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그날 밤.”그는 천천히 말했다.“형은 칼에 찔린 뒤에도 바로 죽지 않았어.”하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건우는 멈추지 않았다. 다만 문장을 서두르지 않았다.“외부에서 누가 형을 찔렀고, 그건 지금 우리가 쫓는 정미라 쪽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그런데 형은 그 상태에서도 살아 있었고, 누군가를 기다린 건지, 뭔가를 남기려고 한 건지, 끝까지 버티고 있었어.”하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만 건우를 향해 있었다.“그리고?”건우는 목 안쪽이 마르는 걸 느꼈다.“나는 그 장면을 나중에 봤어. 기억처럼 떠올린 게 아니라, 그 공간에 다시 들어간 것처럼. 형이 숨이 붙어 있었고, 내 이름을 부르려 했고, 나는…”그는 말을 멈출 뻔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나는 다가가지 않았어.”하나는 처음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도망가지는 않았다.“그게 무슨 말이야.”“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움직이지 않았어. 그때의 내가 실제로 거기 있었는지, 기억이 얼마나 끊겼는지, 아직 전부 확정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내가 본 건 그거야. 나는 그 순간에 멈췄고, 서하는 앞으로 갔어.”하나의 입술이 떨렸다.“서하가…”건우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형의 마지막 숨을 끊었어.”말이 떨어진 뒤, 공원은 너무 조용해졌다. 멀리서 들리던 차 소리도 잠깐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는 숨을 쉬지 않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건우는 다가가지 않았다. 붙잡아야 할 것 같았지만, 지금 붙잡는 건 다시 그녀를 자기 판단 안에 가두는 일이 될 수 있었다.한참 뒤, 하나가 겨우 말했다.“내 몸으로?”건우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응.”“내가 기억 못 하는 내가, 신우 씨를…”그녀는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그러나 끝내지 못한 말이 오히려 더 잔인하게 남았다.건우는 조용히 말했다.“네가 한 거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네 몸으로 벌어진 일인 건 맞아. 그래서 내가 너한테 말하는 거야. 더 늦기 전에.”하나는
형사의 마지막 말이 전화 너머에서 끊어진 뒤에도, 건우는 한동안 휴대폰을 귀에서 내리지 못했다. 통화가 끝났다는 화면은 이미 떠 있었지만, 그 여자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문장만은 여전히 귓속에 남아 있었다. 정미라라는 이름이 드러났고, 차미령이라는 과거가 따라붙었으며, 병원과 신우의 죽음, 문태오의 실종까지 한 선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는데, 신우가 폐창고 벽에 남긴 문장은 그 모든 선을 다시 찢어놓았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미라 하나를 찾으면 끝나는 사건이 아니었다.하나는 건우의 표정을 보고 먼저 묻지 않았다.방금 전까지 서하라는 이름을 듣고, 자기 안에 모르는 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의 얼굴이었는데도, 그녀는 지금 다시 바깥의 사건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더 위태로워 보였다. 사람이 너무 많은 충격을 한꺼번에 받으면, 무너지는 대신 잠깐 투명해지는 순간이 온다. 지금 하나가 그랬다.“뭐래?”그녀가 마침내 물었다.건우는 휴대폰을 내렸다.“폐창고에서 흔적이 나왔대. 피 묻은 천 조각, 녹음기 부품, 그리고 벽에 글자가 있었대.”하나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열었다.“신우 씨가 남긴 거야?”“그럴 가능성이 있대.”“뭐라고 적혀 있었는데.”건우는 잠깐 멈췄다. 이 문장을 전하는 순간, 하나도 정미라라는 이름 하나 뒤에 숨으려던 마지막 기대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숨길 수는 없었다.“그 여자는 혼자가 아니다.”하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공원 바닥에 남은 물기가 햇빛을 받아 작게 반짝이고 있었고, 멀리서 지나가는 차 소리가 낮게 번졌다. 평범한 낮 한가운데서, 그 문장은 너무 어두웠다.“그럼 정미라 뒤에 누가 더 있다는 거네.”하나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형은 그렇게 봤던 것 같아.”하나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서하라는 이름을 듣고 낯설어진 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손이 다시 현실의 단서를 붙잡으려는 것처
하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경찰서 앞을 벗어나 천천히 걸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사람 많은 거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조금 걷자 작은 공원이 나왔다. 비가 그친 뒤의 공원은 젖은 흙 냄새가 났고, 벤치들은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건우는 마른 쪽을 찾아 하나와 나란히 앉지 않고, 조금 비스듬히 마주 보는 위치에 섰다.하나는 먼저 앉지 않았다.“말해.”그녀가 말했다.건우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서하는 네가 만든 거라고 말할 수는 없어. 내가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어떤 순간의 너는 하나가 아니었고, 그 사람은 자신을 서하라고 했어.”하나는 움직이지 않았다.건우는 문장을 이어갔다.“서하는 네 기억을 다르게 가지고 있어. 네가 모르는 감정, 네가 피한 장면, 네가 견디지 못한 밤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어. 그리고 신우 형도 그걸 느꼈던 거야.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네 안에 자기가 아는 하나와 다른 밤이 있다는 걸.”하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조금씩 빠졌다.“그럼 신우 씨가 무서워했다는 게… 나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이었어?”건우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둘을 나눠서 말하기 어려워.”하나는 그 대답에 숨을 삼켰다.“그 사람은 지금도 있어?”건우는 조용히 말했다.“있어.”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하나의 눈이 아주 깊게 흔들렸다.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손목을 내려다봤다. 마치 자기 몸이 갑자기 낯설어진 사람처럼.“나한테 말한 적 있어?”“직접은 아니야. 네 입으로 나온 적은 있어도, 네가 기억하지 못해.”하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공원 바깥에서는 차들이 지나갔고, 멀리서 아이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평범한 낮이었다. 이런 낮에, 자기 안에 다른 이름이 있다는 말을 듣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마침내 하나가 물었다.“그 사람은 신우 씨 죽음하고도
회의실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형사는 그 말에 수사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건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은 사건의 진술이 아니라, 이 사건 전체가 하나에게 남긴 상처였다.건우는 천천히 말했다.“그래서 이제는 같이 보는 거야.”하나는 그를 바라봤다.복도에서 들었던 이름, 서하. 아직 다 듣지 못한 진실. 그 약속까지 그 한 문장 안에 같이 들어 있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정말?”하나가 물었다.건우는 피하지 않았다.“응. 오늘.”형사는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끼어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 관계의 복잡함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윤신우, 강하나, 강건우. 그리고 그 안쪽에 아직 공식 기록에는 없는 서하라는 이름. 수사 기록은 사람의 몸을 따라가지만, 진실은 때로 기록 밖의 감정과 공백에서 먼저 움직인다.잠시 뒤 젊은 형사가 다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전화 메모가 들려 있었다.“택시 기사 확인됐습니다.”형사의 시선이 바로 그에게 향했다.“말해.”“사건 이틀 전 밤, 윤신우 씨와 정미라로 추정되는 여성을 태운 기사가 맞다고 합니다. 하차 지점은 해안도로 쪽 폐창고 근처입니다.”건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해안도로요?”젊은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현재는 거의 쓰지 않는 창고 단지입니다. 기사 말로는 두 사람이 말이 거의 없었고, 여성이 먼저 목적지를 말했답니다. 윤신우 씨는 내릴 때 화가 난 얼굴이었다고 했습니다.”하나는 손끝을 테이블 아래에서 움켜쥐었다.형사는 바로 지도 화면을 띄웠다. 폐창고 단지는 도시 외곽 바닷가 쪽에 있었다. 밤이면 사람 왕래가 거의 없고, CCTV도 드문 지역이었다. 누군가와 은밀히 만나거나, 무언가를 주고받기에는 적당한 곳이었다.건우는 그 지도를 보며 문득 신우의 녹음 속 문장을 떠올렸다. 오늘 만나는 사람이 진짜 차미령인지, 정미라인지 확신은 없다. 파일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폐창고가 신우가
“시간도 일치합니다. 윤신우 씨가 해당 건물에 들어간 뒤 약 48분 후에 다시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올 때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젊은 형사가 다음 장면을 띄웠다.화면 속 신우는 건물 입구에서 먼저 나왔고, 잠시 뒤 다른 인물이 뒤따라 나왔다. 긴 외투를 입은 여성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걸음과 자세는 익숙했다. 어깨가 한쪽으로 살짝 빠져 있고, 고개를 기울인 채 주변을 확인하는 듯한 움직임. 하나의 손이 무릎 위에서 굳었다.형사는 하나를 보았다.“같은 사람으로 보이십니까.”하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억지로 기억을 끌어내기보다, 화면 속 움직임이 자기 안에서 무엇을 건드리는지 기다리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같은 사람 같아요.”그녀가 천천히 말했다.“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 자세는 같아요.”형사는 그 말을 기록했다. 건우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신우가 정미라의 공간에 들어갔다. 48분 뒤 함께 나왔다. 그리고 이틀 뒤 그는 죽었다. 그 사이에 신우는 건우에게 부재중 전화를 남겼고, 주방 냉장고 옆 틈에 USB를 숨겼으며, 정미라의 이름과 차미령의 이름을 연결하는 자료를 쫓았다.“그날 둘이 어디로 갔습니까.”건우가 물었다.젊은 형사는 다음 화면을 띄우려다 잠깐 멈췄다.“일부 동선은 끊겼습니다. 다만 근처 도로 CCTV에서 두 사람이 함께 택시에 타는 장면이 확인됐고, 하차 지점은 아직 확인 중입니다. 택시 호출 기록은 없어서 길에서 잡은 차량으로 보입니다.”형사는 말을 이어받았다.“택시 기사 확인 중입니다. 블랙박스나 결제 기록이 남아 있으면 추가 동선이 나올 겁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은 다시 한 발 나아갔다. 정미라의 공간, 신우의 두 번째 휴대폰, 함께 탄 택시. 이제 신우가 죽기 전 마지막 이틀의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실제 시간표 위에 올라오기 시작했다.그때 형사는 새로운 자료를 꺼냈다.“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정미라가 휴직 전 마지막으로
회의실로 돌아왔을 때, 테이블 위에는 새로운 증거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투명한 비닐 안쪽에 들어 있는 검은색 휴대폰은 전원이 꺼진 상태였고, 화면에는 미세한 흠집과 먼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래 방치된 물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완전히 잊힌 물건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일부러 전원을 끄고, 일부러 보이지 않는 곳에 밀어 넣어둔 뒤, 다시 필요해질 날을 기다리게 만든 물건처럼 보였다.건우는 자리에 앉지 않은 채 그 휴대폰을 바라봤다. 신우에게 휴대폰이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무언가를 조사하는 사람이 공식 연락망과 별개의 기기를 쓰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 휴대폰이 신우의 집이나 회사가 아니라 정미라의 주소지에서 발견됐다는 점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단순한 추적 이상의 접촉이 있었다는 의미가 생겼다.형사는 증거 봉투 옆에 놓인 사진 몇 장을 앞으로 밀었다. 사진 속 장소는 낡은 오피스텔 내부처럼 보였다. 가구는 거의 없었고, 창문에는 오래된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으며, 바닥 한쪽에는 정리되지 않은 전선들과 빈 박스가 쌓여 있었다. 사람이 살던 공간이라기보다, 잠깐 숨어 있거나 무언가를 보관하기 위해 쓰인 공간에 가까웠다.“정미라 명의로 임대된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장기 체류 흔적이 있고, 내부에서 병원 출입증 일부와 오래된 신분증 사본, 그리고 윤신우 씨의 것으로 보이는 보조 휴대폰이 발견됐습니다.”형사는 설명을 이어가며 또 다른 사진을 꺼냈다. 낡은 서랍 안쪽, 테이프가 붙은 작은 비닐 파우치 속에 휴대폰이 들어 있는 장면이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완전히 감춰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찾을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게 둔 위치였다.하나는 의자에 앉은 채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조금 전 복도에서 서하라는 이름을 들은 뒤부터 그녀의 얼굴에는 이전과 다른 긴장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날, 건우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아픈 건 아니었다. 몸은 멀쩡했다.다만,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부모님이 돌아가셨다.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정말로 세상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자신은 살아 있고, 더이상 그의 부모는 없다.-그게 말이 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1년.건우는 병실 침대 위에서 1년을 보냈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장례도, 화장도.향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었고,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도 없었다. 울지도 못했다.그건 애초에 건우의 몫이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가득한 방, 건우는 숫자를 다시 적었다.9:129:189:37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왜.’-형은 왜 전화했는가.-위험을 알리기 위해?-아니면 누군가의 도착을 확인하기 위해?그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형이 전화한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면.그 생각은 섬뜩했다.만약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9시 18분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우는 펜을 내려놓았다.기억은
비는 오지 않았는데도, 저녁 공기가 눅눅했다.건우는 창문을 열어두고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걸 느꼈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숫자가 적힌 메모가 놓여 있었다.9:129:189:37그 아래, 어젯밤 그가 덧붙인 한 줄.‘조용했다.’그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어보았다.조용했다면,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움직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그 생각이 목을 죄었다.하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물 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지는…건우는 문득 물었다.“그날… 진동 느
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건우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불을 켜지도 끄지도 못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하나의 말. 나가려는 목소리였다.유림의 말.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렸어야 한다.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혹시 문을 잠근 사람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 생각은 곧바로 밀어냈다.너무 빨랐다. 너무 직접적이었다.아침, 하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부엌에서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