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 답은 우리가 아직 모른다.”건우가 말했다.“그래서 찾아야 돼.”하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지만,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그럼 찾아. 02:17이 뭔지.”건우는 휴대폰을 다시 꺼냈다. 형사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잠시 멈췄다. 방금 폐창고에서 숫자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은 직후였고, 아직 현장 확인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이 숫자가 하나와 서하 쪽 감각까지 건드렸다면, 경찰이 보는 외부 단서와 자신들이 아는 내부 단서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그는 형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02:17이라는 시간에 대해 하나 씨가 반응했습니다. 정리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시간과 관련된 통화·병원 출입·폐창고 CCTV 모두 대조 부탁드립니다.'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건우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나를 바라봤다.“경찰이 확인할 거야.”하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우리는?”“우리는 네가 말한 문이 뭔지 확인해야 해.”하나는 건우를 보았다.“내 안쪽?”“응.”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원 벤치 위의 물기가 햇빛을 받아 조금씩 마르고 있었다. 그 사소한 변화가 이상하게 느리게 보였다.“어떻게 확인하는데.”건우는 대답하기 전에 숨을 골랐다. 이건 병원 기록이나 CCTV처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나가 스스로 자기 안쪽을 들여다봐야 했고, 건우는 그 과정에서 그녀를 억지로 끌고 가면 안 된다.“그날 밤을 순서대로 말해보자. 네가 기억하는 것만. 모르는 건 모른다고 두고, 느낌은 느낌이라고 두고. 그러다 02:17 근처에서 네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하나는 바로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퇴근하고 집에 갔어.”그녀는 그렇게 시작했다.“비가 많이 왔고, 우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잘 기억 안 나. 기억상으로는 우산을 썼던 것 같은데, 건우 집에 갔을 때 나는 거의 다 젖어 있었잖아. 그러면 중간에 잃어버렸거나, 처음부터 제대로
하나가 “서하가 아는 시간인 것 같다”고 말한 순간, 건우는 공원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다시 어딘가 좁고 어두운 문 앞에 선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바깥은 이미 낮이었고, 비가 그친 나무 사이로 흐린 햇빛이 내려오고 있었지만, 그 숫자 하나가 공기 속에 놓이자 시간의 방향이 다시 어긋났다. 새벽 두 시 십칠 분. 신우가 건우에게 전화를 걸었던 시간, 폐창고 벽 아래 남겨진 시간, 그리고 이제 하나의 입을 통해 서하가 알고 있는 시간으로 돌아온 숫자였다.건우는 바로 묻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 하나가 붙잡고 있는 감각은 억지로 당기면 끊어질 수 있는 실 같았다. 그녀가 말한 “서하가 안다”는 문장은 기억이 아니라, 기억 앞에 닿은 몸의 반응에 가까웠고, 그런 감각은 질문을 세게 던지는 순간 방어처럼 닫힐 수 있었다.하나는 공원 벤치 옆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자기 팔을 감싸고 있었고, 눈은 건우를 향해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의 뒤쪽 어딘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초점이 조금 흐려져 있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건 더 이상 정미라나 폐창고의 흔적만이 아니었다. 자기 안에 있는 이름, 자기 몸으로 벌어진 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시간이 같은 숫자 아래에서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억지로 떠올리려고 하지 마.”건우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짧고 메마른 숨이었다.“억지로 안 해도 떠오를 것 같아서 무서운 거야.”그 말 뒤로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공원 바깥 도로에서는 차들이 지나갔고, 젖은 나뭇잎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흙 위로 스며들었다. 너무 평범한 소리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이제 평범한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하나는 천천히 벤치에 앉았다. 건우는 그녀 옆에 앉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섰다. 그녀가 도망칠 수 있는 거리, 그러나 완전히 혼자 두지는 않는 거리였다. 조금 전 서하의 존재를 말한 뒤부터, 건우는 자신이 무슨
“그날 밤.”그는 천천히 말했다.“형은 칼에 찔린 뒤에도 바로 죽지 않았어.”하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건우는 멈추지 않았다. 다만 문장을 서두르지 않았다.“외부에서 누가 형을 찔렀고, 그건 지금 우리가 쫓는 정미라 쪽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그런데 형은 그 상태에서도 살아 있었고, 누군가를 기다린 건지, 뭔가를 남기려고 한 건지, 끝까지 버티고 있었어.”하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만 건우를 향해 있었다.“그리고?”건우는 목 안쪽이 마르는 걸 느꼈다.“나는 그 장면을 나중에 봤어. 기억처럼 떠올린 게 아니라, 그 공간에 다시 들어간 것처럼. 형이 숨이 붙어 있었고, 내 이름을 부르려 했고, 나는…”그는 말을 멈출 뻔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나는 다가가지 않았어.”하나는 처음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도망가지는 않았다.“그게 무슨 말이야.”“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움직이지 않았어. 그때의 내가 실제로 거기 있었는지, 기억이 얼마나 끊겼는지, 아직 전부 확정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내가 본 건 그거야. 나는 그 순간에 멈췄고, 서하는 앞으로 갔어.”하나의 입술이 떨렸다.“서하가…”건우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형의 마지막 숨을 끊었어.”말이 떨어진 뒤, 공원은 너무 조용해졌다. 멀리서 들리던 차 소리도 잠깐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는 숨을 쉬지 않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건우는 다가가지 않았다. 붙잡아야 할 것 같았지만, 지금 붙잡는 건 다시 그녀를 자기 판단 안에 가두는 일이 될 수 있었다.한참 뒤, 하나가 겨우 말했다.“내 몸으로?”건우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응.”“내가 기억 못 하는 내가, 신우 씨를…”그녀는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그러나 끝내지 못한 말이 오히려 더 잔인하게 남았다.건우는 조용히 말했다.“네가 한 거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네 몸으로 벌어진 일인 건 맞아. 그래서 내가 너한테 말하는 거야. 더 늦기 전에.”하나는
형사의 마지막 말이 전화 너머에서 끊어진 뒤에도, 건우는 한동안 휴대폰을 귀에서 내리지 못했다. 통화가 끝났다는 화면은 이미 떠 있었지만, 그 여자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문장만은 여전히 귓속에 남아 있었다. 정미라라는 이름이 드러났고, 차미령이라는 과거가 따라붙었으며, 병원과 신우의 죽음, 문태오의 실종까지 한 선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는데, 신우가 폐창고 벽에 남긴 문장은 그 모든 선을 다시 찢어놓았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미라 하나를 찾으면 끝나는 사건이 아니었다.하나는 건우의 표정을 보고 먼저 묻지 않았다.방금 전까지 서하라는 이름을 듣고, 자기 안에 모르는 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의 얼굴이었는데도, 그녀는 지금 다시 바깥의 사건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더 위태로워 보였다. 사람이 너무 많은 충격을 한꺼번에 받으면, 무너지는 대신 잠깐 투명해지는 순간이 온다. 지금 하나가 그랬다.“뭐래?”그녀가 마침내 물었다.건우는 휴대폰을 내렸다.“폐창고에서 흔적이 나왔대. 피 묻은 천 조각, 녹음기 부품, 그리고 벽에 글자가 있었대.”하나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열었다.“신우 씨가 남긴 거야?”“그럴 가능성이 있대.”“뭐라고 적혀 있었는데.”건우는 잠깐 멈췄다. 이 문장을 전하는 순간, 하나도 정미라라는 이름 하나 뒤에 숨으려던 마지막 기대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숨길 수는 없었다.“그 여자는 혼자가 아니다.”하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공원 바닥에 남은 물기가 햇빛을 받아 작게 반짝이고 있었고, 멀리서 지나가는 차 소리가 낮게 번졌다. 평범한 낮 한가운데서, 그 문장은 너무 어두웠다.“그럼 정미라 뒤에 누가 더 있다는 거네.”하나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형은 그렇게 봤던 것 같아.”하나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서하라는 이름을 듣고 낯설어진 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손이 다시 현실의 단서를 붙잡으려는 것처
하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경찰서 앞을 벗어나 천천히 걸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사람 많은 거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조금 걷자 작은 공원이 나왔다. 비가 그친 뒤의 공원은 젖은 흙 냄새가 났고, 벤치들은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건우는 마른 쪽을 찾아 하나와 나란히 앉지 않고, 조금 비스듬히 마주 보는 위치에 섰다.하나는 먼저 앉지 않았다.“말해.”그녀가 말했다.건우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서하는 네가 만든 거라고 말할 수는 없어. 내가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어떤 순간의 너는 하나가 아니었고, 그 사람은 자신을 서하라고 했어.”하나는 움직이지 않았다.건우는 문장을 이어갔다.“서하는 네 기억을 다르게 가지고 있어. 네가 모르는 감정, 네가 피한 장면, 네가 견디지 못한 밤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어. 그리고 신우 형도 그걸 느꼈던 거야.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네 안에 자기가 아는 하나와 다른 밤이 있다는 걸.”하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조금씩 빠졌다.“그럼 신우 씨가 무서워했다는 게… 나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이었어?”건우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둘을 나눠서 말하기 어려워.”하나는 그 대답에 숨을 삼켰다.“그 사람은 지금도 있어?”건우는 조용히 말했다.“있어.”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하나의 눈이 아주 깊게 흔들렸다.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손목을 내려다봤다. 마치 자기 몸이 갑자기 낯설어진 사람처럼.“나한테 말한 적 있어?”“직접은 아니야. 네 입으로 나온 적은 있어도, 네가 기억하지 못해.”하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공원 바깥에서는 차들이 지나갔고, 멀리서 아이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평범한 낮이었다. 이런 낮에, 자기 안에 다른 이름이 있다는 말을 듣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마침내 하나가 물었다.“그 사람은 신우 씨 죽음하고도
회의실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형사는 그 말에 수사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건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은 사건의 진술이 아니라, 이 사건 전체가 하나에게 남긴 상처였다.건우는 천천히 말했다.“그래서 이제는 같이 보는 거야.”하나는 그를 바라봤다.복도에서 들었던 이름, 서하. 아직 다 듣지 못한 진실. 그 약속까지 그 한 문장 안에 같이 들어 있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정말?”하나가 물었다.건우는 피하지 않았다.“응. 오늘.”형사는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끼어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 관계의 복잡함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윤신우, 강하나, 강건우. 그리고 그 안쪽에 아직 공식 기록에는 없는 서하라는 이름. 수사 기록은 사람의 몸을 따라가지만, 진실은 때로 기록 밖의 감정과 공백에서 먼저 움직인다.잠시 뒤 젊은 형사가 다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전화 메모가 들려 있었다.“택시 기사 확인됐습니다.”형사의 시선이 바로 그에게 향했다.“말해.”“사건 이틀 전 밤, 윤신우 씨와 정미라로 추정되는 여성을 태운 기사가 맞다고 합니다. 하차 지점은 해안도로 쪽 폐창고 근처입니다.”건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해안도로요?”젊은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현재는 거의 쓰지 않는 창고 단지입니다. 기사 말로는 두 사람이 말이 거의 없었고, 여성이 먼저 목적지를 말했답니다. 윤신우 씨는 내릴 때 화가 난 얼굴이었다고 했습니다.”하나는 손끝을 테이블 아래에서 움켜쥐었다.형사는 바로 지도 화면을 띄웠다. 폐창고 단지는 도시 외곽 바닷가 쪽에 있었다. 밤이면 사람 왕래가 거의 없고, CCTV도 드문 지역이었다. 누군가와 은밀히 만나거나, 무언가를 주고받기에는 적당한 곳이었다.건우는 그 지도를 보며 문득 신우의 녹음 속 문장을 떠올렸다. 오늘 만나는 사람이 진짜 차미령인지, 정미라인지 확신은 없다. 파일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폐창고가 신우가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가득한 방, 건우는 숫자를 다시 적었다.9:129:189:37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왜.’-형은 왜 전화했는가.-위험을 알리기 위해?-아니면 누군가의 도착을 확인하기 위해?그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형이 전화한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면.그 생각은 섬뜩했다.만약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9시 18분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우는 펜을 내려놓았다.기억은
비는 오지 않았는데도, 저녁 공기가 눅눅했다.건우는 창문을 열어두고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걸 느꼈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숫자가 적힌 메모가 놓여 있었다.9:129:189:37그 아래, 어젯밤 그가 덧붙인 한 줄.‘조용했다.’그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어보았다.조용했다면,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움직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그 생각이 목을 죄었다.하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물 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지는…건우는 문득 물었다.“그날… 진동 느
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건우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불을 켜지도 끄지도 못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하나의 말. 나가려는 목소리였다.유림의 말.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렸어야 한다.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혹시 문을 잠근 사람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 생각은 곧바로 밀어냈다.너무 빨랐다. 너무 직접적이었다.아침, 하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부엌에서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식는 것 같았다.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문은 닫힌 채였다.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빼지 못했다.9시 12분.9시 18분.6분.그 짧은 시간이 자꾸 마음을 긁었다.집에 들어서자, 현관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빛이 바닥에 길게 떨어졌다.하나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그대로 거실에 섰다.“유림 씨 말, 어떻게 들렸어?”그녀가 먼저 물었다.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근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