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무대가 끝난 밤 10시.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다.
수려와 타쿠야는 로비 한쪽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유코와 아베가 마주 앉아 있었다.
유코가 한참 동안 아베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베상은 사람들과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혹시…… 저도 불편해요?”
“아니요.”
아베가 고개를 저었다.
“유코상은 편해요. 겉모습보다 그 사람 자체를 먼저 보는 것 같아서.”
“그런가?”
“그리고…… 부러워요.”
아베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유코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요?”
“자신을 숨기지 않는 거.”
아베는 순간 말을 멈췄다.
“……그냥 부럽다는 뜻이에요.”
괜히 속내를 들킨 것 같았다.
아베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타쿠야상은 유코상한테 잘해주죠?”
유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수려상도 아베상한테 잘해주잖아요.”
아베가 수려 쪽을 바라봤다.
수려는 타쿠야와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베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네. 수려는…… 제가 어떤 사람이든 편하게 대해줘요.”
유코가 그 말을 가만히 듣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려상한테는 아직 말 안 했죠.”
아베의 어깨가 움찔했다.
“……알고 있었어요?”
“그냥…… 어느 순간 알겠더라고요.”
유코가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더 늦기 전에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잠시 말을 멈춘 유코가 아베를 바라봤다.
“수려상이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아베가 씁쓸하게 웃었다.
“알아요. 저도.”
“그런데……?”
아베의 시선이 다시 수려에게 향했다.
“조금만 더…….”
목소리가 낮아졌다.
“조금만 더 이 행복을 누리고 싶어요.”
아베가 잔을 내려다봤다.
“모두가 이기적이라고 해도.”
짧은 침묵이 흘렀다.
“처음이거든요.”
아베가 힘없이 웃었다.
“이런 마음도…… 이런 시간도.”
유코는 더 이상 다그치지 않았다.
대신 아베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저는 언제나 아베상 편이에요.”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대신, 너무 오래 미루지는 마요.”
아베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유코가 그 말을 듣고 아베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려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타쿠야.”
“응.”
수려가 잔을 들었다.
“나 너랑 진하게 술 한잔 꼭 해보고 싶었어.”
“나도.”
두 사람이 잔을 부딪쳤다.
“간빠이.”
“건배.”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수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정말 다시 아이돌 안 할 거야?”
타쿠야가 잔을 바라봤다.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돌아가고 싶지.”
타쿠야가 작게 웃었다.
“당연히. 무대가 그립고.”
잠시 말을 멈췄다.
“팬들도 그립고.”
“사실 나도 그래.”
수려가 잔을 내려놓으며 작게 웃었다.
“사랑만 받을 때는 몰랐어.”
수려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사랑받은 만큼 미움도 받아보니까…… 무대가 무섭더라.”
타쿠야는 아무 말 없이 수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수려가 무대가 있던 쪽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했던 공연 중에 제일 즐거웠어.”
“왜?”
수려가 타쿠야를 바라봤다.
“너랑 해서 그런가 봐.”
타쿠야도 웃었다.
“나도 신기했어.”
그가 잔을 천천히 돌렸다.
“일본 멤버들이랑 무대할 때랑은 달랐어.”
“어떻게?”
“눈을 안 마주쳐도 서로 뭘 할지 아는 느낌.”
수려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게 팀이지.”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수려가 말했다.
“우리 둘이 그룹이나 하나 만들까?”
타쿠야가 웃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진짜?”
“응.”
타쿠야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수려. 오늘 무대…… 나도 다시 한번 꿈을 꾸게 됐어.”
수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두 사람이 다시 잔을 들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건배.”
두 잔이 다시 부딪쳤다.
하지만 그날 밤, 호텔 한쪽에서 그 무대를 지켜본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플랜비 기획사 부장, 신노스케.
타쿠야를 비밀스럽게 조사하기 위해 연회장에 들어왔던 그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수려…… 타쿠야.’
두 사람의 호흡.
서로를 바라보던 순간적인 눈빛.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움직임.
신노스케가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한수려 × 타쿠야
“……이거 제대로 만들면 터진다.”
하지만 곧 표정이 진지해졌다.
‘둘 다 이미 연예계를 떠났다는 게 문제인데.’
잠시 생각하던 신노스케는 두 사람을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그래도 상관없어.’
‘어떻게든 설득한다.’
수려와 타쿠야는 그저 즐거운 공연 하나를 했다고 생각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신들의 무대를 누군가가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연회가 끝난 밤.
호텔 로비를 빠져나오던 수려와 타쿠야가 나란히 걸었다.
타쿠야가 수려의 어깨를 툭 쳤다.
“수려.”
“응?”
“신유라는 말 알아?”
“신유?”
“응. 한자로 친할 친, 벗 우.”
타쿠야가 웃었다.
“믿을 수 있는 친구라는 뜻이야.”
잠시 수려를 바라보던 타쿠야가 말했다.
“넌 이제 내 신유, 친우(親友)다.”
수려가 피식 웃었다.
“좋은 말이네. 신유.”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가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잘 자.”
“너도.”
타쿠야가 객실 쪽으로 사라졌다.
수려가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로비 한쪽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베였다.
벽에 기대어 수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베?”
“끝났어?”
“응. 타쿠야랑 얘기 좀 하다가.”
수려가 웃으며 말했다.
“왜?”
“나보다 타쿠야랑 더 재미있었어?”
“조금.”
수려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타쿠야랑은 말이 잘 통하잖아.”
아베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러자 수려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런데 너랑은…… 모든 게 통하잖아.”
아베의 표정이 금세 풀렸다.
“너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왜?”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말을 너무 쉽게 해.”
“그런가?”
수려가 잠시 아베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난 네 투명한 마음과 눈이 너무 좋아.”
아베가 작게 웃었다.
“그 말…… 정말 기분 좋다.”
두 사람은 호텔을 나와 밤바다로 향했다.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왔다가 모래 위로 부서졌다.
수려와 아베는 나란히 앉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려가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키나와 바다…… 정말 예쁘다.”
“응.”
“한국 바다도 이렇게 예쁜 곳이 있어.”
“어디?”
“제주도.”
수려가 웃었다.
“나중에 같이 가고 싶다.”
“가자.”
아베가 대답했다.
“우리 가야 할 곳이 점점 늘어나네.”
수려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제주도도, 남이섬도, 서울도…….”
잠시 생각하던 수려가 웃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일본 여기저기도 같이 가자.”
“천천히 다 해보자.”
아베가 수려를 바라봤다.
“우리 아직 시간 많으니까.”
그 말에 아베의 미소가 잠시 멈췄다.
우리 아직 시간 많으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아베는 천천히 수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포갰다.
짧고 조심스러운 키스.
두 사람은 잠시 떨어져 서로를 바라봤다.
파도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수려는 눈을 감았다.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이 행복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잃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빼앗아가지 않고.
그저 지금처럼.
그 순간 수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베!”
“응?”
수려가 바다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린 채 소리쳤다.
“나 한수려는 아베를 좋아한다!!!!”
“아베랑 계속 같이 있고 싶다!!!!”
아베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수려가 뒤돌아보며 외쳤다.
“너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바다에 대고 소리쳐!”
“파도가 대답해 줄 거야!”
아베가 한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도…….”
목소리가 작았다.
“수려와…… 계속 같이 있고 싶다아!!!!”
수려가 멍하니 아베를 바라봤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목소리가 좀 소극적인데?”
“내 기준으로는 많이 한 거야.”
“하하하!”
수려가 웃으며 달려왔다.
그리고 아베를 힘껏 끌어안았다.
“귀여워.”
수려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진짜 귀여워.”
아베도 수려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다 아베의 표정이 서서히 달라졌다.
수려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왜?”
아베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수려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베?”
아베가 천천히 수려의 손을 잡았다.
“수려.”
“응.”
아베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 너한테 말해야 할 게 있어.”
수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무슨 일 있어?”
아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말을 꺼내려다 다시 멈췄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나, 수려한테 숨기고 있던 게 있어.”
수려의 눈빛이 흔들렸다.
“……뭔데?”
아베가 수려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입을 열었다.
“사실…….”
아베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수려 아버지를 알아.”
순간 수려의 표정이 굳었다.
오키나와의 밤바다 위로 파도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수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베의 얼굴도.
밤바다도.
호텔의 불빛도.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아버지를…… 알아?’
아베는 차마 수려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수려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시끌벅적하던 대화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했다가 이내 하나둘 피하는 것을 보며 수려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평소라면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던 동료들도 슬쩍 자리를 옮겼고,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거나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잠시 후,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한수려, 쟤 소문 진짜예요?”“모르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사람 속은 어떻게 알아.”“여기 앉기 전에 가자.”당황한 수려가 소리쳤다.“다들 왜 이래? 그런 황당한 소문을 다들 믿는 거야?”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업무가 시작된 뒤에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결국 수려는 유코상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아직도 그 소문 때문이에요?”유코상은 잠시 수려를 바라보다가 말했다.“나도 수려상을 믿고 싶어.”“저 정말 그런 일 안 했어요.”“알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하지만 유코상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점심시간이 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수려가 식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웠고, 결국 수려는 혼자 남아 조용히 식사를 해야 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준은 속으로 통쾌해했다.‘그래. 한수려는 일본에서도 이래야지.’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소문을 믿었다.수려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의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이번에도 내가 이겼어.’그날 저녁, 업무가 끝난 뒤에도 수려는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았다.료칸 뒤편의 작은 정원에 혼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재준은 우연히 그 모습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수려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나는 잘 살면 안 되는 존재인가.”“누군가 그렇다고 하면 그게 사실이 되는 건가.”한국에서 느꼈던 절망을 일본에 와서 다시 느끼고 있었다.그 순간, 재준은 수려를 보며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과 마주했다.동정이었다.
“사실…… 나 수려 아버지를 알아.”아베의 말에 수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우리 아버지를……?”“응.”아베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수려 아버지는 네가 여기서 지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정말?”연락조차 되지 않는 아버지였다.그런 아버지의 소식을 아베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수려는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그것만 일단 알아둬.”아베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지금은 내가 전부 말할 수 없는 입장이야. 그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나도 연락이 안 되는 아버지를…… 아베가 알고 있다고?”수려는 한동안 아베를 바라봤다.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알겠어.”수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오키나와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료칸으로 돌아온 수려에게 재준이 말을 걸었다.“오키나와는 잘 다녀왔어?”수려가 재준을 바라봤다.“왜?”“그냥. 갔다 왔으니까 물어본 거야.”“잘 다녀왔어.”“그래?”재준이 가볍게 웃었다.“재밌었나 보네.”수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무슨 뜻이야?”“아무 뜻 없어.”재준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섰다.하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그래…… 실컷 즐겼겠지.’재준은 더 이상 수려에게 직접 손을 대지 않을 생각이었다.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수려가 믿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흔드는 것.그리고 결국 수려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만드는 것.며칠이 지나자 수려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료칸 사람들의 시선이 전과 달랐다.눈이 마주치면 슬쩍 피했고, 자신이 지나가면 나누던 대화를 멈췄다.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자 확신할 수 있었다.무언가 있었다.‘……뭐지?’수려는 결국 유코를 붙잡았다.“유코상.”“응?”“혹시…… 무슨 일 있어요?”유코가 잠시 수려의 표정을 살폈다.“왜 그렇게 생각해?”“사람들이 자꾸 저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서요.”
오키나와의 밤무대가 끝난 밤 10시.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다.수려와 타쿠야는 로비 한쪽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조금 떨어진 곳에는 유코와 아베가 마주 앉아 있었다.유코가 한참 동안 아베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아베상은 사람들과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제가 원래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혹시…… 저도 불편해요?”“아니요.”아베가 고개를 저었다.“유코상은 편해요. 겉모습보다 그 사람 자체를 먼저 보는 것 같아서.”“그런가?”“그리고…… 부러워요.”아베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유코가 고개를 갸웃했다.“뭐가요?”“자신을 숨기지 않는 거.”아베는 순간 말을 멈췄다.“……그냥 부럽다는 뜻이에요.”괜히 속내를 들킨 것 같았다.아베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타쿠야상은 유코상한테 잘해주죠?”유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수려상도 아베상한테 잘해주잖아요.”아베가 수려 쪽을 바라봤다.수려는 타쿠야와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베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네. 수려는…… 제가 어떤 사람이든 편하게 대해줘요.”유코가 그 말을 가만히 듣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수려상한테는 아직 말 안 했죠.”아베의 어깨가 움찔했다.“……알고 있었어요?”“그냥…… 어느 순간 알겠더라고요.”유코가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더 늦기 전에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잠시 말을 멈춘 유코가 아베를 바라봤다.“수려상이 더 깊이 빠지기 전에.”아베가 씁쓸하게 웃었다.“알아요. 저도.”“그런데……?”아베의 시선이 다시 수려에게 향했다.“조금만 더…….”목소리가 낮아졌다.“조금만 더 이 행복을 누리고 싶어요.”아베가 잔을 내려다봤다.“모두가 이기적이라고 해도.”짧은 침묵이 흘렀다.“처음이거든요.”아베가 힘없이 웃었다.“이런 마음도…… 이런 시간도.”유코는 더 이상 다그치지 않았다.대신 아베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오키나와 호텔 연회장 / 오후 6시호텔 연회장.다다미 위에 스텝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모두 유카타 차림이었다. 평소 료칸에서 입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색감도 화려했고, 저마다 고른 무늬도 제각각이었다.수려는 자신의 앞에 놓인 가이세키 요리를 바라봤다.작은 상 위에 회, 구이, 조림, 식사와 국, 디저트까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료칸에서 손님들에게 내어드리던 가이세키를, 내가 손님 입장에서 먹게 되네.’수려가 피식 웃었다.‘이런 서비스는 H호텔에서도 한번 접목해볼 만한데…….’옆에서 모토무라가 눈을 반짝였다.“드디어 내가 이걸 먹어본다!”“너 가이세키 처음이야?”“응. 매번 대접만 했지, 먹어볼 기회는 없었거든.”모토무라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음식을 바라봤다.“손님들은 나 모르게 이런 행복을 즐기고 있었구나.”“뭐야, 그게.”수려가 웃음을 터뜨렸다.그때였다.코즈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자!!! 오늘은 달빛 료칸의 최고 인기 가수, 코즈키의 특별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또 시작이네.”누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곧이어 오키나와 전통 음악이 흘러나왔다.조리팀 후배들이 뒤에서 손을 흔들며 분위기를 띄웠다.“히야사사! 아이야!”코즈키가 흥겹게 노래를 시작하자 연회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빠른 리듬 위로 삼선(三線)의 경쾌한 소리가 얹혔다.코즈키가 어깨를 들썩이며 발을 구르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히야사사!”후렴이 나올 때마다 연회장 절반이 함께 소리쳤다.코즈키는 즉석에서 가사까지 바꿔 불렀다.“코즈키가 우마레따~!”억지로 끼워 넣은 가사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역시 코즈키 선배!”코즈키는 노래를 이어가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졌다.“나 결혼은 세 번이나 한 남자야. 인생 경험이 많다는 거지.”“그걸 왜 지금 자랑해!”또다시 웃음이 터졌다.마지막 소절에서 코즈키가 마이크를 하늘로 치켜들자, 근처에 있던 몇몇이 젓가락으
### 료칸 휴관일아침 8시.료칸 정문 앞에 스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캐리어를 끌고 오는 사람, 여행 가방을 들고 오는 사람, 벌써부터 사진을 찍는 사람까지.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들뜬 분위기였다.오카미상이 마지막으로 인원을 확인했다.“자, 다들 모였나요?”“네!”“오늘은 제가 료칸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여러분들은 그동안 고생한 만큼 마음껏 즐기고 오세요.”오카미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번 여행 인솔자는 타쿠야상과 수려상이 맡아주세요.”“오카미상은 같이 안 가요?”“저는 나중에 사장님이랑 둘이서만 여행할 예정이니까요. 여러분들은 먼저 잘 즐기다 오세요.”“네!”수려도 캐리어 손잡이를 잡으며 웃었다.‘오키나와라······.’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였다.‘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놀아야지.’버스에 올라타기 직전이었다.신스케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료칸 담장 너머, 도로에 잠시 서 있던 검은 세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신스케가 눈을 가늘게 떴다.하지만 세단은 곧 방향을 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신스케, 안 타?”수려가 부르는 소리에 신스케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간다.”기분 탓이겠지.신스케는 그렇게 생각하며 버스에 올랐다.---간사이공항공항에 도착하자 모두가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우리 비행기 처음 타는 사람 있어?”“나!”신스케가 손을 번쩍 들었다.수려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진짜?”“응. 나 비행기 처음 타.”“처음 비행기를 타다니.”스텝들이 하나둘 놀란 표정을 지었다.---비행기 안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베가 창밖을 바라봤다.구름 아래로 펼쳐진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수려.”“응?”“나 한국도 꼭 가보고 싶어.”“한국?”“응. 그······ 닭갈비.”수려가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다음에 나랑 같이 가자. 남이섬 쪽에 드라마 촬영지도 있고, 닭갈비 맛있는 곳도 알아.”아베가 환하게 웃었다.“약속!”“
여름밤의 불꽃봄이 지나가고, 어느새 여름이 다가왔다.그날 료칸 로비에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스태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수려도 이제 료칸 일에 많이 적응한 것 같아.”유코가 수려를 바라보며 웃었다.“처음 왔을 때랑 완전 달라졌어.”“그래?”“응.”유코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손님들한테도 자연스럽게 대하고, 일본어도 처음보다 훨씬 늘었고.”그러더니 수려를 위아래로 훑어봤다.“무엇보다 잘생겼잖아.”“칭찬에 약한데.”수려가 웃었다.“그래서?”“고마워.”유코가 웃음을 터뜨렸다.“근데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 다들 들떠 있잖아.”수려가 주변을 둘러봤다.확실히 평소와 달랐다.스태프들도, 손님들도 평소보다 밝아 보였다.“오늘 고베타워에서 불꽃축제 하는 날이야. 1년에 딱 한 번 하는 축제래.”“그래서 다들 저렇게 들떠 있는 거야?”“응.”유코가 수려의 팔을 잡았다.“우리도 이따 가기로 했어. 스태프들끼리. 수려도 같이 가자.”수려가 잠시 고민했다.“그래?”“응.”유코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아베도 간대.”“……아베도?”수려의 눈빛이 달라졌다.“나도 갈래.”“푸하하!”유코가 웃음을 터뜨렸다.“너 아베 좋아하지? 얼굴 빨개졌는데?”“아니거든!”“알았어~. 일 끝나고 기차역에서 만나.”“응.”수려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그날 밤.료칸 일을 마친 스태프들이 하나둘 사복으로 갈아입고 기차역에 모였다.모두 열 명 정도였다. 타쿠야도 함께였다.“자!”유코가 손뼉을 쳤다.“다 모였지?”“응!”“그럼 출발해볼까?”“출발!”고베, 여름밤.축제 장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유카타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손에 작은 부채를 든 사람들.노점에서 야키토리와 빙수를 사 먹으며 웃는 가족들.손을 맞잡은 연인들.왁자지껄 떠드는 친구들.그리고 그 너머로 멀리 보이는 고베타워.바다에 비친 불빛이 밤하늘과 뒤섞여 아름답게 흔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