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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도를 묻다

last update 公開日: 2026-05-16 08:08:03

낯선 땅 이천에서 꿀맛 같은 한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씨, 여기는 흙이 좋아 심기만 자라는 구만유."

힘 좋은 구식이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그래?"

"아씨, 우리 오늘은 장터에 함 나가 볼까요? 이 곳 장터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요. 마침 무명도

한필 필요하고요."

"그래 유모. 우리 오늘 한 번 나가 볼까?"

둘은 함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장터로 향했다. 

....................................................................................................

“아야야야야야”

“요 도둑놈 잡았다. 멀리 못갔구나.”

“나으리 도둑놈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놈! 어디서 발뺌을 하려 드느냐? 네가 정녕 관아로 가서 치도곤을 맞고 실토를 할 터이냐?”

“무슨 발뺌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이가 겁먹은 채 말했다.

이내 장터는 소동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갓을 쓴 선비가 어린 소년의 귓등을 잡아 당기며 놓지 않고 있었다. 어린 소년은 얼굴이 상기되어 곧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제가 이놈하고 방금 서로 부딪혔습니다. 그리고 제가 포목전에 값을 치르기 위해 돈주머니를 꺼내려고 소매 안을 보니 돈주머니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아까 어깨를 서로 부딪친 틈에 이놈이 제 소매 안에 있던 돈주머니를 채 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으리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전 돈주머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 어린 놈이 눈빛 하나 안 변하면서 거짓을 말하는구나. 그래! 좋다! 같이 관아로 가서 시비를 가려 보자꾸나.”

“아씨 우리는 저쪽으로 가요!”

 유모가 소동으로 사람들이 모인 곳을 피하기 위해 은근히 영수를 밀어내었지만, 영수는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나으리. 혹시 증좌가 있으신가요?”

영수가 갓을 쓴 사내 앞에 나서며 말했다. 

"아씨.. 아씨.." 

최나인이 속삭이듯 당황하며 영수를 불렀지만 영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증좌라니? 어디 아녀자가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오? 이 아이랑 부딪히기 전에는 내 소매 안에 분명히 돈주머니가 있었소. 그런데 내가 물건 값을 치르려고 손을 넣으니 돈주머니가 사라지고 없었소. 더 이상 무슨 증좌가 필요하오? 낭자는 남의 일에 왈가왈부하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시오.”

갓을 쓴 사내는 영수를 쏘아 붙이며 말했다.

“나으리, 혹시 오른손 잡이십니까? 왼손잡이십니까?”

“왼손잡이오. 그건 왜 묻소? 쓸데없는 참견 하지 마시고 어서 가시오.”

“아씨, 우리 어서 가요!”

유모가 난처해 하며 영수를 밀어 보았지만 영수는 거침이 없었다. 

“나으리, 그럼 아이와 마주보며 부딪히셨는지요? 아님 뒤에서 부딪히셨는지요?”

“정면에서 내 오른쪽 어깨를 치고 갔소. 난 생선을 구경하며 지나가고 있었고. 뭐요? 당신이 뭐 포도청 나졸이라도 되는 것이요? 나참”

그 때 에워싸고 구경하던 사람 중 한명이 소리쳤다.

“내가 아까 저 두사람을 봤소. 아이가 동무랑 뛰다가 뒤에서 부딪히는 것을 봤소!”

 “뭐요? 내가 그럼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말이요?”

“나으리, 아이가 앞에서 오다가 부딪쳤다고 하셨는데 어물전들이 오른쪽에 있어서 아이가 정면에서 나리 오른쪽편으로 부딪쳤다면 어물전의 가판들과 충돌이 있었을 것이옵고 그로 인해 가판들이 엎어지거나 흐트러졌을 것이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

“그런데 가판들이 모두 흐트러짐없이 멀쩡합니다. 게다가 나으리의 두루마기를 보니 왼쪽 어깨의 솔기가 뜯어져 있는데 오른쪽은 마치 인두로 핀 것처럼 빳빳합니다.

나으리가 왼손 잡이시니 돈주머니는 분명 오른쪽 소매에 찔러 두었을 터인데 오른쪽 어깨 솔기는 새옷처럼 깨끗하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 . ."

"그리고 목격자의 말처럼 아이가 뒤쪽에서 달려와 나으리 의복이 상해 있는 왼쪽 어깨쪽을 부딪힌게 맞다면 직후 경황이 없는 틈을 타, 오른쪽 소매의 돈주머니에 손을 대기엔 너무 무모한 것이 아닐런지요?”

“난 모르오. 내가 잠시 정신을 잃은 사이에 그 아이가 반대 쪽을 잽싸게 채갔을 수도 있는 것 아니오?”

갓을 쓴 사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나도 아까 봤는데 아이가 동무랑 노닥거리다가 보지를 못했는지 저 선비의 왼쪽 어깨를 툭 치고 그대로 지나갔소. 저 선비의 걸음이 잠시 휘청거렸지만 별 다른 말 없이 계속 가는 것을 내가 봤소.”

구경꾼 중 또다른 사람이 끼어들며 말했다.

“이보시오들. 그럼 내가 지금 무고하고 있다는 말이오? 그말이오?”

젊은 선비의 목소리는 높았으나 떨렸다. 얼굴은 이미 피가 쏠린 사람처럼 벌게져 있었다.

“나으리, 그게 아니라 나으리께서 착각을 하실 수도 있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뒤에서 충돌하였고, 오른편에는 어물전이 나으리와 제법 가깝게 붙어 있었사옵니다.

허나 어물전에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는 오른쪽 어깨에 충돌했을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옵니다. 더구나 나으리의 옷 또한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만 찢겨 있었지 않사옵니까?

“…”

“나으리께서는 왼손잡이시니, 돈주머니를 오른 소매에 넣고 다니셨을 터인데, 나으리께서 넘어지시거나 정신을 잃으신 것도 아니었사오니, 그 짧은 사이에 아이가 나으리의 오른 소매에 손을 넣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사옵니다. 이점 헤아려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감히 아뢰옵니다.”

구경꾼 중에 탄성을 자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저 낭자 말이 맞구만. 나도 봤구만. 아이가 뒤에서 저 양반의 왼쪽에 부딪히는 것을”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었고 사태가 어찌 되는지 귀추에 주목하고 있었다.

“어느 댁 따님이오? 어느 댁 따님이길래 양반을 이리 추궁하는 게요?”

“나으리. 추궁이 아니라 바로 잡으려 하는 것이지요. 누구든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안되는 것 아니옵니까?”

최나인이 곁에 서 있다 영수를 거들고 나섰다.

“넌 두번 다시 내 눈앞에 띄지 말아라.”

선비가 아이의 귀를 잡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풀고는 영수와 최나인을 노려 보더니 가버렸다.

“승덕아 아이고 승덕아. 이게 뭔 일이다냐? 그러게 어미 손을 놓고 뛰면 어쩌자냐는 거야?”

“어머니. 이 아씨께서 말씀해 주셔서 나를 잡아 안 놓아주던 나으리 손에서 벗어났어. 나를 도둑이라고 하며 관아에 끌고 가겠다고 했어.”

어안이 벙벙한 채, 어리둥절해 있던 소년은 비로소 어미의 모습을 마주하자 참아오던 울음을 터뜨렸다.

“아씨 참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씨 아니었으면 우리 아이가 관아에 끌려가 봉변을 당할 뻔 하였습니다. 승덕아 얼른 아씨께 인사드려라. 아씨,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아주머니 은혜라니요? 저는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을 뿐입니다. 그럼 살펴 가세요.”

“아닙니다. 아씨, 아니구먼요. 관아에 끌려갔으면 분명 누명을 더 썼을 것입니다. 저와 제 지아비 승덕 아범은 농사나 짓는 미천한 백성들인데 양반하고 송사가 붙었더라면 도둑으로 몰릴 것이 불보듯 뻔하온데, 이처럼 미리 막아주셨으니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사옵니까? 아씨께서는 어느 고을 어느 댁 따님이신지요? 저희가 가진 것은 없사오나 꼭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저희는 이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쭉 올라가다보면 느티나무 지나 첫 번째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 아씨는 영수 아씨시고요. 그럼 이만 저희는 가봐도 되겠지요?”

“아예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이와 아이의 어미는 눈물을 글썽이며 영수에게 몇번이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유모는 영수의 팔짱을 끼며 조용히 말했다.

“아씨 웬만하면 끼어들지 마세요. 그러다  봉변을 당하면 어쩌시려고요?”

“유모 억울한 일을 보고 그냥 지나치면 그것은 도리가 아니지. 스승님께서도 억울한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도 도라고 하셨어.”

장터의 소란은 서서히 가라앉고, 사람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방금 전까지 울먹이던 아이는 어미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군중의 가장자리, 느티나무 그늘 아래 서 있던 사내 하나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수가 등을 보이며 자리를 뜨자, 사내의 입가에 옅은 기색이 스쳤다. 웃음인지, 다른 뜻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미묘한 기색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군.’

낮게 흘린 혼잣말은 장터의 소음 속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다.

종길은 소매를 바로잡고 사람들 사이로 조용히 사라졌다.

영수는 그 시선을 알지 못한 채, 유모와 함께 장터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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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 아-악’지나가는 마차의 바퀴가 갑자기 빠져 굴러 왔다. 놀란 말이 앞발을 크게 치켜 들었다. 말 위의 사내가 다급하게 고삐를 채 보지만 이미 늦었다. 말은 그대로 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사내가 고삐를 놓으며 몸을 날렸다. 영수의 허리를 끌어안고 바닥으로 굴렀다. 먼지가 일고 숨이 서로 맞닿았다. 영수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의 손이 허리를 감싼 채 영수가 몸을 서서히 일으킬 때까지 머물러 있었다.난전의 주인인 듯한 여자가 나와 소리 질렀다.“아이고 내 물건. 아이고.”말이 발버둥을 치다 가게의 좌판을 건드려 물

  • 폭군의 딸, 사랑을 담다.    11화 마지막 충성

    정적을 가르는 것은 승덕 어멈의 날카로운 비명이었다."불이야! 안부엌에 불이 났다!"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인시의 끝자락에 모두들 깜짝 놀라 마당으로 뛰어 나왔다. 안채 뒤편에서 매캐한 연기가 솟구쳤다. 아궁이 근처에 쌓아둔 마른 짚단에 불씨가 옮겨붙은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불길은 부뚜막을 타고 올라와 나무 기둥을 핥기 시작했다. 승덕어멈은 두 손을 걷어 부치고, 당황해 멈춰 선 종들의 어깨를 거세게 밀치며 호통을 쳤다."멍하니 서서 무엇들 하시오! 어서 우물가로 가서 물을 길어 오시오! 어서!"그녀의 서슬 퍼런 외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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