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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먼저 움직이는 사람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3 08:24:41

위협은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주차장 블랙박스 전원 차단, 검은 장갑을 낀 손,

손목에 스친 시계의 반짝임. 그것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우리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건우는 그 메시지를 흘려듣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상대가 기대하지 않을 방향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는 가장 먼저 CCTV 사각지대를 확인했다.

주차장 출입구, 엘리베이터 홀, 지하 통로의 동선까지 하나씩 점검하며

기록을 남겼다. 동시에 지인을 통해 해당 시간대의 주변 상가 CCTV 확보 가능성도 타진했다.

감시는 정교했지만,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짠 구조는 언제나 작은 틈을 남긴다.

하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묻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을 꺼내 회사 내부 시스템 접근 로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이상 주변에서 관찰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스스로 회사의 데이터 흐름을 살펴보며, 최근 한 달간 재무팀 서버 접근 패턴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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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147. 말하지 않는 사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희미하게 번지는 동안, 건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USB를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작은 물건 하나를 집어 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고작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덩어리인데,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단순한 파일 몇 개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건 아마, 형의 죽음 이후 자신이 붙잡고 있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맞은편에 앉아 있는 최준석은 건우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할 말을 다 정해두고도, 그걸 어디까지 내놓아야 할지 마지막까지 계산하고 있는 얼굴에 가까웠다.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는 차분해 보였지만, 그 차분함이 편안함에서 오는 건 아니라는 정도는 건우도 알 수 있었다. 무너지는 걸 겨우 버티는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움직임이 적어진다.한참의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건 최준석 쪽이었다.“그거, 전부 아닙니다.”건우는 그제야 시선을 들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방 안에 오래 남는 종류의 말이었다. 건우는 대답 대신 USB 쪽으로 눈을 한 번 내렸다가 다시 최준석을 바라봤다.“전부 아니면.”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뭐가 더 남아 있는데요.”최준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빗소리가 잠깐 더 선명해진 사이, 그는 마른 입술을 한 번 눌렀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지금까지 보신 건… 겉입니다.”그 말은 이상하게도 건우의 신경을 건드렸다. 겉이라니. 그 안에 들어 있던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지저분했다. 자금 흐름은 말할 것도 없고, 외주 계약서와 누락된 정산 내역, 서로 다른 이름으로 돌려 막은 계좌들,사고 전후 시점과 묘하게 맞물려 있는 몇 개의 승인 기록까지. 그 파일을 처음 열었을 때 건우는 솔직히 그 정도면 이미 바닥에 닿은 줄 알았다.그런데 저 남자는 지금 그게 바닥이 아니라 표면이라고 말하고 있었

  • 형수의 밤   146. 도망칠 방향이 사라졌을 때

    차에서 내리는 순간,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도심에서 벗어난 곳의 밤은 소리가 얇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차량 소리도 희미했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만이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건우는 문을 닫으며 시선을 곧장 주차장 쪽으로 옮겼다.검은 SUV.번호는 이미 확인했다.그 차량이 이곳에 있다는 건, 최준석이 아직 이 안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었다.하나는 건우의 옆에 섰다.“어디지.”건우는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봤다.리조트 본관.전체 불이 켜져 있지는 않았다.일부 층, 일부 구간만 밝게 드러나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 방향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저쪽.”그가 낮게 말했다.하나의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2층.복도 끝 쪽.창문 하나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다른 방들은 어둡거나, 희미하게만 켜져 있었다.서하는 뒤에서 말했다.“혼자 쓰네.”건우는 짧게 대답했다.“그럴 거다.”짧은 판단.사람이 적은 곳을 고른 이유는 명확하다.마주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세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리조트 입구 쪽으로 향했다.유리문이 열리자, 안쪽 공기가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로비에는 직원 한 명이 앉아 있었지만, 시선은 깊게 머물지 않았다. 늦은 시간, 손님이 드문 시간대였다.건우는 멈추지 않고 계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하나는 그 선택을 이해했다.소리.정지 시간.불필요한 변수.계단이 더 빠르고, 더 조용했다.발걸음이 한 계단씩 올라갔다.소리는 최소한으로 줄였다.건우의 시선은 위쪽에 고정되어 있었다.2층.복도.빛이 새어나오는 방.그 위치까지의 거리.모든 것이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다.2층에 도착했다.복도는 조용했다.카펫이 깔려 있어 발걸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벽에 걸린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고, 그 사이로 길게 뻗은 복도가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건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빛이 있는 방향으로 하나는 옆을 따라붙었다.서하는 뒤쪽을

  • 형수의 밤   145. 아직 끊기지 않은 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안쪽의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층수를 표시하는 숫자가 내려갈수록,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생각이 더 또렷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건우는 벽에 기대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시선은 정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음 동선이 그려지고 있었다.최준석.이름 하나가 방향을 바꿨다.김도현이 만든 흐름이 드러났다면,최준석은 그 흐름을 유지시키는 역할에 가까웠다.그 말은 곧. 지금 이 구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지하 주차장의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바닥에 길게 번지고 있었다.건우는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하나는 옆을 따라붙었다.“위치 찍혔어?”건우는 짧게 대답했다.“대략.”그의 시선이 차량 사이를 훑었다.“도시 외곽.”잠시 후.“리조트 쪽.”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사람 많지 않은 곳.”서하는 뒤에서 말했다.“숨기 좋네.”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알고 있었다.사람이 적은 곳은 시선이 적다.시선이 적으면. 움직임이 자유로워진다.그래서. 그곳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엔진 소리가 낮게 울렸다.차는 곧장 출구를 향해 움직였다.지상으로 올라오자, 저녁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있었다.빛이 낮아졌고, 그림자가 길어졌다. 도로 위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건우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했다.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지금 필요한 건 빠름이 아니라 정확함이었다.하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마지막 위치.”잠시 후.“두 시간 전이야.”건우는 짧게 물었다.“이동 속도.”하나는 화면을 확인했다.“차량 기준이면.”잠시 생각했다.“지금쯤 도착했을 수도 있고.”서하는 덧붙였다.“아직 있을 수도 있고.”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둘 다 가능했다.그래서, 놓칠 수 없다.차는 도시를 벗어나고 있었다.건물들이 줄어들고, 도로가 길게

  • 형수의 밤   144. 피한 거다, 라는 짧은 결론

    모니터를 닫자, 방 안의 공기가 다시 평소의 밀도로 돌아왔다.숫자와 기록 속에 잠겨 있던 시간이 빠져나가자, 주변의 소리가 조금씩 또렷해졌다. 누군가 서류를 넘기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통화 음성, 키보드를 두드리는 리듬.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고 있었다.건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았다.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채, 방금 정리한 흐름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훑었다.김도현.그리고, 최준석.이름 두 개가 같은 선 위에 놓여 있었다.하나는 조용히 말했다.“연락할 거야?”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그리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짧은 대답이었다.하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그 대답에는 이미 방향이 담겨 있었다.건우는 말했다.“지금 연락하면.”잠시 후.“숨는다.”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아직 모른다.”짧은 설명.최준석은 지금 상황을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김도현이 흔들렸다는 것.흐름이 드러났다는 것.그 모든 것이 아직 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그 틈이 필요했다.서하는 벽에 기대며 말했다.“그럼 먼저 보러 가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위치부터.”그의 말이 이어졌다.“확인한다.”하나는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자료에 있지.”건우는 짧게 말했다.“있다.”그는 USB 안에서 열어둔 파일을 다시 불러왔다.연결된 이름 목록.그 중 하나, 최준석.이름을 클릭했다.관련 정보가 펼쳐졌다.소속.직함.연락처.그리고, 최근 동선.하나는 화면을 따라가며 말했다.“외부 감사팀.”잠시 후.“본사는 따로 있고.”건우는 이어서 말했다.“지금은.”그의 시선이 한 줄에 멈췄다.“출장 중.”짧은 정적.하나는 눈을 좁혔다.“출장?”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제부터.”그의 말이 이어졌다.“지방.”서하는 작게 웃었다.“타이밍 좋네.”그녀의 말에는 가벼움이 있었지만, 상황은 가볍지 않았다.하나는 조용히 물었다.“우연일까.”건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시선을 내려

  • 형수의 밤   143. 흐름을 따라가면 남는 것

    파일을 하나 더 여는 순간, 화면의 결이 달라졌다.숫자와 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점의 기록들이 층을 이루며 쌓여 있었다. 거래 내역과 메일, 승인 로그가 시간 순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비어 있는 구간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건우는 마우스를 멈추지 않았다.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흐름을 한 번 따라가고,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같은 길을 두 번 밟으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균열이 드러난다.하나는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뭐 보여.”건우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비어 있는 시간.”짧은 답이었다.하나는 화면을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어디.”건우는 커서를 한 지점에 멈췄다.“여기.”날짜 하나가 표시됐다.특정 구간, 거래가 멈춰 있는 시간.그 전후로는 일정하게 이어지던 흐름이 그 구간만 비어 있었다.하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왜 끊겼지.”건우는 천천히 말했다.“끊은 게 아니라.”잠시 후.“숨긴 거다.”그 말은 단순했다.흐름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흐름을 가리는 사람도 있다.그리고, 그 가려진 구간은 대개 중요한 순간이다.서하는 뒤에서 화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사고 날짜.”그녀의 말이 이어졌다.“그 근처 아니야.”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맞다.”그의 시선이 더 깊어졌다.“사고 전후.”짧은 정적, 하나는 숨을 낮췄다.“그럼.”그녀의 말이 이어졌다.“그때 뭔가 더 있었네.”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이미 그 방향으로 생각이 이어지고 있었다.그는 다른 파일을 열었다.메일 기록, 날짜를 맞췄다.같은 시점.같은 구간.그리고, 짧은 문장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일정 변경.’그 아래.‘직접 처리.’건우의 손이 멈췄다.하나는 그 문장을 읽었다.“직접?”건우는 낮게 말했다.“평소랑 다르다.”짧은 설명이었다.보통 이런 구조에서는 역할이 나뉜다.흐름을 만드는 사람.확인하는 사람.정리하는 사람.그런데, 그 구간에서는 ‘직접 처리’

  • 형수의 밤   142. 지키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모니터에 떠오른 목록은 단순한 파일 배열이 아니었다.숫자와 날짜, 거래 코드들이 줄지어 이어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이름들은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는 선을 뻗고 있었다. 건우는 마우스를 움직이지 않은 채,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처음에는 흐름을 본다.그다음에는 끊긴 지점을 찾는다.그리고 마지막에, 그 사이를 메우는 이름이 드러난다.그 순서를 몸으로 알고 있었다.하나는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열어봐.”건우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대신 커서를 움직였다. 하나의 파일을 선택하고, 더블클릭했다.창이 열렸다.표 형태의 데이터가 화면을 채웠다.입금과 출금, 계좌 간 이동, 반복되는 패턴. 일정한 간격으로 쪼개진 금액들이 서로 다른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그 경로의 끝에는 다시 같은 지점으로 모이는 구조가 숨어 있었다.하나는 화면을 따라가며 숨을 낮췄다.“이거.”그녀의 말이 이어졌다.“완전히 설계된 구조네.”건우는 천천히 말했다.“흐름이 끊기지 않는다.”짧은 설명이었다.단순히 돈을 빼돌린 게 아니라,흐름을 끊기지 않게 만들어 놓았다.그래야 추적이 늦어진다.그래야. 시간이 생긴다.서하는 뒤에서 화면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혼자 한 거 아니다.”건우는 대답 대신 파일을 하나 더 열었다.다른 계좌.다른 경로.그러나 구조는 같았다.그리고, 그 끝에서. 같은 이름이 반복되고 있었다.건우의 시선이 멈췄다.하나는 그 지점을 따라갔다.“저 이름.”그녀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건우는 천천히 읽었다.“최준석.”짧은 이름이었다.하지만, 그 이름이 놓인 위치는 짧지 않았다.하나는 기억을 더듬었다.“이 사람.”그녀가 말했다.“외부 감사팀.”건우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형이.”잠시 후 덧붙였다.“마지막에 접촉하려고 했던 사람.”그 말이 떨어지자, 공기가 달라졌다.단순한 공범이 아니었다.이 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혹은 이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서하는

  • 형수의 밤   10. 의심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가득한 방, 건우는 숫자를 다시 적었다.9:129:189:37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왜.’-형은 왜 전화했는가.-위험을 알리기 위해?-아니면 누군가의 도착을 확인하기 위해?그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형이 전화한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면.그 생각은 섬뜩했다.만약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9시 18분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우는 펜을 내려놓았다.기억은

  • 형수의 밤   9. 진동

    비는 오지 않았는데도, 저녁 공기가 눅눅했다.건우는 창문을 열어두고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걸 느꼈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숫자가 적힌 메모가 놓여 있었다.9:129:189:37그 아래, 어젯밤 그가 덧붙인 한 줄.‘조용했다.’그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어보았다.조용했다면,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움직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그 생각이 목을 죄었다.하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물 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지는…건우는 문득 물었다.“그날… 진동 느

  • 형수의 밤   8. 잠긴 문

    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건우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불을 켜지도 끄지도 못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하나의 말. 나가려는 목소리였다.유림의 말.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렸어야 한다.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혹시 문을 잠근 사람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 생각은 곧바로 밀어냈다.너무 빨랐다. 너무 직접적이었다.아침, 하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부엌에서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 형수의 밤   7. 6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식는 것 같았다.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문은 닫힌 채였다.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빼지 못했다.9시 12분.9시 18분.6분.그 짧은 시간이 자꾸 마음을 긁었다.집에 들어서자, 현관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빛이 바닥에 길게 떨어졌다.하나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그대로 거실에 섰다.“유림 씨 말, 어떻게 들렸어?”그녀가 먼저 물었다.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근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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