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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모연미
다음 날, 서재헌의 말대로 송연화의 친어머니 김서영이 입궁했다.

송연화는 몸단장을 마치고 잠시 기다렸다.

"연화야?"

가느다란 떨림이 밴 목소리가 들렸다.

송연화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는 기척만 느낄 수 있었다.

김서영은 송연화를 바라보았다. 감정이 모조리 사라진 듯 공허한 두 눈과 눈에 띄게 야윈 몸, 임신으로 불룩한 배는 가느다란 몸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송연화가 북방 변경으로 떠난 뒤 모녀가 얼굴을 마주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김서영의 마음은 복잡하게 뒤엉켰고, 까닭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딸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품에 안고 기른 아이가 아니었다. 아무리 공평하게 대하려 해도 본능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어머니?"

송연화의 목소리는 서늘하고 소원했다.

김서영은 눈물을 훔쳤다.

"눈은 좀 나아졌니?"

입궁하기 전부터 소문은 들었다. 송연화가 궁에서 큰 병을 앓았고, 아이를 가져 쓸 수 없는 약이 많았던 탓에 눈이 멀었다고 했다.

송연화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럭저럭입니다. 태의 말로는 아이를 낳고 몸을 잘 돌보면 다시 보게 될 수도 있지만,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말하듯 담담한 어조였다.

김서영의 가슴 한구석이 바늘에 찔린 듯 아렸다. 송연화는 송유란과 달리 시골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몸이 튼튼했다.

그래서 송씨 가문의 딸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황자에게 시집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송연화를 골랐다.

훗날 어떤 화를 입더라도 건강한 송연화가 송유란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여겼다.

송연화에게 죄를 지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이해득실을 따지면 그것이 최선인 듯했다.

"다 나을 거야. 어미가 몸에 좋은 것을 잔뜩 가져왔으니 먹고 나면 좀 나아질 게다."

김서영이 달랬다.

송연화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보약을 받아 두라고만 명했다.

모녀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방 안에는 냉랭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김서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애써도 송유란을 대할 때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한참 입술만 달싹이던 끝에야 입궁한 목적을 꺼냈다.

"연화야, 사실 오늘 온 건 부탁할 일이 있어서란다."

송연화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김서영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부군의 당부를 떠올리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네 아버지는 유란이를 입궁시키길 바라신다. 그리고... 네 첫아이를 언니에게 양자로 보내 주면 안 되겠니? 그 아이는 몸이 약해 아마 자식을 품지 못할 게야..."

말끝이 흐려질수록 김서영은 차마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자신도 뻔뻔한 부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송유란은 오랫동안 폐하를 기다렸고 몸마저 허약했다. 날로 야위어 가는 아이를 지켜보자니 어미로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한 사람만 바라보다 외롭게 남은 생을 끝내게 둘 수는 없었다.

송연화는 긴 속눈썹을 내려 표정을 감췄다.

그러다 문득 웃으며 물었다.

"어머니, 그날 제게 약을 먹여 폐하의 방에 들여보내신 분이 어머니셨습니까?"

난데없이 벼락이 떨어진 듯했다.

김서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오랫동안 감히 대답하지 않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송연화는 모든 것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연화야, 나는..."

김서영은 말을 꺼냈다가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송연화가 차갑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처음부터 이 일을 알고 계셨습니까?"

김서영은 송연화가 이미 진상을 알아 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이런 추궁을 할 리 없었다.

손을 꽉 움켜쥔 채 낮게 대답했다.

"처음에는 몰랐단다. 유배를 떠나기 전날 밤, 내가 유란이를 데리고 폐하를 한 번 찾아갔어. 그때 알게 되었지."

그제야 송연화는 유배 뒤부터 서재헌이 송연화에게 조금씩 눈길을 주기 시작한 까닭을 깨달았다.

그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순진했던 송연화는 마침내 자신의 정성이 그를 움직였다고 믿었다. 사랑까지는 감히 바라지도 못하면서, 그것만으로도 더없이 만족했다.

이제 그녀의 가슴은 성한 곳 하나 없이 너덜너덜해진 듯했다.

오랜 세월 쌓인 설움을 생각하면 원망하고 증오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수많은 말은 결국 한마디로 흩어졌다.

'그만하자.'

송연화가 눈을 내리깔았다.

"태의 말로는 늦어도 한 달 반 뒤면 아이를 낳는다고 했습니다. 언니의 소원을 들어줄 수는 있지만, 대신 제게 물건 하나를 주십시오."

김서영은 송연화의 태도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송유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무엇을 원하니?"

"송씨 가문에 대대로 전해 오는 회혼단을 주십시오. 아이를 낳는 날 죽음을 가장해 황궁을 빠져나가겠습니다."

김서영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송연화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송연화는 오래전부터 준비한 말을 꺼냈다.

"그동안 저는 언니 대신 혼인해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이제 아이까지 언니에게 남겨 드리겠습니다. 송씨 가문에서 생명을 받은 은혜는 이로써 갚았으니, 앞으로는 서로 빚진 것 없이 살겠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어머니."

김서영은 숨을 급히 들이켜고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너는 송씨 가문의 딸이야. 어미가 너에게 죄를 지은 건 알지만, 혼자서 어디로 가겠다는 거니?"

"송씨 가문으로 돌아오기 전에도 혼자 잘 살아왔습니다."

송연화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김서영은 몸이 굳었다. 송연화를 데려온 뒤에야, 신분이 뒤바뀐 아이가 그대로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어느 시골 아낙이 아이를 주워 길렀지만, 송연화가 대여섯 살이 되었을 무렵 그 아낙마저 세상을 떠났다.

대여섯 살부터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송연화는 홀로 외롭게, 힘겹게 살아남았다.

그 순간 김서영의 가슴에 아픔과 후회가 희미하게 번졌다.

'내가 이 아이에게 너무 잔인했던 걸까?'

그녀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어미가 잘해 주고 싶구나, 연화야."

송연화는 죄책감 어린 목소리를 듣고 희미하게 비웃었다.

"그럼 황후 자리도 제게 주시고, 아이도 제 곁에 남겨 주십시오.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김서영은 말문이 막혔다.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송연화는 다시 한번 옅게 비웃었다.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송유란과 비교되는 순간, 자신은 언제나 두 번째였다.

...

김서영을 돌려보낸 뒤 송연화는 잠시 눈을 감고 쉬었다. 산책이라도 나가고 싶어 여러 번 연이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밖에 있던 궁녀가 소리를 듣고서야 안으로 들어왔다.

"마마."

송연화가 물었다.

"연이는 어디 있느냐?"

궁녀가 고개를 저었다.

"연이 언니가 잠시 밖에 나갔습니다. 아마 볼일이 생긴 듯합니다."

송연화는 살며시 미간을 좁혔다. 그날은 우산을 찾겠다며 자신을 빗속에 버려두더니, 오늘도 종적이 묘연했다.

'이 아이가 대체...'

"됐다. 아무 일도 아니니 물러가거라."

궁녀가 물러났다.

송연화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 시각, 다른 곳.

송유란은 나른한 얼굴로 손을 내밀어 궁녀가 손톱에 물을 들이게 했다.

"확실히 들은 거야? 정말 회혼단을 달라고 했어?"

무릎을 꿇은 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소인이 똑똑히 들었습니다."

송유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망치겠다는 거야?"

아름다운 두 눈에 섬뜩한 빛이 스쳤다. '그 천한 계집이 그토록 오랫동안 서재헌 오라버니를 차지하고도, 이제 와서 멀쩡히 빠져나갈 생각이라니?'

"됐다. 이번 일은 잘했어. 나가서 상을 받거라."

그자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했다.

사람이 나간 뒤.

송유란의 곁을 지키던 궁녀가 입을 열었다.

"그 천한 계집도 제법 분수를 아는 듯합니다. 아가씨께서 한몫 거들어 주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송유란이 가볍게 웃었다.

"물론 도와야지. 아주 황천길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줄 거야."

궁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설마..."

"회혼단을 먹으면 죽은 것처럼 보인다지. 그러니 이번에는 완전히 죽여 없애야 후환이 없을 거야. 어머니 곁의 어멈을 매수해서 그 약을 절명환으로 바꾸게 해."

명령을 내린 송유란이 다시 웃었다.

궁녀는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예..."

송유란은 손톱을 이리저리 살폈다.

고운 손가락 끝에서 칼날처럼 서늘한 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흡족하게 웃었다.

"가자. 고모님께 갈 시간이야. 참, 가는 길에 그 천한 계집도 불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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