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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 사거리 전투

Author: 최코리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30 16:34:23

004

사내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을 때, 공기는 이미 비릿한 약의 잔향으로 진득해져 있었다. 살점이 터져 나가며 돋아난 검푸른 털과 거대한 골격. 5미터에 육박하는 괴수 곰이 사거리 한복판에 우뚝 섰다.

“쿠어어어엉—!”

단순한 포효가 아니었다. 물리적인 충격파가 대기를 찢었다. 근처 승용차들의 유리창이 일제히 비명 지르듯 박살 났고, 고막을 찌르는 진동에 현수와 준우는 본능적으로 귀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평화롭던 도심의 정오가 단숨에 지옥으로 변했다.

아비규환은 순식간이었다. 유턴을 시도하던 차들이 엉겨 붙어 경적을 울려댔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운전석을 버리고 아스팔트 위로 쏟아져 나왔다. 인도 위를 걷던 이들 역시 구두 굽이 부러지는 것조차 모른 채 필사적으로 반대편을 향해 달렸다.

준우가 현수의 팔을 거칠게 낚아챘다.

[파앗!]

짧은 점멸과 함께 거리감을 벌린 준우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지원 좀 불러주세요. 저 혼자 감당할 사이즈가 아닙니다.”

대답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준우는 곧장 괴물을 향했다. 놈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아스팔트가 크래커처럼 부서져 나갔다. 준우는 품에서 익숙한 M66을 뽑아 들었다. 총구가 놈의 거대한 머리통을 정조준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여섯 발의 총성이 연달아 고막을 때렸다. 탄환은 정확히 미간과 안구 주변에 박혔다. 하지만 경악스러운 광경이 이어졌다. 찢겨 나간 살점이 꿈틀거리더니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새살이 돋아 탄환을 밀어냈다.

‘제길, 주사 두 개 분량은 역시 말이 안 되네.’

속울음을 삼키는 찰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준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낚아챘다.

“지금 네 바로 근처에 괴물이 나타났….”

“상대 중이니까 지원이나 빨리 보내요!”

팀장의 당황한 기색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늘 여유롭던 목소리가 멍청하게 “어? 어, 그래.”라고 답하곤 끊겼다. 준우는 핸드폰을 대충 쑤셔 넣었다. 놈이 이미 준우를 명확한 타깃으로 고정한 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우는 이동 속도를 늦추기 위해 놈의 무릎 관절에 남은 탄환을 박아 넣었다.

[꿍!]

거구가 휘청이며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놈은 반동을 이용해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앞발을 휘둘렀다.

[후웅—!]

공기를 가르는 소름 끼치는 파공음. 간발의 차로 몸을 날려 피했지만, 발톱 끝에서 파생된 충격파만으로도 준우는 종잇장처럼 뒤로 밀려났다.

‘이게 무슨 괴력이야?’

[꿍!]

다시 한번 내려찍는 공격. 준우는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놈의 앞발을 딛고 도약해 거대한 목덜미에 다리를 감고 매달렸다. 

‘두 방 분량을 대체 얼마나 쏟아부어야 정화되는 거야?’

[기이이잉—]

준우의 손바닥에서 푸른 빛의 정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괴물은 비명을 지르며 뒷발로 서서 날뛰었다. 놈은 제 목에 붙은 불청객을 떼어내려 낫 같은 발톱으로 제 등을 긁어내렸다. 아니, 긁는 것이 아니라 파헤쳤다.

[서걱—!]

날카로운 발톱이 준우의 정강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살이 찢기고 뼈가 드러나는 감각.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극통에 준우의 눈앞이 번쩍였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이현승 때에 비하면… 이건 애들 장난이지.’

악착같이 매달려 에너지를 주입하던 순간, 괴물의 움직임이 변했다. 놈은 도구가 아닌 악력으로 준우를 끝장낼 생각이었다.

[으드드득— 퍼억!]

갈비뼈를 통째로 으스러뜨릴 듯한 손길이 준우를 잡아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준우가 폐부에 고인 피를 울컥 쏟아내기도 전, 놈의 거대한 발바닥이 그의 안면과 흉부를 그대로 짓눌렀다. ‘으지직’ 하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주머니 속 핸드폰도 가루가 되었다.

저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현수가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질렀다. 놈의 포식자적인 시선이 새로운 먹잇감, 현수에게 꽂혔다. 겁에 질려 도망치던 현수가 넘어진 순간, 괴물의 앞발이 태산처럼 위에서 쏟아졌다.

[파앗!]

너덜너덜해진 준우가 마지막 정신력을 짜내 현수를 안고 점멸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꾸웅—!]

방금 전까지 현수가 있던 자리에는 원래 크기의 네 배는 족히 넘는 깊은 구멍이 팼다. 준우는 덜렁거리는 팔을 고정하며 현수에게 물었다.

“경찰은요?”

“계속 보낸다는 말만 반복하고…!”

“씨발, 능력자는요?”

“모르겠어요! 그 인간들 대답이 없어요!”

준우는 현수를 뒤로 밀쳤다. 

“최대한 멀리 가세요. 여기 있으면 죽습니다.”

다시 마주한 괴물의 몸엔 정화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재생 속도가 그 잠식력을 압도하고 있었다. 놈의 여섯 개 발톱이 달린 앞발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관리청도, 경찰도 오지 않는다면 결국 여기서 혼자 죽거나 죽여야 한다. 준우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공포인지, 아니면 한계에 다다른 육체의 경련인지 알 수 없었다.

[투캉—!]

날카로운 금속음이 정적을 깼다. 괴물의 거대한 머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타격에 왼쪽으로 거칠게 꺾였다. 준우의 시선이 소리 난 곳을 향했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대신, 귀에 꽂힌 인이어에서 서늘한 저음의 여성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와, 헤드샷 한 번에 안 가네. 괴물이긴 한가 봐요.”

“누구…?”

“아, 채널 연결됐네. 관리청 지원입니다.”

대답과 동시에 거구의 사내가 준우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는 3미터는 족히 넘는 육중한 대방패가 들려 있었다.

“비켜요!”

남자의 고함과 함께 방패가 불도저처럼 전진했다. 괴물을 사거리 중앙으로 밀어붙이는 압도적인 위압감. 

[후웅! 터엉—!]

괴물의 반격이 방패 표면에 닿아 무력하게 튕겨 나갔다. 그 견고한 벽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명랑하게 울렸다.

“잠시 지나갈게요~!”

단발머리의 여자가 바람처럼 준우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양손에 들린 SMG가 불을 뿜었다.

[투캉! 드르르르르—!]

머리엔 저격이 박히고, 정면은 방패가 막아서며, 사방에선 기관단총의 탄환이 쏟아졌다. 괴물은 난생처음 겪는 조직적인 공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웅크렸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놈이 몸을 크게 부풀리며 마지막 포효를 내질렀다.

“쿠어어어어!!!”

충격파에 방패 사내와 단발머리 여자가 뒤로 밀려나 착지했다. 인이어 너머의 저격수가 급박하게 외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놈을 묶어두는 것뿐이에요! 정화는 당신 몫이야, 빨리!”

준우는 이빨을 악물고 땅을 박찼다. 쏟아지는 엄호 사격 속에서 그는 놈의 어깨 위로 점멸했다. 아까와는 달랐다. 놈이 준우를 떼어내려 할 때마다 탄환과 방패가 놈의 관절을 짓눌렀다.

[기이이잉—]

“큭! 크워어어!”

정화 에너지가 놈의 핵을 직접 타격하기 시작했다. 괴물은 고통에 미쳐 날뛰며 제 뒷머리 쪽으로 앞발을 휘둘렀다. 

[그윽— 으드득!]

준우의 등 근육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지켜보던 지원팀조차 인상을 찌푸릴 정도의 처참한 광경이었지만, 준우는 비명 대신 피 섞인 웃음을 흘리며 손바닥을 더욱 깊숙이 박아 넣었다.

검푸른 육체가 눈에 띄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팽창했던 생명력이 정화의 빛에 녹아내리며 놈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소멸했다. 

먼지가 가라앉고, 거구의 남자와 단발머리 여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준우에게 다가왔다.

“이봐요, 괜찮아요?”

준우는 답할 수 없었다. 그의 눈과 코, 입과 귀에서 검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졌다. 한계를 넘어선 과부하. 준우의 몸은 실 끊긴 인형처럼 아스팔트 위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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