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수레는 있었고 수레꾼은 없었다.아침 마당에 수레 다섯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바퀴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간밤에 왔던 사내들은 동트기 전에 돌아갔다.“한 사람도요?”단비가 물었다. 오 서방이 배를 쓸며 고개를 저었다.“이 근방 수레는 다 윤가 짐을 싣습니다. 윤가가 부르지 않으면 굶어요. 마님 짐 한 번 실었다가 열두 달을 굶을 순 없지요.”“그 말을 어젯밤 그 사람들이 했습니까, 오 서방이 합니까.”“…제가 합니다.”“그럼 오 서방은 어느 쪽 사람입니까.”오 서방은 대답하지 않았다. 배만 쓸었다.서련은 간밤에 맨 앞에 섰던 수레꾼의 집을 물었다. 마을 어귀였다. 사내는 마당에서 새끼를 꼬다가 서련을 보고 일어서지도 못했다. 부엌에서 아이가 내다보았다. 밥그릇을 들고 있었다. 반쯤 빈 그릇이었다.“앉아 계십시오. 묻기만 하겠습니다. 윤가 짐은 한 달에 며칠 싣습니까.”“…열흘쯤요.”“나머지 스무 날은요.”“놉니다.”“그 스무 날에 제 짐을 실으면 윤가 짐을 못 싣게 됩니까.”사내가 새끼줄을 내려놓았다.“그런 게 아니라… 실었다는 걸 알면요.”“압니다. 그래서 윤가와 맺은 값은 그대로 두고, 제 짐은 따로 셉니다. 날마다, 그날 값을 그날 드립니다. 종이가 아니라 손에요.”사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서련은 더 밀지 않았다. 무서운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는 것은 값을 안 치르고 일을 시키는 것과 같았다.마당을 나서는데 아이가 따라 나왔다.“아주머니가 주인이에요?”“오늘은 손님이야.”“손님이 왜 아버지한테 일을 줘요?”“손님도 짐이 있으니까.”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서련은 아이의 빈 그릇을 한 번 더 보고 걸음을 옮겼다.돌아오는 길에 말발굽 소리가 났다. 세 필이었다. 앞에 이현이 있었다.그는 말에서 내려 서련 앞에 섰다. 백연전 마당에서처럼 서로 눈을 오래 두지 않았다. 그가 먼저 말했다.“수레꾼이 없다 들었소.”“빠르시군요.”“강무가 밤에 달렸소.”강무는 말 뒤에 서서 아
윤태선은 웃으며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안채 마루에 다시 상이 차려졌다. 이번에는 술상이었다. 윤태선은 안채 기둥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고 앉았다.“오래된 집이군요. 기둥이 좋습니다.”서련은 그 손이 값을 매기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상석을 비워 두고 옆자리에 앉았다. 부채로 상석을 가리켰다.“주인 자리입니다. 앉으시지요.”“창고에서 먹고 왔습니다.”“그럼 술만.”서련은 앉되 잔을 받지 않았다. 윤태선은 개의치 않고 자기 잔을 채웠다. 부채를 접어 상 위에 놓았다. 살이 검은 부채였다. 그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꼭 부채를 한 번 만졌다.“이른 봄에 부채를 드시는군요.”“셈을 할 때는 손이 뜨거워져서요.”“그럼 오늘 셈이 많으신가 봅니다.”“계산을 해 봤습니다. 서련 님 장원에 제가 미리 드린 돈이 이백육십 냥. 올가을까지 나올 것이 그만 못하지요.”“모자랍니다.”“그래서 빌려드리겠다는 겁니다. 일꾼 품삯 석 달치. 이자는 없습니다.”“조건은요.”윤태선이 웃었다. 조건을 묻는 사람을 좋아하는 웃음이었다.“납품 독점을 세 해 더. 그것뿐입니다.”“그것뿐이라는 말이 제일 비쌉니다.”“궁에서도 그렇게 값을 물으셨습니까.”“궁에서는 묻지 않아도 왔습니다. 그래서 몰랐지요.”부채가 상 위에서 반 뼘 움직였다. 서련은 품에서 약정 사본을 꺼내 펼쳤다. 넷째 줄을 지나 다섯째 줄에 손가락을 놓았다.“불량품이 나오면 전액 장원 부담. 판정은 납품 관리인이 한다. 납품 관리인은 윤태선 님 댁 사람이고요.”“관례입니다.”“관례로 지난 세 해 불량이 얼마였습니까.”윤태선이 잔을 비웠다. 부채를 폈다가 다시 접었다.“박 관리가 알 겁니다.”“박 관리는 모른다 했습니다. 그런데 오 서방 장부에는 해마다 예순 냥 남짓이 불량으로 적혀 있더군요. 오후에 봤습니다.”“무가 얼어서요.”“세 해 내내 같은 무게만큼 얼었군요.”윤태선은 대답 대신 서련의 손을 보았다. 종이를 누른 손이었다. 손톱 옆이 갈라져 있고 검지 끝에 바늘 자국이 있었다.
서련은 만찬상을 물리고 창고로 갔다.상석의 사내는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서련이 마루를 내려설 때 그가 국을 한 술 떴다. 단비가 뒤를 따르며 소리 죽여 말했다.“저 사람 밥값은 누가 냅니까.”“곧 알게 되겠지.”창고 옆 헛간에 일꾼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보리밥에 시래기 국이었다. 국은 멀겠다. 건더기보다 김이 많았다. 서련이 들어서자 숟가락 소리가 일제히 멎었다. 늙은 일꾼 하나가 엉거주춤 일어서다 말았다.“앉으십시오. 저도 앉겠습니다.”“마님, 여긴 흙바닥인뎁쇼.”“흙은 제 땅 흙입니다.”부엌 아낙이 밥 두 그릇을 더 가져왔다. 단비가 네 푼을 냈다. 아낙이 그 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단비가 국을 한 술 뜨고 눈을 찡그렸다. 서련은 찡그리지 않았다. 다 먹었다. 그것을 헛간의 스무 사람이 보았다.서련은 밥을 다 먹고 나서야 물었다.“품삯은 언제 받으십니까.”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늙은 일꾼이 숟가락을 놓았다. 덕보라 했다.“받긴 받습니다요. 장부에는요.”“손에는요.”“…손에는 안 옵니다요.”덕보의 설명은 길지 않았다. 가을에 거둔 것은 전부 윤가에서 미리 준 돈, 선납금 값으로 실려 나간다. 품삯은 다음 선납금에서 떼어 준다. 그런데 다음 선납금이 오면 그건 또 다음 가을 것이라 창고 채우는 데 들어간다. 그러니 품삯은 늘 종이 위에만 있다.“창고에 있는 건 무엇입니까.”“쌀하고 무하고 장작입니다요. 가을 것 그대로요.”“그게 다 선납금 값이고요.”“예. 저희가 거둔 걸 저희가 못 먹습니다요.”“세 해째입니다요.”“세 해 동안 은자를 한 번도.”“봤습니다요. 만져 본 적이 없을 뿐입지요.”서련은 국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이 보였다.“이 국은 얼마짜리입니까.”“…두 푼입지요.”“두 푼에 김만 있군요.”덕보가 처음으로 웃었다. 이가 몇 개 없었다.젊은 일꾼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낮에 폐후라 했던 목소리였다.“그래도 밥은 줍니다. 밥 주는 데는 여기뿐이에요.”“밥값은 품삯에서 뗍니까.”“…예.”“그
다음 급료 날까지 열하루, 남은 돈은 여드레치였다.서련은 함 바닥의 은자를 세고 뚜껑을 덮었다. 두 번 세지 않았다. 두 번 센다고 늘어나는 돈이 아니었다.“장원에 가겠습니다.”단비가 빗자루를 든 채 멈췄다.“손님 자격으로만 오라고 했잖아요.”“그러니 손님으로 갑니다. 주인이 못 가는 땅이면 손님이라도 가서 봐야지요.”서진이 문턱에서 그 말을 들었다. 지팡이 없이 선 지 사흘째였다.“나도 갑니다.”“앉으세요.”정온이 뒤에서 말했다. 서진은 앉지 않았다.“누나 혼자 보내고 나는 여기서 죽이나 먹으라고요.”“죽은 내일까지입니다. 모레부터 밥입니다.”“그러니까 갑니다.”“수레에서 반나절을 흔들리면 모레도 죽입니다.”정온은 그 말만 하고 약탕기를 들여다보았다. 서진이 누이를 보았다. 서련은 동생 앞에 오 서방이 보내온 장부 묶음을 밀어 놓았다. 석 달치였다. 볼 시간이 없어 끈도 풀지 않은 것이었다.“그럼 이건 누가 봅니까.”서진이 묶음을 내려다보았다. 잠깐 말이 없었다.“…장부는 제가 봅니다.”“숫자가 안 맞으면 표만 해 두세요. 맞추지는 말고요.”“왜요?”“맞추는 건 저쪽이 잘합니다.”“누나는 가서 뭘 하려고요.”“손님 노릇.”“누나가 손님 노릇을 한다고요.”“그건 저도 궁금합니다.”정온이 약탕기를 보며 말했다. 서진이 처음으로 웃었다. 정온이 약탕기 뚜껑을 닫는 소리가 조금 컸다.새벽 대문 밖에 말 두 필이 서 있었다. 하나는 강무가 잡고 있었고 하나에는 이현이 타고 있었다. 사흘 만이었다. 금비녀 이야기 뒤로 두 사람은 서로 눈을 오래 두지 않았다.“강무를 데려가시오.”“호위는 필요 없습니다.”“호위가 아니라 길 안내요.”“길은 제가 압니다.”“그럼 강무가 배울 것이오.”이현은 그 말만 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서련은 그의 등이 모퉁이를 돌 때까지 보다가 수레에 올랐다. 단비가 옆에서 작게 말했다.“화가 덜 풀리셨나 봐요.”“누가.”“…두 분 다요.”강무는 정말로 길을 몰랐다. 갈림길마다 서련이
금비녀는 생각보다 싸게 팔렸다.금은 무게로 팔렸고 사연은 값이 없었다. 시장의 금방 주인은 비녀를 저울에 올리고 손톱으로 긁어 보고, 서련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어디서 난 물건입니까.”“어머니 것입니다.”“그럼 값을 조금 더…”“무게대로 주십시오.”주인이 저울을 한 번 더 보았다. 값은 그대로였다. 그것이 서련에게는 나았다.“열두 냥입니다.”“됐습니다.”돌아오는 길에 단비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문 앞에서야 물었다.“어디에 쓰실 거예요?”“뒤채 아이들 이불, 옷, 글 가르칠 사람 삯. 공주께서 방과 밥은 대신다 했으니 나머지는 내가 대야지. 그리고 돌아가는 다섯 집에 보증금을 먼저 채워 줘야 해. 한 달 뒤에 올 돈을 기다리며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으니까.”“전하께 말씀드리면…”“전하 돈이 아니야.”단비는 입을 다물었다. 그 입이 반나절을 못 갔다.아침에 아이들이 떠났다. 하린이 먼저였다. 명주가 보퉁이를 지고 하린이 어머니 손을 잡았다. 파란 손이 어머니의 거친 손 안에 들어갔다. 채운이 밤새 줄인 옷이 아이 몸에 맞았다. 채운은 오지 않았다. 침방 낮 일이 있었다. 대신 안감 솔기에 둥근 매듭 셋을 남겼다. 대문 앞에서 하린이 돌아보았다.“서련 님.”“응.”“…고맙습니다.”“네가 골랐어. 나는 문만 열었고.”명주가 허리를 숙였다.“열흘 뒤에 품삯을 받으면…”“받으시면 하린이 신발부터 사 주세요. 저한테는 아무것도요.”하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갔다.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것이 서련은 좋았다.뽕밭 아이의 어머니는 서련에게 붓을 하나 내밀었다. 꺾인 붓이었다.“이걸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시는 안 쓸 거라서요.”“쓰실 일이 있을 겁니다. 좋은 일로요.”어머니는 붓을 도로 넣었다. 딸의 손을 잡고 갔다.염색터 아이 둘이 갔다. 창고 아이 하나가 아버지 손을 잡고 갔다. 발 다친 아이는 마루에 앉아 그 등을 오래 보았다. 다섯이었다. 뒤채에 넷이 남았다. 셋은 보호, 하나는 다음 선발까지 기
심리장에 아이들은 없었다. 대신 어른들이 앉았다.명선이 상석에 앉았고, 그 옆에 문서를 적는 시종이 앉았다. 왼쪽에 명주, 뽕밭 아이의 어머니, 천수. 오른쪽에 봉 상궁과 장가. 수레꾼은 가운데 혼자 앉았다. 뒤쪽 기둥 옆에 태후전 상궁이 서 있었다. 앉지 않았다.“아이들은 어디 있습니까.”봉 상궁이 먼저 물었다.“백연전에 있습니다.”“통지를 못 받으셨습니까. 아이들이 직접 말해야…”“아이들은 데려간 사람 앞에 서지 않습니다. 데려간 사람이 아이들 앞에 서는 겁니다. 오늘은 그 자리입니다.”명선이 손을 들었다.“서련의 말이 맞소. 아이들을 부르는 것은 심리가 아니라 구경이오. 시작하겠소.”수레꾼이 먼저 불렸다. 그는 앉은 채로 말했다. 눈이 바닥에 있었다.“그날 밤, 아이들은 스스로 수레에 탔습니다. 내리는 데도 스스로 내렸고요. 저는 그냥 몰았습니다.”“염색터에 넷을 내렸다고 하셨지요.”“…기억이 없습니다.”서련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강무의 글씨였다. 그 밑에 손도장.“이건 어르신 손도장입니다. 닷새 전 강무 앞에서 찍으셨지요. 넷은 염색터, 셋은 뽕밭 수레로 갈아탔고, 둘은 창고. 봉 상궁이 삯을 줬다. 여기 그렇게 있습니다.”“…그날은 겁이 나서.”“오늘은 안 나십니까.”수레꾼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서련은 목소리를 낮췄다.“그저께 저녁에 댁 앞에 가마가 섰지요. 연화전 가마였습니다. 그 뒤로 술값이 생기셨고요. 그 이야기를 지금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하겠습니까.”방이 조용해졌다. 뒤쪽 기둥 옆에서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태후전 상궁이 몸을 조금 돌렸다.수레꾼의 어깨가 내려앉았다.“…넷을 염색터에 내렸습니다. 아이들이 울었습니다. 봉 상궁이 삯을 줬고, 입 다물라 했습니다. 그저께 온 사람은… 술값을 주고 갔습니다. 누군지는 말 안 했습니다.”“됐습니다. 그것으로 됐습니다.”명선이 명주를 보았다.“그대는 무엇을 듣고 손도장을 찍었소.”“교육비 면제요. 장원이라는 말은 없었습니다.”“천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