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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5화

풍월
정지연의 얼굴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문제는 서은주가 콕 집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 반박할 수도 없고, 화를 낼 수도 없어 그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손리정은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은주야, 네가 말한 ‘꽃 꺾기’가 이거야?’

청순한 척하던 여린 꽃이 이미 버티질 못하고 있었다.

서은주는 미소를 띤 채 맞은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지연 씨,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닐 거예요. 그렇죠?”

정지연은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서은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날처럼 무자비했다.

그때, 직원이 다가왔다.

서은주의 커피가 비어 있는 걸 보고 리필을 권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손리정은 웃으며 정지연을 바라봤다.

“정지연 씨, 왜 물도 안 드세요? 혹시 맹물은 입에 안 맞으시나요?”

정지연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컵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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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제1293화

    허경빈의 목소리가 송지아의 귓가에 낮게 스며들었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다.송지아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무슨 결정을 한 건지, 정말 알고 있어?”“나 아이들 좋아해. 민찬이나 수린이, 우진이를 볼 때마다 생각했어. 나중에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얼굴일까. 널 더 닮을까, 날 더 닮을까 하고.”허경빈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그런데 지아야, 그건 전부 너와 함께할 때의 이야기야.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싶었던 건, 그 상대가 너였기 때문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상대가 송지아가 아니라면 그는 원하지 않았다. 그가 그려 온 미래에는 처음부터 지아가 있었다. 그녀가 빠진다면 그 모든 상상도 의미를 잃었다.송지아는 그가 자신을 위해 여기까지 마음을 정해 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뻤다. 그런데 그만큼 가슴도 아렸다.그녀도 그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닮은 아이만큼은 낳아 줄 수 없었다. 굳게 다잡았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허경빈…”“송지아, 넌 정말 이제 내가 싫어?”쉰 듯 낮은 목소리에는 평소의 자신감이 없었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사람처럼 들렸다.그 한마디에 송지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허경빈, 이러면 안 되잖아…”그는 당당한 사람이었다. 자신 때문에 이렇게까지 애원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왜 네가 울어.”허경빈이 그녀를 돌려 세워 마주 보게 했다. 손끝으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며 애써 웃었다.“버림받을 처지인 나도 안 우는데 네가 먼저 울면 어떡해. 울지 마. 네가 울면 나도 마음 아파.”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서두르지 않고, 눈물 자국을 따라 조심스레 입술을 옮겼다. 송지아가 눈을 감자 그의 입맞춤이 입술로 내려왔다.처음에는 부드러웠던 키스가 점차 깊어졌다. 허경빈의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받쳤다. 송지아는 잠시 그의 손길에 몸을 맡기다가 천천히 입맞춤에 응했다. 그러자 허경빈이 기다렸

  •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제1292화

    “네.”“부모라고 늘 옳은 선택만 하는 건 아니야. 우리도 잘못 판단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설 때가 있지.”허진강이 아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하지만 넌 이미 혼자서도 잘 해내고 있어. 어떤 선택을 하든 충분히 고민했을 거라고 믿는다. 네가 마음만 확실히 정하면 돼. 나중에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면서 후회할 일은 없을지.”허경빈은 아버지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이런 일은 적당히 타협해서 넘길 수 없어.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언젠가 너희 결혼 생활에 그게 걸림돌이 될 거야.”허경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송지아의 사정을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하지만 허진강이라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지아는 갑자기 떠났고, 경빈을 대하는 송씨 집안의 태도도 그 무렵부터 미묘하게 달라졌다. 분명 아들을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일이 뒤집힌 걸 보면, 그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으리라고는 짐작했다. 그 사정이 이런 것일 줄은 몰랐을 뿐이다.“그 애도 참 마음이 아프겠구나…”허진강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역시 부모였고, 지아를 아끼는 마음도 컸다. 불과 몇 달 사이 그 아이에게 닥친 일들을 생각하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부자는 서재에서 한동안 더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가 음식이 다 됐다고 부르고 나서야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경빈은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음은 벌써 송지아에게 가 있었다. 그는 차 키를 집어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잠깐만. 뭘 그렇게 급하게 가?”어머니가 그를 불러 세웠다. 허경빈이 돌아보자 포장해 둔 보온 도시락이 그의 앞에 내밀어졌다.“이거 가져가.”“저 배 안 고픈데요.”“누가 너 먹으래? 지아 만나러 가는 거잖아. 지아 주라고.”어머니가 아들을 흘겨봤다.“혼자 김칫국 마시기는.”부모는 알고도 묻지 않는 일이 있었다. 아들이 이 늦은 시간에 어디로 가려는지도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허경빈은 도시락을 받아 들었다. 손에 전해지는

  •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제1291화

    허진강은 물을 마시다 말고 아내를 한 번, 아들을 한 번 바라봤다.“아들, 송지아가 정말 널 싫다는 거야?”“그게…”“차인 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어? 평생 결혼 안 하겠다는 소리까지 하는 걸 보니, 상처받아서 연애도 결혼도 하기 싫어진 거냐?”“아버지, 그런 게 아니에요.” 허경빈이 멋쩍게 대답했다.아버지와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려 할 때마다, 왜 엉뚱한 데서 실마리를 찾으시는 걸까.“그럼 뭔데? 설마 실연당했다고 출가라도 하려고?” 허진강이 혀를 찼다. “전에도 말했지. 네가 중이 되겠다면 내가 산 하나 사서 절 지어 줄 테니, 주지나 하라고.”“좀 진지하게 들어 주세요. 농담할 때가 아니에요.”허경빈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농담 아닌데.” 허진강도 아들을 똑바로 바라봤다. “요즘은 혼자 살겠다는 사람도 많아. 부모 때문에 결혼한들, 결국 자기 뜻대로 이혼할 수도 있는 거고. 네 성격에 우리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지는 않을 테지.”그는 잠시 말을 골랐다.“결혼할 나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야.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거지. 우리한테 아들은 너 하나뿐이다. 네 결혼을 무슨 거래처럼 생각하고 싶지 않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면 좋겠어.”아버지가 이런 마음을 털어놓은 건 처음이었다. 평소엔 마주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었다. 진심 어린 말에 허경빈의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아버지, 어머니…”목이 메어 그 뒤로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허진강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부모라면 자식이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나도 이 나이가 되니 네 육씨 삼촌이 손주들에 둘러싸인 걸 보면 부러워. 그렇다고 네 마음보다 그게 앞설 수는 없어.”“저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줄은 몰랐어요.”“내 아들인데 널 사랑하지 않으면 누굴 사랑하겠냐?”허진강은 어이가 없었다. 이 녀석 눈에는 제가 부성애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냉혈한으로 보였단 말인가.그가 콧방귀를 뀌었다.“솔직히 말해 봐. 송지아한테

  •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제1290화

    “지아의 몸 상태가 어떤지는 알고 계시죠?”송지아가 앓았던 병의 주치의는 유주만이었다.그녀가 먼저 허경빈과 헤어지겠다고 했을 때, 유주만은 이미 그 이유를 짐작했다.하지만 송씨 집안에서 간곡히 부탁한 데다 환자의 개인정보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난 아무것도 몰라.”유주만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목말라 죽겠으니 일단 물부터 한 잔 마시자.”그는 탁자 위의 물병을 집어 컵에 물을 따랐다.막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허경빈이 잽싸게 컵을 가로챘다.유주만은 황당하고 화가 나 눈을 부릅떴다.“이 녀석아,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늙은이를 목말라 죽일 셈이냐?”“지아가 정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건가요?”“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어?”“지아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확인하러 온 거예요.”그제야 유주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본인에게 직접 들었다면서 나한테 뭘 더 확인하려는 거냐. 어떤 여자가 그런 일을 가지고 농담하겠어.”“약물 때문인가요?”유주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아이도 참 가엾지. 부족한 것 하나 없이 귀하게 자란 아이가 어쩌다 그런 일을 겪었는지…”그는 안타까운 듯 한동안 침묵했다.“애초에 그 약 자체가 워낙 독하고 기이한 물건이야. 그래도 몸을 꾸준히 치료하고 잘 회복하면 훗날 아이를 가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야.”“알겠습니다.”허경빈은 빼앗아 들었던 물컵을 유주만의 손에 쥐여 주었다.그러고는 대답을 듣자마자 거센 바람처럼 방을 빠져나갔다.온유란은 할아버지가 허경빈에게 억지로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왔다.그러나 허경빈은 이미 떠난 뒤였다.방 안에서는 화가 난 유주만의 목소리만 끊임없이 들려왔다.“망할 녀석! 그 천방지축 같은 놈 때문에 하마터면 허리를 다칠 뻔했어.”“경빈 씨가 할아버지는 왜 찾았대요?”온유란이 궁금한 듯 물었다.송지아가 떠난 뒤로 허경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요즘은 얼굴

  •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제1289화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한 정적이었다.그때 하랑이가 야옹 소리를 내며 울었다. 배가 고픈지 송지아의 다리에 몸을 비비며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챘다.그제야 송지아는 허경빈의 무릎에서 내려왔다.그녀는 몸을 숙여 하랑을 품에 안고 부드럽게 등을 쓸어 주었다.“먹을 게 있는지 찾아보자. 우리 하랑이를 굶길 수는 없잖아.”송지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다.헐렁한 잠옷 아래로 드러난 몸은 눈에 띄게 가늘었다. 휘청일 만큼 야위었지만, 가느다란 버드나무처럼 단단한 생명력만큼은 잃지 않았다.삶이 제멋대로 꺾고 구부려도 끝내 부러지지 않는 사람 같았다.하랑이는 예전에 허경빈과 함께 이곳에서 지낸 적이 있어 집 안에는 아직 고양이 사료가 남아 있었다.송지아는 그릇에 사료를 담아 주었다.하랑이 고개를 숙이고 사료를 먹기 시작하자, 허경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현관을 향하는 듯한 발소리가 들렸다.송지아는 고양이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온 신경은 허경빈의 움직임을 좇고 있었다.이제 정말 떠나는 모양이었다.그런데 허경빈은 현관문을 열지 않았다.문 앞에 내려놓았던 장바구니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주방으로 들어갔다.“어젯밤에 발작했으니 아직 몸에 힘이 없을 거야.”허경빈은 장바구니에서 식재료를 하나씩 꺼내며 말했다.“갈비를 좀 샀어. 푹 끓여서 국을 만들어 줄게. 저녁에는 새우도 삶고…”말을 마친 그는 벌써 소매를 걷고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송지아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다.그러나 허경빈의 머릿속에는 그 사실보다 진실을 말하던 그녀의 표정이 계속해서 맴돌았다.송지아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말했다.분명 웃고 있었지만, 차라리 우는 얼굴보다 더 처연해 보였다.그녀가 울기라도 했다면 품에 안고 마음껏 달래 줄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송지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다.그 모습이 오히려 허경빈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

  •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제1288화

    송지아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말끝에는 감추지 못한 떨림까지 배어 나왔다.“일할 때는 나도 충분히 독해.”허경빈은 송지아를 바라보다가 씁쓸하게 웃었다.“그런데 유독 너한테만은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가 없어.”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고개를 기울여 송지아의 귓불을 깨물었다.전혀 예상하지 못한 송지아는 따끔한 통증에 짧은 비명을 질렀다.“아파!”허경빈은 곧바로 이를 놓았다.하지만 입술은 여전히 그녀의 귓가에 닿아 있었다. 뜨거운 숨결과 함께 낮게 잠긴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오히려 독한 사람은 너야.”그 한마디에 송지아의 몸이 크게 떨렸다.“내가 다른 여자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봤으면서 어떻게 아무런 반응도 없을 수 있어?”송지아는 목을 뻣뻣하게 굳힌 채 그를 바라보았다.눈동자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당혹감이 가득했다.마치 눈앞의 허경빈을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내가… 너를 따라간 걸 알고 있었어?”송지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내가 경성에 돌아온 건 언제 알았는데?”“네가 라비엘 레지던스에 들어간 순간부터.”허경빈은 그녀의 당황한 얼굴을 보며 웃었다.“송지아, 요즘 지문 인식 도어록은 휴대전화와 연결되는 거 몰랐어? 누군가 문을 열면 바로 알림이 와.”“네가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허경빈은 조금 억울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처음에는 일부러 좀 더 기다리게 할 생각이었어. 네가 나를 버리고 갔으니, 적어도 사흘 밤낮 정도는 기다리게 해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그러나 곧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런데 네가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파서 더는 못 기다리게 하겠더라. 그래서 급하게 차를 몰고 나갔지.”허경빈이 자조적으로 웃었다.“우리 아빠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하셨는데?”“너한테 달려가려고 안달 난 꼴이 자존심도 없어 보인대.”송지아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허진강은 여전히 아들의 체면 따위는 조금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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