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세라피나는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로젠하임 저택에도, 서쪽 별채에도.세드릭이 성문을 모두 걸어 잠갔지만 빠져나간 흔적은 없었다."서문, 북문, 강 쪽 수문까지 확인했습니다."자정이 넘어 돌아온 세드릭의 망토 끝에서 빗물이 떨어졌다."나간 사람은 야채 수레 하나뿐입니다. 수레 밑까지 봤습니다. 양배추밖에 없었습니다.""그럼.""아직 수도 안입니다. 어딘가에."세드릭은 그 말을 하고도 물러가지 않았다.젖은 장갑을 벗어 쥔 채, 그는 한동안 문가에 서서 바닥만 내려다보았다.밤이 깊었다.창밖으로 수도의 지붕들이 달빛 아래 비늘처럼 겹겹이 이어졌다.그 많은 지붕 가운데 하나 밑에 동생이 있었다.찾은 지 이레 만에 다시 잃어버린.엘로라는 창가에 선 채 은 깃털을 쥐고 있었다.쥔 손바닥에 깃털 모양으로 자국이 패었다.로웰이 내려놓고 간 찻잔에서 김이 오르다 말았다.구석 의자에서는 마르타가 지팡이를 끌어안고 울었다.소리 없이, 어깨만 들썩이며."앉아."칼리안이 의자를 끌어다 그녀 뒤에 놓았다.엘로라는 앉지 않았다."내가 데려갔어요.""엘로라.""계단 위에 두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니, 아예 데려가지를 말았어야…….""네 잘못 아니야."잘라 말하는 목소리였다.그런데 그 끝이 아주 조금 늦게 닫혔다.그도 같은 계단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는 걸, 엘로라는 알았다."다 들었잖아요. 저를 쏘라고 키워졌다는 거.""그래."
지하 감옥 가장 깊은 칸은 늘 젖어 있었다.레이너드가 피로 글을 남겼던 벽은 하얗게 회칠이 되었지만, 곰팡이 핀 돌 냄새는 회칠 아래서도 배어 나왔다.천장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다.횃불은 습기를 먹어 자꾸 꺼질 듯 낮아졌다가, 기름 타는 소리를 내며 다시 일어섰다.베네딕트는 구석 짚더미에 앉아 있었다.흰 사제복이 진흙에 절어 쥐색이 되어 있었다.곁에 놓인 빵 한 덩이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말라 갔다.독이 무서워서인지 자존심 때문인지, 그는 감옥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칼리안이 철창 앞에 섰다.엘로라가 그 옆에.세라피나는 계단 위에 남겨 두었다.엘로라가 그렇게 부탁했다.적어도 오늘은 이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았으면 해서."알고 있었지."베네딕트가 고개를 들었다.놀랍게도 그 얼굴에 웃음이 걸려 있었다."무엇을 말씀이십니까, 폐하."습한 지하에서도 목소리가 맑았다.제단 앞에서 기도문을 읽던 그 목소리 그대로.엘로라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고아원 문 앞의 애가 누군지.""아, 그것."노인이 짚을 털며 등을 폈다."물론이지요. 헬레네의 고해를 받은 게 저였으니까요. 흑발, 파란 눈, 세라. 다섯 해를 찾아다녔습니다.""계속해.""그런데 어느 겨울 아침, 그 애가 제 고아원 문 앞에 놓여 있더군요. 신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그래서 키웠고.""정성껏 키웠지요. 그리고 로젠하임에 양녀로 보냈습니다. 마녀를 누구보다 증오할 가문에, 마녀의 피를."칼리안의 주먹이 철창을 갈겼
세라피나는 제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평생 한 번도 빛난 적 없던 깃털이 거기서 은빛을 내고 있었다.그녀가 두 손으로 그것을 감쌌다.손등의 힘줄이 파르르 섰다."……언니?"묻는 건지 부르는 건지 모를 소리였다.엘로라는 대답 대신 그녀를 끌어안았다.옆구리 붕대를 피해, 팔을 조심스레 둘러서.세라피나는 나무토막처럼 서 있었다.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안겨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몸이었다.엘로라는 그 굳은 어깨에 뺨을 대고 기다렸다.한참 만에, 세라피나의 손이 엘로라의 등 위로 올라왔다.허공에서 한 번 멈칫했다.그러고는 드레스 천을 꽉, 구겨 쥐었다.*서쪽 별채의 창가로 아침 햇볕이 비스듬히 들었다.세라피나는 그 볕 속에 앉아 엄마의 고해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마지막 줄의 두 글자 위에서 손가락이 오래 머물렀다."피나는 고아원 수녀님들이 붙였어요. 세라만으론 짧다고. 성녀 피나에서 따서요.""예쁜 이름이에요.""언니는요?""나?""엘로라는 누가 지었어요?""선황 폐하가요. 에인젤 마마의 죽은 딸 이름이래요."세라피나가 고개를 돌렸다."그럼 진짜 이름은요.""리아요. 아빠가 배 속의 나를 그렇게 불렀대요.""엄마는요?""……엄마는 한 번도 못 불러 봤겠죠."세라피나가 고해 마지막 줄을 다시 내려다보았다.둘째의 이름은, 세라였습니다."그럼 저는 엄마가 지어 준 이름이네요."'
열린 문으로 밤바람이 밀려들었다.제단 앞 성수 대야에 잔물결이 일었고, 그 위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흩어졌다.흑장미 사병들이 대사제를 끌고 나가는 쇠사슬 소리가 천장에서 몇 번이고 되울렸다.엘로라에게는 그 모든 소리가 물 밖에서 들리는 것처럼 뭉개져 있었다.세라피나는 문턱에서 멈췄다.세드릭의 팔에 기댄 채.붕대 위로 피가 손톱만큼 배어 나와 있었다."사제관에서 눈 뜨자마자 여기 오겠다고 했습니다."세드릭이 짧게 보고했다."말렸습니다. 안 들었습니다. 상처보다 고집이 깊습니다."세라피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그녀의 눈이 제단 계단에 앉은 엘로라에게 닿았다.그 손에 들린 양피지에, 그리고 젖은 얼굴에.엘로라는 울고 있었다.소리도 내지 않고.세라피나는 그 얼굴 앞에서 저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누군가 자신을 보며 우는 걸 처음 보았다.고아원 수녀들도, 양부도, 대사제도 그녀를 보며 울어 준 적은 없었다."……황후 폐하?"엘로라는 대답하지 못하고 일어섰다.무릎이 휘청했다.칼리안이 팔꿈치를 받쳤다.그녀는 그 손을 붙든 채 문 쪽으로 걸었다.제단에서 문까지 스무 걸음.몇 걸음 만에 발이 엉켰다.치맛자락을 밟았고, 대리석 틈에 굽이 걸렸다.칼리안은 그때마다 말없이 그녀를 끌어올려 세웠다.재촉하지도, 멈추게 하지도 않았다.그의 손바닥이 닿은 팔꿈치만 이상할 만큼 뜨거웠다.나머지 몸은 전부 얼음물에 담근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세라피나 앞에 섰다.가까이서 보니 그녀가 엘로라보다
'신부님.저는 내일 탑니다.그러니 신께 한 가지만 고해하겠습니다.이건 제 남편도 모르는 일입니다.'엘로라는 그 줄에서 눈을 떼고 칼리안을 보았다.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둘 다 아무 말 없이 다음 줄로 시선을 옮겼다.바람 한 점 없는데 촛불들이 일제히 기울었다.제단 아래서 세드릭에게 짓눌린 대사제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그 소리가 다른 방에서 나는 것처럼 멀었다.'열흘 전, 저는 아이를 낳았습니다.그레이스 성이 아니라 수도의 은신처에서.남편이 저를 빼돌릴 날을 기다리며 숨어 있던 곳에서.산파는 마르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열흘 전.엘로라는 그 글자를 손끝으로 짚었다.자신이 태어난 날이었다.마르타가 그해 받아 낸 아이들 가운데 마지막이었다는 날.엄마가 그녀를 낳았고, 선황이 데려가 에인젤의 죽은 딸 자리에 넣었고, 엄마는 탔다.그녀가 아는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양피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신부님, 저는 아이 둘을 낳았습니다.'그 한 줄만 유난히 컸다.펜촉이 종이를 찢을 듯 눌러 쓴 글씨였다.잉크가 획마다 뭉쳐 있었다.이 한 줄을 쓰기 전에 엄마가 얼마나 오래 펜을 쥐고 있었는지, 그 뭉친 잉크가 말해 주었다.양피지가 손에서 미끄러졌다.칼리안이 모서리를 붙잡았다.그의 손가락도 떨리고 있었다.이십 년 묵은 종이 한 장을 두 사람이 함께 붙든 채였다.'쌍둥이였습니다.로이센의 피는 쌍둥이를 낳습니다. 제 어머니처럼, 저처럼.첫째는 은발이었습니다. 저를 닮은.둘째는 흑발이었습니다. 남편을 닮은.'흑발.
자정의 대성당은 텅 비어 있었다.아치 천장 아래 촛불 수백 개가 흔들렸고, 그 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바닥에 붉고 푸른 얼룩을 흩뿌렸다.밀랍과 오래된 향 냄새가 돌기둥마다 배어 있었다.성가도 기도도 없었다.저 끝 제단 앞에서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엘로라는 혼자 걸어 들어갔다.혼자처럼 보이게.칼리안은 그녀 바로 뒤, 기둥 그림자 속에 있었다.세드릭은 제단 옆 고해실 안에.흑장미 사병들은 대성당의 모든 문밖에.초저녁에 세드릭이 대성당 도면을 펼쳐 놓고 짚어 준 자리들이었다."기둥 그림자가 제일 깊은 데가 여깁니다. 촛불이 안 닿습니다.""고해실은.""제가 들어갑니다. 좁은 데는 익숙합니다. 군대 막사보다는 넓을 테니까요."그 건조한 농담에 엘로라는 그때 처음으로 웃었다.이십 년을 이 성당에서 산 대사제도 기둥 그림자 깊이까지 재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그녀는 반푼이처럼 순하게,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들어왔다.베네딕트가 제단 앞에 서 있었다.한 손에 은빛 성유물함.옆에는 성수를 담은 은 대야.제단 위에는 정화 의식에 쓰는 단검 한 자루."오셨군요, 황후 폐하. 혼자서.""네.""현명하십니다. 어미보다는.""엄마가 어리석었다는 말씀이세요?""고집이 셌지요.""그건 닮았나 봐요."제단 세 걸음 앞에서 엘로라는 멈췄다.발밑 대리석의 냉기가 신발 바닥을 뚫고 올라왔다.스테인드글라스의 붉은 빛이 흰 드레스 위에 핏자국처럼 번져 있었다."그게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