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칼리안은 그 문서를 품속 깊이 갈무리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체계적인 조직이야." 세드릭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종이들을 마저 살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단순히 이 창고 하나로 끝나는 조직이 아닐 겁니다." "그럼 여기 말고도, 다른 거점이 더 있다는 소리군."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이곳은, 아마 여러 거점 중 하나에 불과할 겁니다." 칼리안은 낮게 숨을 골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뿌리가 깊은 자들이었어.' "일단, 이 문서를 가지고 돌아간다. 아르멜이라면, 이 문자를 해석할 방법을 찾을지도 몰라." 세드릭이 고개를 숙이며, 남은 병사들에게 철수 신호를 보냈다. *<어머니의 마지막 기록을 붙잡고도 끝내 진실을 알 수 없었던 엘로라. 칼리안에게 붙잡힌 채 두려움에 떨던 엘로라. 그리고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은 엘로라. 거울 속 인물들은 모두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조금씩 달랐다. 어떤 것은 원망으로 젖어 있었고, 어떤 것은 공포에 흔들렸으며, 어떤 것은 이미 그녀의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차갑게 빛났다. 그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어떤 네가 진짜지?” 목소리는 거울 안쪽에서 울린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귓가에서 속삭인 것처럼 가까웠다. 엘로라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침묵하자, 다른 거울 속의 자신이 비웃듯 웃었다. “사랑받고 싶은 아이?”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무리 애써도 돌아보지 않던 아버지의 뒷모습. 칭찬 대신 침묵만 남기던 궁전. 자신이 부족해서 버림받았다고 믿으며, 작은 실수 하나에도 사랑을 잃을까 숨죽이던 날들. 거울 속 어린 엘로라의 입술이
“그러다 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 난 더는 견딜 수 없을 거야.” “그럴 리가 있겠어요.” 엘로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진심이야, 엘로라.” “저도 알아요. 저도 진심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냥 제가 선택한 결과를 제가 감당하게 해 달라는 말이에요. 제가 부르기 전까지는 오지 마세요.” 칼리안의 손이 내려갔다. 그는 중앙 원의 남쪽 바깥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 그는 석문 앞에 선 채, 중앙 원과 우회선 사이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엘로라는 왕좌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제가 선택한 건 왕좌가 아니에요. 제가 선택할 권리예요.” 왕좌의 등받이에는 헬레나의 문장과 낯선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수호자들의 목소리가 지하를 울렸다. “계승자를 왕좌 앞에 세워라.” 검은 사슬이 다시 엘로라를 휘감았다.
“이건 제 기억이 아니야.” “계승자의 피에 남은 기억이다.” 수호자들의 갑주에서 나온 붉은 빛이 바깥 원을 따라 이동해 사슬로 흘러들었다. 빛이 들어올 때마다 사슬이 강해졌다. 엘로라는 그 작동 원리를 알아차렸다. “수호자들의 힘이 바깥 원을 따라 사슬을 강화하고 있어요. 바깥 연결을 끊지 않으면 제가 계속 묶입니다.” 세드릭이 외쳤다. “칼리안, 왼쪽 두 번째 선! 지금 끊어!” 칼리안은 수호자의 공격을 피하며 왼쪽 두 번째 선을 베었다. 선은 중앙 원의 서쪽 가장자리에서 바깥 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선이 끊기자 사슬 하나가 느슨해졌다. 엘로라는 그 틈에 손목 문양을 사슬에 눌렀다. 문양의 빛이 사슬을 따라 퍼지며, 사슬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방향을 멈췄다. “문양은 왕좌의 명령을 없애는 게 아니야. 명령의 방향을 바꿀 수 있어.” 세드릭이 대답했다. “그렇다. 네가 거부만 하면 왕좌는 그 거부를 반항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네 의지를 함께 새기면, 왕좌는 그 말을 새로운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엘로라는 눈을 감았다. “저는 왕좌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사슬이 한 번 더 조여 들었다.
엘로라는 달려가는 대신 바닥을 확인했다. 칼리안이 쓰러진 순간, 중앙 원의 남쪽 가장자리에서 그의 발밑으로 새로운 선이 뻗고 있었다. 그 선은 칼리안을 바깥 원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듯, 그의 발밑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졌다. “당신이 움직이면 선이 당신을 중심으로 다시 연결돼요!” 칼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어떻게 하지?” “제가 길을 만들 테니, 당신은 그 길을 지켜요. 수호자를 공격하지 말고 연결선만 막아 주세요.” 엘로라가 손을 내밀었다. 칼리안은 중앙 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원의 경계 너머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좋아. 네가 정한 방식대로 하자.” 엘로라의 손목 문양에서 뻗은 빛이 수호자의 가슴까지 이어졌다. 수호자는 그 빛을 따라 움직이려 했다.허나 칼리안의 검이 수호자의 몸이 아니라 가슴 문양에서 바닥으로 이어지는 연결선을 가로막았다.지이잉- 검과 문양이 부딪히자 지하 전체에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수호자의 몸은 멀쩡했지만, 바닥의 선이 끊기면서 수호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세드릭이 외쳤다. “기억해라! 수호자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수호자와 원을 연결하는 선을 끊어야 한다!”세드릭이 지팡이를 내리치자 회색 장벽이 중앙 원의 서쪽과 북쪽 사이에 솟아 수호자들의 발을 문양에서 떼어 놓았다. “장벽이 유지되는 동안 수호자는 새 연
“왜요?” “고리 안에 들어가면 왕좌가 너희를 의식의 재료로 사용한다. 지금부터는 선을 밟거나 끊는 행동 하나하나가 결과를 만든다.” 칼리안이 검을 뽑았다. 그는 엘로라의 앞이 아니라 중앙 원의 오른쪽 바깥에 섰다. 세드릭은 왼쪽 석문과 중앙 원 사이의 좁은 통로를 막았다. “누가 오는 거지?” 검은 망토의 남자가 창백해졌다. “왕좌를 지키는 자들입니다.” “아닙니다.”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왕좌를 지키기 위해 계승자를 죽이는 자들입니다.”이윽고 통로 안쪽의 소리가 멎었다. 잠시 뒤 엘로라의 뒤편, 중앙 원의 북쪽 바닥에 붉은 문양이 번졌다. 문양은 검은 망토의 남자들의 그림자를 바닥에 못 박았다. 한 남자의 그림자에서 검은 손이 솟아나 그의 목을 꺾었다. “대열을 유지해!” 남자들은 엘로라를 중심으로 원형 진형을 만들었다. 그들은 중앙 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원의 바깥 둘레를 따라 반원 형태로 섰다. 칼리안은 엘로라의 앞쪽, 중앙 원의 남쪽에 섰고, 세드릭은 왼쪽 석문과 원 사이에 섰다. 그러나 수호자들은 통로가 아니라 바닥의 틈에서 솟아났다. 첫 번째
엘로라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굳었다. “계승자는 왕좌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건 누가 정했죠? 왕좌인가요, 당신들인가요?”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엘로라는 손목의 문양을 들어 보였다. 문양은 피부 아래에서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당신들에게 저는 혈통이고, 왕좌이며, 반란을 정당화할 명분이죠. 하지만 저는 아직 누구의 여왕도 아니에요. 제가 왕좌를 원하는지, 당신들의 전쟁에 이름을 빌려주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물었나요?” 그러자 침묵이 내려앉았다. 엘로라는 바닥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반란군의 발밑에서 중앙 원의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붉은 선을 향했다. “지금 저 선들은 당신들의 맹세를 중앙 원으로 보내고 있어요. 제가 왕좌를 거부하면, 그 연결도 끊깁니까?” 세드릭이 대답했다. “네가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면 선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왕좌가 그 거부를 계승 시험으로 받아들이면, 수호자들이 나타날 거야.” “그럼 제가 선택하면 수호자들이 오는 거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 엘로라는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저 때문에 황제가 황좌를 버리는 것도, 아버지가 평생 숨어 사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왕좌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그 결과를 감당할지 모두 제가 정할 거예요.” 칼리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