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부옥의 현재 처지는 실로 좋지 않았다.그녀는 홀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호 너머로 스며드는 달빛이 차가운 기운을 드리우자, 입술 사이로 한 줄기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곧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건만, 이토록 외롭고 위태로운 처지일 줄이야.지금껏 살아남은 것만도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남강왕이 은밀히 사람을 풀어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그 때문에 정해진 은신처도 없이 떠돌며,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그녀의 사제 갈십칠조차 예외는 아니었다.타인을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그녀는 홀로 남았다.그러나 숨어만 지낸 것은 아니었다.그녀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진실을 살폈다.대체 어떤 자가 남강에 스며들었기에 왕의 마음을 사로잡고, 국토 확장의 야망을 부추기며, 더 나아가 그녀의 몸속에 깃든 ‘고왕’마저 탐하려 하는 것일까.그리고 마침내 알아냈다.그 인물은 다름 아닌, 동산국에서 도망쳐온 ‘소황’이었다.분명한 것은 그는 예사로운 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그는 남강을 도와 주변 소부족을 정복했고, 이젠 대하까지 넘보는 형세였다.남강왕이 그를 신뢰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완부옥은 점차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갔고, 왕의 신임은 이방인에게로 넘어갔다.아마도 왕은 지금쯤 환생한 제갈량이라도 얻은 양 기뻐하며, 남제와의 균형을 도모하고 있으리라.허나, 정작 동산국조차 감당하지 못한 자를 남강의 작은 그릇이 어찌 품을 수 있단 말인가.완부옥은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춘 채, 소무가 갇힌 방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과거 남제 변방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소무는 소욱의 곁을 지키고 있었고, 진한길보다도 황제를 더 따르는 듯 보였다.분명 사제 사이였다 들었는데… 어찌하여 지금, 이곳 남강에서 포박당한 채 갇혀 있는 것일까?방금도 소황과 마주한 듯하였는데,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일까?아쉽게도 그녀는 너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더라면
궁 바깥, 한 객잔 안.창가에 홀로 앉은 원 노인은 달빛 아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곧 추석이 다가오건만, 곁에 피붙이라 부를 이 하나 없이 그저 덩그러니 늙은 몸만 남아 있었다.만일… 소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이후 저승에서 딸아이에게 무엇이라 설명한단 말인가.적연검. 오늘에서야, 그 검이 쌍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만일 정희가 이미 암검을 찾아냈었다면, 어찌하여 자신에게는 그 사실을 숨겼단 말인가.……남강.어둠이 깔린 깊은 밤, 소무는 여전히 결박된 채였다.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번갈아가며 그를 감시하고 있었으니, 도망은커녕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였다.그날 밤, 그는 무리에게 이끌려 밖으로 끌려 나왔다.“도대체 어딜 데려가는 거야? 설마 이젠 죽이겠다는 거냐?”그는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지만, 검은 옷의 사내는 대꾸조차 없었다.소무는 이윽고 다른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그 방 안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소황이었다.그리고 그 곁엔, 처음 보는 백의의 사내가 서 있었다.언뜻 보기에도, 그저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백의 사내가 먼저 다가와, 정중히 예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이런 방식으로 남제를 떠나시게 한 것, 실례가 컸습니다.”소무는 비웃듯 코웃음을 내뱉었다.“정말 미안하다면, 이거나 좀 풀지 그러냐? 사지를 꽁꽁 묶어놓고선 무슨 말장난이야?”온몸이 밧줄에 묶여 꼼짝없이 당한 지 며칠째였다.차라리 한 칼에 베어내는 편이 나을 것만 같았다.“그리고 넌 누구냐? 대체 왜 날 납치한 거야?!”그제야 백의의 사내가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담대연이라 합니다.”“담대연?!”소무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그 이름은 사형들과 사부님에게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그는 분명, 남제를 위해 일하던 인물이었다.그런 자가 어찌하여 소황과 함께 있는 것일까?바로 그때,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그래! 넌 배신자지! 남제를 배신하고, 이젠 남제를 공격하려는 거야!”“날
원 노인의 대답은 단호했다.“반드시 손을 잡고, 소황과 담대연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그러면서도 그는 소무를 깊이 염려하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소무는 적의 손에 붙잡혀 인질이 된 상태였다.원 노인은 봉구안에게 공손히 예를 올리며 간청했다.“황후마마, 소무를 구하는 일에 있어서 부디 마마와 폐하께서 마음을 모아 주시기를 바랍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물론입니다. 공적으로 보자면, 소무는 남제 황가 사람입니다. 사사로이 보아도 폐하는 소무의 사형이니, 깊은 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가 비록 부족할지라도, 폐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다하실 것입니다.”그 말은 원 노인을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였다.그날 밤.소욱은 정사를 마친 뒤 영화궁으로 돌아왔다.봉구안은 원 노인과 나눈 대화를 빠짐없이 전했다.며칠 전, 적연검이 쌍검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힌 것도 그녀였다.소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곧장 눈치를 챘구나. 동산국이 남제와 연합하여 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봉구안의 얼굴엔 근심이 짙게 드리웠다.“다만… 과연 동산국 황제가 원 노인의 간언을 받아들일지가 문제입니다.”소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혹 동산국이 담대연에게 넘어갈까 염려하는 것이냐?”“예. 담대연이 지금쯤이라면, 대하를 공격하기에 앞서 장애물을 제거하려 하겠지요. 동산국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이치로 대하에 협력하게 된다면, 이번 전쟁은 훨씬 불리하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소욱은 낮게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결국 저들이 보유한 병력도 제한적이다. 남강의 잔여 병사와 몇몇 소부족의 무리가 고작 삼만 남짓이니, 그리 위협적인 수는 아니지.”“허나, 만일 동산국이 그쪽에 붙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일리 있구나. 담대연은 말을 잘하는 자이니, 마음만 먹으면 동산국 황제를 홀릴 수도 있겠지.”“스스로 복속을 청하며, 그간의 모든 행보가 동산국 통일을 위한 대의였다
남제 황성.원 노인은 마음이 타들어가는 듯했다.소무가 납치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소무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어느 곳에 있는지, 무사한지조차 모른 채 기다리는 나날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그에겐 이제 단 하나 남은 외손자뿐이었다.그 아이마저 잃는다면, 더는 삶을 버틸 이유가 없었다.그는 자신의 생명조차 돌보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수하의 암위들 모두를 내보내 소무의 행방을 쫓게 하고는, 직접 황제를 알현하고자 했다.허나 소욱은 바쁜 나날이었다.대신 그를 맞은 이는 영화궁의 봉구안이었다.봉구안은 침착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소무에 관한 일은 저희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소무는 담대연에게 붙잡혀 있으며, 당장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예. 저도 짐작은 합니다. 그들이 죽일 생각이었더라면 진작 죽였겠지요. 굳이 데려가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군요. 혹시라도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까 두렵습니다. 황후 마마께서는 담대연이 무슨 속셈으로 저런 일을 벌인 건지… 짐작하시는 바가 있으십니까?”원 노인의 안색은 이미 죽은 이와 다르지 않았다.상처는 아직 채 아물지 않았고, 피로가 얼굴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도무지 편해 보이지 않았다.마치 의자 위에 가시라도 박힌 듯, 온몸이 불편하고, 마음은 내내 어수선했다.봉구안은 신중히 말을 꺼냈다.“그자가 추구하던 것은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바로 천하통일이지요. 동산국에 몸담고 있을 때도 그러하였고, 남제로 들어와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소황과 손을 잡았으니, 그를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듯합니다.”“허나 소무가 이 일에 끼어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원 노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감출 수 없다는 듯 물었다.“그러니 한 말씀 여쭙고자 합니다. 원비, 혹은 원가에 무언가 담대연이 노릴 만한 것이 있습니까? 그 자가 천하를 얻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소황은 한참을 침묵하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마침내 담대연에게 입을 열었다.“소무는 정녕 우리 손안에 들어올 자가 맞느냐? 그리고 너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담대연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소무가 저희 뜻대로 움직이든 그렇지 못하든, 지금 저희가 택할 길은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바는 지극히 단순합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천하를 하나로 통합하고, 역사에 제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소황은 크고 시원하게 웃어젖혔다.“하하하! 좋구나! 좋아! 그렇다면 네 각오부터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너를 가볍게 믿어본들, 그것으로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 결국엔… 투명장이 필요한 법이다. 겨우 소무 하나 데려와 놓고서, 나더러 너를 받아들이라 하는 건 아니겠지?”담대연은 털끝 하나 흔들림 없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저는 이 목숨을 바쳐 대인께 힘을 보태겠습니다. 남강을 이용해 대하를 멸하고, 다시 동산국을 공격하여 동방의 모든 제국을 하나로 아우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남제를 동쪽에서 꺾고, 그 세력을 완전히 허물어뜨리겠습니다. 남제가 무너지면 그에 속한 속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여국 정도야 손바닥 뒤집듯 손에 넣을 수 있겠지요.”소황은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말은 참으로 쉽구나. 넌 대체 무엇을 믿고 그런 허황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사실 소황 자신도 남강왕을 꾸어내어 대하를 공격하게끔 부추겼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남강의 군세를 북쪽으로 끌어내려, 그 틈을 타 남강을 공격하기 위한 계략에 불과했다. 정말로 대하를 멸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자신조차 이뤄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담대연이 그런 말을 태연자약하게 내뱉다니. 담대연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과거 남제 황제 일행이 우성에서 포위당했을 때, 제가 그들을 무사히 빠져나오게 하였습니다.”소황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 우성의 일이,
팔월 중순, 남강. 왕성 안.방 안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고, 그 사이로 하녀가 차를 따르고 있었다. 차향이 그윽하게 퍼졌지만, 그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적셔주지는 못했다.소황이 매서운 눈빛으로 맞은편의 인물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담대연, 너는 벌써 동산국을 배반한 자가 아니더냐.”담대연은 한 벌의 백의를 입고 있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듯 맑고 고아한 자태였다. 그는 가볍게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배반이라는 말은 너무 무겁습니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택해 깃들고, 군자는 무너질 벽 아래 서지 않지요. 이치로 따지자면 제 선택이 그리 탓할 만한 일은 아닐텐데요.”소황이 비웃듯 콧김을 뿜었다.“허. 그 말인즉슨, 이제는 남제가 그 무너질 벽이 되었다는 말이냐? 네놈이 밝은 곳으로 몸을 옮긴 것이냐, 아니면 예전 수법을 다시 써서 나를 속이고자 함이냐? 남제를 위해 나를 염탐하려 드는 것이냐?”그의 목소리는 점차 날카로워졌다.“내가 동산국의 그 어리석은 자들과 같을 줄 아느냐! 아무 조사도 없이 네놈 말만 믿을 것 같으냐! 네놈이 이 몇 년간 남제에 머물며 천형에 처해져서도 병법을 가르쳤다지? 온 힘을 다해 일했다더군!”그러나 담대연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올리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남제에 있었던 건 고작 네 해뿐입니다. 이에 비해, 대인께서 동산국에 숨어 계셨던 삼십여 년은 그야말로 비교가 되지 않지요.”소황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 그 얼굴에 살기가 떠올랐다.그리고는 문득, 다실 안 여기저기서 검은 그림자들이 튀어나왔다. 수십 명의 자객들이 나타나 날카로운 칼끝을 일제히 담대연에게 겨눴다.담대연이 데려온 인물들은 모두 마당에 남아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그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그야말로 도마 위의 생선, 칼을 드는 자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담대연은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한 모금, 조용히 차를 들이켰다.소황은 날선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