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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쓰러진 엘로라

Autor: 비밀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8-25 17:00:00

푸른 빛의 폭풍이 잦아들고, 북부의 설원에는 비정상적일 정도의 고요가 찾아왔다.

대지를 뒤흔들던 마수들의 비명도, 귀를 찢을 듯 몰아치던 눈보라도 일순간에 박제가 된 듯 멈추어 섰다.

어머니 헬레네의 유산이자 대마법사의 권능을 온전히 쏟아부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엘로라?”

칼리안의 목소리가 갈라진 틈새로 비집고 나왔다.

그의 품 안으로 쓰러진 엘로라의 몸은 마치 갓 태어난 새끼 새처럼 가냘프고 위태로웠다.

조금 전까지 찬란한 푸른 빛을 내뿜던 그녀의 눈동자는 감겨 있었고, 핏기 하나 없는 입술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엘로라! 정신 차려! 눈을 뜨란 말이다!”

칼리안이 그녀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으며 울부짖었다.

제국을 공포로 몰아넣던 폭군의 위엄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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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135. 은밀한 작당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대전 안에서는 여전히 대신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허허, 축하드립니다!” “참으로 경탄할 만 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엘로라는 그 인사들 속에서,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좋은 일인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던 칼리안이, 다시 그녀의 곁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괜찮아, 엘로라?" "네, 그냥… 갑자기 조금 불안해서요." 칼리안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으며, 낮게 속삭였다. "오늘 밤은, 경비를 평소보다 배로 늘릴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엘로라는 그 말에 옅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 궁정을 빠져나간 마차는, 이미 도심 외곽의 낡은 건물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시종은 마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피며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방 안,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레이스의 핏줄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야. 그보다, 저쪽의 경계가 어느 정도로 강화됐지." "세드릭이라는 자가, 오늘 저를 미행한 것 같습니다. 얼굴을 정확히 보진 못했을 겁니다." 그림자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다만,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얘기지. 그보다, 완성 의식의 날짜는."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134. 엘로라의 문양

    엘로라는 천천히 소매를 걷어, 손목의 흔적을 대신들 앞에 드러냈다. 옅은 은빛 문양이, 그녀의 피부 위로 은은하게 떠올라 있었다. 대전 안이, 순간 완전히 조용해졌다. "저건, 정말 그레이스 가문의 문양이." "틀림없어. 옛 기록에서 본 것과 똑같아." 여기저기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태후의 얼굴에서, 여유롭던 미소가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 문양 하나로, 모든 걸 인정하라는 겁니까." "인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엘로라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제가 그레이스의 핏줄이라는 게 두려워, 계속 숨겨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숨지 않겠습니다." 태후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결국 낮게 부채를 접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지요. 하지만 이걸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진 마십시오." "저 역시, 그럴 생각 없습니다." 태후가 몸을 돌려 대전을 빠져나가자, 남은 대신들 사이에서 안도와 긴장이 뒤섞인 공기가 흘렀다. 칼리안이 다시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이제부터 그레이스 대공가의 정식 후계자로서 대우받을 것이다. 이에 이의가 있는 자는, 지금 말하라."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133. 태후의 미소

    그 말에 엘로라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이런 순간에, 그런 말이 나와요?" "이런 순간이니까, 더 말해두고 싶은 거야." 그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으며, 낮게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네 옆에 있을게." 엘로라는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더는 두렵지 않아요." 아르멜이 마차 앞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가, 낮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먼저 궁정에 도착해, 대신들의 분위기를 살펴두었습니다." "어때 보이던가." "반응이 반으로 갈립니다. 그레이스 대공가의 부활을 반기는 쪽과, 태후마마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쪽으로요." 칼리안이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대로군.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겠지." 엘로라는 마차에 오르기 직전, 저택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로웰이 현관 앞에 서서, 조용히 그녀를 배웅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여느 때보다 복잡해 보였지만, 엘로라는 애써 그 생각을 접어두었다. '지금은, 앞만 보고 가야 할 때야.' 두 사람은 나란히 마차에 올랐고, 마차는 곧 무겁게 궁정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퀴 구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고 선명하게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 궁정 대전, 대신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운 가운데,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칼리안이 단상 위에 올라서자,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오늘, 짐은 중대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132. 수상한 유모와 이상한 칼리안

    "…그럴 리 없을 거예요." 엘로라는 그 대답이,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급하게 느껴졌다. "유모, 왜 그렇게 서둘러 대답해요?" "…제가요? 그냥, 아가씨를 조금이라도 안심시켜드리고 싶어서 그랬어요." 엘로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의 찜찜함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요즘 들어, 유모가 뭔가 자꾸 숨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녀는 그 생각을 애써 지우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날 저녁, 세드릭은 은밀히 저택 내부 인원들의 최근 동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종, 요리사, 경비병까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살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이 시종, 최근 들어 외출이 부쩍 잦아졌군.' 세드릭은 그 이름을 조용히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뭔가 걸리는 구석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 같은 시각, 칼리안은 홀로 서재에 앉아 그동안 모은 자료들을 다시 훑고 있었다. 만사회, 완성 의식, 헬레네의 편지, 그리고 카심의 증언까지. 조각들은 늘어났지만, 여전히 전체 그림은 흐릿했다. '이 모든 걸 지휘하는 자가, 대체 누구지.' 그는 낮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결심한 듯 중얼거렸다. "…공표는, 예정대로 진행한다.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131. 갑자기 나타난 에녹

    “그 입 닥치지 그래.” 칼리안이 그렇게 말하면서 사내를 발로 찼다. 어찌나 고통이 심했는지 사내는 피를 토했다. 그렇게 전투가 완전히 끝난 뒤, 저택은 다시 무거운 정적에 휩싸였다. 세드릭이 병력을 지휘해 부상자를 살피는 동안, 칼리안은 에녹과 함께 응접실로 향했다. "이제, 설명해봐." 에녹은 소파에 앉으며,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방금 잡은 그자, 만사회 소속입니다. 확실합니다." "만사회라는 이름을, 직접 말한 건 처음이군." "이제는, 굳이 숨길 이유가 없어서요. 상황이, 그만큼 급하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칼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뭐가 그렇게 급한데." "엘로라 님의 존재가, 이미 저들 윗선까지 확실히 보고된 모양입니다. 오늘 습격도, 그 확인 절차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확인 절차라니." "그레이스의 힘이, 정말로 저 아이 안에 있는지. 오늘 그걸 확인했으니, 다음번엔 훨씬 더 크게 움직일 겁니다." 칼리안은 낮게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에녹이 옅게 웃으며, 낮게 대답했다. "일단, 잡은 그자부터 심문해보시죠.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칼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낮게 말했다.

  •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130. 공격받은 칼리안

    칼리안이 검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냈지만, 뒤이어 날아든 두 번째 공격까지는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날카로운 통증이 어깨를 스쳤다. "폐하!" 엘로라의 비명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칼리안은 고통을 억누르며 그녀를 더욱 단단히 등 뒤로 감쌌다. "괜찮아. 이 정도로는 안 쓰러져." 사내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고집이 대단하시네요. 하지만 그 고집도,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다시 검을 치켜드는 순간,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세드릭이 뛰어들었다. "괜찮으십니까, 폐하!" 세드릭은 곧장 사내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사내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그 공격을 피했다. 지금 이렇게 버티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엘로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그것은 칼리안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공격쯤이야.” 허나 칼리안은 허풍을 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엘로라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와중에도 적들은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정원 담장 위,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조용히 내려서며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방 안까지 파고들었다. "…거기까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칼리안과 세드릭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나타난 자는 에녹이었다. 사내의 표정이 순간 눈에 띄게 굳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글쎄. 마침 근처를 지나다가 시끄러운 소리가 나길래." 에녹이 여유롭게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쪽이야말로,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묻고 싶은데." 사내의 눈빛이 순식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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