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은 마침내 반쪽짜리 옥비녀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다만, 부모님이 생전에 이 비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었다."그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버렸겠지."하지만 지금 황실에서조차 이 비녀를 찾고 있다."이게 단순한 장신구일 리가 없어."유영의 마음속에 점점 더 큰 욕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한편,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희는 미간을 찌푸렸다."이 낡아빠진 비녀가 대체 뭐라고… 차라리 절 황제의 후궁으로 들이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아요?"그러나 유영은 단호했다."내일 당장 황성으로 돌아가야겠어!"그녀는 옥비녀를 정성스럽게 상자에 담으며 속으로 되뇌었다."이제야 모든 게 맞춰지는군."정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어머니, 혹시 아버지와 다시 화해할 방법을 생각해 내신 거예요?"유영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황성.황궁에서는 성대한 추석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황제와 황후는 높은 자리에 앉아 신하들을 내려다보았다.올해의 연회는 더욱 특별했다.제국의 승리를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황제 소욱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포상을 내렸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황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이번 전쟁에서 황후는 직접 출정하여 큰 공을 세웠다.""이에, 짐은 비용군과 만 명의 신병을 황후에게 맡기려 한다.""일전에 여러 신하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견이 있었으나, 오늘 이 자리에서 짐이 확실히 말해두겠다.""황후와 짐은 부부로서 마음을 함께한다. 짐의 군대는 황후의 군대와 다름없다!"순간, 연회장은 적막에 휩싸였다.신하들의 반응은 엇갈렸다."황후께서는 이미 능력을 입증하셨어. 이 정도의 병권을 맡기시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하지만 다른 일부는 탐탁지 않아 했다."후궁이 군권을 가지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해!"그러나, 누구도 황제의 결정을 뒤집을 수 없었다.소욱은 그녀의 손을 잡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봉 부인은 송 부인의 표정이 흔들리는 것을 보자 급히 손을 저었다."아닙니다, 사돈. 제가 아니라 황후를 위해서입니다. 황후께 꼭 필요한 약을 찾고 싶습니다."송 부인은 순간 놀란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황후마마를 위해서라니…?’봉장미는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지만, 봉구안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다.어릴 적, 봉구안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그녀였다.하지만 이제는 다 내려놓고 딸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그녀에겐 두 발이 있다.그 두 발로 온 세상을 돌며 약을 찾을 것이다.그녀에겐 입이 있다.그 입으로 의술이 뛰어난 명의들에게 묻고 또 물을 것이다.전쟁 중 황후가 유산했고,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소문은 이미 장주에도 퍼져 있었다.송 부인은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사람마다 체질이 다릅니다. 황후마마의 몸 상태를 직접 확인해야 정확한 처방이 가능할 것입니다.""제 서방님이 직접 황후마마의 진맥을 보게 하겠습니다."봉 부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정말 고맙습니다. 황성으로 돌아가면 황후께 말씀드려, 사돈께서 진료를 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사실 그녀도 처음부터 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쉽게 부탁할 수 없었다.송가는 대대로 장주에서 의료를 베풀었고, 송 대인은 오로지 의학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이었다.그는 가족조차 자주 보지 못할 만큼 약재 연구에만 몰두했고, 많은 이들이 그를 초청하려 했지만, 그는 항상 거절했다.그런데도 송 부인이 이렇게 먼저 제안해 주다니, 봉 부인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송 부인의 품에 안긴 아이로 향했다.문득, 또 다른 걱정이 떠올랐다."사돈, 혹시… 또 아이를 가지실 생각이신가요?"송 부인이 이 나이에도 출산을 결심한 이유는 명확했다.그녀는 아들을 원했다.왜냐하면 송려는 봉장미와 혼인했지만, 봉장미는 불임이었다.이는 곧 송가의 핏줄이 끊길 위기를 의미했다.이 말을
성동에 있는 한 주점.완부옥은 미리 조용한 별실을 예약하고 봉구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동방세와 그의 일행이었다.항상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던 동방세였지만, 이번에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곧장 완부옥을 향해 경고했다."들었소. 원래는 소환 혼자만 부르려 했다지?"그의 시선이 가볍게 그녀를 훑었다."완부옥, 벗으로서 하는 말이오.”“지금 소환의 신분은 예전과 다르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오."완부옥은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한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네 걱정이나 하는 게 좋겠어. 요즘 동방가의 '거미줄' 개편 덕에 명성이 자자하지. 너를 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각국에서 네게 현상금을 걸었더군.”“우리 남강왕께서도 너를 초대하고 싶어 하시던데?”“사람이 너무 유명해지면 탈이 많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않겠어?"동방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웃었다."날 잡을 수 있다면 말이지."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지만 그의 자신감은 허울뿐이 아니었다. 그는 이 나라 최고의 무인 중 하나였다.그때, 배고픔을 참지 못한 범진이 식탁 위의 음식에 눈을 반짝이며 재촉했다."소환은 아직 안 온 것이오?"그들은 소환이 황후가 된 이후에도 예전처럼 그녀를 '소환'이라 불렀다.그녀 역시 사적으로는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했으니, 굳이 형식을 차릴 필요는 없었다.완부옥도 무심코 문 쪽을 바라보았다.'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설마… 저 개 같은 황제가 그녀를 궁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건 아니겠지?'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초조해하던 찰나, 문이 열렸다.완부옥의 눈빛이 밝아지며 기대감에 차오른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곧 사라지고,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그녀의 음성이 차가웠다.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서왕이었다.그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완부옥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초조하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그녀가 정성껏 준비한 정충.단 한 번만 먹이면, 소환은 절대로 그녀를 떠날 수 없을 터였다.하지만… 그 중요한 독이 사라졌다.오늘 같은 기회를 다시 잡기란 어려울 것이다.한 가지 계책이 실패하자, 완부옥은 즉시 다른 방법을 궁리했다.‘술을 마시게 하자.’취하게 만들면, 그다음은 쉬울 터였다.결심이 서자, 바로 행동에 옮겼다."이렇게 마시기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우리 놀이를 하는 건 어때요?""좋지!"범진이 반색하며 손뼉을 쳤고, 분위기는 빠르게 무르익었다.곧이어 사람들은 술 놀이를 시작했다.완부옥은 봉구안에게 술을 먹이려 했지만, 정작 그녀가 먼저 몇 잔을 들이켰다.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봉구안에게만 쏠려 있었기에, 자신의 곁에서 서왕이 이상하게 굴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서왕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초조한 듯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몸이 달아오르는 듯 불안하게 자꾸만 그녀에게 다가갔다.……한편, 소욱은 창가에 앉아 안에서 이어지는 술자리 풍경을 보고 있었다.봉구안이 저들에게 술을 강권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신경이 쓰였다.하지만 그녀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아 섣불리 개입하지 못했다.그런데 봉구안이 문득 시선을 들었다.무공이 뛰어난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즉시 감지했다.봉구안은 무심한 듯 작은 술병을 들고 창가로 걸어갔다.몸을 창틀에 걸터앉더니, 한쪽 다리를 올려 느긋하게 굽히고, 다른 한쪽 다리는 자연스럽게 늘어뜨렸다.달빛이 그녀의 몸을 감싸 안았고, 창틀이 마치 그녀를 그림처럼 담아냈다.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 하얗게 드러난 목선.그야말로 매혹적인 한 폭의 풍경이었다.봉구안은 한 손으로 술병을 들고 고개를 젖혔다.술이 투명한 궤적을 그리며 입술로 흘러들었다.겉보기에는 단순히 바람을 쐬며 술을 깨는 듯했지만, 그녀의 다른 손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져 있었다.그리고 그 손 안엔 암기가 쥐어져 있었다.슉!반쯤
봉구안은 먼 서쪽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강주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즉시 보고하거라. 그리고 장주에 사람을 보내 어머니와 장미를 보호하게 하거라. 아무도 그분들을 방해할 수 없도록 말이다."오백은 단호하게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 마마!"역시나, 주군께서는 항상 한 발 앞서 움직이신다.그런데 오백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마마, 또 한 가지 소식이 있습니다. 서여국의 황제께서 병세가 심각해지셨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앞으로 두세 달이 고작일 듯합니다.""그리고 얼마 전 그들이 점령한 정국과 소주국이 내통하며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여국 내부가 심상치 않습니다."봉구안은 미간을 좁혔다.서여국의 황제는 단순한 군주가 아니었다.그녀는 진정한 여걸이었다.그녀가 세상을 떠난다면, 서여국은 내부 혼란에 휩싸일 게 뻔했다.봉구안은 그녀의 처지가 안타까웠다.하지만, 삶과 죽음은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서여국 황제의 마지막 바람을 들어주는 것. 하루빨리 숙연을 찾아 그녀의 한을 풀어주는 것뿐이다.그때 소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느냐?"소욱이 세수를 마치고 다가왔다.그는 방금 오백이 무슨 보고를 했는지 듣지 못했다.봉구안은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눈빛은 깊고, 얼굴에는 묵직한 기운이 서렸다."폐하, 서여국이 곧 내란에 휩싸일 것 같습니다."그녀는 한쪽 손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다른 한 손을 들어 서쪽을 가리켰다."서경군을 비상 대기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여국이 정국과 소주국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저희가 그들을 삼켜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소욱은 말문이 막혔다.‘이른 아침부터 이 사람의 야망은 하늘을 찌를 기세구나.’……서여국 왕궁.황제는 병상에 누운 채로도 정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모신 상궁이 그녀를 부축하여 허리 뒤에 받침을 두고 기대게 했다.
소욱은 봉구안과 함께 무애산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출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그는 떠나기 전, 서왕에게 조정을 맡기고 몇 명의 보정 대신을 임명했다.그리고 외지로 파견될 관료 명단이 발표되었고, 그 안에 봉 대인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그런데 그가 봉 부인에게 보낸 서신이 감감무소식이었다.봉 대인은 속이 타들어 갔다.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골칫거리가 등장했다.막내아들 봉명헌이 허둥지둥 뛰어와 다급하게 외쳤다."아버지! 아버지! 들었습니까? 아버지가 외지로 떠난다면서요! 강주는 어딥니까? 다시 돌아오실 수 있는 거 맞죠?!"봉 대인은 혈압이 솟구쳐, 봉명헌의 뒤통수를 한 대 시원하게 후려쳤다."내가 돌아올지 말지 네놈이 한 번 맞혀볼래?!"‘아니, 이놈이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봉명헌은 머리를 감싸며 울먹였다."아버지, 왜 때려요! 그냥 물어본 거잖아요! 당연히 아버지가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죠! 참… 저 장가를 가게 되었습니다.""뭐?"봉 대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녀석이 장가를 간다고?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들이 혼인 할 나이는 됐지만, 혼처를 알아봐 줄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항상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막내아들의 혼사는 뒷전이었던 것이다.봉 대인은 잠시 죄책감을 느꼈다.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이놈이 멀쩡한 혼인을 할 수 있을까?덩치가 둥글둥글하고, 어딘가 멍청해 보이는 얼굴에, 허술한 말투까지…이렇게 덜떨어진 놈을 누가 좋아하겠는가?"혼담은 개뿔! 아직 결정된 것도 없는데 무슨 장가 타령이냐?!"봉 대인은 따귀라도 한 대 더 날릴 기세였다.그런데 봉명헌이 씩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걱정 마세요! 이미 다 결정됐어요! 저랑 제 정인은 서로 좋아한 지 오래됐거든요. 그 집안 사람들도 이미 허락하셨어요! 이제 상견례만 하면 돼요!"봉 대인의 눈이 커다래졌다."뭐?!"이 망할 자식이… 몰래 혼인을 추진하고 있었다고?!"어디 집 규수냐?"봉 대인이 이제야 아버지다운 태도를 보이며
황궁.봉구안이 어전에 들어서보니, 봉명헌이 소욱의 다리에 매달려 울고 있었다.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누님!"봉명헌은 그녀를 보자마자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기를 쓰고 더 매달렸다."제발 좀 도와주세요! 전 정말 그 아이를 사랑합니다! 누님께서 제발 절 좀 도와주세요!"그의 간절한 요청은 결국 그 창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었다.소욱은 피곤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이건 황후가 알아서 하거라."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하지만 봉구안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그녀는 전혀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일단 일어나거라.""싫습니다! 누님과 황제 폐하께서 제 혼사를 허락해 주지 않으시면, 전 여기서 무릎 꿇은 채 죽을 겁니다!"봉구안은 코웃음을 쳤다."흥, 제법 끈기는 있군."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하나뿐이다."봉명헌의 눈이 반짝였다."무엇입니까?!"봉구안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다."봉가는 명문가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규율을 함부로 어길 수 없다.유일한 방법은 봉가와 연을 끊는 것뿐이다.""네?"봉명헌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녀는 농담하는 게 아니었다.봉구안의 눈빛에는 진지함과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그렇게 되면, 네가 누구를 아내로 맞이하든 상관없다. 네가 기방의 여인을 맞이하든, 거지가 되든, 더 이상 봉가와는 무관한 일이 되겠지.""안 돼요!!"봉명헌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럴 순 없습니다! 봉가는 제 본가인걸요!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곳인데 어찌 봉가와 연을 끊을 수 있단 말입니까!!"봉구안의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방금 전까지는 뭐든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 않았더냐? 지금은 네게 봉가가 더 중요해진 것이냐?"그녀는 차분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봉명헌, 잘 듣거라. 세상에 그냥 얻을 수 있는 건 없다.”“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포기할 수 없다는
유영 모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강주로 돌아가는 길에도 누군가가 계속 뒤를 밟고 있었음을 말이다.더군다나 황성에 다시 발을 들이는 순간, 바로 포박당할 줄이야…"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유영이 격렬하게 소리쳤다.그러나 그녀의 입은 곧바로 거칠게 틀어막혔다.그렇게 그녀들은 반항할 틈도 없이 그대로 끌려갔다.영화궁.봉구안은 영화궁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그때, 만추가 한 상자를 공손히 바쳤다."마마, 유영의 몸에서 나온 것입니다."봉구안은 별다른 반응 없이 상자를 받아 들었다.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반으로 쪼개진 옥비녀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봉구안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하지만, 그 손길은 묘하게 신중했다.그녀는 자신의 옥비녀 반쪽을 꺼내어, 두 조각을 조심스럽게 맞춰 보았다.딱!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만추는 입을 떡 벌렸다."마마, 이게 정말 그때 찾으시던…?"봉구안은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가운 눈빛으로 단호히 말했다."즉시 감정하게 하라.""예!"황궁에는 명장이 많다.이 옥비녀가 한 세트인지 아닌지는, 그들이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었다.잠시 후, 여러 명의 장인들이 감정한 결과가 나왔다."마마, 확인해 본 결과… 이 두 조각은 본래 하나의 비녀였습니다."만추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그렇다면… 이걸 통해 서여국 황제의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봉구안은 여전히 담담했다.그녀는 두 개의 옥비녀 조각을 손에 쥐고, 차분하게 지시했다."유씨 가문의 두 딸에 대해 조사하거라. 그들의 출생과 가계까지 모두 조사해서 보고해라. 특히 그들의 고향을 샅샅이 뒤져라.""예, 마마!""그리고, 서여국 황제께 서찰을 보내라. 단서는 찾았다고 전해라.""예!""유영 모녀는 당분간 가둬두고 심문하거라. 이 옥비녀를 어디서 구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알겠습니다!"봉구안은 조용히 시선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
소욱은 봉구안의 생각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었다.방금 전까진 분명 모용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태조 황제 묘까지 들먹이는 것일까?그래도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답해 주었다.“태조께서는 동릉에 묻혔다.”도굴을 막기 위해 태조의 능은 총 열세 곳에 분산되어 있었고, 각각의 무덤엔 무거운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허나 그 열세 곳 모두가 가짜였다.진짜 묘는 오직 역대 황제만이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봉구안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단호하게 말했다.“폐하, 능을… 잠시 열어볼 수 있겠습니까?”소욱의 눈썹이 즉시 찌푸려졌다.“안 된다.”태조 황제는 이미 서세를 마친 성조였다.그분의 안식을 함부로 깨뜨릴 순 없었다.봉구안도 그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일은 약쟁이 사건의 진상에 직결되는 문제였다.그녀는 침착히 입을 열었다.“진정 불로장생을 원한 사람은 모용길이 아니라 태조 황제였을 수도 있습니다.”소욱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구안아, 지금 네 말은… 너무 황당하구나.”“설마 이 모든 약쟁이 사건의 배후가 태조 황제라는 것이냐?”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동방세가 그린 그 인물은 모용길과 닮았을 뿐, 자신들의 소씨 가문과는 단 한 점도 닮은 데가 없었다.봉구안도 이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라 단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직감은 이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모용길이 연막을 치고 모용욱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뒤, 모용가 전체를 끌어들인 것만 봐도… 그 자는 모용가의 존망 따윈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그렇다면 그 자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한 건, 다른 무엇일지도 모릅니다.”그녀의 눈빛이 깊어졌다.“폐하, 이백 년 전의 일은 저희가 직접 본 게 아닙니다.”“하지만 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 황제께서는 남산왕, 서왕, 그리고 모용길과는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이였다고 합니다.”“남산왕은 태조의 명을 따라 세세손손 봉맥을 지켜왔고, 서왕가는 동부를
봉구안은 이전에 모용가의 선조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들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다.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태조 황제가 천하를 개척할 당시,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군량과 보급을 아낌없이 헌납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승상에 올랐지만 불과 세 해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향년, 마흔.그런데 지금 동방세가 그려낸 배후 인물의 얼굴이 그 모용길과 너무도 흡사했다.소욱 역시 그림을 비교해보았다.한 손엔 방금 받은 초상화, 다른 한 손엔 책에 실린 옛 그림이 들려있었다.똑같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십중팔구 정도 닮은 듯했다!그는 봉구안과 눈을 마주쳤다.“얼굴이 닮은 거겠지. 아니면 모용가 어딘가에 숨어 있던 서자일지도 몰라.”소욱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그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봉구안은 강호를 누비며 별의별 기이한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충북에는 삼백 살 넘은 노인이 있다 들었습니다.”“신무파 장문도 이백십칠 년을 살았다죠.”“남제가 건국된 지 이제 겨우 이백 년 남짓입니다.”“만일 정말 불로장생이 가능하다면, 모용길이 살아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봉구안은 담담히 말했다.게다가, 그녀를 더욱 확신에 가까운 의심으로 이끄는 단서가 하나 더 있었다.“폐하, 서왕께선 납치 당시에 그들이 피를 원했다고 했습니다.”“그 피를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요.”“이건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소욱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서왕 말로는, 그 자가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하던데... 횡설수설하는 미치광이였다고.”봉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들을 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오히려 모용길이 이번 일의 진짜 배후라 생각합니다.”“모용가의 조상사당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독초를 재배하려면 내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지요.”“그리고 모용욱의 검거도 너무 순조로웠습니다.”“모든 것이… 너무 ‘그럴듯’했어요.”“어쩌면, 모든 건 모용길이 준
봉구안은 소욱이 자신을 다시 궁으로 데려온 진짜 이유가, 자신이 서여국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욱은 조심스레 사과할 말을 고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문득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소욱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봉구안은 다시금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그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그 동작엔 위로와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번 일은 폐하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저를 의심하신 건 제가 드린 믿음이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겠지요.”“담대연은 말재주가 뛰어납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흔들릴 만합니다.”그녀는 시선을 마주하고 또박또박 말했다.“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제 마음속에서 가족이 있는 곳이, 진짜 ‘집’입니다.”“폐하께서는 저의 지아비이십니다. 혈육은 아니지만, 저의 여생을 함께할 유일한 사람이지요.”“서여국이 아무리 좋아도, 폐하만큼 소중하진 않습니다.”소욱의 손끝이 떨렸다.“너… 그 말이 진심이냐?”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내가 정말 네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봉구안은 오히려 되물었다.“폐하가 아니면 누가 있겠습니까?”그러자 소욱은 손가락을 접으며 셈을 하기 시작했다.“사부랑 사모, 그리고 봉장미, 게다가… 네 뱃속에 있는 이 녀석.”“세상 사람들 다 그러더라. 자식은 어미의 인생 그 자체라고… 지금도 내 순위가 그리 높진 않은데, 아이가 태어나면 내 자리는 더 밀려나겠지.”봉구안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그녀는 진지하게 설명했다.“사부님과 사모님은 저에게 산처럼 큰 은혜를 주신 분들이지만, 그분들도 장미와 마찬가지로 ‘혈육’일 뿐입니다.”“저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요.”“아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폐하를 마음에 두었기에 생긴 아이인데, 어떻게 그 아버지를 제쳐둘 수 있겠습니까?”“폐하야말로 제가 앞으로 비바람을 함께할 사람,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유
아침 조회.조정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신료들은 하나같이 모용가를 엄하게 조사하겠다며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폐하 모용가 사당에서 이상한 점이 드러났고, 모용욱의 저택에서는 약쟁이 소굴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드시 모용 일가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신도 동의합니다! 모용욱 혼자만의 짓일 리 없으며, 모용가의 다른 이들도 직접 연루되진 않았더라도 방조하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조묘 사건 이후, 모용가는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하였다.이번 약쟁이 사건은 수많은 무고한 관리까지 연루되며 사람들의 불신과 공포를 증폭시켰고,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민심을 수습하려면, 이참에 반드시 철저히 죄를 묻고 엄벌해야 했다.결국 모용 일가는 또다시 전원 구금되었다.이전엔 모용선의 아버지, 모용렴이 자신을 희생해 가문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틈조차 없었다.옥양산.태황태후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동요했다.더 이상 모용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던 그녀였지만, 이번 일은 너무나도 중대했다.“약쟁이라니... 어떻게 모용가가 그런 일에 휘말릴 수 있단 말이냐…”수십 년을 모신 상궁이 다급히 물었다.“태황태후마마, 이제 어찌해야 할지…”태황태후는 부처상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구었다.“모용가가 정말 죄를 지었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구하겠느냐. 죄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제 황제 얼굴조차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말을 전하겠느냐.”“이건… 하늘이 우리 모용가를 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태황태후는 그날로 병석에 눕고 말았다.황궁, 자녕궁.태후는 태황태후의 병세를 전해 듣고 즉시 태의를 보냈다.곁에 있던 계 상궁이 조심스레 속삭였다.“태후마마, 태황태후께서는 예전에 천룡회와 손잡고 폐하를 몰아내려 하셨고, 이번엔 모용가가 약쟁이 일로 큰 소란을 일으켰으니 굳이 정성을 들이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그 말에 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나직이 꾸짖었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입을 조심하지 못하겠느냐. 말 그
어전.“폐하, 서왕 전하와 왕비마마께서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서왕 전하께서 지금 궁문 밖에 대기 중이며, 아뢸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이 말을 들은 소욱은 지체 없이 명하였다.“어서 들라.”얼마 지나지 않아, 서왕은 발걸음을 옮겨 어전으로 들어섰다.그는 문턱을 넘자마자 곧장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신, 폐하를 뵙나이다!”소욱은 그 기색을 살피고, 정신이 온전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음을 놓았다.“무사하다니 다행이로구나.”헌데, 서왕의 안색은 심상치 않았다.“폐하, 신이 납치당한 이유는… 그들이 신의 피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신의 부친께서 돌아가시던 때가 떠올랐습니다.”소욱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그는 눈빛을 가라앉히고 그를 바라보았다.“너의 피를 왜 필요로 한단 말이냐? 그자들이 정말 피를 취하였느냐?”서왕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취하지는 못하였사오나, 그들의 목적이 분명 피에 있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부친께서 돌아가신 그 사건 역시,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소욱의 미간이 좁게 모아졌다.그는 전대의 왕부, 곧 서왕의 아버지에 관한 억울한 일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 일로 선황은 오랫동안 후회하며 침식을 잊고 괴로워했었다.그래서 소욱 또한, 이후 누구에 대해 반역 운운하는 소문이 돌 때마다 쉽게 믿지 않았다.선왕이 저지른 실책을 그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허나 지금 와서 다시금 드러나는 의혹은 그 죽음이 단순한 누명이나 정치적 숙청이 아닌, 무언가 깊은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소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자세히 말해 보아라.”……황성 서쪽.봉구안의 행차가 한적한 관로에 이르렀을 때, 한 일행이 그녀를 막아세웠다.오백이 곧장 검을 뽑아 방어 태세를 취했으나, 막아선 이들이 익숙한 인물임을 곧 알아보았다.바로 자재각을 지키던 소욱의 친위 호위병들이었다.그들은 마차를 둘러싸며 호위 진형을 갖추었다.“마마, 저희는 폐하의 명을 받아 마마를 궁으로 모
소욱은 한참을 고심한 끝에, 어느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천명을 믿지는 않았으나, 담대연이 말한 ‘인성’은 부정할 수 없었다.봉구안은 언제나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과거 그녀가 이미 단회욱을 마음에서 지웠음에도, 그를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죽음을 택했던 일은 지금도 눈에 선했다.서여국은 외환보다 내우가 깊은 나라였다.아무리 소주와 정국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안으로는 여전히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이번에 봉구안이 직접 서여국에 가게 되면, 그 혼란 속에서 국주로 추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녀의 성정상 그 책임을 외면하진 못할 터였다.결국엔 남제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소욱의 가슴을 옥죄었다.담대연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천하통일. 그러나 그보다 무서운 건, 그 길목에서 아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진한길.”“신, 여기 있습니다!”“황후를 몰래 다시 데려오거라. 사람을 붙여, 은밀히.”진한길은 순간 의아함을 품었다.폐하께서 왜 이리도 갈팡질팡하시는 걸까………한편, 황성 서쪽 교외.담대연이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지하궁의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그가 손을 쓰자 거대한 암석이 옆으로 밀려나며, 숨겨진 지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담대연은 호위들에게 엄중히 이르렀다.“이곳은 함정과 기계장치가 많습니다. 제 발을 따라오십시오. 절대 멋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명심하겠습니다!”……지하궁 내.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서왕과 완부옥은 이미 허기와 피로로 맥을 잃고 있었다.그때, 누군가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그 인물은 이전에 죽은 자의 시체를 발견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시체를 끌고 나갈 뿐이었다. 마치 이곳에서 죽음은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시체를 처리한 뒤, 그자는 곧장 서왕을 데리고 가려 했다.완부옥은 그를 향해 소리쳤다.“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대답은 없었다. 그저 서왕을 밀어내듯 이끌 뿐이었다.하지만, 그들은 이미 내공
그 뱀은 영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슥, 하고 순식간에 주실 안으로 기어들어가더니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뱀을 잡기 위해선 황후의 물건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반드시 폐하께 고해야 할 사안이었다.때마침 소욱은 밤이 깊어도 봉구안이 그리워져 자유각을 찾았다.호위들은 이 일을 곧장 아뢰었다.소욱의 눈썹이 짙게 찌푸려졌다.그는 친히 방으로 들어가 사방을 뒤적이다, 마침내 침상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뱀을 발견하였다.그 순간, 그는 뱀의 눈과 마주쳤다.소욱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이놈을 당장 잡아내라…”막 명하려던 찰나, 그는 그 뱀이 어딘가 익숙하단 걸 느꼈다.이 뱀은… 분명 완부옥이 기르던 그 뱀과 닮아 있었다.완부옥과 서왕이 함께 실종된 걸 떠올린 소욱은 곧 심중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그는 즉시 명하여 뱀을 그물망에 넣게 한 뒤, 서왕부로 보내어 확인하게 하였다.서왕부의 호위, 유화가 그 뱀을 확인하였다.그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억누르며 가까이 다가갔고, 잠시 후 단호하게 말했다.“왕비마마께서 기르던 뱀입니다.”자유각.소욱은 전갈을 받은 후, 이 일에 더없이 의아해졌다.완부옥의 뱀이 어찌 자유각까지 온단 말인가?설령 이 뱀이 길을 안다 하여도, 돌아간다면 당연히 서왕부로 가야 할 터였다.그는 곧 봉구안에게 전령 비둘기를 날렸다.그 시각, 봉구안은 황성을 갓 벗어난 참이었다.편지를 받아든 그녀는 곧장 완부옥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예전에 완부옥이 똑같은 짓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곧장 회신을 써서 다시 소욱에게 전했다.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봉구안은 잠시 고심한 끝에, 두 번째 편지를 써 보냈다.그 안엔 한 마디 당부가 적혀 있었다.[폐하, 부디 경솔한 행동은 삼가 주시옵고, 무엇보다 폐하의 안전을 우선으로 삼으소서.]소욱은 첫 번째 편지를 받고 곧장 진한길을 불렀다.“서왕의 흔적을 찾을 실마리를 얻었다. 몇 사람을 데려가 뱀을 풀고, 그 자취를 따라가 보아라.”“예, 폐
지하궁은 온통 어둠뿐이었다.완부옥과 서왕은 감금되어 있던 방을 빠져나왔으나, 사방이 캄캄하여 동서남북조차 분간할 수 없었고, 출구를 찾는 것조차 막막하였다.서로 떨어질까 염려된 완부옥은 명령조로 말했다.“제 옷소매를 붙잡아요. 바짝 따라와요.”“알겠다.” 서왕은 그녀의 뒤를 따르는 수행자처럼 움직였다.그가 조심스레 속삭였다.“조심하거라. 혹시 저들이…”“쉿. 소리 들리십니까?”완부옥이 숨을 죽이며 물었다.그 순간, 어둠 속에서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려왔다.누군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둘은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인 채, 벽에 몸을 바짝 붙여 섰다.다행히도 어둠이 그들의 몸을 감추었고, 다가오던 자는 그들을 발견치 못한 채 멀어져갔다.발소리가 사라지자, 완부옥은 서왕의 귀가에 바싹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벽을 더듬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출구가 보일 겁니다.”서왕이 대답하였다.“네가 앞장서거라. 나는 네 옷자락을 붙잡으마.”“……”‘참, 한 손가락도 까딱 안 하려 드는군.’예전 소환과 함께 위기에 빠졌을 때는 달랐다.그저 조금 투정만 부리면, 소환은 그녀를 안고서 척척 길을 찾아주곤 했다.‘하… 또 소환이 그리운 하루네.’완부옥은 ‘짐짝’ 하나를 등에 지고서 벽을 더듬으며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한 걸음마다 온몸이 긴장되었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적들의 기척에 늘 귀를 곤두세워야 했다.지나치게 어두운 환경에 눈이 점점 아파왔고, 이윽고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걸음을 멈췄다.서왕은 그녀가 지친 줄 알고 말했다.“내가 앞장서마. 넌 내 옷자락을 붙잡거라.”완부옥은 비웃듯 말했다.“이제야 남자였던 게 기억난 겁니까?”“……”그녀의 말은 확실히 가시가 있었다.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모든 위기는 결국 그녀가 그를 구하려다 엮인 결과였다.명색만 아내인 그녀가 이토록 의리를 지닌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그리하여 둘은 번갈아가며 벽을 더듬었고,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게 돌고 돌다가 결국, 처음 그 시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