵을 깬 최기범의 푸념에 차준호는 시선을 운동장에 고정한 채 덤덤하게 대꾸했다.“마음 좀 곱게 써. 오늘로 졸업인데.”“쳇, 전교 회장이라고 마지막까지 권력을 휘두르냐?”투덜거리던 최기범이 급식 후식으로 나온 사과 주스 빨대를 씹었다. 한 모금 삼키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에 왈칵 쏟아버렸다.“아, 맛없어.”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스가 서서히 번지는 동안, 차준호는 여전히 사과 주스 팩을 쥔 채 묵묵히 빨대를 빨았다.그때, 차준호의 시선이 운동장 한구석, 유독 눈에 띄는 아이에게 멈췄다.짧은 머리에 허름한 청바지, 그리고 붉은 점퍼가 인상적인 꼬마였다. 1학년 아니면 2학년으로 보이는데, 사내놈들 틈에 껴서 악착같이 공을 쫓고 있었다.“저 여자애는 왜 남자애들이 끼워 주는 거지?”차준호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최기범이 눈을 크게 뜨며 헛웃음을 터뜨렸다.“와, 다들 사내놈 같다고 난리인데 넌 바로 알아보네? 서쪽 동네 공주님일걸?”차준호가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공주까지는 아니고.”“하하! 내 눈에는 소희가 공주이기는 하지만, 쟤도 나름 그 동네 골목대장 공주님이래.”차준호가 사과 주스 팩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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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93. 거짓말이 끝난 계절에서 시작을 꿈꾸며

    내가 선 배식대 한편에서는 도국과 이아준이 나란히 있었다.도국은 정성껏 갈비탕을 담아내는 중책을 맡았고, 이아준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빈 자리로 안내하고 있었다."이모, 삼촌!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가 바람도 잘 불고 시원해요."이아준이 허리를 굽혀 단단한 팔을 내밀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그의 팔을 꼭 잡으며 흐뭇하게 웃었다."아준아, 고마워. 너도 이제 장가 가야지.""도국이한테는 말 안하고 왜 저한테만 잔소리시지?"이아준이 짐짓 곤란한 표정으로 도국을 돌아봤지만, 도국은 입꼬리만 올린 채 시선을 회피한 뒤였다."도국이는 있겠지.""아이고, 나 그냥 총각귀신 되어서 이 동네 막 돌아다녀야겠다."이아준의 너스레 뒤로는 허기찬이 음료 박스를 카트에 끌고 분주히 움직였다.그 곁에서 선우현은 이승은 공천위원장과 함께 오늘 봉사에 들른 XX당의 중진 의원들을 안내하느라 바빴다."의원님들, 이쪽입니다.""우리 신 의원님께서는 정말 한결같으시죠. 하하."운동장 가득 퍼지는 웃음소리, 갈비탕 국물의 구수한 향기, 그리고 봄의 끝자락을 물들인 화려한 꽃비와 짙은 녹음까지.이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얼굴을 잠시 펴면서 갈비탕을 들이켰다."이 집 갈비탕 참 잘하네.""우리 신 의원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지 않습니까.""신 당선인이 야무지네.""이제 나랏일도 잘할 겁니다."초선 의원이지만 이미 막강한 세력을 등에 입은 나였다.객식구들이지만, 그래도 당의 다른 의원들이 나를 지지해 줘야 지역구 기반을 다질 수 있기에 그들도 한 그릇씩 대접해 주었다.이것은 이 마을이 비로소 맞이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92. 시작점에서 올린 치명적인 서막

    일요일 한낮.차진철 회장이 머무는 병실은 그야말로 봄볕이 온통 쏟아져 내린 듯 따스했다.소란스러운 취재진과 정재계 인파가 한꺼번에 쓸고 간 자리에는 훈훈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차준호는 그런 차진철에게 얼굴을 비추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인수인계 작업이 가득 쌓여 있어도,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이 병실로 발걸음을 했다.“왜 또 온 거야, 주말인데.”“신하늘이 바빠서 심심해서요.”차진철의 짙은 콧웃음이 병실 안을 나직하게 울렸다.“나도 바빠. 오지 마라, 좀.”자신이 오는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꼭 말본새는 여전했다.평소 한남동 저택에서는 홀로 고용인들이 차려주는 밥을 말없이 먹고 신문만 읽는 것이 전부였던 차진철의 일상이었다.하지만 이곳 병실에서는 차진아도 재잘재잘 소란을 피우고, 고미주 역시 잔소리를 쏟아내며 온갖 집무를 보느라 회사 관계자들까지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말 그대로 ‘사람 사는 온기’가 흐르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수액 줄이 여전히 팔목을 타고 흘렀지만, 안색은 하루가 다르게 단단한 생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언제 심장이 멈춰 위태로웠던 순간이 있었나 싶을 만큼,혀를 차게 만들던 절망의 시간은 이미 까마득한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아버지는 참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십니다.”무심하게 툭 털어놓는 차준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건조했으나, 그 안에는 결코 숨길 수 없는 묵직한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너만 할까.”그 짧은 한마디에 차준호의 입꼬리가 서서히 호를 그리며 올라갔다.“이리 활력이 넘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91. 뜨겁고도 살벌하게 기대되는 밤

    서로의 안색만 살피던 지난날을 지나, 오롯이 둘만의 온기로 채워진 이 스위트룸 침실로 돌아와 맞이하는 금요일 밤은 새삼 가슴이 뭉클할 만큼 감회가 새로웠다.어느덧 침대 옆 스탠드의 붉은 조도가 아득하게 옅어지고, 넓은 통창 너머로 펼쳐진 서울의 화려한 야경만이 은은한 그림자를 끌어당기며 침실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고요한 침묵을 깨고 차준호가 나직한 음성을 흘려보냈다.“신하늘, 기특해.”이 남자는 늘 이런 사람이었다. 무심한 척 툭 던지면서도, 간질거릴 만큼 듣고 싶은 말과 가슴을 거세게 흔드는 듣기 좋은 말을 결코 참지 않고 똑바로 건네주는 사내.그렇기에 나는 내 인생 전체를 걸고, 심지어 목숨까지 던져가며 그를 지켜냈어도 단 한 순간조차 아깝지 않았다.내 마음을 전부 바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남자였으니까.이 사내에게 숱한 거짓말을 건네고, 김희주에게 짓밟힌 나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그를 이용하기까지 했던 지난겨울이었다. 세상을 거머쥐려는 야심 속에서도 나는 늘 나를 아프게 한 이 남자의 얼굴을 가장 먼저 떠올렸었다.어둠 속에서 차준호의 깊고 짙은 눈동자가 나를 온전히 포위해 왔다. 그의 따스한 체온이 볼을 가만히 쓸어내리다 이내 도망칠 틈도 없이 내 입술 위로 깊게 겹쳐졌다.조심스러우면서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숨결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은밀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흐트러진 마찰음 사이로 차준호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가운의 끈을 천천히 풀어내렸다.스르르 기분 좋게 젖혀진 로브 틈새로 아늑한 밤공기와 그의 뜨거운 손길이 동시에 스쳤다.그의 손이 가슴과 허리를 지나, 아직은 부드럽고 납작한 내 아랫배 위로 묵직하게 머물렀다. 그 손길에는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귀한 것을 다루는 듯한 조심스러움과 강렬한 소유욕이 동시에 배어 있었다.“아버지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9. 빌런을 좋아한 건가. 이런 망할.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8. 내가 미쳤지.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7. 완벽한 타인의 숨결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6. 천하의 나쁜 남자

    기자를 상대하는 동안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고, 브리핑하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능숙 능란해져 있었다.차분한 척, 완벽한 듯, 긴장감이 첫날보다는 옅어졌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이라고 무슨 아나운서가 된 양 나는 그리 기자들을 상대했다. -차준호 대표님이 대화가 가능하다던데. 확실히 강소희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답변 부탁드립니다!“차준호 대표님께서는 일체 사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언제 CH에서는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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