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태성그룹 본사 로비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출근 시간인데도 사람들의 움직임이 둔했다.
겉으로는 회의.
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나누는 날.
그때였다.
건물 앞에 검은 세단 한 대가 멈췄다.
문이 열렸다.
구두가 바닥에 닿았다.
또각.
로비 유리문이 열리자, 직원 한 명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숨이 멎었다.
“…어?”
옆에 있던 직원이 물었다.
“왜 그래?”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됐다.
천천히 걸어오는 여자.
검은 코트.
정리된 머리.
그리고—
익숙한 얼굴.
“…윤서아?”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 말이 퍼지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죽은 거 아니었어?” “실종 아니었나?”속삭임이 파도처럼 번졌다.
하지만—
그 중심에 선 윤서아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시선을 무시한 채 걸었다.
마치—
이미 이곳에 돌아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엘리베이터 앞.
문이 열렸다.
서아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닫히는 순간까지도 시선이 따라붙었다.
딩—
최상층.
회장실이 있는 층.
문이 열렸다.
조용한 복도.
그 끝.
태성의 중심.
서아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비서실 앞.
비서가 고개를 들었다가—
굳었다.
“…윤서아 씨?”
그 목소리는 거의 숨소리에 가까웠다.
“회장님 계세요?”
너무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지금… 이사회 중이십니다.”
“들어가면 되겠네요.”
“잠깐—!”
말리기도 전에—
회장실 문이 열렸다.
회의가 막 끝난 듯, 임원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강진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시선이 서아에게 닿았다.
그리고 멈췄다.
완전히.
“…서아?”
시간이 끊긴 것처럼 조용해졌다.
임원들도, 비서도,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서아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감정이 없었다.
놀람도.
원망도.
오직—
결심.
그녀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회장실 안으로.
누군가 말리려 했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문이 닫혔다.
정적.
강진호의 시선이 흔들렸다.
“…살아 있었냐.”
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방을 열었다.
서류 하나를 꺼냈다.
탁.
책상 위에 올렸다.
“확인해 보세요.”
강진호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 서류를 집어 들었다.
DNA 검사 결과.
그의 눈이 흔들렸다.
“…이건.”
서아가 말했다.
“설명 그대로예요.”
짧은 침묵.
그녀의 시선이 정확히 그를 향했다.
“제가.”
숨을 한 번 고르고—
“회장님 딸이에요.”
공기가 무너졌다.
정적.
그 순간—
쾅!
문이 거칠게 열렸다.
“아빠!”
윤지연이었다.
그녀는 급하게 들어오다가—
서아를 봤다.
그리고 멈췄다.
“…언니?”
입술이 떨렸다.
“…왜 살아 있어?”
서아가 천천히 돌아섰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비.
다리.
그 밤.
모든 기억이 동시에 겹쳐졌다.
그리고—
서아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왜냐고?”
짧은 침묵.
“네가 날 죽이는데 실패했으니까.”
정적.
지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건 아주 짧았다.
다음 순간.
지연이 웃었다.
“…언니.”
그 웃음은 여전히 이상하게 차가웠다.
“아직도 그런 식으로 말해?”
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지연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여기.”
짧은 침묵.
“태성가야.”
공기가 서늘해졌다.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그거 아무도 신경 안 써.”
서아의 표정이 굳었다.
그때—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지연.”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나가 있어라.”
“아빠—”
“지금은 서아랑 이야기할 때다.”
지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하지만—
곧 웃었다.
“…그래요.”
그녀는 뒤돌아 나가기 직전—
서아를 한 번 더 봤다.
그리고 속삭였다.
“언니.”
짧은 침묵.
“이미 늦었어.”
문이 닫혔다.
정적.
회장실 안.
오직 둘만 남았다.
강진호가 천천히 말했다.
“…왜 지금 왔냐.”
서아의 눈빛이 달라졌다.
“찾으러 왔어요.”
“뭘.”
짧은 침묵.
그녀가 한 글자씩 말했다.
“내 자리.”
그리고—
“내 인생.”
정적.
그 순간.
회장 책상 위에 놓인 오래된 사진 하나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젊은 시절의 한수민.
서아의 어머니.
서아의 시선이 그 사진에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눈이 변했다.
“…그리고.”
짧은 침묵.
“우리 엄마 죽인 사람.”
공기가 얼어붙었다.
강진호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뭐라고 했냐.”
서아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 집 안에 있죠?”
정적.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복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발걸음을 멈췄다.
문 밖.
윤지연이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드디어 시작이네.”
N-00 다음은 N-01입니다.그 아이는 아직 태성 안에 있습니다.Possible position: Chairman’s Office.그 문장이 지하 기록보관소 화면 위에 떠 있는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회장실.태성의 가장 높은 자리. 강무진이 수십 년 동안 앉아 있던 방. 서아가 처음 자신의 피를 의심했고, 회장이 끝내 숨겼던 이름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 곳.그곳에 N-01이 있었다.도윤이 빠르게 기록을 뒤졌다.“N-01 파일은 거의 비어 있습니다. 출생 기록, 산모 청구, 입양 경로 전부 가려져 있습니다. 다만 현재 위치 추정값이 회장실로 남아 있습니다.”태준이 낮게 물었다.“사람이 회장실에 있다는 뜻이야, 아니면 기록이 회장실에 있다는 뜻이야?”도윤은 화면을 확대했다.“둘 다 가능하지만… 여기 ‘active proximity’라는 표시가 있습니다.”지연이 숨을 삼켰다.“그럼 살아 있다는 뜻이네.”스피커 너머 회장의 목소리가 흔들렸다.“회장실에… N-01이 있다고?”서아는 차갑게 물었다.“정말 몰랐어요?”회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그 침묵만으로도 서아의 눈빛이 굳었다.“또 몰랐다고 할 거예요?”“아니다.”회장이 낮게 말했다.“몰랐다는 말로 숨지 않겠다. 하지만 정말 N-01이라는 건 몰랐다.”한재욱의 목소리가 들어왔다.“회장실 인원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비서실, 경호, 수행기사, 전략실 파견 인력. 장기 근무자 중 신원 기록이 비정상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도윤이 바로 명단을 띄웠다.Chairman’s Office — Current StaffChief Secretary: Seo Moon-taeExecutive Aide: Nam Gyu-riSecurity Liaison: Park Jin-ohRecords Clerk: Lee Sun서아의 시선이 마지막 이름에 멈췄다.“이선.”도윤도 같은 부분을 보고 있었다.“기록 담당 직원입니다. 최근 8년간 회장실 문서 보관을 맡았습니다.
“윤서가 죽던 날…”회장의 목소리가 지하 기록보관소 스피커를 타고 낮게 흘렀다.“나는 사고가 아니란 걸 알았다.”그 한마디에 모두가 굳었다.서아는 숨을 멈춘 채 스피커를 바라봤다.강무진.그는 서아의 아버지였고, 태성의 회장이었고, 너무 오래 침묵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 열린 기록은 그가 단순히 몰랐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D-02 / Suppressed Witness억눌린 목격자.도윤이 조심스럽게 파일을 열었다.Witness Event: S-02 Accident ProtocolWitness: Kang Mu-jinStatus: Statement drafted / never submitted한재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진술서 초안이 있습니다.”회장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아가 물었다.“왜 제출 안 했어요.”대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서아는 그 침묵이 싫었다.이 집안의 남자들은 늘 침묵했다. 침묵으로 지켰다고 믿었고, 침묵으로 사람을 잃었다.“대답하세요.”서아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이번엔 숨지 말고.”회장은 낮게 숨을 들이켰다.“그날 윤서는 형님을 만나러 왔다. 태성 본관 지하에서.”도윤이 화면을 넘겼다.낡은 CCTV 캡처가 떴다.젊은 강윤서. 흰 블라우스에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파일 봉투가 들려 있었다.그리고 몇 분 뒤, 강도현이 복도 끝에서 나타났다.회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나는 우연히 그 장면을 봤다. 윤서가 형님에게 소리치고 있었어. ‘나는 오류가 아니다’라고.”서아의 손끝이 차가워졌다.너는 오류가 아니라고.윤서가 죽기 전 남긴 말은, 그날 이미 자신의 아버지에게 던졌던 말이었다.회장은 계속 말했다.“형님은 조용했다. 늘 그렇듯이. 화내지도 않았고, 밀어내지도 않았다. 그냥 윤서에게 물었다.”짧은 침묵.“네가 이걸 공개하면, 네 어머니도 무너진다는 걸 아느냐고.”윤정원의 숨이 흔들렸다.회장은 말했다.“윤서는 대답했다. ‘무너지는 건 진실 때
First claimant personal access request received.Name: Han Jae-wookCode: Y-01지하 기록보관소 안에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한재욱.법으로 사람들의 입을 막았던 사람. Core-1이었고, 동시에 Y-01이었다. 남의 이름을 봉인하는 문서에 서명해온 사람이, 이제 자기 이름이 봉인된 문 앞에 섰다.스피커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열람하겠습니다.”도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한재욱 이사장님, 확인합니다. 이 기록은 개인 출생과 모계 기록, 초기 법무 구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열람 중 중단할 수 있습니다.”“압니다.”목소리는 차분했다.그러나 서아는 그 안의 떨림을 들었다.도윤이 키를 눌렀다.Y-01 / Personal Access ModeClaimant: Han Jae-wookMother: Han I-seo파일이 열렸다.첫 장에는 오래된 흑백 사진이 있었다.젊은 여자.단정한 머리, 굳은 입술, 그러나 눈빛만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사람.한재욱이 숨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그 한마디는 법률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아이가 처음 사진 속 엄마를 만나는 목소리였다.화면 아래 기록이 이어졌다.Han I-seoStatus: Founder maternal lineClaim: child recognition deniedChild: Han Jae-wookAction: absorbed into collateral Han family한재욱은 한참 말이 없었다.서아는 조용히 기다렸다.이번엔 아무도 설명을 먼저 하지 않았다. 이 기록은 한재욱의 것이었다. 누가 대신 읽어주거나, 대신 의미를 정할 수 없었다.한재욱이 낮게 말했다.“저는 늘 제가 한씨 집안의 빚으로 태성에 들어왔다고 알고 있었습니다.”짧은 숨.“아버지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배웠고, 어머니는 병약해서 저를 맡겼다고 들었습니다.”도윤이 다음 장을 넘겼다.Maternal Petit
Archive Lockdown: 00:02:10경고음이 지하 기록보관소 전체를 울렸다.어두운 코트 차림의 여자는 붉은 관리자 키를 쥔 채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유도현을 향해 있었지만, 사실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당신은 어머니를 만났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나는 열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유도현은 입을 다물었다.그 말 앞에서는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만났다. 유서연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도하라는 이름도 되찾았다.하지만 저 여자는 아니었다.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서아가 조용히 물었다.“이름이 뭐예요.”여자의 눈빛이 흔들렸다.“그게 중요합니까?”“네.”서아는 한 걸음 다가갔다.“당신이 기록을 닫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야 하니까요.”여자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경고음은 계속됐다.00:01:48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문이린.”짧은 침묵.“지금 이름은 문이린입니다.”“진짜 이름은요?”문이린은 낮게 웃었다.“없었습니다.”서아의 눈빛이 흔들렸다.문이린은 손에 쥔 붉은 키를 들어 보였다.“내 파일을 열었을 때, 이름 칸은 비어 있었습니다. 산모 기록도 비어 있었고, 청구 기록도 없었습니다. 입양 기록은 가짜였고, 보호자 기록은 조작이었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갈라졌다.“그러니까 나는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돌아올 엄마도 없고, 지켜준 사람도 없고, 남겨진 이름도 없다는 걸.”도윤이 낮게 말했다.“이린 씨, 그 기록은 강도현 라인과 윤서 재단이 동시에 손댄 기록일 수 있습니다. 요약본만 보고 판단하면—”“봤습니다.”문이린이 날카롭게 끊었다.“요약본도, 원본도, 봉인본도 다 봤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차라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린아…”문이린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언니는 늘 기다리라고 했어요. 언젠가 준비되면 열어보자고. 그런데 열어보니 빈칸이었어요.”짧은 숨.“그 빈칸을
태성의료기록보관소는 병원 본관 뒤편, 오래된 연구동 지하에 있었다.겉으로는 폐쇄된 문서창고였다. 그러나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도윤의 태블릿 신호가 거칠게 흔들렸다.“내부 서버 살아 있습니다. 물리 보안도 켜져 있고요.”태준이 차를 세우며 말했다.“사람도 있겠지.”지연은 창밖을 보았다.불 꺼진 연구동 한쪽, 지하로 내려가는 출입구에 희미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그 앞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흰 가운 위에 회색 점퍼를 걸친 남자. 낯익은 얼굴이었다.도윤이 먼저 알아봤다.“신유찬 씨.”107화에서 제보 파일을 올렸던 사람. 태성의료재단 데이터보관실 직원.그가 바로 Protected Child B였다.신유찬은 서아 일행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오실 줄 알았습니다.”서아는 차에서 내렸다.“당신이 아카이브를 잠그려는 사람이에요?”“네.”그는 부정하지 않았다.유도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왜요.”신유찬의 시선이 유도현에게 향했다.“유도현 씨. 아니면 유도하 씨라고 불러야 합니까.”유도현의 얼굴이 굳었다.“그걸 당신이 정할 일 아닙니다.”신유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그래서 잠그려는 겁니다.”지연이 헛웃음을 쳤다.“말이 되게 좀 해봐요.”신유찬은 연구동 문을 돌아봤다.“저 안에는 이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출생, 산모, 입양, 사망 처리, 정신과 평가, 친자 추정, 양부모 정보, 지금 가족 정보까지 전부 있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낮았다.“한 줄만 잘못 열려도 누군가의 현재가 무너집니다.”서아는 그를 똑바로 봤다.“그래서 전부 닫겠다고요?”“네.”“그럼 강도현이랑 뭐가 달라요.”신유찬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저도 그 질문을 기다렸습니다.”짧은 정적.“저는 열 살 때 제 이름을 알았습니다. 누군가 친절하게 알려줬습니다. 네 엄마는 너를 버린 게 아니라 죽었다고. 네 아버지는 태성 사람이라고.”그는 입술을 깨물었다.“그날부터 저는 지금 부모님을 똑바로 보
“네, 엄마.”유도현의 그 한마디가 폐교 교실 안에 오래 머물렀다.유서연은 아들의 손을 놓지 못했다. 손가락 마디마다 힘이 없었지만, 그 손만큼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유도현도 피하지 않았다.유도현. 유도하.두 이름이 그의 안에서 부딪히는 대신, 처음으로 나란히 앉았다.서아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감았다.이름을 되찾는다는 건 누군가의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름과, 빼앗긴 이름이 서로를 죽이지 않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었다.그때 차라온이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유도현 씨.”유도현은 천천히 그녀를 보았다.차라온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저는 당신과 어머니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선택을 빼앗았습니다.”교실 안은 조용했다.“강도현이 했던 짓을 증오하면서, 저도 같은 방식을 썼습니다. 다만 더 다정한 말로 포장했을 뿐입니다.”유서연이 낮게 말했다.“라온아.”차라온의 눈물이 떨어졌다.“저는 용서받으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부터 강윤서 기념재단의 모든 권한을 독립 보호 절차에 넘기겠습니다. 제가 숨긴 아이들 명단도, 보호 장소도, 감시 기록도 전부 제출하겠습니다.”지연이 차갑게 물었다.“그럼 ‘윤서의 후계자’는 당신이야?”차라온은 고개를 저었다.“처음엔 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서아의 눈빛이 굳었다.“그럼 누구예요.”차라온은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열었다.“3년 전, 재단 내부에서 갈라졌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천천히 돌려주자고 했고, 다른 사람은 끝까지 숨겨야 한다고 했습니다.”“다른 사람?”차라온은 화면을 돌렸다.Kang Yoon-seo Memorial FoundationDelegated Control: Protected Child BCurrent location: Taesung Medical Archive도윤의 얼굴이 굳었다.“Protected Child B. 태성의료기록보관소.”유도현이 물었다.“그 사람도… 우리 같은 사람입니까?”차라온은
문이 잠긴 소리가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철컥.그 짧은 금속음이—이 방을 완전히 밀실로 바꿔버렸다.윤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눈앞.한수민을 닮은 여자.하지만—전혀 다른 존재.“…엄마 아니야.”그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도윤이 먼저 움직였다.문으로 달려갔다.손잡이를 잡았다.철컥.돌아가지 않았다.“잠겼습니다.”낮고 짧은 보고.서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당황하지 마.”도윤이 뒤를 돌아봤다.“상대가 유도했습니다.”“알아.”짧은 침묵.서아의 시선이 방 안을 훑었다.문. 창문. 가
비는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차창 위로 흐르는 물방울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윤서아는 아무 말 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손에는—반지.피가 말라붙은 채 남아 있는 반지.“…이상해요.”강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서아의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뭐가.”“당신 어머니.”짧은 침묵.“죽은 기록이 없습니다.”서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뭐?”도윤이 말을 이었다.“사망 신고.”“없습니다.”정적.“장례 기록도 없고.”“화장 기록도 없습니다.”차 안 공기가 멎었다.“…그럼 뭐야 그게.”
태성가 본관은 밤이 되면 더 조용해졌다.낮에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시선이 오가지만, 밤이 되면—숨겨진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서아는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손에는—그 반지.피가 묻어 있는 반지.손바닥에 쥐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시선이 갔다.“…엄마.”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가슴이 조였다.하지만 멈추지 않았다.걸음을 옮겼다.도착한 곳은—서재.회장의 공간.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그리고—노크 없이 문을 열었다.끼익—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강진호가 혼자 앉아 있었다.책상 위에는—사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윤서아는 비를 맞은 채 서 있었다.숨이 가빴다.“…태준.”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눈앞.강태준.그리고—그 옆에 서 있는 윤지연.“왜 여기 있어…”짧은 침묵.지연이 먼저 웃었다.“언니.”한 걸음 다가왔다.“죽은 줄 알았는데, 끈질기네.”공기가 식었다.서아의 시선이 태준에게 향했다.“…너.”입술이 떨렸다.“설마…”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서아를 보고 있었다.감정 없는 얼굴.“…말해.”“아니라고 해.”정적.하지만—그는 끝내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