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둠 속에서 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삐—
규칙적인 기계음.
그 다음에야 감각이 돌아왔다.
차가운 공기.
윤서아는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한 천장.
“…여기…”
입을 열었지만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때였다.
“환자분! 눈 뜨셨어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발걸음 소리가 이어졌고, 곧 의사가 따라 들어왔다.
서아의 시야에 여러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의식 돌아왔습니다. 동공 반응 확인하세요.”
“네.”
손전등 불빛이 눈을 스쳤다.
서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물…”
겨우 나온 한마디였다.
간호사가 급히 물을 적신 거즈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조금만 참으세요. 아직 많이 드시면 안 돼요.”
입술이 젖자 그제야 현실감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병원.
살아 있다.
그 사실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의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 기억하십니까?”
짧은 침묵.
서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름.
자신의 이름.
…윤서아.
분명 알고 있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의사의 표정이 굳었다.
“기억상실 가능성 있습니다.”
그 말이 병실 안 공기를 바꿨다.
기억상실.
그 단어가 머릿속에 맴도는 순간—
번쩍.
어딘가가 찢어지는 느낌과 함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비.
다리.
차 문이 열리던 소리.
그리고—
윤지연.
“언니.”
차가운 목소리.
“이제 좀 사라져 줘야겠어.”
서아의 손이 갑자기 움켜쥐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의사가 놀라 물었다.
하지만 서아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강태준.
자신의 남편.
그가 했던 말.
“이번엔… 나도 널 못 지켜.”
“…아…”
숨이 막혔다.
“환자분!”
기계음이 빨라졌다.
삐— 삐— 삐—
서아는 눈을 크게 떴다.
“…지연…”
“네?”
“윤지연…”
의사가 당황한 눈으로 간호사를 바라봤다.
“누구죠?”
서아의 입술이 떨렸다.
“…나를 죽이려던 여자요.”
정적.
병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제 동생이에요.”
의사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상태에서 그런 판단은—”
“아니요.”서아의 목소리가 낮게, 그러나 또렷하게 끊어졌다.
“확실해요.”
짧은 침묵.
그녀의 손이 천천히 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멈췄다.
평평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이…”
의사가 시선을 피했다.
그 반응 하나로 충분했다.
서아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그런데도—
자신은 살아 있다.
왜?
그 질문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감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슬픔이 아니라—
차가운 무언가로.
서아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눈빛은 더 이상 병실에서 깨어난 환자의 것이 아니었다.
“좋네.”
의사가 되물었다.
“네?”
서아가 아주 작게 웃었다.
“살려놨으면…”
짧은 침묵.
“…이유가 있겠죠.”
“누가요?”
서아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이든.”
잠깐 멈췄다.
그리고—
“…아니면.”
그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식었다.
“악마든.”
정적.
그 순간, 병실 문 밖에서 누군가가 서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정장.
낯선 남자.
그의 시선이 서아에게 꽂혀 있었다.
“…드디어 깨어났네.”
아주 낮은 목소리.
“윤서아.”
그리고 그는 조용히 돌아섰다.
“이제 시작이다.”
First claimant personal access request received.Name: Han Jae-wookCode: Y-01지하 기록보관소 안에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한재욱.법으로 사람들의 입을 막았던 사람. Core-1이었고, 동시에 Y-01이었다. 남의 이름을 봉인하는 문서에 서명해온 사람이, 이제 자기 이름이 봉인된 문 앞에 섰다.스피커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열람하겠습니다.”도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한재욱 이사장님, 확인합니다. 이 기록은 개인 출생과 모계 기록, 초기 법무 구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열람 중 중단할 수 있습니다.”“압니다.”목소리는 차분했다.그러나 서아는 그 안의 떨림을 들었다.도윤이 키를 눌렀다.Y-01 / Personal Access ModeClaimant: Han Jae-wookMother: Han I-seo파일이 열렸다.첫 장에는 오래된 흑백 사진이 있었다.젊은 여자.단정한 머리, 굳은 입술, 그러나 눈빛만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사람.한재욱이 숨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그 한마디는 법률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아이가 처음 사진 속 엄마를 만나는 목소리였다.화면 아래 기록이 이어졌다.Han I-seoStatus: Founder maternal lineClaim: child recognition deniedChild: Han Jae-wookAction: absorbed into collateral Han family한재욱은 한참 말이 없었다.서아는 조용히 기다렸다.이번엔 아무도 설명을 먼저 하지 않았다. 이 기록은 한재욱의 것이었다. 누가 대신 읽어주거나, 대신 의미를 정할 수 없었다.한재욱이 낮게 말했다.“저는 늘 제가 한씨 집안의 빚으로 태성에 들어왔다고 알고 있었습니다.”짧은 숨.“아버지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배웠고, 어머니는 병약해서 저를 맡겼다고 들었습니다.”도윤이 다음 장을 넘겼다.Maternal Petit
Archive Lockdown: 00:02:10경고음이 지하 기록보관소 전체를 울렸다.어두운 코트 차림의 여자는 붉은 관리자 키를 쥔 채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유도현을 향해 있었지만, 사실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당신은 어머니를 만났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나는 열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유도현은 입을 다물었다.그 말 앞에서는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만났다. 유서연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도하라는 이름도 되찾았다.하지만 저 여자는 아니었다.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서아가 조용히 물었다.“이름이 뭐예요.”여자의 눈빛이 흔들렸다.“그게 중요합니까?”“네.”서아는 한 걸음 다가갔다.“당신이 기록을 닫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야 하니까요.”여자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경고음은 계속됐다.00:01:48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문이린.”짧은 침묵.“지금 이름은 문이린입니다.”“진짜 이름은요?”문이린은 낮게 웃었다.“없었습니다.”서아의 눈빛이 흔들렸다.문이린은 손에 쥔 붉은 키를 들어 보였다.“내 파일을 열었을 때, 이름 칸은 비어 있었습니다. 산모 기록도 비어 있었고, 청구 기록도 없었습니다. 입양 기록은 가짜였고, 보호자 기록은 조작이었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갈라졌다.“그러니까 나는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돌아올 엄마도 없고, 지켜준 사람도 없고, 남겨진 이름도 없다는 걸.”도윤이 낮게 말했다.“이린 씨, 그 기록은 강도현 라인과 윤서 재단이 동시에 손댄 기록일 수 있습니다. 요약본만 보고 판단하면—”“봤습니다.”문이린이 날카롭게 끊었다.“요약본도, 원본도, 봉인본도 다 봤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차라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린아…”문이린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언니는 늘 기다리라고 했어요. 언젠가 준비되면 열어보자고. 그런데 열어보니 빈칸이었어요.”짧은 숨.“그 빈칸을
태성의료기록보관소는 병원 본관 뒤편, 오래된 연구동 지하에 있었다.겉으로는 폐쇄된 문서창고였다. 그러나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도윤의 태블릿 신호가 거칠게 흔들렸다.“내부 서버 살아 있습니다. 물리 보안도 켜져 있고요.”태준이 차를 세우며 말했다.“사람도 있겠지.”지연은 창밖을 보았다.불 꺼진 연구동 한쪽, 지하로 내려가는 출입구에 희미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그 앞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흰 가운 위에 회색 점퍼를 걸친 남자. 낯익은 얼굴이었다.도윤이 먼저 알아봤다.“신유찬 씨.”107화에서 제보 파일을 올렸던 사람. 태성의료재단 데이터보관실 직원.그가 바로 Protected Child B였다.신유찬은 서아 일행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오실 줄 알았습니다.”서아는 차에서 내렸다.“당신이 아카이브를 잠그려는 사람이에요?”“네.”그는 부정하지 않았다.유도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왜요.”신유찬의 시선이 유도현에게 향했다.“유도현 씨. 아니면 유도하 씨라고 불러야 합니까.”유도현의 얼굴이 굳었다.“그걸 당신이 정할 일 아닙니다.”신유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그래서 잠그려는 겁니다.”지연이 헛웃음을 쳤다.“말이 되게 좀 해봐요.”신유찬은 연구동 문을 돌아봤다.“저 안에는 이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출생, 산모, 입양, 사망 처리, 정신과 평가, 친자 추정, 양부모 정보, 지금 가족 정보까지 전부 있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낮았다.“한 줄만 잘못 열려도 누군가의 현재가 무너집니다.”서아는 그를 똑바로 봤다.“그래서 전부 닫겠다고요?”“네.”“그럼 강도현이랑 뭐가 달라요.”신유찬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저도 그 질문을 기다렸습니다.”짧은 정적.“저는 열 살 때 제 이름을 알았습니다. 누군가 친절하게 알려줬습니다. 네 엄마는 너를 버린 게 아니라 죽었다고. 네 아버지는 태성 사람이라고.”그는 입술을 깨물었다.“그날부터 저는 지금 부모님을 똑바로 보
“네, 엄마.”유도현의 그 한마디가 폐교 교실 안에 오래 머물렀다.유서연은 아들의 손을 놓지 못했다. 손가락 마디마다 힘이 없었지만, 그 손만큼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유도현도 피하지 않았다.유도현. 유도하.두 이름이 그의 안에서 부딪히는 대신, 처음으로 나란히 앉았다.서아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감았다.이름을 되찾는다는 건 누군가의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름과, 빼앗긴 이름이 서로를 죽이지 않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었다.그때 차라온이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유도현 씨.”유도현은 천천히 그녀를 보았다.차라온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저는 당신과 어머니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선택을 빼앗았습니다.”교실 안은 조용했다.“강도현이 했던 짓을 증오하면서, 저도 같은 방식을 썼습니다. 다만 더 다정한 말로 포장했을 뿐입니다.”유서연이 낮게 말했다.“라온아.”차라온의 눈물이 떨어졌다.“저는 용서받으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부터 강윤서 기념재단의 모든 권한을 독립 보호 절차에 넘기겠습니다. 제가 숨긴 아이들 명단도, 보호 장소도, 감시 기록도 전부 제출하겠습니다.”지연이 차갑게 물었다.“그럼 ‘윤서의 후계자’는 당신이야?”차라온은 고개를 저었다.“처음엔 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서아의 눈빛이 굳었다.“그럼 누구예요.”차라온은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열었다.“3년 전, 재단 내부에서 갈라졌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천천히 돌려주자고 했고, 다른 사람은 끝까지 숨겨야 한다고 했습니다.”“다른 사람?”차라온은 화면을 돌렸다.Kang Yoon-seo Memorial FoundationDelegated Control: Protected Child BCurrent location: Taesung Medical Archive도윤의 얼굴이 굳었다.“Protected Child B. 태성의료기록보관소.”유도현이 물었다.“그 사람도… 우리 같은 사람입니까?”차라온은
차라온은 파일을 들고 한참 서 있었다.N-00 Maternal Identity — Final Key얇은 종이철 하나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유도현이 평생 찾던 질문의 끝이 들어 있었다.서아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유도현 씨에게 줘요.”차라온의 손끝이 떨렸다.“제가요?”“네.”서아의 목소리는 단단했다.“숨긴 사람도 당신이고, 지키려 했던 사람도 당신이라면, 이제 돌려주는 사람도 당신이어야 해요.”차라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 사람이 나를 원망하면요.”“원망할 수 있죠.”짧은 침묵.“그것도 빼앗지 마요.”차라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아는 그녀를 데리고 아래층 교실로 내려갔다.교실 안, 유도현은 아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정하린이라는 가명 뒤에 숨어 있던 여자는 지친 얼굴로 아들의 손등을 쓰다듬고 있었다.그 손길은 어색했다.수십 년을 잃어버린 손이었다. 하지만 유도현은 그 손을 피하지 않았다.차라온이 들어오자 민재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라온 누나…”유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당신이었습니까.”차라온은 대답하지 못했다.유도현은 천천히 일어났다.“내가 어머니를 찾지 못하게 한 사람.”차라온은 입술을 깨물었다.“맞아요.”교실 안이 조용해졌다.차라온은 도망치지 않았다.“저는 당신을 보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N-00이 움직이면 잔여 감시망이 깨어난다고 믿었고, 당신 어머니와 직접 연결되면 두 사람 모두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유도현은 낮게 물었다.“그래서 내게 묻지도 않았습니까?”“네.”“내 어머니에게도?”차라온의 눈물이 떨어졌다.“네.”유도현은 웃었다.무너진 웃음이었다.“강도현과 뭐가 다릅니까.”차라온은 고개를 숙였다.“다르지 않았습니다.”그 대답에 모두가 멈췄다.차라온은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내밀었다.“그래서 돌려드리러 왔습니다.”유도현은 파일을 바라봤다.그러나 바로 받지 못했다.그 안에 있는 이름을 너무 오래 기다렸다. 기다린 만큼 두려웠다.서아가 조용히
Unknown S-line successor.그 문장 앞에서 모두가 멈췄다.강도현은 잡혀갔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강도현의 방식으로 사람을 지우던 자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강윤서의 이름으로 사람을 묶는 자가 있었다.서아는 민재를 바라봤다.“누가 시켰어.”민재는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까지 날카롭던 얼굴은 사라지고, 겁먹은 아이 같은 표정만 남아 있었다.“말하면 안 돼.”태준이 낮게 말했다.“이미 말했어. 윤서의 후계자.”민재의 손이 떨렸다.“그 사람은 우리를 살렸어.”지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방금 도현 씨랑 어머니 이름 뿌리려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민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러니까 막으려고 한 거야!”교실 안이 조용해졌다.민재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N-00이 산모랑 직접 만나면 감시 트리거가 열린다고 했어. 이름이 연결되면, 잔여 라인이 움직인다고 했어. 그래서 접촉을 끊어야 한다고…”유도현의 얼굴이 굳었다.“그래서 내 어머니 이름을 밖에 뿌리려고 했습니까?”“진짜 이름은 아니야.”민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가짜 후보였어. 외부를 그쪽으로 돌리려고. 진짜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서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미끼였다는 거네.”민재는 입술을 깨물었다.“보호하려고…”“그 말 하지 마.”서아가 낮게 끊었다.“그 말로 태성이 엄마들을 묶었고, 아이들을 옮겼고, 이름을 지웠어. 이제 그 말까지 물려받을 필요 없어.”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하린은 휠체어 위에서 유도현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민재를 보며 작게 말했다.“민재야, 너도 아이였어.”민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러니까요.”그는 울음을 참는 얼굴로 말했다.“아이였으니까 알아요. 이름을 찾는다고 다 행복해지는 거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무너져요. 어떤 사람은 지금 가족을 잃어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삶이 전부 거짓이 되는 걸 견디지 못해요.”그 말은 교실을 무겁게 눌렀다.틀린 말은 아니었다
문이 잠긴 소리가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철컥.그 짧은 금속음이—이 방을 완전히 밀실로 바꿔버렸다.윤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눈앞.한수민을 닮은 여자.하지만—전혀 다른 존재.“…엄마 아니야.”그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도윤이 먼저 움직였다.문으로 달려갔다.손잡이를 잡았다.철컥.돌아가지 않았다.“잠겼습니다.”낮고 짧은 보고.서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당황하지 마.”도윤이 뒤를 돌아봤다.“상대가 유도했습니다.”“알아.”짧은 침묵.서아의 시선이 방 안을 훑었다.문. 창문. 가
비는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차창 위로 흐르는 물방울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윤서아는 아무 말 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손에는—반지.피가 말라붙은 채 남아 있는 반지.“…이상해요.”강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서아의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뭐가.”“당신 어머니.”짧은 침묵.“죽은 기록이 없습니다.”서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뭐?”도윤이 말을 이었다.“사망 신고.”“없습니다.”정적.“장례 기록도 없고.”“화장 기록도 없습니다.”차 안 공기가 멎었다.“…그럼 뭐야 그게.”
태성가 본관은 밤이 되면 더 조용해졌다.낮에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시선이 오가지만, 밤이 되면—숨겨진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서아는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손에는—그 반지.피가 묻어 있는 반지.손바닥에 쥐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시선이 갔다.“…엄마.”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가슴이 조였다.하지만 멈추지 않았다.걸음을 옮겼다.도착한 곳은—서재.회장의 공간.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그리고—노크 없이 문을 열었다.끼익—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강진호가 혼자 앉아 있었다.책상 위에는—사
태성병원은 새벽인데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응급실 쪽 복도는 여전히 분주했지만, 서아가 향하는 곳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지하 기록 보관실.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여기 맞습니다.”강도윤이 문 앞에서 멈췄다.금속 문.지문 인식.그리고—이중 잠금.“일반 접근은 안 됩니다.”“그럼?”도윤이 카드 하나를 꺼냈다.“비정상 접근하죠.”짧은 침묵.삑—문이 열렸다.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서아는 잠시 멈췄다가—안으로 들어갔다.안은 어두웠다.형광등 몇 개만 켜져 있었고, 천장에서는 낮은 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