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취조실 바닥에서 헛구역질을 하며 쓰러졌던 권도현은 간신히 개인 연구실 소파로 돌아왔다.
하얗게 질린 입술 사이로 마른침과 핏물이 섞여 흘러내렸다.
책상 위에는 한성대병원 이사회에서 긴급 송달된 묵직한 등기 서류가 차갑게 놓여 있었다. 연쇄살인범 상담 차트 유출 및 살인 교사 혐의에 따른 '석좌교수 직무 정지 및 진료권 박탈 통보서'였다.
“직무 정지……? 감히 내 진료권을 박탈해?”
도현의 떨리는 손이 서류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국내 최고 정신분석 권위자라는 화려한 명성, 방송과 학계의 찬사, 오만한 신(神)의 왕좌. 평생 타인의 약점과 결핍을 교묘하게 조작하며 쌓아 올렸던 거대한 성채가, 윤수안이 던진 단 몇 줄의 차트 분석과 논리적 반박 앞에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바스러지고 있었다.
치지직-!
그때, 어두컴컴한 연구실 벽면에 걸린 대형 전신거울 위로 기괴한 백색 노이즈가 일렁였다.
도현은 홀린 듯 비틀거리며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지더니, 전생의 수안을 폐쇄병동에 가두고 목을 매달게 종용했던 잔혹한 포식자의 얼굴로 뒤바뀌어 있었다.
“아니야…… 난 의사야! 사람을 고치는 고결한 정신과 의사라고!”
도현이 절규하며 책상 위의 크리스털 문진을 거울을 향해 전력을 다해 집어 던졌다.
쨍그랑-!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
그러나 깨져나간 수백 개의 거울 파편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수안의 메마른 눈동자들이 일제히 도현을 서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이 날 죽인 거야, 권도현.’
“으아악! 닥쳐! 닥치란 말이야!”
깨진 거울 조각 하나가 카펫 위에서 가늘게 떨렸다. 도현은 그 조각에 비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강연장과 진료실에서 늘 확신에 차 있던 손이었다. 이제는 손가락 끝이 뜻대로 굽어지지 않았고, 서류를 찢은 자리에 남은 종이 가루만 손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창밖에서 지나가는 차량 불빛이 깨진 유리 위를 훑고 지나갔다. 도현은 그 빛이 사라질 때마다 방이 더 좁아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연구실 안의 모든 물건이 낯선 증거물처럼 보였다.
그는 휴대전화를 쥔 채 여러 번 수안의 이름 앞에서 멈췄다. 사과를 하려는 건지, 다시 명령을 내리려는 건지 자신도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이 방에 혼자 남는 순간 환영이 더 선명해진다는 사실만은 알았다.
도현은 찢어지는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었다. 그리고 수안의 번호로 미친 듯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끝에 딸깍, 차갑고 건조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수안아…… 제발, 제발 한 번만 만나줘. 내가 미쳐가고 있어…… 제발 날 좀 봐줘…….”
도현의 목소리는 이미 오만한 교수가 아닌, 버림받은 짐승의 처절한 애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의 수안은 한 치의 동요도 없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냉정하게 선고했다.
“권도현 씨. 당신의 추악한 정신착란은 법정이나 폐쇄병동에 가서 소명하세요.”
뚝.
전화가 끊기는 순간, 연구실 창밖에서 벼락이 치며 깨진 거울 파편 위로 핏빛 비가 쏟아져 내리는 끔찍한 환각이 도현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폐쇄병동 401호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고도 경건한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스테인리스스틸 간이 테이블 위에는 보건복지부, 법무부, 대한정신의학회의 삼중 붉은색 관인이 찍힌 [장기 치료감호 관리 계획 및 의료용 식별 등록서]가 놓여 있었다.법원이 선고한 무기한 치료감호를 집행하되, 연례 외부 심사와 공동 주치의 검토 아래 장기 격리를 유지한다는 문건이었다. 윤수안은 총괄 책임자로 기록됐지만, 처치 변경에는 독립 전문의의 서명이 필요했다.덜컥-!오전 10시 정각, 독립 담당의와 간호사가 의료용 인식 태그를 들고 401호로 들어섰다. 윤수안은 등록 서류를 든 채 황색 안전선 밖에 머물렀다. 도현은 콘크리트 바닥에 이마를 대고 그들의 발소리를 들었다.“고개를 드세요, 401호.”독립 담당의의 안내에 도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독립 담당의가 식별 목적과 제거 기준을 설명한 뒤, 간호사가 착용 동의를 확인하고 검은색 밴드를 채웠다. 수안은 선 밖에서 등록 문구와 관리 기준만 확인했다.딸깍-!버클이 단단히 맞물리는 서늘한 금속음이 독방의 적막을 갈랐다.[피험자 401 - 장기관리 책임팀 / 총괄 윤수안]이라는 글자가 음각된 의료용 인식표였다.도현은 그 행정 표지를 자신과 수안을 묶는 증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문서에 적힌 것은 소유가 아니라 관리 책임과 심사 주기였다. 그는 목을 감싼 가죽 밴드의 차가운 감촉에 전율하며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흐윽…… 흑, 감사합니다…… 주치의님!”도현은 수안의 구두 코 바로 앞 바닥에 이마를 짓이기듯 비벼대며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이 목걸이야말로 제 평생의 훈장이자 유일한 구원입니다. 당신의 손아귀 안에서만 영원히 숨 쉬겠
국제정신의학회(WPA) 추계 학술대회 메인 세션.‘윤수안 범죄심리 및 외상후스트레스 치유 센터’의 센터장이자 경찰청 총괄 프로파일러인 윤수안의 특별 기조강연이 전 세계 수천 명의 석학들을 압도하고 있었다.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논문의 제목은 [가스라이팅 범죄 이후의 장기 관리와 피해 기록 보호]이었다.“가해자를 격리했다고 피해자가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치료 기록은 재범을 막고 책임을 확인하는 데만 사용해야 합니다. 자료 사용 범위도 계속 심사받아야 합니다.”윤리위원회가 승인한 비식별 자료에는 401호의 영상과 음성이 빠져 있었다. 수안은 장기 격리 과정의 위험 신호와 독립 심사 기록만 화면에 띄웠다. 강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자료 이용 범위와 치료자의 이해충돌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한 연구자는 환각이 줄었다는 수치만으로 회복을 판단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수안은 마지막 추적표를 띄웠다. “증상이 줄어든 것과 선택 능력을 되찾은 것은 다릅니다. 이 사례는 성공 판정이 아니라 장기 감독이 필요한 위험 사례입니다.” 다른 질문자는 피해자의 진술이 발표에 포함됐는지 확인했다.수안은 별도 동의를 받지 못한 진술과 사진은 한 건도 싣지 않았다고 답했다.같은 시각, 한성대병원 폐쇄병동 401호. 정규 교육 방송으로 강연을 보던 권도현은 화면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과 영상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런데도 그는 발표 속 사례가 자신을 가리킨다고 믿으며 눈물을 흘렸다. 누구도 부르지 않은 이름을 혼자 끼워 넣는 오래된 집착이었다.그는 책임을 다루는 강연마저 자신과 수안만의 관계로 바꾸려 했다.“윤 주치의님…… 전 당신의 표본입니다. 네 승리의 디딤돌이고, 네 영원한 포획물이야…….”
폐쇄병동 401호의 아침은 권도현이 바닥을 닦는 정해진 일과로 시작됐다. 결박 침대에서 일어난 도현은 얇은 면 걸레를 두 손으로 쥐고 황색 안전선 안쪽 바닥을 닦았다.그는 여전히 윤수안이 밟고 지나갈 길을 정돈하는 일이라고 의미를 붙이려 했지만, 병동 일정표에는 운동 기능과 일상 수행 능력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적혀 있었다.덜컥-!오전 9시 정각, 윤수안과 공동 담당의가 함께 독방 앞에 섰다. 도현은 걸레를 정해진 통에 넣고 황색선 뒤에 앉았다. 수안의 구두 소리에 시선이 쏠렸지만, 공동 담당의가 먼저 날짜와 신체 상태를 확인했다.“보고하세요, 401호.”수안의 건조하고 서늘한 명령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도현은 시선을 바닥 45도로 고정한 채,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24시간 동안의 생체 반응을 보고하기 시작했다.“수면 6시간, 심박수 평균 64회. 자정에 올가미 환각이 나타났고, 녹음된 호흡 안내를 세 번 따라 했습니다. 공황 발작은 없었지만 12분 동안 잠들지 못했습니다.”도현은 끝에 붙이려던 ‘이상 없음’이라는 말을 삼켰다. 공동 담당의가 직접 경험한 증상을 빼지 말라고 전날 설명했기 때문이다.수안은 도현의 맥박을 짚고 태블릿에 체크 표시를 남기며 서늘하게 물었다.“오늘 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 선택해 수행한 일은 무엇입니까?”도현은 가슴팍에 두 손을 모아 쥐며 황홀경에 젖은 목소리로 답했다.“6시에 일어났고, 물을 요청했습니다. 그다음 바닥을 닦았습니다. 주치의님이 오실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시작하라는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수안은 마지막 문장보다 물을 스스로 요청했다는 대목에 표시했다. 공동 담당의도 같은 항목에 시간을 적었
전날 면담이 중단된 뒤 공동 담당의의 야간 평가가 이어진 다음 날 오전 11시.지잉-!전동 블라인드가 서서히 올라가며 푸르스름한 관찰실 조명이 독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야간 평가와 정해진 급수를 받은 권도현은, 관찰실 조명이 밝아지자 반사적으로 바닥에 이마를 대고 납작 엎드렸다.덜컥-!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윤수안이 하얀 의사 가운을 펄럭이며 독방 안으로 들어섰다. 도현은 황색 안전선 뒤편 콘크리트 바닥을 손톱이 하얗게 질리도록 짚은 채,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어제 면담에서 어떤 반응을 경험했습니까?”수안의 서늘한 목소리가 머리 위로 차갑게 내리꽂혔다.도현은 쉰 목소리를 쥐어짜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읊조렸다.“전…… 과거의 권도현 교수가 아니며, 주치의 윤수안 님에게 그 어떤 사적인 감정이나 과거의 기억을 요구할 자격이 없는 401호 피험자일 뿐입니다. 제 유일한 본분은 주치의님의 처분에 오직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규정집에서 외운 표현과 도현 자신의 말이 뒤섞인 답변이었다.수안은 도현의 가슴팍에 차가운 청진기 판을 밀착시켰다.쿵, 쿵, 쿵. 청진기 너머의 심장박동은 분당 65회로 일정했다. 수안은 한 번의 수치만으로 안정 상태를 단정하지 않고 전날 기록과 대조했다. 차트에는 [피험자 401호: 사적 요구 감소, 타율적 순응 심화. 독립 평가 필요]라고 적었다.공동 담당의는 면담 전후 맥박과 답변 지연 시간을 별도 칸에 기록했다. 밤사이 급수량과 수면 시간도 같은 표에 붙었다. 어느 한 수치도 단독으로 회복을 뜻하지 않았다. 새벽 관찰 기록도 함께 보존됐다.“답변은 기록했습니다. 이후 평가는 독립 담당의와 함께 진행합니다.”수안의 건조한
오전 11시, 폐쇄병동 401호의 정기 심리 면담이 시작됐다.방탄 강화유리 너머에는 윤수안과 독립 담당의가 나란히 앉았고, 환자 대리인은 별도의 기록 화면을 열었다.“401호. 오늘 아침 7시 기상 직후 어떤 반응을 경험했습니까?”결박 침대 옆 황색선 뒤에 무릎을 꿇고 있던 권도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눈을 뜨자마자…… 주치의님이 오늘 몇 시에 올지 생각했습니다. 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수안은 답변 시간을 표시했다. 규정표를 외운 흔적과 불안이 한 문장 안에 섞여 있었다.“그 반응이 올라왔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바닥을 보고 숨을 셌습니다. 그런데도 수안아…….”도현은 말을 멈추지 못했다. “날 실험 기록으로만 보지 말고, 아주 조금이라도 과거의 날 기억해 주면 안 될까?”관찰실에서 펜 끝이 멎었다. 수안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의존 반응 증가와 경계 혼동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면담은 여기서 끝내고, 독립 담당의 평가로 전환합니다.”“아니야. 방금 말은 취소할게. 기록에서 빼 줘.”“이미 기록됐습니다. 삭제하지 않습니다.”수안은 마이크에서 손을 떼고 자리를 비켰다. 블라인드는 내려오지 않았고 조명도 그대로였다. 독립 담당의가 자리를 옮겨 인터폰 앞에 앉자 도현은 유리 너머 빈 의자를 보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윤수안 선생이 없는 상태에서도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까?”도현은 대답하려 했지만 이름만 목 안에서 맴돌았다. 담당의는 재촉하지 않고 물컵과 활력 징후 확인 시각을
독립 교대 72시간이 끝난 날 오후 3시 정각, 폐쇄병동 401호의 철문이 열렸다.지난 면회에서 종료를 요청했던 권도현은 황색 안전선 뒤편 바닥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윤수안은 차트 바인더를 든 채 선 밖에 멈췄고, 독립 담당의와 환자 대리인이 먼저 독방 안으로 들어갔다.“고개를 드세요, 401호.”도현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검은 유리창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그의 시선은 수안에게만 붙들렸다.“지난 면회에서 보인 거부 반응은 자발적 선택으로 판정하지 않습니다. 지난 72시간 기록과 함께 독립 담당의가 계속 평가할 겁니다.”수안의 말이 끝나자 공동 담당의가 체온계를 들었다. 그는 측정 목적을 설명하고 도현의 동의를 확인한 뒤, 체온계를 이마에 3초간 댔다. 차가운 측정부가 닿는 순간 도현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주치의님이…… 허락한 겁니까?”“체온 측정입니다. 면회 반응과는 관계없습니다.”수안은 황색선 밖에서 대답했다. 도현은 그 말을 듣고도 체온계가 떨어진 자리를 두 손으로 감싸려 했다. 공동 담당의가 손을 멈추게 하자 그는 곧바로 손바닥을 바닥에 붙였다. 면회를 거부하면 수안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연결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환자 대리인이 질문했다. “송민우 씨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이유를 본인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도현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 사람이 오면 주치의님이…… 저를 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대리인은 답변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보호나 충성으로 포장할 이유가 없는 의존 반응이었다. 수안은 평가란에 ‘외부 면회 거부를 관계 보상과 연결함’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