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유호의 이마에는 굵은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한눈에 봐도 몹시 괴로워 보였다.희정은 얼른 유호를 붙잡았다.그런데 유호는 그대로 희정의 어깨에 몸을 기대더니, 통증에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축 늘어졌다.희정이 몇 번이나 이름을 불렀지만, 유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희정은 다급해졌다.유호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겁이 났다.무엇보다 칩 개발팀조차 이 물건에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원래라면 유호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래야 칩의 각종 수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그런데 수술이 끝난 뒤로, 연구팀은 유호 몸에 이식된 칩 상태를 한 번도 제대로 확인한 적이 없었다.어쩌면 오늘이 기회일 수도 있었다.지금 유호는 의식을 잃은 상태라서 감각도 없었다.희정은 유호를 부축한 채 걸음을 옮겼다.죽을힘을 다해 겨우 유호를 병원 꼭대기 층 휴게실까지 끌고 올라갔다.서진은 눈앞의 유호를 보자 표정이 굳어졌다. “너... 얘를 왜 여기까지 데려왔어?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희정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보면 어때. 너는 의사고, 유호는 환자잖아. 환자가 너한테 진료받으러 오는 게 뭐가 이상해?”희정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다 막으면 되는데, 네가 뭘 그렇게 무서워해?”희정은 휴지로 유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 냈다.눈에는 아직 걱정이 남아 있었다.“통증 좀 잡을 방법 없어? 너무 힘들어 보여.”서진은 미간을 좁혔다.자기가 마음 둔 여자가 다른 남자를 걱정하는 모습이... 서진에게는 달갑지 않았다.그래도 서진은 통증 완화제를 가져와 유호에게 주사를 놓았다.과연 15분쯤 지나자, 깊게 찡그렸던 유호의 미간이 서서히 풀렸다.희정 얼굴에서도 근심이 조금 걷혔다.희정은 자리에 앉아, 통유리창 너머의 야경을 내다봤다. “국내에 칩 팀 꾸린다고 하지 않았어? 네가 부른 그 전문가 말이야. 지금 유호 상태가 어떤지 부작용은 없는지, 와서 한번 보게 할 수는
희정은 유호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분이 치밀어 오른 희정은 그대로 달려가 뒤에서 유호를 끌어안았다. “너도 사실 강해인 안 사랑하잖아. 나 좀 제대로 봐. 내가 네가 좋아할 만한 모습 아니야?”유호는 희정을 떼어 내려고 했다.그런데 머릿속이 갑자기 하얗게 비어 버렸다.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희정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유호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마치 누가 혈을 눌러 버린 사람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유호가 뿌리치지 않자, 희정은 더 대담해졌다.희정은 발뒤꿈치를 들어 유호에게 입을 맞추려고 했다.바로 그때, 병실에서 나온 해인이 두 사람을 봤다.“왜 그러세요, 차희정 감독님? 뒤에서 몰래 안 되는 것 같으니까, 이제는 대놓고 유혹하시게요?”해인은 핸드폰을 들어 희정의 얼굴을 겨눴다.희정은 불쾌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왜 저를 찍으세요?”“왜긴요.” 해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감독님 더 유명해지시라고요. 차희정 감독님이 남의 남자를 어떻게 빼앗으려 드는지, 다들 똑똑히 보게 만들어 드리려고요.”“미쳤어요?” 희정이 성큼 다가와 핸드폰을 낚아채려 했다. “초상권 침해예요. 제가 찍으라고 했어요? 당장 지워요. 고소할 수도 있어요!”이게 정말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희정은 업계에서 버티기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해인은 정확히 희정의 급소를 밟고 있었다.희정이 기를 쓰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해인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고작 한 마디만 내뱉었다.“꺼져 주세요.”...희정은 울면서 병원을 떠났다.유호는 멀어지는 희정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그 모습을... 바로 뒤에 선 해인도 말없이 보고 있었다.해인은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5분이 지나도 유호는 들어오지 않았다.이상해서 다시 밖으로 나가 봤을 때, 복도 어디에도 유호가 없었다.해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엘리베이터를 바라봤다.무슨 일이라도 보러 아래층에 내려간 건가 싶었다.
희정이 불쑥 들어오자 해인은 멈칫했다.해인은 본능처럼 유호를 돌아봤다.“당신이 말한 거야? 우리 엄마 아프다는 소식을.”희정이 해인보다도 더 빨리 병실에 나타난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유호는 곧바로 부인했다. “당연히 아니지.”그러자 희정이 화사하게 웃었다. 확 드러나는 꾸민 웃음이었다. “난... 그냥 병원 아래를 지나가다가 해인 씨가 엄청 급하게 뛰어가는 걸 봤거든.”해인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우리 엄마 병실에서 나가 주세요.”해인과 희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사람 모두 너무 잘 알고 있었다.해인은 희정이 저렇게 선뜻 호의를 베풀 사람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희정은 상처받은 사람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제가 모셔온 분은 이 병원에서 제일 잘 보는 전문의인데요. 그래도 진짜 안 보시겠어요?”해인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필요 없어요.”희정이 소리 없이 웃었다.그 웃음에는 얄미운 비꼼이 배어 있었다.“그래요? 저는 또 해인 씨가 얼마나 효녀인가 했네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나 봐요.”희정은 일부러 말을 끊었다가, 해인의 반응을 살피듯 다시 입을 열었다. “생모가 저렇게 죽어 가는데도 찾아가 보지도 않던 사람이니까요. 하긴, 그쪽은 양어머니일 뿐이니 더할 나위도 없겠네요.”“그럼 저는 갈게요. 도 여사 숨이 끊어지면, 제가 연락을 드릴게요. 그때 와서 절이라도 하세요.”그 말을 듣는 순간, 해인의 눈이 흔들렸다.‘그분이... 정말 많이 위독한 거야?’해인과 도수희 사이에 모녀의 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그래도 죽고 사는 이야기 앞에서는 지나칠 수 없었다.해인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많이 위중하신가요?”희정은 그 질문이 우스운 듯 옅게 웃었다. “그분 안 보겠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 그럼 사느냐 죽느냐가 해인 씨랑 무슨 상관이죠?”희정은 해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아니면... 이거였어요? 도 여사와 우리 아버지가 계속 해인 씨를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 바
“결국 남편인 내가 내 역할을 못 한 거야.”예철진은 주여진의 손을 더 세게 감쌌다. 목소리에는 짙은 자책이 묻어 있었다. “여보, 내가 미안해. 당신 원래 몸도 괜찮았잖아. 분명히 다시 좋아질 거야.”해인은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을 보는 것조차 불편했다.괜히 속이 뒤틀렸다.‘또 저래. 왜 저 사람은 늘 연기하는 것처럼 보일까?’해인은 시선을 거뒀다. 눈가에는 희미한 냉소가 떠올랐지만, 말투는 단호했다.“제가 여기 남아서 엄마가 회복하실 때까지 돌볼 거예요. 아까 의사 선생님도 말씀하셨잖아요.”“엄마는 조용히 쉬셔야 한다고요. 예씨 집안에서 제대로 못 모실 거면, 앞으로는 괜히 들쑤시지 말아 주세요.”예철진의 얼굴이 바로 굳어지면서 목소리도 차갑게 내려앉았다.“뭐라고 했니?”예철진은 해인을 노려봤다. “여진이는 우리 예씨 집안 사람이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가라고 해? 고작 양녀 주제에.”해인은 이 상황이 너무 수상하다고 느꼈다.낮에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주여진은 멀쩡했다.그런데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저렇게 병상에 누워 말도 못 하는 상태가 됐다.최수나의 죽음 이후, 해인은 전보다 훨씬 더 경계하게 됐다.가장 가까운 사람이 휘두르는 칼이 오히려 더 깊이 박힌다는 걸 이미 봤으니까.한원랑만 봐도 그랬다.겉으로는 최수나를 애지중지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정작 사람이 사라지자 장례조차 제대로 치러 주지 않았다.예철진은 주여진의 중풍이 사고라고 했다.그런데 세상에 그렇게 우연이 많을 리가 있을까?해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예철진을 똑바로 바라봤다.예철진보다 수십 년은 어린 해인이었지만, 기세에서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서서히 예철진을 눌러 버릴 듯한 힘이 실려 있었다.“엄마 바로 옆에 계셨으면서도 저렇게 크게 다치게 하셨잖아요. 지금도 중병으로 누워 계시고요.”해인의 목소리는 차갑고 또렷했다. “왜요? 본인이 제대로 못 지켰다는 말을 들으니 찔리세요? 무능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다른 사람이 나서는 것도 싫으
[엄마는 원래 몸도 건강하셨잖아. 나도 얼마 전에 뵀는데, 어떻게 갑자기 중풍이 와?]해인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유호의 전화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해인은 마음의 준비를 할 틈조차 없었다.얼마 전 모녀 사이에 불편한 말이 오간 건 사실이었다.그래도 유호는 알고 있었다. 해인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주여진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정확한 상황은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여보, 내가 차 가지고 데리러 갈까?”[아니, 나 지금 이미 나왔어.]해인 쪽에서는 현관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었다.[일단 끊을게.]유호가 바로 말했다. “조심해서 가. 임신 중이잖아. 너무 뛰지 말고.”해인은 가는 내내 넋이 나가 있었다.심장은 제멋대로 쿵쿵 뛰었고,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목을 조여 왔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상에 누운 주여진의 얼굴은 창백했다.불과 몇 시간 사이에 훨씬 늙어 버린 사람처럼 보였다.주여진은 초점 잃은 눈으로 천장만 멍하게 바라보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예철진과 태상이 그런 주여진 곁을 지키고 있었다.물도 떠다 주고, 이것저것 손을 보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의사 말로는 네 어머니 상태가 이제 막 조금 안정된 거라고 하더라.” “지금은 미음 같은 유동식만 먹을 수 있고, 물도 많이 마시면 안 된다고 했어. 잘못하면 사레가 들릴 수 있다고.”예철진은 태상의 손에 든 물컵을 보며 말을 이었다.“태상아, 바쁘면 먼저 가 봐도 된다. 여기는 내가 보고 있을게.”태상은 고개를 저었다.“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신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제가 있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예철진은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여진이가 이렇게 됐는데 내가 집에 간들 잠이 오겠니...”예철진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그때... 조금만 더 빨리 붙잡았으면 여진이가 바닥에 넘어지면서 머리까지 부딪히진 않았을 텐데...”그동안 두 사람 사이가 어
한참이 지나서야 예철진이 겨우 숨을 골랐다.“여진아, 네가 믿든 안 믿든, 지난 세월 동안 내가 너한테 품었던 마음은 진짜였어. 내 인생에서 너 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 적은 없어.”주여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눈빛에는 가벼운 비웃음만 담겨 있었다.예철진은 그런 주여진을 잠시 가만히 바라봤다.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젓가락으로 주여진의 그릇에 반찬을 하나씩 얹기 시작했다.“이렇게 오래 얘기했으니 배고프겠네. 우선 밥부터 먹자.”주여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예철진을 봤다.정신이 나간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설마... 이 사람이 정말 음식에 손을 댄 걸 모르는 건가?’그런데 예철진의 얼굴에는 아무 흔들림도 없었다.예철진은 갈비를 주여진의 밥에 올려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물도 두 숟갈 떠서 밥 위에 적셨다.주여진이 끝내 젓가락을 들지 않자, 예철진은 아예 그릇을 손에 들었다.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주여진의 입가로 가져왔다.“왜?”예철진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네가 직접 만든 건데 입맛에 안 맞아? 그래도 남김없이 먹어야지.”주여진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하지만 예철진이 곧장 주여진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국물이 주여진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볼을 지나 목덜미로 번졌고, 옷깃도 금세 젖어 들었다.주여진은 눈을 크게 떴다.하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주여진에게는 예철진을 밀쳐 낼 만한 기운이 없었다.예철진은 소름이 돋을 만큼 기이한 웃음을 지었다.“왜 피해?”예철진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죽더라도 너는 우리 예씨 집안 선산에 묻힐 거야. 여진아, 걱정하지 마. 나는 절대 너를 버리지 않아...”주여진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바람에 식탁 위 음식은 전부 바닥으로 쏟아졌다.하지만 예철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예철진은 주여진을 꼼짝 못 하게 붙들어 둔 채, 한 숟갈씩 밥을 떠서 억지로 입안에 밀어 넣었다....“어디가 불편하십니까?”개인병원 진료실 안.가운 차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게요. 강 대리님이랑 하 대리님 사이에 예전에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강 대리님이 하 대리님한테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신 게 좀...”예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이 하나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해인 선배님은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 유명하셨잖아요. 저는 그냥 계속 존경해 왔을 뿐이에요.”예주는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아마 선배님이 저를 좀 오해하신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민하슬이 뭔가 떠올린 듯했다. 휴지를 꺼내 예주에게 건네면서 하슬이 말했
HJ그룹은 신재생 에너지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으로, 해인은 개발팀에 몸담고 있었다.이곳은 해인이 사회에 나와 처음 다닌 회사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행된 공개 채용을 통해 입사했다.대학 재학 시절 해인이 전공과 밀접한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논문이 우연히 회사 임원의 눈에 띄었다.회사는 직접 해인의 지도교수에게 연락해 해인을 지명했고, 그렇게 시작한 직장 생활이 어느덧 2년째였다.이제 곧 과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해인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에서 낮은 목소리로 오가는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왔다.“진짜
태겸의 눈에는 당혹감이 어렸다. 그가 아직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예주가 먼저 몸을 떼면서 말했다.“어젯밤에 오빠가 취했을 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어요.”예주의 두 눈에는 숨기지 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예주는 태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조심스럽지만 간절하게 말했다.“저한테 자리 하나만 주세요. 오빠 곁에 계속 있고 싶어요.”예주의 행동은 태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태겸의 눈에 스친 거리감을 예주는 애써 외면했다. 태겸이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예주는 손가락을 뻗어 그의 입술 위에
유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 아래로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너... 그렇게까지 그 사람을 좋아해?”“네?”해인은 잠시 멈칫했다.유호의 마지막 말은 너무 작게 속삭여서, 마침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천천히 시선을 든 유호가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인수 얘기는 오늘은 별로 할 기분이 아니다. 다음에 하지.”유호는 그대로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해인은 인상을 찌푸렸다.‘이 사람은 뭐야... 여기까지 불러서 이런 분위기까지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안 한다고?’그때 유호의 핸드폰이 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