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구구, 힘도 세네. 알았어, 알았어. 집에 가서 씻고 맘마 먹자.”
나는 녀석을 품에 꼭 안았다.
비에 젖은 털에서 비릿한 쇠 냄새가 났지만, 깨끗이 씻기면 비누 향이 날 것이다.
따뜻한 내 체온이 닿자, 격렬하게 저항하던 녀석의 몸이 조금씩 굳어졌다.
‘이제 좀 얌전해졌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저 멀리 보이는 오두막(내 하우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품에 안긴 녀석이, 제국 북부를 공포로 몰아넣은 ‘광증의 폭군’ 칼리드 대공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칼리드 드 에페르토 시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다.
칼리드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저주받은 피가 폭주했다. 이성을 잃고 마수화가 진행된 상태로 북부의 숲을 며칠이나 헤맸는지 모른다.
몸은 찢어질 듯 아팠고, 뼛속 깊이 박힌 마기의 독성이 전신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차라리 다행이었다. 자신이 완전히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어 사람들을 학살하기 전에 죽는 편이 나았다.
기사단도 따돌렸다. 이제 이 숲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면 끝날 일이었다.
그때였다.
안개 속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인간?’
아니, 인간일 리가 없다.
이곳은 ‘죽음의 숲’이다. S급 마수들이 우글거리는 이곳에, 호위 하나 없이 제 발로 들어올 인간은 없다.
하지만 다가오는 형체는 분명히 가녀린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맨발로, 독초가 가득한 숲을 산책하듯 걸어오고 있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녀의 태도였다.
칼리드는 현재 반쯤 마수화가 진행되어 흉측한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크기만 조금 줄어들었을 뿐, 뿜어내는 살기와 마기는 여전히 주변의 풀을 말라 죽일 만큼 맹독성이었다.
그런데.
“아가, 괜찮니?”
여자가 눈높이를 맞추며 말을 걸어왔다.
미친 건가?
칼리드는 본능적으로 살기를 뿜으며 경고했다. 목구멍에서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당장 꺼지라고. 내게 가까이 오면 너도 찢어발겨질 거라고.
하지만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 이거 먹을래? 맘마.”
그녀가 내민 것은 최고급 마수, ‘와이번의 심장’을 말린 육포였다.
저걸 어디서 구했지? 아니, 애초에 저걸 왜 나한테 흔드는 거지?
칼리드는 혼란스러웠다. 이 여자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녀의 몸에서는 그 어떤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숲의 모든 마수들이 그녀를 피해 숨죽이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위험하다.’
직감이 경고했다. 이 여자는 괴물이다. 나 같은 반쪽짜리 괴물이 아니라, 태생부터 격이 다른 존재.
그녀가 손을 뻗어왔다.
칼리드는 최후의 저항으로 그녀의 손목을 물어뜯었다. 강철도 씹어 부수는 악력으로.
챙-!
이빨이 튕겨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피가 터져 나와야 정상인 상황에서, 그녀의 피부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태연하게 내 미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갈이 하는구나?”
이 갈이?
지금 내 살의를, 목숨을 건 공격을 고작 젖니 나는 짐승의 투정 취급한 건가?
경악으로 굳어버린 칼리드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녀가 한 손으로, 너무나 가볍게 80kg에 육박하는(현재는 마수화로 인해 더 무거운) 자신을 들어 올린 것이다.
“어구구, 힘도 세네.”
이건 악몽이다.
저항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녀가 품에 안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하고 따뜻한 파장이 칼리드의 날뛰던 마기를 순식간에 짓눌러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산이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 그러나 동시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포근함.
‘움직일 수가…… 없어.’
칼리드는 전율했다.
제국의 소드마스터도 감당하지 못하는 내 폭주를, 포옹 한 번으로 제압하다니.
이 여자는 북부의 마녀인가? 아니면 숲이 만들어낸 환영인가?
“집에 가서 씻고 맘마 먹자.”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칼리드는 그녀의 품에 갇힌 채, 정체불명의 오두막으로 납치당하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보다 더한 공포와 알 수 없는 수치심이 밀려왔다.
오두막 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늑했다.
물론 내 눈에만 그렇다는 거다.
벽난로에서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고 있었고, 푹신한 러그가 깔려 있었다.
나는 녀석을 욕실로 데려갔다.
“자, 목욕하자 뽀삐야.”
나는 내 마음대로 녀석의 이름을 ‘뽀삐’로 정했다. 하얗고 귀여우니까 딱이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강아지 전용 입욕제를 풀었다. 라벤더 향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들어가자~”
녀석을 물에 넣으려 하자, 뽀삐가 네 발로 욕조 테두리를 잡고 버텼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
목욕을 싫어하는 강아지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아이, 씻어야지. 지지 묻었잖아.”
나는 뽀삐의 엉덩이를 살짝 밀었다.
풍덩.
결국 뽀삐는 체념한 듯 물속에 잠겼다.
물이 닿자 엉겨 붙어 있던 붉은 페인트(피)가 씻겨 내려가고, 본래의 은색에 가까운 하얀 털이 드러났다.
“어머, 너 털 색깔 진짜 예쁘다.”
나는 감탄하며 뽀삐의 몸을 구석구석 씻겼다.
등을 문지르고, 배를 문지르고, 꼬리까지 꼼꼼하게.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배를 문질러줄 때마다 뽀삐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꾸만 앞발로 중요 부위(?)를 가리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구나.’
나는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뽀삐야. 누나는 다 봤어.”
그 순간, 뽀삐가 입을 떡 벌리고 나를 쳐다봤다. 얼굴(주둥이)이 묘하게 빨개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나는 거품을 헹궈내고 수건으로 녀석을 감쌌다.
물에 젖은 강아지는 왜 이렇게 못생기고 귀여운 걸까?
드라이기(마법 도구)로 털을 말려주자, 뽀삐는 다시 솜사탕처럼 뽀송뽀송해졌다.
“자, 이제 밥 먹자!”
목욕으로 기력을 썼으니 보양식을 먹일 차례였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마이 리틀 펫샵>의 냉장고는 무한 식량 창고나 다름없다.
나는 그중에서도 ‘대형견용 스테이크 통조림’을 꺼냈다.
접시에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덜어내고, 그 위에 영양제 가루를 솔솔 뿌렸다.
“뽀삐야, 맘마!”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자, 소파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뽀삐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녀석은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눈빛이었지만, 코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배고픔 앞에서는 장사 없는 법이지.
녀석은 조심스럽게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오물오물, 쩝쩝.
거대한 괴조(Monster Bird) 무리가 나타났다.‘스톰 로크(Storm Roc)’. 날개 하나가 집채만 한 전설의 새들이었다.녀석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거대한 쇳덩어리를 보고 공격해왔다.“전투 배치! 대공포 가동!”발렌이 소리쳤다.기사들이 대포(콩알탄 발사기라고 부르지만 위력은 유탄발사기급)를 잡았다.하지만 나는 여유롭게 웃었다.내 눈에 저 새들은…… ‘거대한 치킨’으로 보였으니까.“어머, 도시락 배달 왔네?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나는 주방에서 ‘대형 그물총’을 꺼내 들었다.그리고 갑판으로 나갔다.“여보! 튀김기 예열해 놔요! 닭 잡으러 간다!”칼리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양념 소스도 준비하겠다.”부창부수(夫唱婦隨).남편은 이제 내 말만 들어도 척척 알아듣는 경지에 이르렀다.나는 그물총을 쏘았다.펑!마법 그물이 펼쳐지며 선두에 있던 대장 로크를 낚아챘다.나머지 새들은 기겁하며 도망쳤다.우리는 산맥을 넘는 동시에, 일주일 치 식량(닭고기)까지 확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바다의 첫인상은 짠맛이
발렌 기사단장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들어봤어도, 진짜로 배를 산으로 옮기라니.“가능합니다.”로드릭(마탑주)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나섰다.“저희 마탑의 ‘반중력(Anti-Gravity)’ 마법과, 한스의 ‘부스터 엔진’을 결합하면…… 배를 띄워서 산을 넘을 수 있습니다.”“오! 역시 로드릭 아저씨! 똑똑해!”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결국 우리는 오두막 앞마당을 ‘조선소’로 개조했다.숲속에서 거대한 강철 선박을 건조하는, 전대미문의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건조 10일 차]오두막 앞마당은 거대한 공사판이 되었다.밭갈이 1호와 2호(새로 만든 로봇)가 크레인처럼 자재를 날랐고, 오크들은 철판을 두드렸다.“영차! 영차! 밥 먹고 힘내라!”오크 대장 가르카가 확성기를 들고 지휘했다.오크들은 이제 건설 현장의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안전모(바가지)를 쓰고 작업복(조끼)을 입은 그들의 모습은 제법 전문적이었다.나는 현장 식당(함바집)을 운영했다.메뉴는 ‘고봉밥’과 ‘제육볶음’, 그리고 시원한 ‘오이냉국’.
그렇게 나의 사업을 방해하던 세력은 사라졌고, ‘에델린 맘마’는 제국 황실 납품 공식 인증을 받게 되었다.돈방석에 앉게 된 건 덤이었다.* 아기의 첫 던전 탐험 (feat. 지하의 비밀)레온이 3살이 되었다.이제는 제법 말도 잘하고, 뛰어다니는 속도가 치타 수준이었다.그리고 사고 치는 스케일도 커졌다.어느 날, 레온은 한스가 만들어준 ‘드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오두막 지하실 구석에서 땅파기 놀이를 하던 중이었다.“두두두두! 땅 파기 재밌다!”레온이 드릴을 바닥에 꽂았다.그런데 이 장난감, 사실은 실제 채굴용 드릴의 축소판이었다. (한스의 안전 불감증이 또……)우르릉-!바닥이 무너져 내렸다.레온은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 속으로 쏙 빠졌다.“레온아!”나는 놀라서 구멍을 들여다보았다.다행히 레온은 푹신한 흙더미 위에 떨어져서 멀쩡해 보였다.하지만 그곳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었다.오두막 지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고대 유적’의 입구였다.[시스템: 히든 던전 ‘잊혀진 왕의 무덤(Lv. ???)’을 발견했습니다.]&ld
나는 눈을 의심했다.그것은 유모차가 아니었다. 소형 전차였다.바퀴는 험지 돌파용 광폭 타이어였고, 프레임은 오리할콘 합금으로 되어 있었다.햇빛 가리개에는 ‘자동 방어막 생성 장치’가 달려 있었고, 손잡이에는 ‘부스터 가속 레버’가 있었다.심지어 컵홀더 옆에는 ‘미니 미사일(마법탄) 발사 버튼’까지.“안전이 최우선이지! 5서클 마법까지 방어 가능하고, 유사시에는 비행 모드로 변신해서 탈출도 가능하다네!”한스는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나는 한숨을 쉬었다.동네 마실 나가는데 이런 전차가 필요할까?“멋지군.”하지만 칼리드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역시 한스야. 이 정도는 돼야 안심하고 산책을 시키지.”남자들의 감성이란 이해할 수가 없다.결국 우리는 그 ‘전차 유모차’에 레온을 태우고 산책을 나갔다.레온은 유모차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폭신한 시트(슬라임 쿠션)에 앉아 핸들을 잡고 “부우웅!” 소리를 냈다.“자, 출발한다!”칼리드가 유모차를 밀었다.아니, 밀었다기보다는 ‘운전’했다.오두막 앞의 울퉁불퉁한 숲길도 이 유모차 앞에서는 아스팔트 도로와 다름없었다.서스펜션 기능이 탁월해서 레온은 흔들림 하
내 눈에는 레온이 그냥 ‘꿈틀이 젤리’를 먹다가 뱉은 거로 보였다.하지만 발렌과 기사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S급 마수를 간식처럼 씹어먹는 1살짜리 아기라니.이 아이는…… 북부의 미래이자 재앙이었다.오후에는 기저귀 소동이 일어났다.레온이 큰일(?)을 본 것이다.“누가 기저귀 좀 갈아줘요!”내 외침에 이번에는 엘프 이릴이 나섰다.“제가 하겠습니다. 숲의 아이들은 엘프가 전문이죠.”이릴은 우아하게 다가와 기저귀를 열었다.그리고 표정이 굳었다.아기의 배설물에서…… 엄청난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레온이 먹은 게 ‘드래곤 분유(용의 젖)’와 ‘만드라고라 이유식’이다 보니, 나오는 것도 평범할 리 없었다.이건 똥이 아니라 ‘고농축 마력 덩어리’였다.“이, 이건…… 자연으로 돌려보내기엔 너무 위험합니다.”이릴은 떨리는 손으로 기저귀를 봉인했다.마치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폭발물 처리반 같았다.“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는데 왜 그래요?”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결국 그날 나온
“응애!”레온이 울음을 터뜨리자, 펑! 소리와 함께 아이가 변신했다.작고 하얀…… 강아지로.그것도 뽀삐보다 더 작은, 솜뭉치 같은 강아지였다.“어머!”나는 놀라서 입을 막았다.유전자의 힘은 위대했다.칼리드의 ‘수인화 저주(사실은 축복)’가 아이에게도 유전된 것이다.하지만 칼리드는 당황하지 않았다.그는 강아지로 변한 아들을 능숙하게 안아 올렸다.“괜찮다. 아빠도 그랬으니까.”그는 아들에게 속삭였다.“걱정 마라, 레온. 네 엄마는 강아지를 아주 좋아한단다. 너는 사랑받으며 자랄 거야.”나는 웃음을 터뜨렸다.맞다. 나는 펫샵 사장이니까.이제 우리 집에는 큰 강아지(남편)와 작은 강아지(아들)가 함께하게 되었다.“여보, 산책 갈까요?”“좋다.”칼리드가 한 손에는 레온(강아지)을 안고, 한 손은 내 손을 잡았다.우리는 봄꽃이 만발한 오두막 정원을 걸었다.뒤에는 기사단, 엘프, 드워프, 오크들이 졸졸 따라오며 호들갑을 떨었다.“도련님! 꼬리 흔드시는 것 좀 봐!”“심장 아파! 너무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