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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작가: 풍월
서은주는 나무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는 낡은 공책 하나와 아이의 평안을 기원하는 목걸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네 부모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부러 남겨둔 거야. 네가 보면 마음 아플까 봐, 그동안 보여 주지 못했어.”

이순옥은 이렇게 순순히 물건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서은주 뒤에는 육강민이 있었으니, 괜히 잔꾀를 부릴 배짱은 없었다.

서은주는 누렇게 바랜 노트를 조심스레 펼쳤다.

임신 기간을 기록한 일지였다.

첫 장을 넘기자, 단정히 적어 내려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우리 아기에게, 네가 우리 삶에 와줘서 고마워.]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렴. 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하고, 지켜줄 거야.]

……

아주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몇 줄만으로도 서은주의 눈가가 금세 촉촉이 젖었다.

자신도 사랑을 듬뿍 자란 아이였다는 느낌에 서은주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여읜 너를 우리가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구나.”

이순옥은 그녀의 흔들리는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

“우리 말고는 네게 다른 혈육도 없고, 명분도 없이 육강민 곁에 평생 있을 수도 없을 거고.”

“이제 돌아오렴. 우리는 항상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하지만 서은주는 상자 속의 목걸이를 문지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육강민은 육지성에게 전화를 걸어 육민찬이 이미 잠들었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지금 호텔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고, 곧 육강민과 서은주를 모시러 갈 참이었다.

통화를 마친 뒤, 육강민은 다시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 친구들과 잡담을 나눴다.

서은주를 위해 나서 준 일은 강성에 이미 다 퍼져 있었다.

모두들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감히 입에 올리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이 경성에까지 전해졌고, 그의 절친들이 채팅방에서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언제 우리 제수씨 보여줄 거야?]

[강성에서 돌아오지 않으려 하더니, 연애 중이었어?]

[보고 있는 거 다 아는데, 모른 척하지 마라.]

[잠깐 고민할 게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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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께서 워낙 많이 주셔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대표님.”놀이공원에서 나오는 길에 육강민은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고, 서은주는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았다.“이모, 꽃 받으니까 좋아?”요즘 육민찬은 서은주를 무척 따랐다.아빠와도 잘 어울리는 모습에 은근히 밀어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응, 좋아. 꽃 받아본 거, 처음이야.””장미를 안은 그녀는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육강민은 마치 누군가가 심장을 살짝 건드린 듯 마음이 살짝 아렸다.위미든으로 돌아온 뒤, 육강민은 육민찬과 함께 씻으러 갔고, 서은주는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의 허리는 이미 그의 품에 갇히고 말았다.그리고 반응할 틈도 없이 그가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여름 저녁노을이 주방을 가득 채웠다.서은주는 마음속에서도 잔잔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읍—”서은주가 그를 밀어냈다.“왜?”육강민이 그녀의 입꼬리를 가볍게 쪼아 물었다.“불편해?”“고개 들고 있는 게 힘들어요.”그는 키가 커서 키스할 때마다 그녀는 늘 고개가 꺾였고 오래 지속되다 보면 목이 뻐근해졌다.다음 순간, 서은주의 몸이 공중으로 들리고. 놀란 그녀가 짧게 숨을 들이마시는 사이, 차가운 조리대 위에 엉덩이가 닿았다.그녀는 그의 어깨에 의지한 채,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이 정도면 괜찮지?”서은주가 내려오려 하자, 그의 입술이 다시 서은주의 입술을 차지했다. “민찬이 나올 수도 있어요.”“벌써 잠들었어.”“아직 요리 중인데…”“내가 지금 먹고 있잖아.”“……”결국 서은주는 그를 당할 수 없었다.한바탕 사랑을 나눈 뒤, 서은주는 그의 품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민찬이랑 잠깐 경성에 다녀와야 올 거야.”그 말에 그녀의 몸이 확 굳는 게 느껴졌다. “언제 가요?”“내일 아침.”그는 고개를 숙여 다시 입술을 내렸다.“차는 두고 갈게. 너 이동할 때 편할 거야.”서은주는 고개만 끄덕일 뿐, 언제 돌아오는지,

  •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제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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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은주는 새벽부터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육강민이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니, 미열이 있는 듯했다.그는 곧바로 카운터로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직원이 해열제와 해열 패치를 가져다주었다.약은 독이 될 수도 있기에, 평소 육민찬이 아플 때도 웬만하면 약부터 쓰지 않는 편이었기에 우선 열만 내릴 수 있도록 패치를 붙였다. 힘없이 내려앉은 그녀의 눈이 육강민을 올려다봤다. 꼭 쓰다듬어 주길 바라는 새끼 고양이 같았다.“많이 아파?”“머리 아프고 온몸에 힘이 없어요.”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애교가 살짝 묻어났다.“내가 지켜줄게.”그 말에 서은주는 안심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육강민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그의 눈빛엔,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온기가 깃들어 있었다.원래도 몸이 연약했던 서은주는 결국 폭주하던 그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육강민 역시 스스로가 조금 지나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오직 그녀만을 더 가까이 원했을 뿐, 그녀가 버텨낼 수 있을지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그럼에도 그녀는 육강민을 밀어내지 않았다.“은주야.”“네?”열이 오른 상태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서은주는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앞으로 이렇게까지 착하게 굴지 마. 그러면 더 괴롭히고 싶어져.”“….”서은주는 대답 대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열에 시달리던 서은주는 동이 틀 즈음에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이모 아파요?”일찍 일어난 육민찬은 서은주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통통한 손으로 어른 흉내를 내며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다시 자신의 이마도 만져봤다.“뜨겁지는 않은데요?”“열은 내렸어. 이제 막 잠든 거니까, 방해하지 마.”육강민이 당부했다.“나 방해한 적 없어요.”육민찬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매번 아빠가 이모 붙잡고 안 놔주잖아요!”육강민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이 녀석,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야?’“내가 이모랑 못 자는 것도 아빠 때문이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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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강민은 녀석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그저 손짓으로 다가오라고 했고 한참 망설이던 육민찬은 느릿느릿 그에게로 걸어왔다.육강민은 팔을 뻗어 녀석을 품에 안았고, 목소리도 한결 누그러졌다. “다친 데는 없어?”“없어요! 오늘 나 혼자서 둘을 상대했어요. 아빠가 가르친 대로 왼손으로 훅하고, 오른 쪽 다리로 날라차기!”오늘의 ‘일 대 이 대전’을 떠올린 녀석은 스스로가 상당히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침실에 있던 서은주는 부자 간의 대화를 듣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외모는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싸우고 나서 으스대는 모습만큼은 똑같았다.메이크업을 다 지웠을 즈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손리정이었다.“은주야, 진백현 그 호구가 십억도 아니고 몇천억을 들여서 땅을 낙찰받았대. 너무 흥분했는지 넘어지기까지 해서 얼굴이 퉁퉁 부었다더라. 아 진짜 웃겨 죽는 줄!”손리정은 숨넘어가도록 웃어댔다.“알아. 그 현장에 내가 있었거든.”“걔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 돈 주고 사서 수지가 맞겠어?”“함정에 걸린 거지.”“누구한테?”“누구겠어.”손리정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나 이제부터 육강민 찐팬이야, 1호 팬이자 광팬. 너, 무조건 그 남자 잡아!”“신께 제발 두 분 백년해로할 수 있도록 비나이다!”“그만 좀 해.”서은주는 그저 웃으며 말을 잘랐다.“저녁에 나올래?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다음에. 애 데리고 온천 가기로 했거든.”손리정은 연신 한숨을 쉬며 의리보다 남자가 우선이라며 타박하면서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내가 준 거 꼭 챙겨 가. 아주 정신 못 차리게 만들란 말이다.”“….”서은주는 그제야 옷장에 숨겨둔 물건이 떠올랐다.저 상태로 두는 건 너무 위험했기에 당장 은신처를 옮겨야 했다.막 쇼핑백을 꺼내 드는 순간,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아직도 더 걸려?”기다리다 못한 녀석도 아빠를 재촉하며 함께 들어오려 했다. “금방 끝나요.”서은주는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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