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의 지하 감옥.임 대인은 벽에 기대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척했으나, 그를 뒤덮은 식은땀과 흔들리는 눈빛은 그의 불안을 여실히 드러냈다.그는 필사적으로 관아의 포졸들을 노려보며 외쳤다.“너희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잡아가는 것이냐! 나는 결백하다!”그러나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포졸들이 일제히 양옆으로 길을 내주었다.그 길 너머에서, 봉구안이 들어왔다.높게 묶은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빛, 강렬한 기세가 단숨에 대옥 안을 장악했다.“모두 물러가라.”단 한 마디. 그 한마디에 모든 포졸들이 지체 없이 대옥 밖으로 나갔다.오백만이 문을 닫고 바깥에서 경계를 섰다.어둠이 깔린 감옥 안.남은 사람은 봉구안과 임 대인뿐이었다.임 대인은 봉구안을 처음 보는 듯했다.그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너는 누구냐?”처음엔 관리인 줄 알았으나, 목소리를 듣고 보니 여자였다.관청에 여자가 올 리 없는데… 봉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무심하게 옆에 놓인 형구를 집어 들었다.그녀의 손끝이 가볍게 그것을 매만지는 것만으로도, 임 대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건조함, 커진 눈동자, 땀에 젖은 손.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나, 나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소! 너희 관아에서도 멋대로 형벌을 가할 순 없는 것이오! 내가 말해 두겠소! 내 조카딸은 현 황제의 장모요! 나는 황실과 연줄이 있는 사람이오!”그의 목소리는 떨렸으나, 어떻게든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위협하고자 했다.그러나 봉구안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입술은 냉혹한 곡선을 그렸다.“그럼, 나에 대해선 알고 있느냐?”임 대인은 당황한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도무지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하지만, 황제보다 높은 사람은 없을 터.그는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내가 왜 네 정체까지 알아야 하느냐! 어서 나를
임 대인은 봉구안의 정체를 알게 되자 본능적으로 그녀와 친척 관계를 강조하려 했다.그러나 그녀가 던진 단 한마디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진짜 가족이 아니라고?”누가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냐?임 대인의 시선이 흔들렸다.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감옥에 울려 퍼졌다.“유 씨 가문의 둘째 딸, 태어나자마자 너희가 데려가 키운 것이 맞느냐?”임 대인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설마 그녀가 묻는 것이 그때의 일일 줄이야…그는 태연한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그렇습니다! 제 누이가 둘째 딸을 낳은 후, 저희에게 맡겼습니다!”그녀가 자신의 표정을 읽지 못하도록.그는 필사적으로 침착한 척하며 말을 이었다.“황후마마, 이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하지만 봉구안은 여전히 형구를 손에 쥔 채, 냉정한 시선으로 그를 꿰뚫어보았다.“확실하느냐? 너희가 데려갔을 때, 그 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것이?”임 대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당연합니다! 아이는 태어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저희 손에 맡겨졌습니다!”그러자 봉구안이 단호하게 쏘아붙였다.“거짓말이다.”임 대인의 어깨가 움찔했다.봉구안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번뜩였다.“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너희가 데려간 그 아이는 태어난 지 이미 세 살이었을 것이다. 내 말이 맞느냐?”그 순간, 임 대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애써 웃음을 지으며 그는 반박했다.“황후마마,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태어난 아이가 갑자기 세 살이 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그러나 봉구안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너에게 한 번의 기회만 줄 것이다.”“한 촉의 시간이 지나면, 너는 형장으로 끌려갈 것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후, 감옥을 나갔다.임 대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형장?”그녀가 정말로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겠다고?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어떻게 그녀가 이 일을 알게 된 것이지?무사히 넘긴 지 사십 년이 넘
남제, 황성.유영은 여전히 사라진 사신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점점 초조함에 휩싸였다.그녀는 며칠째 서왕부를 드나들며 사신들의 행방을 묻고 있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아직 찾고 있습니다.”그녀는 처음엔 서왕이 정말로 사신들을 찾아줄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단순히 자신을 적당히 무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역관.유영이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자, 딸 정희가 기다렸다는 듯 다그쳤다.“어머니, 황제 폐하께서 이미 환궁하셨다고 합니다. 저흰 언제 입궁할 수 있습니까?”그러나 유영은 피곤한 얼굴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사신들의 행방뿐이었다.정희는 초조한 듯 다시 물었다.“이모님께서는 아직도 회신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새로운 국서를 보내주셨다는 소식은 없나요? 어머니?”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영은, 갑자기 딸의 손을 세게 움켜잡았다.“너의 이모께서 우리를 내버려 두실 리 없다! 나는 서여국 황제의 친여동생이란 말이다!”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지금 당장 입궁하여 직접 황제를 알현할 것이다!”이제 직접 황제를 만나 황제의 마음을 움직일 때였다.황궁에서의 냉대.그날, 황제 소욱은 갓 환궁하여 어전에서 상소문을 검토하고 있었다.그때, 한 호위가 조용히 다가와 보고했다.“폐하, 서여국의 사신을 자처하는 유영이 알현을 요청하고 있습니다.”순간, 소욱의 손이 멈칫했다.그는 이미 봉구안으로부터 서여국에서의 모든 상황을 보고받은 상태였다.유영이 서여국 황제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아직도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며 황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 가관이었다.더욱 우스운 것은, 그녀가 자신의 딸을 후궁으로 들이려 한다는 점이었다.소욱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그는 피곤한 듯 이마를 문지르더니,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돌려보내거라.”목소리는 냉랭했다.봉구안이 없는 지금, 그는
정희가 태연하게 말하는 동안, 유영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뭔가 이상했다.특히, 갑자기 사라진 사신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그때…쾅!시녀가 차를 올리던 순간, 정희가 팔을 과하게 휘두르는 바람에 찻잔이 기울었고, 뜨거운 차가 그녀의 손등을 덮쳤다.정희는 서여국 궁에서 늘 귀하게 자라며 극진한 대접을 받아왔다.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절대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이번에도 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시녀의 뺨을 후려쳤다.“짝!”순식간에 시녀의 뺨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시녀는 겁에 질려 고개를 깊이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죄했다.“소첩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그러나 정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차가운 시선으로 시녀를 노려보았다.“이게 시중 드는 태도냐? 감히 본 귀인을 데이게 하다니! 어서 약을 가져오지 못할까!”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영은 짜증스럽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나직이 말했다.“그만해라. 고작 이런 일로 소란 피울 필요 없다.”이곳은 장공주의 저택이었다.불필요한 소란이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하지만 정희는 억울하다는 듯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며 볼멘소리를 했다.“어머니, 이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요? 손이 이렇게 망가졌잖아요! 곧 황제 폐하를 뵈어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폐하께서 날 탐탁지 않게 여기시면 어쩌죠?”손은 여자의 두 번째 얼굴이라 하지 않던가.시녀는 더욱 당황하여 그대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소첩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그러나 정희의 눈빛은 더욱 매서워졌다.“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는 하느냐? 당장 약을 가져오지 않고 뭐 하고 있느냐!”“예! 예! 소첩이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시녀는 몸을 떨며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나 정희는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눈을 굴리며 불만을 토로했다.“어머니, 공주부의 하인들은 정말 형편없어요. 이렇게 어설프게 일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생활하는
의문의 남자는 정희를 풀어주기 전, 그녀의 입에 알약 하나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정희는 본능적으로 뱉어내려 했으나, 남자가 거칠게 턱을 움켜쥐었다.“삼켜라.”그녀가 반항할 틈도 없이, 약은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크윽!”정희는 사레가 든 듯 격하게 기침을 했다.유영은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네놈!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남자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대답했다.“독이다. 이제 네 딸의 목숨은 우리 손에 있다.”정희의 몸이 덜덜 떨렸다.“어머니… 살려 주세요…!”그녀는 두려움에 질린 채 유영에게 매달렸다.유영은 분노와 불안이 뒤섞인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외쳤다.“이미 네놈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는데, 왜 굳이 내 딸에게까지 독을 먹인 것이냐! 해독제를 내놓거라!”남자는 비웃음을 터뜨렸다.“해독제? 네가 우리 뜻대로 행동하면 자연히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얌전히 있어라.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네 딸은 가장 먼저 죽게될 것이다.”그의 눈빛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유영은 치를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철저히 상대의 손아귀에 있었다.울분을 삼킨 채, 결국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놈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서여국.그동안 서여국에서는 황제의 병세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어의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병은 더 이상 호전되지 않았다.그녀는 국정을 몇몇 신뢰할 만한 대신들에게 위임하고, 요양을 핑계로 궁을 떠나 교외에서 머물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중요한 상소문을 직접 검토하며, 마지막까지 나라를 다스리려 했다.그녀의 곁을 지키는 것은 단 한 사람…봉구안의 어머니, 즉 그녀의 친동생으로 의심되는 ‘봉부인’이었다.황제는 마음 깊이 확신하고 있었다.봉부인은 바로 그녀의 동생 숙연일 것이라고…그러나 아직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황제는 병든 몸을 지탱하며,
서여국 황제의 감정은 크게 요동쳤다.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져 진짜 여동생을 찾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극도로 긴장시켰다.마치 팽팽하게 당겨졌던 활줄이 순간적으로 끊어진 것처럼, 그녀의 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황제를 모시고 있던 어의가 급히 병상 옆에 붙어 긴급히 치료를 시작했다.방 밖에서는 봉구안이 어머니를 모시고 기다리고 있었다.봉 부인은 불안한 목소리로 계속 물었다.“구안아, 내가 정말 숙연이 맞니? 이번엔 정말 틀림없니?”봉구안은 인내심을 가지고, 진실을 한 번 또 한 번 차분히 설명해주었다.비록 봉 부인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나, 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힘겨웠다.남제의 사람이었던 그녀가 서여국 사람으로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황제의 동생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게다가 그녀의 자식들은 모두 남제에 있었다.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더구나 이제 막 찾아낸 친언니는 지금 죽음의 문턱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봉 부인은 그 모든 것을 견딜 힘을 잃고, 마치 뿌리가 뽑힌 듯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다.봉구안은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아주며 말없이 위로했다.그 따뜻한 손길에 봉 부인은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되찾았다.“구안아, 황제 폐하가 걱정 되는구나… 괜찮아지시겠지?”봉구안은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없었다.솔직히 말해, 황제가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시간이 흘러, 거의 보름 동안 치료를 받은 끝에 황제가 겨우 의식을 되찾았다.하지만 어의가 방 밖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말했다.“아마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황제를 궁으로 모시는 게 나을 것입니다.”그 말은 황제의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만약 황제가 궁 밖에서 세상을 떠난다면, 궁궐 내부는 혼란에 휩싸일 것이 뻔했다.봉 부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발밑이 흔들리는 듯하고, 몸 전체가 힘을 잃은 느낌이었다.어쩌다가 이렇게 된
서여국 황제가 봉구안에게 내린 성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네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서여국의 왕이 될 수 있다.]봉구안은 성지를 쥔 채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줄곧 자신을 남제의 사람이라 여겼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죽는 것도 한 점 후회가 없다고 생각해왔다.황제는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봉구안이 서여국으로 돌아와 정권을 잡으려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아이야, 이 성지는 너를 위한 이모의 보증이다. 훗날 네가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마련해두고자 하는 마음일 뿐이다.”이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오직 서여국만이 여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낙원이었다.사적인 욕심으로 말하자면, 황제는 봉구안이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고 서여국의 일원이 되기를 바랐다.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일 뿐이었다.봉구안은 지금 남제 황제와 금슬이 좋았으며,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다.봉 부인은 성지의 내용을 짐작하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언니, 설마…”황제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숙연, 아이가 직접 결정하도록 두자.”그런 뒤 모신에게 명했다.“나는 좀 쉬고 싶구나. 너는 그들을 데리고 조묘를 구경시켜라.”“알겠습니다.”조묘는 서여국 역대 황제들을 모시는 사당으로, 왕족의 용맹한 업적들이 기록되어 있었다.오직 황족의 피를 이은 자만이 조묘에 들어가 제사를 올릴 수 있었다.이는 일종의 뿌리 찾기와도 같았다.그들이 떠난 후, 황제는 천천히 눈을 감고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반 시진이 지나, 봉구안 일행은 조묘에 도착했다.모신 상궁은 황제의 친필 명령서를 가지고 있었고, 수비병들은 공손히 길을 열었다.정전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엔 많은 황제의 위패들이 모셔져 있었다.모신 상궁은 향을 꺼내며 말했다.“숙연 대인, 소장군, 향을 올려주세요.”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안내했다.“숙연 대인, 여기가 바로 어머님 황후의 위패가 모셔진 곳입니다.
서여국 황궁.유영은 태연히 황제를 궁으로 데리고 돌아왔다.궁녀들은 그녀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었고, 누구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황제가 입을 열어 도움을 요청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유영은 황제에게 혼수약을 먹여 혼미한 상태로 만들었다.유영은 태연했지만, 정희는 그와 달리 몹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시선을 고정하지 못했다.황제를 침전으로 모신 뒤, 모든 궁인을 물러가게 한 후 정희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머니, 이렇게 해도 정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까요?”유영은 침상 위 황제를 내려다보며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을 드러냈다.“곧 죽게 될 황제의 자리는 이제 내 것이야. 내가 서여국 전체를 장악하면, 아무도 나를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정희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얼마 전, 암살자들이 교외 저택에 침입해 황제의 호위를 죽이고 신분을 위장한 뒤 황제와 함께 궁으로 들어온 일이 떠올랐다.지금 그 암살자들은 이미 궁궐 안으로 들어와 그녀들의 곁에서 감시를 하고 있었다.어머니가 황제가 된다 하더라도 과연 자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어머니, 정말 너무 큰일이에요… 저는 무서워요.”정희의 목소리가 떨렸다.유영은 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겁먹지 마라. 우리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 만약 그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너의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다.”정희는 입술을 깨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니,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유영은 침상 위 황제를 천천히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를 세상에서 없애야 한다.”그리고 그녀는 번거로운 모신 상궁에 대해서도 덧붙였다.“전하거라. 모신 상궁이 황제를 궁 밖에 가둬 반역을 꾀했다고... 즉시 그 자를 잡아 처단하라!”궁 밖.모신 상궁의 수배령이 곳곳에 나붙었다.봉구안은 모신 상궁과 봉부인을 데리고 잠시 몸을 숨겼다.한 객잔 안에서, 모신 상궁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마마, 황제가 유영의 손에 넘어갔으니,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
소욱은 봉구안의 생각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었다.방금 전까진 분명 모용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태조 황제 묘까지 들먹이는 것일까?그래도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답해 주었다.“태조께서는 동릉에 묻혔다.”도굴을 막기 위해 태조의 능은 총 열세 곳에 분산되어 있었고, 각각의 무덤엔 무거운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허나 그 열세 곳 모두가 가짜였다.진짜 묘는 오직 역대 황제만이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봉구안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단호하게 말했다.“폐하, 능을… 잠시 열어볼 수 있겠습니까?”소욱의 눈썹이 즉시 찌푸려졌다.“안 된다.”태조 황제는 이미 서세를 마친 성조였다.그분의 안식을 함부로 깨뜨릴 순 없었다.봉구안도 그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일은 약쟁이 사건의 진상에 직결되는 문제였다.그녀는 침착히 입을 열었다.“진정 불로장생을 원한 사람은 모용길이 아니라 태조 황제였을 수도 있습니다.”소욱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구안아, 지금 네 말은… 너무 황당하구나.”“설마 이 모든 약쟁이 사건의 배후가 태조 황제라는 것이냐?”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동방세가 그린 그 인물은 모용길과 닮았을 뿐, 자신들의 소씨 가문과는 단 한 점도 닮은 데가 없었다.봉구안도 이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라 단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직감은 이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모용길이 연막을 치고 모용욱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뒤, 모용가 전체를 끌어들인 것만 봐도… 그 자는 모용가의 존망 따윈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그렇다면 그 자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한 건, 다른 무엇일지도 모릅니다.”그녀의 눈빛이 깊어졌다.“폐하, 이백 년 전의 일은 저희가 직접 본 게 아닙니다.”“하지만 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 황제께서는 남산왕, 서왕, 그리고 모용길과는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이였다고 합니다.”“남산왕은 태조의 명을 따라 세세손손 봉맥을 지켜왔고, 서왕가는 동부를
봉구안은 이전에 모용가의 선조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들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다.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태조 황제가 천하를 개척할 당시,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군량과 보급을 아낌없이 헌납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승상에 올랐지만 불과 세 해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향년, 마흔.그런데 지금 동방세가 그려낸 배후 인물의 얼굴이 그 모용길과 너무도 흡사했다.소욱 역시 그림을 비교해보았다.한 손엔 방금 받은 초상화, 다른 한 손엔 책에 실린 옛 그림이 들려있었다.똑같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십중팔구 정도 닮은 듯했다!그는 봉구안과 눈을 마주쳤다.“얼굴이 닮은 거겠지. 아니면 모용가 어딘가에 숨어 있던 서자일지도 몰라.”소욱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그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봉구안은 강호를 누비며 별의별 기이한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충북에는 삼백 살 넘은 노인이 있다 들었습니다.”“신무파 장문도 이백십칠 년을 살았다죠.”“남제가 건국된 지 이제 겨우 이백 년 남짓입니다.”“만일 정말 불로장생이 가능하다면, 모용길이 살아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봉구안은 담담히 말했다.게다가, 그녀를 더욱 확신에 가까운 의심으로 이끄는 단서가 하나 더 있었다.“폐하, 서왕께선 납치 당시에 그들이 피를 원했다고 했습니다.”“그 피를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요.”“이건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소욱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서왕 말로는, 그 자가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하던데... 횡설수설하는 미치광이였다고.”봉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들을 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오히려 모용길이 이번 일의 진짜 배후라 생각합니다.”“모용가의 조상사당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독초를 재배하려면 내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지요.”“그리고 모용욱의 검거도 너무 순조로웠습니다.”“모든 것이… 너무 ‘그럴듯’했어요.”“어쩌면, 모든 건 모용길이 준
봉구안은 소욱이 자신을 다시 궁으로 데려온 진짜 이유가, 자신이 서여국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욱은 조심스레 사과할 말을 고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문득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소욱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봉구안은 다시금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그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그 동작엔 위로와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번 일은 폐하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저를 의심하신 건 제가 드린 믿음이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겠지요.”“담대연은 말재주가 뛰어납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흔들릴 만합니다.”그녀는 시선을 마주하고 또박또박 말했다.“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제 마음속에서 가족이 있는 곳이, 진짜 ‘집’입니다.”“폐하께서는 저의 지아비이십니다. 혈육은 아니지만, 저의 여생을 함께할 유일한 사람이지요.”“서여국이 아무리 좋아도, 폐하만큼 소중하진 않습니다.”소욱의 손끝이 떨렸다.“너… 그 말이 진심이냐?”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내가 정말 네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봉구안은 오히려 되물었다.“폐하가 아니면 누가 있겠습니까?”그러자 소욱은 손가락을 접으며 셈을 하기 시작했다.“사부랑 사모, 그리고 봉장미, 게다가… 네 뱃속에 있는 이 녀석.”“세상 사람들 다 그러더라. 자식은 어미의 인생 그 자체라고… 지금도 내 순위가 그리 높진 않은데, 아이가 태어나면 내 자리는 더 밀려나겠지.”봉구안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그녀는 진지하게 설명했다.“사부님과 사모님은 저에게 산처럼 큰 은혜를 주신 분들이지만, 그분들도 장미와 마찬가지로 ‘혈육’일 뿐입니다.”“저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요.”“아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폐하를 마음에 두었기에 생긴 아이인데, 어떻게 그 아버지를 제쳐둘 수 있겠습니까?”“폐하야말로 제가 앞으로 비바람을 함께할 사람,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유
아침 조회.조정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신료들은 하나같이 모용가를 엄하게 조사하겠다며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폐하 모용가 사당에서 이상한 점이 드러났고, 모용욱의 저택에서는 약쟁이 소굴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드시 모용 일가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신도 동의합니다! 모용욱 혼자만의 짓일 리 없으며, 모용가의 다른 이들도 직접 연루되진 않았더라도 방조하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조묘 사건 이후, 모용가는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하였다.이번 약쟁이 사건은 수많은 무고한 관리까지 연루되며 사람들의 불신과 공포를 증폭시켰고,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민심을 수습하려면, 이참에 반드시 철저히 죄를 묻고 엄벌해야 했다.결국 모용 일가는 또다시 전원 구금되었다.이전엔 모용선의 아버지, 모용렴이 자신을 희생해 가문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틈조차 없었다.옥양산.태황태후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동요했다.더 이상 모용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던 그녀였지만, 이번 일은 너무나도 중대했다.“약쟁이라니... 어떻게 모용가가 그런 일에 휘말릴 수 있단 말이냐…”수십 년을 모신 상궁이 다급히 물었다.“태황태후마마, 이제 어찌해야 할지…”태황태후는 부처상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구었다.“모용가가 정말 죄를 지었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구하겠느냐. 죄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제 황제 얼굴조차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말을 전하겠느냐.”“이건… 하늘이 우리 모용가를 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태황태후는 그날로 병석에 눕고 말았다.황궁, 자녕궁.태후는 태황태후의 병세를 전해 듣고 즉시 태의를 보냈다.곁에 있던 계 상궁이 조심스레 속삭였다.“태후마마, 태황태후께서는 예전에 천룡회와 손잡고 폐하를 몰아내려 하셨고, 이번엔 모용가가 약쟁이 일로 큰 소란을 일으켰으니 굳이 정성을 들이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그 말에 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나직이 꾸짖었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입을 조심하지 못하겠느냐. 말 그
어전.“폐하, 서왕 전하와 왕비마마께서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서왕 전하께서 지금 궁문 밖에 대기 중이며, 아뢸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이 말을 들은 소욱은 지체 없이 명하였다.“어서 들라.”얼마 지나지 않아, 서왕은 발걸음을 옮겨 어전으로 들어섰다.그는 문턱을 넘자마자 곧장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신, 폐하를 뵙나이다!”소욱은 그 기색을 살피고, 정신이 온전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음을 놓았다.“무사하다니 다행이로구나.”헌데, 서왕의 안색은 심상치 않았다.“폐하, 신이 납치당한 이유는… 그들이 신의 피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신의 부친께서 돌아가시던 때가 떠올랐습니다.”소욱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그는 눈빛을 가라앉히고 그를 바라보았다.“너의 피를 왜 필요로 한단 말이냐? 그자들이 정말 피를 취하였느냐?”서왕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취하지는 못하였사오나, 그들의 목적이 분명 피에 있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부친께서 돌아가신 그 사건 역시,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소욱의 미간이 좁게 모아졌다.그는 전대의 왕부, 곧 서왕의 아버지에 관한 억울한 일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 일로 선황은 오랫동안 후회하며 침식을 잊고 괴로워했었다.그래서 소욱 또한, 이후 누구에 대해 반역 운운하는 소문이 돌 때마다 쉽게 믿지 않았다.선왕이 저지른 실책을 그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허나 지금 와서 다시금 드러나는 의혹은 그 죽음이 단순한 누명이나 정치적 숙청이 아닌, 무언가 깊은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소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자세히 말해 보아라.”……황성 서쪽.봉구안의 행차가 한적한 관로에 이르렀을 때, 한 일행이 그녀를 막아세웠다.오백이 곧장 검을 뽑아 방어 태세를 취했으나, 막아선 이들이 익숙한 인물임을 곧 알아보았다.바로 자재각을 지키던 소욱의 친위 호위병들이었다.그들은 마차를 둘러싸며 호위 진형을 갖추었다.“마마, 저희는 폐하의 명을 받아 마마를 궁으로 모
소욱은 한참을 고심한 끝에, 어느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천명을 믿지는 않았으나, 담대연이 말한 ‘인성’은 부정할 수 없었다.봉구안은 언제나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과거 그녀가 이미 단회욱을 마음에서 지웠음에도, 그를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죽음을 택했던 일은 지금도 눈에 선했다.서여국은 외환보다 내우가 깊은 나라였다.아무리 소주와 정국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안으로는 여전히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이번에 봉구안이 직접 서여국에 가게 되면, 그 혼란 속에서 국주로 추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녀의 성정상 그 책임을 외면하진 못할 터였다.결국엔 남제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소욱의 가슴을 옥죄었다.담대연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천하통일. 그러나 그보다 무서운 건, 그 길목에서 아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진한길.”“신, 여기 있습니다!”“황후를 몰래 다시 데려오거라. 사람을 붙여, 은밀히.”진한길은 순간 의아함을 품었다.폐하께서 왜 이리도 갈팡질팡하시는 걸까………한편, 황성 서쪽 교외.담대연이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지하궁의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그가 손을 쓰자 거대한 암석이 옆으로 밀려나며, 숨겨진 지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담대연은 호위들에게 엄중히 이르렀다.“이곳은 함정과 기계장치가 많습니다. 제 발을 따라오십시오. 절대 멋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명심하겠습니다!”……지하궁 내.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서왕과 완부옥은 이미 허기와 피로로 맥을 잃고 있었다.그때, 누군가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그 인물은 이전에 죽은 자의 시체를 발견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시체를 끌고 나갈 뿐이었다. 마치 이곳에서 죽음은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시체를 처리한 뒤, 그자는 곧장 서왕을 데리고 가려 했다.완부옥은 그를 향해 소리쳤다.“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대답은 없었다. 그저 서왕을 밀어내듯 이끌 뿐이었다.하지만, 그들은 이미 내공
그 뱀은 영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슥, 하고 순식간에 주실 안으로 기어들어가더니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뱀을 잡기 위해선 황후의 물건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반드시 폐하께 고해야 할 사안이었다.때마침 소욱은 밤이 깊어도 봉구안이 그리워져 자유각을 찾았다.호위들은 이 일을 곧장 아뢰었다.소욱의 눈썹이 짙게 찌푸려졌다.그는 친히 방으로 들어가 사방을 뒤적이다, 마침내 침상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뱀을 발견하였다.그 순간, 그는 뱀의 눈과 마주쳤다.소욱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이놈을 당장 잡아내라…”막 명하려던 찰나, 그는 그 뱀이 어딘가 익숙하단 걸 느꼈다.이 뱀은… 분명 완부옥이 기르던 그 뱀과 닮아 있었다.완부옥과 서왕이 함께 실종된 걸 떠올린 소욱은 곧 심중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그는 즉시 명하여 뱀을 그물망에 넣게 한 뒤, 서왕부로 보내어 확인하게 하였다.서왕부의 호위, 유화가 그 뱀을 확인하였다.그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억누르며 가까이 다가갔고, 잠시 후 단호하게 말했다.“왕비마마께서 기르던 뱀입니다.”자유각.소욱은 전갈을 받은 후, 이 일에 더없이 의아해졌다.완부옥의 뱀이 어찌 자유각까지 온단 말인가?설령 이 뱀이 길을 안다 하여도, 돌아간다면 당연히 서왕부로 가야 할 터였다.그는 곧 봉구안에게 전령 비둘기를 날렸다.그 시각, 봉구안은 황성을 갓 벗어난 참이었다.편지를 받아든 그녀는 곧장 완부옥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예전에 완부옥이 똑같은 짓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곧장 회신을 써서 다시 소욱에게 전했다.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봉구안은 잠시 고심한 끝에, 두 번째 편지를 써 보냈다.그 안엔 한 마디 당부가 적혀 있었다.[폐하, 부디 경솔한 행동은 삼가 주시옵고, 무엇보다 폐하의 안전을 우선으로 삼으소서.]소욱은 첫 번째 편지를 받고 곧장 진한길을 불렀다.“서왕의 흔적을 찾을 실마리를 얻었다. 몇 사람을 데려가 뱀을 풀고, 그 자취를 따라가 보아라.”“예, 폐
지하궁은 온통 어둠뿐이었다.완부옥과 서왕은 감금되어 있던 방을 빠져나왔으나, 사방이 캄캄하여 동서남북조차 분간할 수 없었고, 출구를 찾는 것조차 막막하였다.서로 떨어질까 염려된 완부옥은 명령조로 말했다.“제 옷소매를 붙잡아요. 바짝 따라와요.”“알겠다.” 서왕은 그녀의 뒤를 따르는 수행자처럼 움직였다.그가 조심스레 속삭였다.“조심하거라. 혹시 저들이…”“쉿. 소리 들리십니까?”완부옥이 숨을 죽이며 물었다.그 순간, 어둠 속에서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려왔다.누군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둘은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인 채, 벽에 몸을 바짝 붙여 섰다.다행히도 어둠이 그들의 몸을 감추었고, 다가오던 자는 그들을 발견치 못한 채 멀어져갔다.발소리가 사라지자, 완부옥은 서왕의 귀가에 바싹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벽을 더듬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출구가 보일 겁니다.”서왕이 대답하였다.“네가 앞장서거라. 나는 네 옷자락을 붙잡으마.”“……”‘참, 한 손가락도 까딱 안 하려 드는군.’예전 소환과 함께 위기에 빠졌을 때는 달랐다.그저 조금 투정만 부리면, 소환은 그녀를 안고서 척척 길을 찾아주곤 했다.‘하… 또 소환이 그리운 하루네.’완부옥은 ‘짐짝’ 하나를 등에 지고서 벽을 더듬으며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한 걸음마다 온몸이 긴장되었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적들의 기척에 늘 귀를 곤두세워야 했다.지나치게 어두운 환경에 눈이 점점 아파왔고, 이윽고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걸음을 멈췄다.서왕은 그녀가 지친 줄 알고 말했다.“내가 앞장서마. 넌 내 옷자락을 붙잡거라.”완부옥은 비웃듯 말했다.“이제야 남자였던 게 기억난 겁니까?”“……”그녀의 말은 확실히 가시가 있었다.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모든 위기는 결국 그녀가 그를 구하려다 엮인 결과였다.명색만 아내인 그녀가 이토록 의리를 지닌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그리하여 둘은 번갈아가며 벽을 더듬었고,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게 돌고 돌다가 결국, 처음 그 시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